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이빨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10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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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르센 뤼팽 전집』의 첫 10권 가운데 마지막 이야기인 『호랑이 이빨』은 어떤 모험이 기다릴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연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억만장자 코스모 모닝톤은 갑자기 사망하게 되는데, 그가 사망 직전 작성한 유언에 의하면, 자신의 전재산 4억 프랑 가운데 2억 프랑을 자신의 어머니의 동생들 가족에게 상속하게 하는데(그 대상이 몇 명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정해진 시간 안에 그들을 찾아 상속하지 못할 경우, 2억 프랑은 자신의 절친인 루이스 페레나(『서른 개의 관』에서도 사용하였던 뤼팽의 이름이다)에게 상속하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뤼팽이 바로 그러한 상속을 맡아 진행시킬 것을 부탁하며.

 

이렇게 해서 엄청난 액수(8편인 『황금 삼각형』에서 어마어마한 분량의 황금이 3억 프랑으로 나오니, 2억 프랑이 어느 정도일지는...)의 재산상속이 걸려있는데, 놀랍게도 그 상속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제거되어진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의심은 루이스 페레나(뤼팽)에게로 향하게 되는데, 과연 뤼팽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게 될까? 그리고 2억 프랑을 갖게 될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 이야기에서 숨어 있는 악당은 대단한 천재로 설정되어 있다. 뤼팽을 번번이 궁지로 몰아넣는 그런 능력자. 그러면서도, 전편 『서른 개의 관』의 악당인 보르스키만큼 냉혈한이다. 아니, 『호랑이 이빨』에 등장하는 악당은 한 번도 본인이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도 억만 장자인 코스모 모닝톤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에 더 나쁜 악당 녀석이다. 물론, 뤼팽은 더 뛰어나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에서 또 하나 등장하는 새로운 이야기는 뤼팽이 왕국 건설을 꿈꾼다는 거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들에서는 어떤 작용을 할지도 궁금해진다. 그리고 뤼팽의 사랑이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기도 한다(물론, 앞에서도 결혼하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지만). 이런 뤼팽의 사랑이 때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에 눈이 멀어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느낌을 계속 받기에.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는 이 이야기 『호랑이 이빨』을 통해 비로소 뤼팽은 음지에서 양지로 버젓이 자리를 옮긴다는 점이다. 여태껏 영웅적인 행동을 하였다 할지라도, 음지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활동하였으며, 드러내더라도 비공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냈다면, 이 사건을 통해, 뤼팽은 이제 공식적으로 양지에 존재하게 된다. 물론, 모두가 뤼팽임을 알고 있지만, 공식적인 이름은 루이스 페레나란 이름으로.

 

이제 뤼팽 전집 10번째 책의 책장을 덮는다. 뤼팽은 절대자적인 능력을 가진 사랑스러운 악당의 이미지에서 시작하여, 한 때는 악당에게 절절 매는 우리와 별반 차이 없는 이미지, 그리고 또 다시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구원자(위기에 처한 남을 돕는)의 이미지로 변신하였다. 그런 그가 이제 뤼팽 전집 하반부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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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개의 관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9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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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뤼팽이 그의 본업(?)을 포기했나 보다. 뤼팽은 이제 더 이상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이 아니다. 이제 뤼팽은 누군가의 구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에서 구해주는 ‘구원자’ 내지 ‘슈퍼영웅’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르센 뤼팽 전집』 아홉 번째 책인 『서른 개의 관』이 그렇다.

 

이 이야기는 여태껏 보여줬던 뤼팽 시리즈 여느 책보다 기괴하고 신비주의적인 분위기(아니 어쩌면 음산한 분위기라고 해야 할 지도)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런 분위기는 작가가 처한 당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하던 당시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다(연재와 출간은 전쟁 후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렇기에 음산한 분위기와 구원자의 이미지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른 개의 관』은 여자 주인공 베로니크가 14년 전 잃어버렸던 아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 ‘서른 개의 관’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사레크 섬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이곳 사레크 섬은 켈트족의 전설적인 부족인 ‘기적의 돌’을 가진 부족이 최종적으로 이주해 온 곳으로, 후에 드루이드교(맞는지 모르겠다)가 자리 잡은 곳이며, 또한 이 드루이드교에 기독교가 습합되어진 독특한 미신적 종교가 계승되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기괴한 이야기는 켈트족의 전설인 ‘기적의 돌’과 함께 또 하나의 예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15세기 중반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 토마 수사의 허무맹랑한 예언인데, 이 예언이 이 이야기 『서른 개의 관』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그런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이야기다(이야기 속에서 토마 수사의 예언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물론 이 이야기에 더하여 사레크 섬의 주민이자 이야기 초반에 죽게 되는 마르녹 영감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진다).

 

이 이야기에서는 여태껏 등장한 여느 악당보다 강렬한 악당인 보르스키가 등장한다. 이 보르스키는 여자 주인공인 베로니크의 남편으로 완전 사이코패스다. 이 이야기 속에서 29명이나 살인하는 살인광이기도 하다. 이 보르스키의 살인행각은 바로 토마 수사의 허무맹랑한 예언을 이루어가는 형식으로 행해진다(토마 수사의 예언은 사실 엉터리예언이었다. 하지만, 보르스키가 그 예언을 실제 믿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광기로 그 예언을 이루려 하는지 몰지만, 아무튼 보르스키에 의해 예언은 실제 이뤄지기에 참 예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보르스키의 존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이 이루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이 범인은 처음에는 베로니크의 아들 프랑수아와 후에 베로니크와 맺어질 스테판이 행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더 괴기스럽다. 이들은 평소 천사와 같은 인물이었다는 주변의 증언에 의해서 말이다)이 토마 수사의 예언 그대로 이루어지기에 더욱 기괴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런 기괴한 사건들, 끔찍한 사건들이 이루어지는 원인은 물론, 보르스키라는 절대 악당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끔찍한 사건들을 당시 실제 일어나고 있던 전쟁과 연결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모든 게 밝혀질 거야. 이런 잔혹한 수수께끼 뒤에는 사실 아주 단순한 원인이 있을 테지. 겉보기에는 초자연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랑 똑같은 인간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범죄일 뿐이라고, 모든 일은 분명 전쟁이 일어났기에 가능했던 거야. 전쟁은 이런 일이 벌어질 만한 독특한 환경을 만드니까 말이야...”(122쪽, 베로니크의 독백)

 

“이번 사건은 미친 사람의 행동이 불러운 결과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광기와 방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고요. 전쟁이 벌어진 탓에 그런 괴물 같은 인간이 마음 놓고 안전한 곳에 틀어박혀 그 따위 범죄를 고안해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겁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괴물이 자신의 망상을 끝까지 실현할 여유가 없지요.”(407쪽, 루이스 페레나-아르센 뤼팽-의 말)

 

『서른 개의 관』은 스토리 자체도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어지며 또한 반전(反戰) 메시지, 그리고 신화의 어우러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제 다음 이야기에서 뤼팽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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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시간 하늘의 시간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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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어느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 그리고 모두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은 동일하다. 부자라고 해서, 힘이 세다고 해서,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하루에 25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 동일하게 24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어떤 이는 24시간을 마치 48시간처럼 사용하는 반면, 어떤 이는 24시간을 12시간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이 시간의 상대적 개념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시간의 개념이 나온다. 바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절대적 시간이며,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향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다. 즉 연대기적 시간이 크로노스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연대기적 시간이 아닌, 어떤 순간, 어떤 사건이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어떤 순간, 때가 카이로스다. 그리고 이 시간은 느낌의 시간이기도 하다. 예를 든다면, 똑같은 한 시간(크로노스)을 보낼 때, 사랑하는 연인과 보낸다면, 이 시간은 마치 몇 분처럼 여겨질 것이며, 정말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사람과의 1시간의 시간은 마치 천년과 같이 느껴질 것이다. 이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다.

 

이렇게 구분되어지는 시간을 신앙 안에서는 또한 이렇게 정의한다. 크로노스는 세상의 시간이며,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땅의 시간이며, 카이로스는 하늘의 시간이다. 그렇기에 특히 카이로스는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서 정의되어지는 시간이다.

조정민 목사의 신작 『땅의 시간 하늘의 시간』은 바로 이 시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에 대해 말한다. 아마도 저자가 신앙공동체 안에서 행한 설교를 정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바를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구원이라는 것은 땅의 시간에서 하늘의 시간으로의 초대, 인간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의 초대,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의 초대다. 물론, 우리는 땅의 시간인 크로노스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린 여전히 크로노스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안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구원이란 내 시간이 끝나고 하나님의 시간이 시작되는 사건이다. 이렇게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의 우선순위를 바로 알아야 하며, 영원이라는 하나님의 시간을 알고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크로노스)은 언젠가 끝이 있음을 기억하며, 종말론적인 시간을 살아가야 하며, 시간을 아끼며 사명의 부지런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크로노스의 시간, 즉 인간의 시간 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일이 주어졌다는 것이고, 그 일을 해야 할 책임과 소명이 주어졌다는 뜻이기에, 우리는 인간의 시간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우리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매 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저자는 이처럼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옮겨가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시간이 내 시간 속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내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닌, 내 시간 위에 하나님의 시간이 덧입혀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옮겨간다고 하면 자칫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릴 하나님의 시간을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각자 개인의 시간이 끝났을 때, 온전히 하나님의 시간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구원은 장차 죽어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역시 누리는 것이다(물론 저자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내야 함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저자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저자의 말이 틀리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옮겨감이란 어감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 땅의 시간에 하늘의 시간이 덧입혀져서, 이곳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구원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시간을 누리는 사람들은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관점이 바뀌게 되고, 시간을 아끼며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제 우리 땅의 시간 속에서 하늘의 시간을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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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집필진이 쉽게 풀어 주는 술술 한국사 6 - 현대 역사 교과서 집필진이 쉽게 풀어 주는 술술 한국사 6
원유상 지음, 한용욱 그림, 오정현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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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한국사』의 마지막 6번째 책은 “현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시작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 그리고 6.25 발발, 4.19혁명, 장면 정부 수립, 5.16 군사 정변(이 책에서는 ‘정변’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박정희 정권이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잡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유신과 이에 맞서는 5.18 민주화 운동, 그리고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6월 항쟁 이후에 세워진 노태우 이하의 정권에 대해서는 극히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다.) 현대사를 아우르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현대사를 다룸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피력한다. 현대사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아직 생존해 있는 인물에 대해 객관적 평가가 어렵기 때문이며, 또한 사건들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란다. 사건마다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하기에 이 책에서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도리어 그런 접근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객관적 전달을 고집하다보니, 역사에 대한 평가가 너무 약하다.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의 역사를 살피고, 오늘의 잘못을 바로잡고,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잘못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 필요하다. 비록 그 일들이 현 정권이나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이들에게 생채기를 낸다 할지라도 필요하다. 모든 역사는 사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은가! 저자의 사관이 무엇인지 피력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오히려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갈등 구조에서 현대사를 평가하기가 어려웠다면 양 진영의 견해와 평가를 객관적으로 전하도록 노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우리 현대사를 일목요연하게 잘 서술해주고 있음은 분명하다. 정치적인 발전, 경제 성장과 문화의 발전, 그리고 통일을 위한 노력에 이르기까지 현대사를 잘 보여주고 있음은 사실이다.

 

현대사를 살펴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현대사를 장식하는 대표적 인물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점이다(물론 전부는 아닐 것이다). 바로 국가를 위해 자신이 존재하기보다는 자신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고 정권이 존재하였던 이들이 상당하였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제2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권력이 대통령 본인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했던 각하들이 존재했던 것이 우리의 슬픈 현대사 아니었을까? 국민을 위해 대통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을 위해 국민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이젠 그저 지나간 역사에만 그칠 수 있길 바래본다. 이제는 정권을 잡기 위해 온갖 부정을 행하는 지도자들이 아닌, 국민에게 권력을 되돌려주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을 수도 있는 그런 지도자들이 이 땅에 다시 세워지게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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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집필진이 쉽게 풀어 주는 술술 한국사 5 - 일제 강점기 역사 교과서 집필진이 쉽게 풀어 주는 술술 한국사 5
노현임 지음, 백대승 그림, 한철호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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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술술 한국사』 5번째 책, 『일제 강점기』부분이다. 우리 역사 가운데 가장 슬픈 시기이며 또 한편으로는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이기도 하다. 나라를 잃고, 일제의 악행에 몸서리쳐야 했던 시기인 반면, 일제의 악행에 자랑스럽게 저항한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일제는 을사늑약 이후 한일병탄조약을 통해 우리를 완전히 집어 삼킨다. 그리고는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다. 조선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를 설치한다. 헌병 경찰 제도를 통해 이들에게 우리 백성을 즉결 처분할 권리를 허락한다. 조선태형령을 내려, 조선인들의 경우 잡아 마음대로 구타할 법적 근거를 세운다.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우리의 땅을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소유화한다. 등등 일제는 다양한 지혜(?)를 짜냈다.

 

이러한 일제의 악행을 보며, 분노가 일게 된다. 그럼에도 또한 이러한 일제를 향한 조선인들의 저항 앞에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지고, 수많은 의병대가 활동하기도 한다. 독립군 활동과 광복군 활동으로 이어지는 독립을 향한 열망에 함께 응원하기도 한다. 또한 안중근, 박재혁, 이봉창, 윤봉길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고 행동한 수많은 의사들의 행보에는 숙연하게 된다.

 

특히, 조국의 해방 소식 앞에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도리어 탄식하였던 김구 선생님의 모습에서는 함께 안타까움도 느끼게 된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준비한 한국광복군이 실제 참전을 앞두고 일제가 항복하였기에 향후 국제정세에서의 발언권이 약화될 것을 염려하며 탄식하던 그 모습, 그리고 실제 그렇게 되었음을 알기에 안타까움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처럼 조국의 해방을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헌신한 분들의 피와 땀방울이 있기에 이 암울한 시기는 결코 암울함만이 아닌 우리 역사에 밝은 빛줄기들이 비춰지던 시기라 여겨진다.

 

한편 이 5권을 읽으며, 부끄럽게 여긴 것은 일제의 역사왜곡 작업의 영향을 오늘까지도 우리가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집어삼키기 전부터, 그리고 삼킨 이후에도 끊임없이 역사왜곡을 감행했다. 자신들의 침략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대표적인 식민 사관으로 이 책은 3가지를 이야기한다. 타율성론, 정체성론, 당파성론이 그것이다.

 

타율성론은 한마디로 한국의 역사는 스스로 발전하기보다는 언제나 누군가의 지배를 받아온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나라는 일본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정체성론은 무엇인가? 이것은 한국사의 발전은 정체되어 있었는데, 일본의 지배를 받으며 발전하고 근대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자신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논리. 마지막 당파성론은 조선의 역사는 당을 지어 서로 분열하고 다투기만 하던 열등한 정치였다는 것. 이런 이유들로 인해 조선은 자신들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 세 가지 논리들은 오늘날 여전히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푸념이 아닌가! 물론, 발전적 모색에서의 우리 편에서의 이런 반성이라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을 깎아내리기 위한 이런 푸념은 놀랍게도 일제가 우리를 집어삼킨 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그들의 공작 내지 작업이었음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작업이 얼마나 교묘하고 효과적이었으면 오늘까지도 그 논리에서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이 책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꽃 무궁화에 대한 수많은 부정적 이미지들은 일제가 우리 자긍심을 깎아내리기 위해 고의적으로 퍼트린 말들이다. 그럼에도 오늘도 여전히 그런 주장들을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음을 볼 때, 일제의 작업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제 우리의 역사를 부끄러워 할 것만이 아니라, 그 부끄러움 속에서도 자랑스러운 역사를 써가기 위해 몸부림 쳤던 그 흔적에 더 집중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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