개인적으로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재킷을 좀 더 자주 입어야 한다'고.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수트보다 훨씬 유연하면서도 자유롭고 또한 여기에 더하여 예술적인 시도를 해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뭐, 거창하게 예술을 들먹이냐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재킷의 자유로운 면을 생각한다면 그리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재킷은 수트로부터 파생됐지만, 수트가 시도하지 못했던 파격을 다양하게 실험해 볼 수 있기에.
재킷은 수트를 입었을 때보다 더 과감한 패턴을 시도해 볼 수 있고, 대담한 색상도 매치해 볼 수 있다. 개인이 색을 무한대로 사용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시도가 난 이 재킷 스타일에 있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사실, 개인이 일상 생활에서 색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림을 그리거나, 필기구를 사용할 때를 제외하면 색을 스스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별로 없다. 대부분 어떤 물건을 고를 때 정해져 있는 색(단색)을 선택하는 행위에 한정되고 있다. (자동차나 냉냉고를 구입할 때를 떠올려보자)
하지만 옷을 입을 때는 여러 가지 색을 나 스스로 선택하여 매칭할 수 있다. 나는 이 행위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편이다. 스케치 북에 그린 색은 가지고 다니기 힘들지만, 옷에 사용된 색은 내가 가는 곳 어디든지 나와 함께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디든. (물론 목욕탕은 제외해야 겠지..ㅎ)
재킷은 남자의 물건 중 이런 다채로운 색을 표현하는 데 가장 알맞은 아이템이다. 이런 이유로,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젊어 보일 수 있는 스타일이 바로 재킷 위주의 코디다. (과감한 시도는 젊음의 상징과도 같으니까) 네이비 블레이저 한 벌이면 어떤 바지를 매치해도 다채로운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일곱 빛깔 무지개 색의 바지를 입을 수 있고, 무채색 계열도 잘 어울린다.
내가 위에서 '예술' 운운 했던 것도 바로 재킷의 색에 대한 이런 열린 가능성 때문이다. 네이비 블레이저에 오렌지 바지를 입었다고 손가락질 할 사람은 거의 없다. 수트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착장이다.
그렇기에 재킷은 열려 있는 아이템이다. 이에 비해 수트는 닫혀 있다. 격식에 맞게 입는 것이 중요하기에, 색상과 매칭에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킷은 이런 수트의 단점을 커버하면서도 어느 정도의 격식을 차릴 수 있다. 그게 바로 네이비 블레이저의 매력이다. (재킷을 처음 시도하는 분들은 네이비 블레이저로 시작하면 무난하겠다.)
클래식한 수트와 재킷이 어떤 지점에서 다른지 명확히 이해할 수만 있다면, 재킷의 본질을 충실히 구현할 수 있다. 형태는 같지만, 표현(착장) 방법은 완전히 다르기에. 이게 바로 재킷의 본질이자 묘미일 것이다.
재킷, 몇 종류나 있을까?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남성 재킷의 종류는 생각보다 많은 편이다. 노포크 재킷, 왁스 재킷(보통 야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형태), 데님 재킷(일명 G 재킷), 스포츠 재킷, 헌팅(슈팅) 재킷, 해킹 재킷, 사파리 재킷, 블레이저 등. (아래 이미지 참조)
이 중에서 수트 상의를 대체할 수 있는 재킷은 스포츠 재킷, 헌팅 재킷, 해킹 재킷, 블레이저 등으로 한정된다. 사실 이 모든 재킷을 스포츠 코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스포츠 재킷이라 부르는 류가 근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재킷'이다. 소위 테일러드 재킷이라 부르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런 재킷은 원래 19세기 후반 영국 귀족 남자들이 야외활동(골프, 승마, 사냥)을 할 때 입었던 스포츠 코트가 좀더 단순해 진 형태다. 그래서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주로 시골의 별장에서 입었고, 도시에서 입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20년대 트위드 재킷이 캐주얼 웨어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재킷으로 입기 시작했다...고 복식사는 전한다.
재킷, 어떻게 입을까?
보통 [데님 팬츠+셔츠+야상 또는 데님 팬츠+라운드 니트+항공 점퍼]에 부츠(닥터 마틴 부츠나 워커 부츠)를 입은 룩을 남친 룩의 정형이라 한다. 깔끔한 룩의 대명사라고도 회자된다. 물론 핏이 좋을수록 괜찮은 룩인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직장인이 30이 넘고 40이 돼서도 이렇게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이가 들고 사회 경험이 쌓일수록 이런 캐주얼 룩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을 많이 발생하게 한다. 이런 차림으로 여자와 고급 레스토랑에 갈 수 없을뿐더러, 결혼식이나 상견례 장에 가기 힘들다. 물론 갈 수는 있지만 따가운 눈총과 뒷담화를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재킷을 입으면, 장례식 장이나 회사 리셉션 장을 제외하고 어디든 갈 수 있다. 왜냐하면 재킷은 수트 상의와 형태가 같기 때문에 캐주얼이라도 무례함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 데님 팬츠를 입더라도, 타이를 매고 로퍼를 신어준다면 친구 결혼식장이나 상견례에 무난히 갈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재킷은 입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지만, 그 자유로움이 타인에게 경박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기에 남자는 재킷을 자주 입어줘야 한다. 물론 입는 방법에 대해 잘 알아야겠지만.
그럼 어떻게 입는 게 재킷을 제대로 입는 것일까? 재킷의 본질은 ‘자유’지만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줘야 한다. 물론 이런 걸 무시하고 다양하게 실험해 볼 수는 있다.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그럴 때마다 깨닫는 것이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착장법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만 기본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응용이 가능하니까.
사실, 점퍼와 블루종 등 캐주얼만 입던 사람이 처음 재킷을 입으려고 하면 상당한 심리적 난관에 봉착한다. 어떻게 입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수트 상의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어떻게 아이템을 매칭할지 난감해 한다.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그리 어렵지 않다. 난 이런 걸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주로 카탈로그나 광고에 나오는 이미지 사진을 참조했다. 그러니 구입해야 할 아이템이 많았다. 왜냐하면 옷입기에서 재킷이 중심이 되면 신발이나 가방에 제약이 있을 거 같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어렵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냥 단순하게 야상이나 점퍼 류를 입는 사람이 그 점퍼 대신에 재킷을 입으면 된다. 그냥 점퍼를 입는 식으로 재킷을 입으면, 재킷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다. 시도해 보시라. 그렇게 입어도 멋지다.
위에서 살짝 언급했던 ‘데님 팬츠+셔츠+야상’ 룩에서 야상 대신 재킷을 입고 스니커즈나 슬립온을 신으면 그걸로 끝이다. 셔츠가 드레스 셔츠고 여기에 타이만 매면 여자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야상을 입는 것과는 비교 불가다. 아는 사람만 알지만, 이 룩은 몇 년째 데이트 룩 1위를 고수하고 있다. 2위는 야상 대신 카디건. (사진에서 데님 바지에 넥타이를 맨 스타일을 눈여겨 볼 것)
이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만 남았다. 좀더 다양하고 개성적인 시도를 하기 위한 응용편. 아래 사진을 참조하면서 글을 읽으면 도움이 되시겠다. 색상과 패턴의 매치를 어떻게 했는지 눈여겨 보시면 될 듯.
재킷 초보자에게 제일 무난한 재킷은 무지다. 색상은 베이지나 네이비가 무난하다. 재킷 색상이 진하고 좀 어둡다면 바지는 밝은 계통으로 입는다. 재킷 색상이 밝다면, 바지는 어둡게 입는다. 이게 재킷을 입는 기본 원칙이다. 톤다운 시키기 보단 서로 다른 색깔로 입는 게 좋다.
원래 세퍼레이트 스타일(일명 콤비)은 서로 다른 소재와 색을 매치하는 룩을 그 기원으로 한다. 스타일리스트라는 사람들에 따라 톤다운 운운하는데, 서로 다른 소재와 색을 매칭했다고 복식사 책에 나와 있다. 재킷과 베스트와 바지를 서로 다른 소재의 색상으로 지어 입었다. 궁금해서 찾아본 정보니, 믿고 입으면 되시겠다. 톤온톤으로 입기보다 서로 다른 색상을 매치하는 게 색에 대한 감각을 키우기 더 유리하다. 이건 두말하면 입아픈 거다.
헌데, 재킷을 입을 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몇 가지 룰이 있다. 첫째, 재킷과 같은 색깔의 바지를 입는 거. 절대 하지 마시라. 그냥 수트를 입으시라. 둘째, 무늬 있는 아이템으로 도배해서 입지 마시라. 무늬 있는 아이템은 두 개를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색은 4개를 넘지 말라는 거. (마지막은 케바케이니 참고만 하면 되시겠다.)
무지 재킷과 무지 바지를 많이 입어 좀 지겨워 진 분들이라면, 그래서 좀 변화와 위트를 주고 싶으신 분이라면 무늬있는 재킷이나 바지를 시도해 볼 것을 추천드린다. 처음 시도하는 분이라면, 옷 입기에서 최고의 자유로움과 위트를 누릴 수 있다. (물론 다음 사항은 지켜야겠지.)
재킷에 무늬가 있다면, 무조건 바지는 무지 바지를 입어야 한다. 이때 재킷 무늬의 색이 4가지라면 그 중 하나의 색상을 바지 색상으로 택하면 된다. 거꾸로 바지에 패턴이 있다면 그 패턴에 쓰인 가장 근접한 색의 무지 재킷을 택하면 무난하다. 바지 패턴이 좀 더 어렵지만 기본 원칙만 지키면 여러 패턴의 바지를 즐길 수 있다.
이를 넘어서면 패턴과 패턴의 믹스 매치로 나아가게 된다. 이는 위 단계를 꾸준히 입어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을 때 시도하면 되시겠다. 극강의 포스는 서로 다른 패턴의 재킷, 셔츠, 타이, 바지의 조합이다.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입을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재킷 스타일의 달인으로 등극하는 건 시간문제일 게다.
모쪼록 남자라면, 재킷의 매력에 빠져보기 바란다. 여자가 입어도 멋있는 이 멋진 아이템을 왜 남자로서 방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비즈니스 맨들뿐 아니라 대딩들 역시 마찬가지. 비즈니스 맨이라면 비즈니스 캐주얼의 고민에서 해방될 것이고, 대딩이라면 소개팅 룩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자유업종에 해당하시는 분들이라도 데일리룩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참고로, 재킷은 고가 아이템이다. 아울렛 가서 구해도 10만원 언저리를 줘야 한다. 유니클로에서도 세일 가격이 가뿐히 5만원을 넘는 아이템. 이게 부담이라면 빈프라임이나 광장시장 빈티지 매장을 찾아가 보자. 광장시장의 경우 새 재킷을 파는 숍이 있다. 숍마다 있으니 물어보고 구매하시면 된다. 가격은 3만원 정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