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다비도프氏
최우근 지음 / 북극곰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나에게 특별한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초능력 가운데 단골메뉴 가운데 하나가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투명인간이 되면, 불투명한 우리들이 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투명인간이 됨으로 엄청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사람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주인공은 연극배우다. 단역으로 시작하여,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주연배우로서 무대에 오르게 된다. 주인공의 인생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시간,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이 가장 끔찍한 순간이 되어버린다. 무대에서 주인공은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배우로서의 시각적으로 관중에게 다가가야 하는데, 투명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이때부터 주인공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연인이 곁을 떠나게 되고, 부모님 역시 그의 곁을 떠나 시골로 내려간다. 심지어 동네에서 잘 따르던 개조차 주인공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듯 뒤쫓곤 한다. 몸이 보이질 못하니 정상적인 직업을 얻을 수도 없다. 그럼, 투명한 이 능력을 이용해서 뭔가 자신의 유익을 꾀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은행을 턴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내가 그런 일을 하는 순간 정말로 투명인간이 되어버리는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투명인간이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투명인간이 아닌 걸로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거다.”(50쪽)

 

투명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바람직하지 못한 일에 사용하는 순간, 이제 영원히 투명인간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 생각 안에 투명인간이 된 주인공이 자신의 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황당하고 당황스러움, 대략 난감한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데, 이런 주인공 앞에 강적이 나타났다. 그건 바로 앞집에 혼자 사는 아가씨. 이 여인은 자신의 집 앞에 사는 총각이 투명인간임을 알고는 자신을 철저하게 방어한다. 투명인간이 언제 자신을 훔쳐볼지 모른다는 피해망상과 함께 말이다. 자신의 고양이 토토를 납치했다는 누명을 씌우기도 하고, 심지어 경찰에 신고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주인공은 경찰에 잡혀가기까지. 이런 이 여인의 막 되먹은 모습, 제멋대로인 모습, 상대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내뱉는 후안무치의 모습은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꽉 막히고 얄밉기 그지없는 마녀 같은 모습이다(하지만, 이 여인에게는 반전이 있답니다).

 

신고에 의해 주인공을 붙잡아가는 최형사는 주인공을 심문하는데, 사실 최형사야말로 주인공을 얽어매는 후안무치다. 최형사가 주인공을 붙잡고 괴롭히는 이유는 여인의 신고 때문이 아니다. 단지 주인공이 투명인간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언제 그 능력, 보이지 않는다는 능력을 가지고 범죄를 행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괴롭히는 것. 그에게 있어 투명인간은 마땅히 범죄를 저지르게 될 잠재적 범죄자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미안한 얘기지만 자네가 무슨 짓을 하던 그건 중요하지 않네. 모기의 사정 같은 거 묻지 않아. 다른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그놈이 모기니까 잡는 거야.”(119쪽)

 

비록 모기가 날 물지 않았다 하지라도, 언젠가 날 물 것이기 모기를 잡는 것처럼, 투명인간 역시 그렇다는 거다. 그러니 투명인간이라는 것만으로 죄가 된다. 이게 바로 투명인간들이 겪는 비애다. 어쩌면, 오늘 이 시대에도 이러한 투명인간들은 여전히 존재할 지도 모른다. 아무 잘못도,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어느 특정부류에 의해 위험세력으로 규정지어지고, 그로 인해 박멸해야만 하는 모기가 되어버리는 자들이 왜 없겠는가. 우리의 역사 속에도 이러한 투명인간은 허다하지 않았던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하는 자로 규정지어져, 온갖 혐의를 뒤집어쓰고 내몰려야만 했던 수많은 투명인간들. 온갖 핍박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수조차 없는 수많은 이들의 비애가 소설 속의 투명인간에게 오버랩 된다.

 

투명인간으로서 홀로 내던져진 주인공은 자신 외에도 수많은 투명인간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하나의 모임을 만들고 있음도. 바로 이들은 자신들의 모임에 각자 고유한 향수를 뿌리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주어진 향수가 바로 ‘다비도프 쿨워터맨’. 그래서 이제 그는 ‘다비도프’라 불리게 된다. 과연 다비도프 씨는 투명인간 모임을 통해, 최형사의 위협과 앞집 여자의 히스테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무엇보다 무지 재미있다. 하지만, 이와 함께 투명인간의 비애가 가슴을 울리기도 한다. 투명인간이기 때문에 더 많은 제약을 받아야 하며, 또한 삶의 자유를 박탈당할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수많은 투명인간들. 그러면서도 여전히 기득권인 불투명한 인간들의 쥐 콩만 한 호의를 희망으로 삼고 살아야만 하는 투명인간들의 삶. 게다가 존재 자체가 감춰지고, 어느 언론도 관심을 갖지 않는 투명인간들. 그들의 비애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아울러 이런 투명인간의 슬픔은 오늘 우리 시대의 반영이기도 하다. 오늘 이 땅에도 여전히 이런 수많은 투명인간들은 존재할 것이기에. 기득권의 쥐 콩만 한 호의를 희망으로 착각하고 살아야만 하는 이들.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감에도 그 존재 자체가 감춰진 수많은 사람들. 어느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관심 밖에 존재하는 자들. 그들 모두가 이 시대의 투명인간 아닐까? 이 땅의 수많은 투명인간들의 자아 찾기가 시작되길 소망해본다. 그리고 완벽한 투명 그 자체인 다비도프 씨를 ‘보는’ 앞집 안나와 같은 이들이 이 땅에 많아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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