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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 - 아웃케이스 없음
마크 웹 감독, 조셉 고든 레빗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우선, 이렇게 말해 보자. 이 영화는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정말?! 보고 또 보니 그렇다는 결론.
영화 초반에 나래이션이 계속 강조한다. 이 영화는 보통의 연애물이 아니라고. 플롯의 구성도 500일의 시간을 앞뒤로 마구 왔다 갔다 해서 정신이 없었다. '보통의 연애물'이 아니라는 나래이션은 영화에 집중하기 위한 어떤 장치쯤으로 생각했다. '좀 색다른데'...라는 생각을 갖고 러닝타임의 90%를 본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주인공 톰은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고 그런 여자가 나타날 거라 굳게 믿는 소심남이다. 반면 남주와 500일을 보내는 썸머는 쿨걸이다. 진정한 사랑은 없고 가벼운 만남만이 남여관계의 전부라 믿는다. 이들이 만나 사랑을 하는 500일의 연애 이야기...라고, 나는 확신하면서 보았다.
플롯 구성이 참신해도, 뭐....이건 100% 일반 로맨스 물이라 생각했다. 플레이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쯤...썸머가 결혼 반지를 끼고 톰과의 추억의 장소(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그 벤치)에 찾아왔다. 그때의 영화 상황까지 본 나는 냉소를 쳤다.
"흥! 뭐, 연애물이 아니라고?! 연애물이네, 뭐~
그럼 그렇지....썸머는 톰을 첨부터 가볍게 보았군. 애구, 불쌍한 톰. 썸머한테 어장관리나 당하구~"
아...그런데, 둘의 추억을 간직한 그 장소에서 톰이 썸머에게 묻는다. 결혼 계획이 없다는 네가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됐는지. 그때 썸머는 말한다.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서 책에 대해 물어봤어.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의 내 남편이야.." "지금은 운명을 믿어 톰, 니가 옳았어."
나는 썸머의 바로 저 말로부터 영화를 다시 돌려보게 되었다. 그제서야 나는 이 영화가 왜 일반 로맨스물이 아닌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톰이 썸머에게 어장관리를 당한다고 생각하게 한다. 톰의 시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충분히 그렇게 비쳐진다. 첨부터 가벼운 만남을 선호하는 썸머에게 톰은 그녀가 사귀었던 이전의 두 남자들과 별반 다를게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왜냐하면 썸머는 톰과의 관계가 소원해 질 때,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니까.
하지만, 썸머가 톰에게 한 마지막 말은 그녀가 톰을 떠날 수밖에 없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해주고 있다.
영화를 다시 보니, 그녀가 톰 대신에 자기가 읽고 있는 책에 대해 관심을 보인 남자를 선택한 이유를 알았다. 톰과 썸머의 관계에서 톰은 썸머의 생각과 선택을 한 번도 존중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톰이 썸머를 사랑했던 건 명확하다. 그가 데이트를 하면서 계속 '우리의 관계'를 묻는 건 그녀로부터 연인관계임을 다짐받고 싶어서다. 처음 시작이 가벼운 만남으로 시작됐기에, 톰은 그녀와의 관계를 연인관계로 확실하게 하고 싶었다. 그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했다.
가벼운 만남의 대상으로 톰을 생각했던 썸머는 어느 순간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까지 톰에게 털어놓는 관계로 발전한다. 그녀도 그를 이전에 가볍게 만났던 남자들과는 다른 존재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썸머는 몇 번의 톰과의 말싸움으로 그를 떠날 결심을 한 것 같다. 우선 첫번째 상황. 어떤 바(Bar)에서 한 남성이 썸머에게 치근덕 거리자, 톰은 그녀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그 남성과 싸움박질을 벌인다. 그리고는 썸머와 심하게 다투고 혼자의 시간을 갖는다.
바(bar)사건 직후 톰이 썸머와 싸운 이유는, 썸머가 톰이 격분한 이유의 핵심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가 싸운 이유는 썸머를 희롱으로부터 보호하려했던 게 아니라 그 남성이 톰을 무시하는 욕(찌질이)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방어를 위해 벌인 싸움을 썸머로 돌린 것이다.
혼자서 상황을 정리해 보면서 썸머를 생각하지만 정작 그는 썸머를 찾아가 자신의 본마음을 밝히지 않는다. 자신이 잘못한 걸 알면서도 썸머를 찾아가 위로해 주지 않는다. 찾아온 건 썸머였고, 그녀가 먼저 사과를 한다. (키스도 그녀가 먼저 한다)
두 번째 상황. 초반 둘이 사귀게 되는 접점이 음악이었다. 그래서 레코드 가격에 갔는데, 톰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가 뭐냐는 질문에 썸머는 링고스타라고 대답한다. 이때 톰의 반응이 걸작이다. 비웃으면서 어떻게 링고스타를 좋아할 수 있냐고 핀잔을 준다. 이 상황은 영화 중반 이후에도 한 번 더 등장한다. 톰은 그녀가 왜 링고스타를 좋아하는 지 묻지 않고 자신의 음악취향대로 그녀의 취향을 보잘것 없는 것이라 일축해 버린다.
세 번째 상황. 둘이 영화 구경을 갔다. 무슨 영화인지 모르지만 영화를 보고 썸머는 울음을 터뜨린다. 영화관을 나와서 톰은 썸머에게 왜 울었느냐고 묻는다. 사실 이런 물음은 처음 미팅에 나온 여자에게 "몇 살이세요?"라고 묻는 수준과 동일하다.
다시 돌려보니, 톰은 연애에서 상대편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천연덕스럽게 잘도 하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사람을 '진상'이라 말한다. 하지만 톰의 이런 행동을 처음 영화를 보는 중에 발견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영화는 아주 충실히 톰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에. 영화 주인공 톰에게 감상자가 감정이입 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남성이면 더더욱!) 이 영화의 탁월함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결국 썸머가 (톰과의 권태기에)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묻는 남자에게 홀랑 넘어간 건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닌 것이다. 연애의 성공은 다름 아닌 작은 배려심이다. 배려심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존중에서 나온다. 자의식이 강한 사람에게는 좀처럼 나올 수 없는 미덕 중의 하나이다.
톰은 자기 식으로 썸머를 사랑했다. 그건 타인을 사랑한 게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여성상을 사랑한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녀도 좋아하게끔 강요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자기애의 다른 표현이다.
연애는 타인을 이해하는 행위이다. 그것도 동성이 아니라 이성을! 화성에서 오고 금성에서 왔다는 이 극과 극의 주체들이 만나 서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과정이 연애이다. 이의 성공적인 출발점이 바로 타인에 대한 '배려'임을 영화는 빼어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단순한 연애물이 아니다. 영화 스스로 이를 멋지게 증명했다. 브라보~
덧.
1. 연애하고 싶어 환장한 남성 싱글들은 짝을 시청하지 말고 이 영화를 돌려보기를 부탁드린다.
2. 연애 초보자는 3번, 4번 돌려보시라 당부드린다.
3. 연애에 계속 실패하는 남성분들, 4번, 5번 돌려보시라.
4. 자신이 이성을 잃을 정도로 여자에게 빠져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역시 반복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