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전시가 한창입니다. 직장 내 미술동호회인데, 올해로 10회 째를 맞이했습니다. 저는 올해부터 참가하게 됐어요. 약 30여점 출품됐는데 제 그림에 반응이 좋아 여기 올려볼까 합니다.


저는 3작품은 냈어요. 회장님이 미술대전 상받은 사람이 저 혼자라 수상작품 위주로 출품해 달라고 해서 3점을 냈는데, 그 중 한 작품입니다. 제목 그대로 '인간본성의 완전한 발현을 향하여'라는 바람을 담은 작품. 얼마 전 페이퍼에도 이 그림을 첨부했었습니다. 


여기서는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동기와 작품에 대한 해설이 주가 되는 페이퍼입니다. 



이 주제를 구상하게 된 게 책 읽는 모임에서 어느 지인의 발언 때문이다. 지인은 수전 손택(<타인의 고통>)의 책을 읽으면 언제나 정신이 성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에 모임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모임 이후, 나는 문제의 그 발언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정신이 성장한다는 말은 너무 이상했다. 정신이 성장을 해? 그러면 천부인권도 성장해야 하고 자유도 성장해야 하며 절대정신도 성장해야 한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헤겔이 말한 대로 절대정신은 있는 것이지 성장하는 게 아니다. 자유도 그렇고 정의도 그러하며, 인간의 본성 또한 그렇다. 모두 있는 것인데 그 발현 정도에 따라 그 수준이 다른 것 뿐이다


하지만 지인들을 포함해서 다수의 사람들은 정신이 성장한다는 막연한 통념에 빠져 사는 듯하다. 나는 이런 통념을 회화를 통해 제거하고 싶었다. 단순한 조형언어 일수록 의도한 효과는 강력할 것이라 생각되어 최대한 미니멀한 접근을 하고 싶었고 사각형과 검은색-흰색 면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지점을 명확히 하려고 노력했다.


(인간본성의 완전한 발현을 향하여; 暗-濁-明, 캔버스 보드에 아크릴 혼합, 100×80.3cm, 2023)


구현된 이미지를 보면 왼편부터 검은 공간이 점점 흰 공간으로 바뀌어간다. 중간 단계를 더 두어 변화 양상을 부가할 수 있겠지만 세 부분으로 분할해도 의도는 충분히 전달된다고 본다. 금색의 사각형은 사람이 본래부터 갖고 태어나는 인간본성이자 순수한 정신의 완전체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세파에 시달리면서 순수한 본성은 점점 탁해진다. 처한 환경이 나쁠수록 순수한 정신은 탁한 기질로 인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다. 결국 범죄자가 될 여지가 높게 된다. 맨 오른편은 순수한 본성이 완전히 발현한 것으로 성인의 영역이라 할 수 있겠다. 중간의 탁한 점이지대는 순수한 정신이 어느 정도는 보이지만 불순한 기질로 인해 온전히 보이지는 않게 된다. 우리 보통 사람들이 위치한 부분이 여기이고 우리는 오른편으로 가기 위해 부단히 우리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 작품은 이 과정을 조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써 순수한 우리의 본성이 나아갈 방향을 염원하며 평면에 담아본 것이다.



* 사실 위 그림은 아주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다. 한국사상사 중 혜강 최한기 선생의 기일분수설 설명을 보고 위 그림을 착상하게 됐다. 원래 기일분수설은 임성주로부터 시작됐지만 당시 나는 최한기 선생의 책에서 이를 처음 접했었다. 당시는 비이커에 먹물을 떨어뜨리는 걸로 형상화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붓을 들어 색면추상으로 표현하니 그냥 작품이 만들어졌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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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2-06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술하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던데
야무님은 그 덕을 많이 보시는가 봅니다.
그림 심오하네요. 올해는 야무님껜 그 어느 때 보다
보람있고 뜻 깊은 해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수고하셨고, 내년에도 더 좋은 작품 많이 펼치시기 바랍니다.

타인의 고통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ㅠ

yamoo 2023-12-07 09:25   좋아요 1 | URL
현대미술은 철학이 된 지 꽤 되었답니다. 그래서 철학을 전공한 이우환이나 김환기의 후기 작품들이 다시 조명을 받고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로 대접받고 있는 듯합니다.

저도 이런 현대미술의 기류가 도움이 된 듯합니다..ㅎㅎ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모한 용기가 저를 작가의 세계로 안내한 듯합니다. 5월부터 시작된 공모전 응모가 주마등처럼 스쳐가네요.

cyrus 2023-12-07 0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분이 정신을 어떤 의미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했으면 수긍할 수 있어요. 저는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자신도 모르게 정신 성장이 멈춰 있거나 후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yamoo 2023-12-07 09:30   좋아요 0 | URL
음....아마도 정신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했더라도 저는 좀 의심했었을 거에요. 절대정신이 성장한다, 천부인권이 성장한다, 자유가 성장한다....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물론 정신적 성장이 멈춰있다란 표현을 우리가 많이도 사용해서 이런 이상한 점을 못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만...정신의 자리에 다른 관념을 넣어보면 매우 부자연스럽다는 걸 알게됩니다. 어떤 의미로 말했는지니 대충 알겠지만 말입니다..^^

정신의 성장이 후퇴할 수도 있죠. 발현이 잘 되다가 어느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다시 안 될수도 있는데...이를 후퇴로 표현가능해서 그런가 봅니다..ㅎㅎ

페크pek0501 2023-12-07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그림을 해석해 주는 것 너무 좋습니다. 그런 깊은 뜻이 있는거군요. 흥미롭네요.
저도 예전 30대 초반에 책에 미쳐 지냈는데 하루하루 제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책을 읽을수록 나의 사고 영역이 넓어지고 정신이 쑥쑥 자란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 타인의 고통을 읽고는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마르크스, 페미니즘 독서를 하면서 느낀 거였어요. 아직도 저를 성장시켜야 할 무엇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는데 그게 아닌가 봅니다.ㅋ
아무튼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위한 작업 하시고 해석을 곁들인 페이퍼 작성을 부탁드립니다.^^

yamoo 2023-12-09 09:54   좋아요 0 | URL
와~~~ 그렇군요! 이런 시도가 흥미로울 수도 있군요! 저는 미처 모르는 지점이었네요..ㅎㅎ 제 그림을 설명해 주는 게 좋다고 하시니 계속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기질이 정화되어 원래 갖고 있던 고매한 정신이 점점 잘 드러나게 돼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