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간의 마라톤 협상의 결과로 나온 타결안을 보면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이 '이건 뭐지?!!'라는 거. 그리고 새벽부터 부산하게 연속적으로 이를 보도하는 뉴스를 보면서 현 정부의 협상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찌도 그리 협상을 못하는지..

 

사실 이번 협상은 절호의 기회였다. 북한의 대남 도발을 하고 보여 준 행태 중에 가장 어의 없는 반응을 보인 때였다. 준전시태세를 선포해 놓고 바로 협상을 제기하는 모습은 북한이 얼마나 다급했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였다. 지금까지 북한이 이런 상황을 연출한 적이 없어 완전 호재였다.

 

근데! 도발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얻으려고 북으로 간 두 양반이 들고 온 결과물은 진짜 참담한 성적표였다. 바꾸어 말하면 북한 측 요구가 모두 관철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보수 언론(TV조선)에 초청되었던 한 인사가 '북한에게 있어 100점'이라는 말은 이 타결안의 결과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발언이었다.(앵커가 당황하여 빨리 마무리 한게 더 우스웠음..ㅎㅎ)

 

일단 타결안 6개 안을 거들떠 봐 보자. 북측에서 먼저 발표한 거다. 그래서 북남으로 표현되어 있다.

 

남북 고위 당국자 접촉 6개 합의 내용

 

 

 

1. 북과 남은 북남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회담을 평양 또는 서울에서 빠른 시일 안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데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


3.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신생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모든 확성기방송을 8월 25일 12시부터 중단한다.


4. 북측은 동시에 준전시상태를 해제하기로 하였다.


5. 북과 남은 오해 추석을 계기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진행하고 앞으로 계속하기로 하였으며 이를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9월 초에 가지기로 하였다.

 


6. 북과 남은 다양한 뷴야에서의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이 타결안을 두고 현재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찬사 일색으로 도배되어 있다. 김관진의 협상력이 빼어나다는 둥, 엄정하데 개처한 결과라는 둥, 박근혜 정부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성과라는 둥 정부 우호적인 평가가 대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위 타결안의 핵심 사항인 우리측 안이 하나도 반영되어 있지 않다. 도대체 '도발 사과'와 '재발 방지'는 어디에 있는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우리 측을 대표해서 간 두 사람은 북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잠도 못자고) 북한의 요구조건만을 수용하고 돌아온 꼴이다.

 

저기에 어디 사과와 재발 방지가 들어있나. 정부 측에서는 2안을 '사과'를 우회적으로 얻어 낸 것이라고 자평하는데, 이게 무슨 사과인가. 고등학생 정도만 되도 알겠다. 저 두 번째 조항은 사과가 아니란 것을.

 

 

제2항을 다시 살펴보자.

2.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데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

 

'북측'이라고 주어를 명시한 것에 대단한 의미를 두고 있는데, 이는 침소봉대이다. 저 문구는 이런 뜻일 게다. 북측이 보건데, '군사분계선에서 지뢰가 터져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평소같으면 그냥 넘어가겠는데, 남측이 자꾸 뭐라 하니) 참 유감이다.'라는 의미를 담은 내용 아니었겠나?

 

자기들이 했다면 사과를 했어야 했고, 우리 측이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바인데, 북측의 반응은 위와 같이 표기했다. '사과'와 '유감'은 완전히 다른 단어다. '사과'는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비는 것이고, '유감'이란 언잖게 여기는 마음(또는 마음에 섭섭함)이다. (사전에 찾으면 바로 나온다.ㅎ)

 

그러니까 내가 위 합의문과 정부의 행태를 보고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유감'인 거다. 여기에 '사과'를 대입해 보면 말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걸 말이 된다고 우기면 아전인수가 된다.

 

지금 언론에서 하는 거의 모든 뉴스가 바로 이런 아전인수 격이다. 우리측 성과라고 포장하는 제2항을 계속 '사과'라고 풀고 있다. 정치적 용어도 어떤 그럴듯한 해석가능한 지점이 있어야 하는데, 2항의 '유감'은 전혀 '사과'를 담고 있지 않다.

 

'유감'이 '사과'를 함축하려면 이런 식의 발언이 되어야 한다. '내가 했다. 유감이다.' 이럴 때 비로소 '유감'을 '사과'의 뜻으로 풀 수 있다. '사과'는 너무 쌔니, '유감' 정도에서 마무리 짓자는 뭐, 그런 타협점을 느낄 수 있는데, 합의문 제2항의 표현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다.

 

한 가지 성과가 있다면 제3항의 '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신생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이다. 이게 '재발 방지'라면 할 말이 없겠지만, 많은 걸 포기하고 얻은 대가치고는 수위가 낮아 불만이다.

 

여튼 총평하자면 북측은 90점, 우리측은 10점의 타결안이지 않을까 한다. 북이 공식 발표 몇 분 전에 이미 뉴스를 통해 공표했다는 것이 이 타결안의 핵심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할 것이다. 북한은 주 목적인 확성기 철거를 관철했고, 사과를 아주 미묘하게 빗겨갔으니까. 우리측은 사과도 받지 못했고, 재발 방지도 확고히 받아 내지 못했으니...

 

그냥 하늘이 준 기회를 날려 먹은 협상안이라 생각하련다~ 젠장!

 

북측에게 협상으로 휘둘린 우리 측 정부 인사들에게 다음 책들을 강추하는 바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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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sksek 2015-08-25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Q

saint236 2015-08-2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감과 사과가 유의어인지 이번에 알았습니다. 국어사전이 바뀔 것 같습니다. 네이버에서 한번 검색해 보려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8-27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감이 사과이면, 그동안 우리가 일본 정부의 유감 표명에 만날 지랄했던 것은 뭐라 설명할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