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탐정 : 뿡뿡 사라진 과자를 찾아라! 엉덩이 탐정 1
트롤 지음, 전경아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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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가게의 과자들이 전부 사라져 버렸답니다. 이 사건의 의뢰를 받은 명탐정 엉덩이 탐정은 이제 의뢰인을 만나 과일 가게에 도착하여 현장을 살펴보고, 주변의 마을 사람들을 통해, 범인에 대한 중요한 정도들을 얻어 낸답니다. 이러한 정보들을 근거로 해서 범인을 추격한답니다. 결국 엉덩이 탐정은 범인을 잡아내죠. 과연 어떻게 해서 범인을 잡아낼 수 있었던 걸까요?

 

이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엉덩이 탐정이 범인을 찾아내는 모든 단서들을 미리 살짝 살짝 흘리고 있답니다. 그냥 무작정 뒷 페이지로 넘어가기 보다는 실제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해보면, 독자들도 엉덩이 탐정처럼 명탐정이 될 수 있답니다.

예를 든다면 위의 그림과 같은 식이랍니다. 엉덩이 탐정은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답니다. 의뢰인은 리본을 달고 온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여기 리본을 달고 있는 세 사람이 보이네요. 누가 과연 의뢰인일까요? 물론, 화살표를 따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면 의뢰인이 누군지 알 수 있답니다. 하지만, 페이지를 휙~하니 넘기기보다는 찬찬히 이 세 사람을 관찰해 보면, 누가 의뢰인인지 알 수 있답니다. ‘관찰’이야말로 명탐정의 기본적 자세랍니다.

 

또 하나의 팁은 그림 곳곳에 시계의 그림이 등장하는데, 그 그림을 차분히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답니다. 그러면, 뒤에서 말하는 용의자들의 알리바이의 유무를 골라낼 수 있거든요. 그러니 탐정은 ‘관찰’ 뿐 아니라, 기억력도 좋아야겠네요.

이 그림은 범인이 호수 안으로 도망쳤는데,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세 곳 중에 어디로 도망쳤는지 알 수 있답니다. 엉덩이 탐정의 활약이 참 멋집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도 그런 활약을 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우리 집 아이도, 이 책을 참 좋아하네요. 많이 재미있다고 하면서 말이죠.

 

참, 엉덩이 탐정의 얼굴도 참 웃기죠? 코가 없어 혹 탐정으로서 중요한 오감 중에 하나가 부족하진 않나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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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좋은집 책가방 속 그림책
베아트리체 마시니 글, 시모나 물라차니 그림, 조현경 외 옮김 / 계수나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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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쁜 그림책,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은 우리에게 좋은 집이란 어떤 곳인지를 묻고, 알려주는 책이네요.

겨울잠에서 깨어난 다람쥐는 문득 자신의 집이 어둡고 답답하다고 여겼답니다. 갑자기 그곳이 싫어졌죠. 그래서 집을 떠나 좋은 곳을 찾아 새로운 집을 짓길 원합니다. 물론 자신이 살던 집은 답답한 느낌은 있었지만, 위험하진 않았답니다. 그럼에도 뭔가 부족한 게 있었죠. 이 부족한 것이 무엇일지 알기 위해 친구들에게 어떤 집이 제일 좋은 지 물어본답니다.

딱따구리는 구멍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거북이는 아래에서 사는 게 좋다고 하고요. 박새는 둥지가 제일 좋다네요. 알을 보호하기도 좋고, 바람을 피할 수도 있다면서요. 두더지는 땅속이 좋다고 하고요. 부엉이는 나무 위쪽이 좋고요.

 

다람쥐는 도대체 이런 곳이 뭐가 그리 좋은지 모르겠답니다. 다람쥐는 이제 커다랗고 튼튼한 나무에 집을 짓고자 합니다. 친구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여 지었답니다. 구멍집도 있고, 둥지집도 있고, 낮은 곳의 집도 있으며, 높은 곳의 집도 있죠. 어두운 집도 있고, 밝은 집도 있고요. 이제 모든 친구들이 모두 모여 이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답니다.

다람쥐가 뭔가 부족하다고 여겼던 게 무엇인지 이제 알겠죠? 맞아요. 바로 모두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었답니다. 물론, 함께 살게 되니, 예전보다 더 시끌벅적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 함께 있을 수 있으니 좋네요.

 

이 책이 말하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은 바로바로 더불어 사는 집이랍니다. 때론 시끄럽기도 하겠죠. 때론 불편한 점도 있겠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서로 조금씩 배려하고, 자신의 욕심보다는 양보하며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이 될 거랍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모두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집”에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위층이 조금 시끄럽다고 바로 신고를 하고, 뛰어 올라가기도 하고, 심지어 칼부림을 하기도 하죠. 또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다른 집들은 배려하지 않고 마구마구 해대기도 하고요. 그러니, 모두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집”을 함께 만들고 있는 거겠죠.

 

우리 조금 배려하고, 조금 이해한다면 어떨까요? 그럴 때, 함께 함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을 만들어가게 될 테니 말이죠. 다람쥐의 친구들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집은 모두 다 달랐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 역시 그처럼 원하는 것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죠. 그런데, 내가 원하는 방식만을 원할 때, 다른 많은 사람들은 다 불행해 진답니다. 서로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만, 배려하고, 이해함으로 어우러질 때, 오히려 다른 생각들은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가게 될 겁니다. 이 책은 그 내용은 간단하지만 참 좋은 그림책이네요. 아이와 토론해 볼 내용들도 제법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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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삼킨 코뿔소 키다리 그림책 41
김세진 글.그림 / 키다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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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뒤에 남겨진 자들의 슬픔, 분노, 상실감을 우리가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뿐 아니라, 그런 남겨진 이들을 바라보며 품게 될 주변사람들의 안타까움은 또 어떻겠어요. 사실 죽음과 그 뒤에 남겨진 이들의 아픔을 어린 아이들에게 표현하여 알린다는 것이 쉽진 않을 겁니다.

 

이 책, 『달을 삼킨 코뿔소』는 그림책이랍니다. 즉 미취학아동 내지, 저학년 친구들을 그 독자층으로 두고 있다는 의미겠죠. 하지만, 그 내용이 쉬운듯하면서도 쉽지마는 않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자식의 죽음을 경험한 엄마의 마음을 포현한 책이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죽음 뒤에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전하려 하네요.

 

아기 코뿔소는 엄마 코뿔소와 언제나 행복했답니다. 함께 놀 수 있음이 즐거웠죠. 그러던 어느 비 오던 날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아기 코뿔소가 휩쓸렸답니다. 남겨진 엄마 코뿔소는 이성을 잃었고요. 아무리 울부짖으며 강을 따라 찾아봐도 아기 코뿔소를 찾을 수 없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물 위로 아기 코뿔소의 모습이 비취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더욱 그리워하며 불러도 강물 위에 비췬 아기 코뿔소의 형상은 대답이 없네요. 알고 보니, 그건 하늘의 달이 수면에 비췬 것이었답니다. 이에 분노한 코뿔소는 달을 삼켜 버렸죠.

 

그런데, 그 뒤로 코뿔소의 배 속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곤 또 다른 아기 코뿔소가 태어나게 되었죠. 그제야 엄마 코뿔소에게도 웃음이 찾아오게 되네요.

 

그렇다면 코뿔소가 삼킨 달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왜 달을 삼켰을까요? 작가는 이렇게 말하네요.

 

“달에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달에는 분노가 있습니다.

달에는 그리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갑자기 잃게 된다면, 갑자기 심장 한 쪽이 사라져버린 것 같은 상실감과 공허함에 떨게 될 겁니다.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아픔에 힘겨워 할 테고요. 그런 운명을 맞아야만 함에 세상을 향한 분노 역시 일어나겠죠. 떠난 이를 향한 애절한 그리움에 여전히 신음하게 될 거고요. 이런 이들의 아픔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움이 될 거고요.

 

작가 선생님은 엄마 코뿔소가 달을 삼켰듯, 이러한 것들을 삼켜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길 소망하는 겁니다. 그것이 어떤 희망이든 간에 말이죠. 안타까움이 그림책 전반에 깊게 내려 앉아 있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이런 안타까움에 힘겨워하는 분들이 많겠고요. 특히 우리에게는 세월호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고요. 남겨진 자들의 삶이란 것이 견딜 수 없이 힘겹겠지만, 이젠 이 그림책 내용처럼 달을 삼켜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안타까움을 삼키고, 분노를 삼키고, 그리움마저 삼켜내고, 슬픔도, 한숨도, 상실감마저 모두 삼켜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그 자리에 또 다른 따스함과 또 다른 삶의 이유가 자리 잡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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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입니다 - <땡큐 대디> 원작 팀 호이트 부자의 아름다운 동행
딕 호이트.던 예거 지음, 김정한 옮김 / 라이스메이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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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인 5월에 너무 잘 어울리는 책을 읽었다. 아들이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그 아들이 그 가정의 짐으로 이해되기보다는 그 아들을 통해, 가정에 새로운 비전이 생기고,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되는 위대한 가족의 이야기, 『나는 아버지입니다』

 

출산시에 탯줄에 목이 감겨 뇌손상을 입은 아이, 그로 인해 말을 하지 못하고, 신체활동이 불편한 아이. 모두가 이 아이를 포기하라 말할 때, 그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기 위해 애쓴 부부의 모습이 너무나도 멋지다.

 

무엇보다 이 아이가 원하기에 아들을 휠체어에 앉혀 달리기를 시작한 아버지의 그 사랑과 헌신, 도전이 아름답다. 아니 위대하다. 처음에는 과연 할 수 있을까 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그들에게 “그래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가 신념이 되어버린 부자. 단거리 달리기를 시작하여, 마라톤, 철인3종 경기에 이르기까지. 1000번 이상의 경기 출전 경력, 심지어는 45일간 6,070Km를 달려 미대륙횡단까지 행한 그 놀라운 도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사랑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뿐 아니라, 이런 도전의 시작도 아름답다. 첫 시작은 아들 릭의 요청에 의해서다. 운동선수였다가 경기 도중 목이 부러져 목 아래 몸이 마비되어 장애우가 된 사람을 위한 달리기에 자신도 아빠와 함께 출전하고 싶다던 것. 그러니 이 달리기는 자신들을 위한 달리기가 아닌, 누군가의 힘겨움과 눈물을 위한 달리기였던 것. 하지만, 이렇게 시작한 달리기는 어느덧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게 되고, 또한 가족의 사랑에 대해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그들의 도전은 무엇보다 희망을 낳는 힘이 있다. 어떤 역경의 순간에서도 주저앉기보다는 다시 도전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야말로 수많은 이들에게 도전이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그들의 도전은 가족을 살리고, 뿐더러 좌절과 절망 가운데 신음하는 이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공으로 쏘아 올려 진다. 릭의 동생의 말을 빌어보자.

 

“삶이 제게 어떤 역경을 주든 형이 날마다 맞닥뜨리는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79쪽)

 

사실, 가족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닐까? 그런데, 장애를 가지고도 언제나 좌절보다는 도전을 택하는 릭의 모습에 동생이 힘을 얻는 모습, 이 얼마나 감동적인가! 게다가 처음 이들이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장애우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만연하던 시절. 따가운 시선과 비웃는 소리, 수많은 홀대에도 꿋꿋이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들 부자의 발걸음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발걸음인가.

 

누군가 말했다. 어깨를 나눠주는 것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장애는 분명 짐이다. 하지만, 서로의 어깨를 상대에게 기댈 수 있도록 내어줬을 때, 짐은 더 이상 짐이 아닌, 새로운 사명이요, 도전, 비전이 된다. 더 나아가 수많은 희망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Yes, You Can!”이들의 슬로건이 공허한 희망의 울림이 아닌 힘을 갖는 이유는 그들이 장애라는 실제적 장애물, 힘겨운 상황을 딛고 일궈낸 외침이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도 눈물과 한숨 가운데 절망하는 이들에게 이 진정성 있는 외침이 전염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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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비도프氏
최우근 지음 / 북극곰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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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특별한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초능력 가운데 단골메뉴 가운데 하나가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투명인간이 되면, 불투명한 우리들이 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투명인간이 됨으로 엄청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사람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주인공은 연극배우다. 단역으로 시작하여,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주연배우로서 무대에 오르게 된다. 주인공의 인생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시간,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이 가장 끔찍한 순간이 되어버린다. 무대에서 주인공은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배우로서의 시각적으로 관중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투명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이때부터 주인공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곁을 떠나게 되고, 부모님 역시 그의 곁을 떠나 시골로 내려간다. 심지어 동네에서 잘 따르던 개조차 주인공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듯 뒤쫓곤 한다. 몸이 보이질 못하니 정상적인 직업을 얻을 수도 없다. 그럼, 투명한 이 능력을 이용해서 뭔가 자신의 유익을 꾀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은행을 턴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내가 그런 일을 하는 순간 정말로 투명인간이 되어버리는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투명인간이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투명인간이 아닌 걸로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다.”(50쪽)

 

투명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바람직하지 못한 일에 사용하는 순간, 이제 영원히 투명인간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 생각 안에 투명인간이 된 주인공이 자신의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황당하고 당황스러움, 대략 난감한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데, 이런 주인공 앞에 강적이 나타났다. 그건 바로 앞집에 혼자 사는 아가씨. 이 여인은 자신의 집 앞에 사는 총각이 투명인간임을 알고는 자신을 철저하게 방어한다. 투명인간이 언제 자신을 훔쳐볼지 모른다는 피해망상과 함께 말이다. 자신의 고양이 토토를 납치했다는 누명을 씌우기도 하고, 심지어 경찰에 신고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주인공은 경찰에 잡혀가기까지. 이런 이 여인의 막 되먹은 모습, 제멋대로인 모습, 상대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내뱉는 후안무치의 모습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꽉 막히고 얄밉기 그지없는 마녀 같은 모습이다(하지만, 이 여인에게는 반전이 있답니다).

 

신고에 의해 주인공을 붙잡아가는 최형사는 주인공을 심문하는데, 사실 최형사야말로 주인공을 얽어매는 후안무치다. 최형사가 주인공을 붙잡고 괴롭히는 이유는 여인의 신고 때문이 아니다. 단지 주인공이 투명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언제 그 능력, 보이지 않는다는 능력을 가지고 범죄를 행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괴롭히는 것. 그에게 있어 투명인간은 마땅히 범죄를 저지르게 될 잠재적 범죄자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미안한 얘기지만 자네가 무슨 짓을 하던 그건 중요하지 않네. 모기의 사정 같은 거 묻지 않아.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그놈이 모기니까 잡는 거야.”(119쪽)

 

비록 모기가 날 물지 않았다 하지라도, 언젠가 날 물 것이기 모기를 잡는 것처럼, 투명인간 역시 그렇다는 거다. 그러니 투명인간이라는 것만으로 죄가 된다. 이게 바로 투명인간들이 겪는 비애다. 어쩌면, 오늘 이 시대에도 이러한 투명인간들은 여전히 존재할 지도 모른다. 아무 잘못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어느 특정부류에 의해 위험세력으로 규정지어지고, 그로 인해 박멸해야만 하는 모기가 되어버리는 자들이 왜 없겠는가. 우리의 역사 속에도 이러한 투명인간은 허다하지 않았던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하는 자로 규정지어져, 온갖 혐의를 뒤집어쓰고 내몰려야만 했던 수많은 투명인간들. 온갖 핍박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이들의 비애가 소설 속의 투명인간에게 오버랩 된다.

 

투명인간으로서 홀로 내던져진 주인공은 자신 외에도 수많은 투명인간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하나의 모임을 만들고 있음도. 바로 이들은 자신들의 모임에 각자 고유한 향수를 뿌리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주어진 향수가 바로 ‘다비도프 쿨워터맨’. 그래서 이제 그는 ‘다비도프’라 불리게 된다. 과연 다비도프 씨는 투명인간 모임을 통해, 최형사의 위협과 앞집 여자의 히스테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무엇보다 무지 재미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투명인간의 비애가 가슴을 울리기도 한다. 투명인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제약을 받아야 하며, 또한 삶의 자유를 박탈당할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수많은 투명인간들. 그러면서도 여전히 기득권인 불투명한 인간들의 쥐 콩만 한 호의를 희망으로 삼고 살아야만 하는 투명인간들의 삶. 게다가 존재 자체가 감춰지고, 어느 언론도 관심을 갖지 않는 투명인간들. 그들의 비애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아울러 이런 투명인간의 슬픔은 오늘 우리 시대의 반영이기도 하다. 오늘 이 땅에도 여전히 이런 수많은 투명인간들은 존재할 것이기에. 기득권의 쥐 콩만 한 호의를 희망으로 착각하고 살아야만 하는 이들.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감에도 그 존재 자체가 감춰진 수많은 사람들.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관심 밖에 존재하는 자들. 그들 모두가 이 시대의 투명인간 아닐까? 이 땅의 수많은 투명인간들의 자아 찾기가 시작되길 소망해본다. 그리고 완벽한 투명 그 자체인 다비도프 씨를 ‘보는’ 앞집 안나와 같은 이들이 이 땅에 많아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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