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둥글 지구촌 신화 이야기 함께 사는 세상 17
김춘옥 지음, 윤유리 그림 / 풀빛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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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이 책은 도서출판 풀빛에서 발간되고 있는 <함께 사는 세상> 시리즈 17번째 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네요. 출판사는 이 시리즈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함께 사는 세상> 시리즈는 어린이들에게 세계를 이해하는 넓은 시각을 키워 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려 주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이처럼, 어린이들로 하여금 남들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럼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선택된 17번째 주제는 바로 “신화”랍니다.

 

신화는 단순히 허무맹랑한 이야기만은 아닐 겁니다. 신화는 그 민족, 그 문화 안에서 생성되어진 “원형”의 이야기들입니다. 다시 말해, 신화를 잉태한 그 민족이 갖고 있는 생각의 뿌리가 신화입니다. 그렇기에 다른 민족의 신화를 안다는 것은, 다른 민족을 이해함으로 나아갈 수 있고, 다른 민족을 이해할 때, 다름을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겠죠.

 

그렇기에 다른 민족들의 신화를 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물론, 신화는 어쩌면 인류의 가장 원형적 질문들에 대한 답이기에 어린이들에게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세상의 창조, 자연현상, 전쟁, 죽음, 먹거리 등 인류의 관심사 내지는 그 문화권에서 갖게 된 의문이 신화라는 이야기로 잉태되었기에 아이들에게는 ‘신화’가 어려울 수 있겠죠. 그럼에도 다른 민족들의 재미난 신화들도 있으니 읽고 알아가는 귀한 시간이 된다면 좋겠네요.

 

이 책은 크게 다섯 단락으로 구분되어져 있습니다. 대륙을 중심으로 신화 이야기를 묶어 놓고 있습니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순입니다. 각 대륙의 신화들은 대륙의 고유한 문화가 다르기에, 그리고 각 대륙의 자연환경 역시 다르기에 신화가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묘하게 비슷한 점들이 참 많네요. 아마도 인류의 공통된 관심사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알아갈 수 있는 재미난 상식들이 있답니다. 아바타가 어떤 신화에서 유래되었는지, 판타지 소설들이 많은 경우 켈트의 신화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다든지, 할로윈 축제는 켈트의 삼하인 축제에서 유래되었다든지 하는 것들을 이 책은 알려 줍니다.

 

아울러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과 같은 모습이라기보다는 대체적으로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장난꾸러기 신들도 있고, 사랑하고, 상처받고, 질투하는 신들, 뿐 아니라 속이고 속는 신들, 자신들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일견 우리보다 더 못난 모습의 신들의 모습들을 통해, 우리 인류는 신을 초월적 존재만이 아닌, 우리와 친근한 이웃으로 이해하였음도 알게 되네요.

 

이 책, 『둥글둥글 지구촌 신화 이야기』를 통해, 세계 곳곳의 문화, 그 원형을 알고, 이해하는 귀중한 시간들. 그리고 다른 문화를 더 알아가고, 이해함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둥글둥글 지구촌이 된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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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대머리 바우솔 작은 어린이 22
서석영 지음, 박현주 그림 / 바우솔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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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참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놀이를 잃어버린 아이들이기에 더 불쌍하지 않나 싶고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부모의 극성에 시달려야만 하는 아이들. 과연 아이들을 위한 건지 본인들의 만족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하는 건지 구분이 잘 안갈 때도 있죠. 수많은 학원으로 내몰려야만 하는 아이들. 미리 몇 년씩 앞당겨 공부를 해야만 하는 아이들. 그리고는 정작 공교육의 현장에서는 미리 다 공부한 것이라 귀를 막고 딴 짓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아이들. 학교는 학원 숙제하는 곳이라는 말이 이젠 공공연하죠. 또한 학교 수업시간은 학원가서 공부하기 위해 체력을 비축하는 시간이고요.

 

우리의 현실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물론 국가정책의 문제도 있겠고, 사회구조적으로 재조정도 필요하겠죠. 그런데, 무엇보다 부모의 과도한 욕심 때문은 아닐까요?

 

『아홉 살 대머리』란 동화의 주인공 경수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 9살 아이랍니다. 그런데, 경수의 엄마가 어느 날 학원의 광고지를 보면서 경수의 일상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 광고지에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영어로 일기를 쓰고,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중학교 3학년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광고였답니다. 이에 경수네 엄마는 공부 잘하는 아들딸이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해보고는 모두 선행학습을 학원에서 하고 있음을 알고는 경수도 그날부터 고생길이 열렸답니다.

 

문제는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경수에겐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가 되었다는 거죠. 그리곤 결국 경수의 머리가 빠지기 시작하네요. 원형탈모증에 걸린 거죠. 기껏 9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경수의 머리는 어떻게 될까요?

 

참 안타까운 동화네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대체로 이런 현실 속에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하는데 말이죠.

 

1959년 UN총회에서 채택한 어린이인권선언문에 이런 조항들이 있네요.

 

제12조. 어른이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는 결정을 내릴 때 우리에겐 우리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리고 어른은 우리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제15조. 우리는 사적인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제31조. 우리에겐 쉬고 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가 오늘 우리 아이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깝네요. 우리의 아이들이 쉬고 놀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물론, 놀기만 하면 문제지만요. 또한 아이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말할 권리, 그리고 그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부모이길 소망해봅니다. 그래서 아홉 살 대머리가 된 경수와 같은 친구들이 생기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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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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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 그의 첫 번째 서스펜스 도전 소설이라는 『나오미와 가나코』를 읽은 후, 드는 생각은 ‘역시 오쿠다 히데오구나.’라는 생각. 물론, 서스펜스로서 구성이 탄탄하다거나 대단히 뛰어나다고 평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없진 않다. 하지만,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임에도 지루함 없이 언제 읽었는지 모를 만큼 소설에 몰입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후한 평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책 제목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은 두 여인이다. 대학동창인 나오미와 가나코가 그들이다. 나오미는 백화점의 외판부 직원으로 언제나 백화점 vip 고객들만을 상대하는 올드미스이며, 언제나 당차게 살아가는 여인이다. 반면, 가나코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은행원과 결혼하여 가사에만 전념하는 순종적 여인이다. 대학 졸업 후에도 정기적인 만남을 갖던 두 동창. 어느 날 나오미는 가나코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며, 가나코를 남편의 끔찍한 폭력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가나코의 남편 ‘제거’를 계획한다.

 

이 소설, 『나오미와 가나코』는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되는데, 전반부인 <나오미 이야기>는 나오미가 가나코와 함께 가나코의 남편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과 실행을 다루고 있다면, 후반부인 <가나코 이야기>는 남편 제거 후, 둘의 범행이 드러나게 되는 과정과 이를 피해 도주하게 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과연 나오미와 가나코는 무사히(?) 수사기관을 피해 도망칠 수 있을까?

 

이 책은 무엇보다 가정폭력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가나코의 남편은 평범한 은행원이자 성실한 회사원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뒤에는 아내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며, 아내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는 추악함이 감춰져 있다. 이런 추악함을 대하며 연약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점차 나아지겠지 하는 거짓 희망을 품고 참아내며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괴롭히는 남편의 마수에서 도망치는 것인가? 두 여인이 선택한 것은 둘 다 아니다. 남편의 ‘제거’를 선택한다. 그것도 완전범죄를. 물론, 이것은 끔찍한 범죄이지만, 그럼에도 그 선택은 가나코를 ‘지옥’에서 해방시키는 구원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어젯밤 가나코에게 들은 남편의 폭력 이야기에 나오미는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봉인됐던 기억의 상자가 열려 이중의 타격을 받았다. 기억에서 생생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얻어 맞던 폭력의 광경. 가정 폭력은 주변 사람들마저 지옥에 빠뜨린다.”(28쪽)

 

그렇다. 나오미가 가나코를 위해 가나코 남편의 ‘제거’ 작전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이유는 자신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지옥을 맛봤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은 지옥을 만들어내는 범죄다. 이러한 범죄 앞에 ‘제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나가는 모습은 어떤 윤리적인 질문을 넘어 당연시된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두 여인의 복수극이 성공하길 응원하게 된다. 작가는 이처럼 독자들을 나오미와 가나코의 살인의 공범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질문한다. 아무리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할지라도 과연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후반부 <가나코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질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어쩌면 이런 질문 때문에 평소 오쿠타 히데오의 작품처럼 통쾌함에서 그치지 않고, 뭔가 찜찜함이 후반부에는 가득한 것이 아닐까? 통쾌한 복수극, ‘제거’의 성공 뒤에 독자들이 갖게 되는 찜찜함이야말로 독자를 향한 작가의 무언의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가나코의 불안함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밤 11시가 되어서도 전화는 없었다. 오늘 중으로는 아무 일도 없을 것 같다. 마치 언제 집행될까 두려워하는 사형수의 심정이었다. 밤이 새고 다시 요코의 전화 앞에서 떠는 하루가 시작됐다.” (424쪽)

 

범행 성공 후에도 여전히 가나코는 불안함에 떤다. 이러한 불안함이야말로 그들의 제거작전은 윤리적인 부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두 여인은 완전범죄로 여겨졌던 자신들의 제거작전 안에서 드러나는 허술함 때문에 불안함에 떨게 된다.

 

이러한 불안함을 통해, 작가는 거듭 질문한다. 과연 이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작가는 말한다. 두 여인이 벌인 ‘제거’작전은 어쩔 수 없는 범죄라고, 이런 행동은 동물적인 행위였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위(살인, 제거)를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두 주인공의 고백이자 작가의 결론이다.

 

“사람 하나를 죽였다는 의식은 본인 스스로도 놀랄만큼 희박했다. 어쩌면 그날 밤의 광경이 되살아나 괴로워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했지만, 이젠 생각나지도 않았다. 기억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될 것 같았다. 인간은 의외로 동물적인지 모른다.” (330쪽)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이건가. 아니,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자신에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죄를 인정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점이다. 후회하지도 않는다.” (423쪽)

 

분명, 두 여인의 제거작전은 찜찜함을 낳는다. 불안함을 동반하는 죄악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거사는 두 여인에게는 해방의 출구였음을 작가는 말한다. 결국, 작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였다는 결말을 우리에게 전한다. 두 여인은 세상의 심판을 거부한다. 그리고 두 여인의 체포로부터의 탈출을 독자들은 끝내 응원하게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작가는 독자들을 공범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기꺼이 공범이 되며, 책장을 덮게 된다. 올 여름 더위를 식혀줄 재미난 소설임에 분명하다.

 

참,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들이라면 이 소설로 인해 평생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다. 내 아내가 날 제거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니, 회개하라! 그렇다고, 이 소설을 여성들이 열광하는 소설이라 말하는 것 역시, 조금 저어된다. 남성인 나에게도 신나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역시 오쿠다 히데오는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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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고슴도치 달마중 2
김해등 지음, 최현묵 그림 / 별숲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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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인 고슴도치 또치의 별명은 “마음대로 고슴도치”랍니다. 또치의 부모님은 또치가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며 붙인 별명이죠. 하지만, 실상 또치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답니다. 또치의 부모님은 또치를 과잉보호한답니다. 또치가 뭔가를 하려 하면 그건 위험하다며 반대한답니다. 게다가 또치를 향한 부모님들의 기대감까지 덧붙여지기에 또치는 실상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말 뿐인 “마음대로 고슴도치”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또치는 드디어 ‘마음대로’ 하려고 결심하고 실제 실천에 옮깁니다. 부모님 몰래 모험을 떠난 거죠. 나쁘게 표현하면 가출한 거지만, 또치는 자신만의 도전을 향해 나선 거랍니다. 실상 또치에겐 꿈이 있거든요. 그건 날아보는 거랍니다. 물론 고슴도치가 날 순 없죠. 하지만, 또치는 날길 꿈꿉니다. 게다가 이 일이 가능하도록 삼촌이 만들어준 날개도 있고요. 과연 또치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또한 또치의 ‘마음대로’ 가출은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2012년도에 발표된 김해등 작가의 창작동화인 『마음대로 고슴도치』는 참 재미나면서도 가슴이 따스해지는 동화네요. 몇 가지를 생각해보게도 하고요.

 

첫째, 부모들의 과잉보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기대는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지나쳐 자녀들로 하여금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도움을 주는 것은 마땅하지만, 자녀들의 인생을 하나에서 열까지 간섭하고, 계획을 세워 그대로 자녀들을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할 때, 아이들이 좋은 성적도 거두기도 하여 문제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으로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는 거니까 말이죠. 이런 아이들은 커서도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겠죠?

 

둘째, 고슴도치는 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또치의 도전이 아름답네요. 자신의 한계를 미리 그어놓는다면, 이건 자신의 분수를 아는 긍정적 의미라기보다는 자신 안에 감춰진 잠재력을 묻어버리는 어리석은 모습이 될 겁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라 할지라도, 남들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할지라도,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자들만이 진정으로 날 수 있지 않을까요? 때론 무모한 도전이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기도 하니까요.

 

셋째, 또치와 두꺼비 친구 엉금이의 용기가 멋집니다. 작은 동물들을 공격하는 사냥꾼 오소리를 대하며 두려운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떨쳐내며 지혜를 짜고, 함께 힘을 모아 오소리를 몰아내는 용기가 멋지네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건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이죠. 하지만, 그 두려움 앞에 어떤 자세를 보이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지겠죠. 우리 아이들이 또치처럼 두려움 앞에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좋겠네요.

 

『마음대로 고슴도치』인 또치의 멋진 모습들이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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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려줘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2
A. S. 킹 지음, 박찬석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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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tv 프로그램 가운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란 프로그램이 있다. 사실 이 아이들은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tv 프로그램에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 있는 모습이 방영되어지고, 그 문제 있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깊게 각인되어져서, 두고두고 그 아이가 문제 있는 아이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진다면 어떨까?

 

『나를 돌려줘』란 이 청소년소설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는 소설이다. 주인공 제럴드는 어린 시절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하여 일약 스타가 된다. 제럴드는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장소에 똥을 쌌기 때문이다. 식탁 위에 올라가 그곳에 똥을 싸기도 했고, 엄마가 아끼는 신발 안에 똥을 싸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장소에 다양한 모습으로 똥을 싼다. 이런 이 일로 인해 그는 일약 똥싸개가 된다. 문제는 한 번 똥싸개는 영원한 똥싸개라는 점.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벌인 일로 인해, 그는 열일곱살이 된 지금도 똥싸개로 손가락질 받는다.

 

이를 통해, 소설은 먼저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의 부작용에 대해 고발한다. 한 아이의 인생과 그 가정의 문제에 진정성 있게 접근하기보다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위해 보다 더 자극적인 내용을 원했던 그들에게 똥을 싸는 퍼포먼스야말로 대박 사건 아니었겠나? 이러한 방송 매체의 일그러진 초상을 작가는 고발한다. 그리고 실제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의 인생이 진짜 달라졌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붙은 똥싸개라는 꼬리표는 끝까지 제럴드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런데, 진짜 제럴드를 괴롭히는 것은 따로 있다. 사실, 제럴드가 똥을 싼 이유는 사실 똥을 싸는 것만이 어린 제럴드에게는 유일한 항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물건에 똥을 싸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아직 살아있고, 아직 화가 나 있다는 걸 그들에게 일깨워주는 유일한 소통 방법이었기 때문이다.”(100쪽)

 

그렇다면, 무엇이 이토록 제럴드로 하여금 똥을 싸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토록 제럴드를 화나게 하는 걸까? 그건 바로 큰 누나 타샤라는 존재다. 소설에 등장하는 타샤는 싸이코패스다. 동생들을 괴롭히는데, 단순히 부모의 사랑을 빼앗겼다는 생각에서 괴롭히는 게 아닌, 동생들을 악의적으로 괴롭히며 그 안에서 쾌감을 느끼는 아주 악한 모습이다. 심지어 엄마를 정기적으로 구타하기도 하는 그런 악의 화신이자 인간말종 같은 모습이다.

 

이런 싸이코패스 성향의 타샤로 인해 제럴드는 세상을 향해 똥을 쌀 수밖에 없다. 누나는 마치 자신을 죽일 것처럼 괴롭히는데, 눈을 감고 타샤 편만 들어주는 엄마의 편애와 바쁘다는 핑계로 무관심한 아빠의 모습이 더욱 타샤의 엇나감을 부추긴다. 편애와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는지, 편애와 무관심은 죄악임을 이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상황 가운데 제럴드는 분노조절 장애를 갖게 된다. 그 안의 응어리가 시시때때로 분노로 표출되는 것. 왜 그렇지 않겠는가? 어렸을 때에야 그러한 응어리가 똥을 싸는 행위로 분출되었다면, 커서도 같은 퍼포먼스를 행할 수도 없지 않나. 그렇기에 제럴드는 분노 조절 장애로 힘겨워한다. 그런 제럴드가 분노 조절 장애를 이겨낼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제럴드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든다. 바로 ‘제럴드데이’라는 가상공간인데, 제럴드는 시시때때로 자신만의 세상으로 도피한다. 그곳은 마치 꿈꾸는 공간으로 제럴드의 꿈과 바람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행복의 눈물, 아이스크림, 거기서는 타샤 누나 때문에 안달복달하느라 바빠서 엄마가 리지 누나랑 나한테 무신경하지 않았다. 제럴드데이에는 타샤 누나가 없었다. 타샤 누나가 리지 누나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우지도 않고 나더러 ‘저능아 게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타샤 누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38쪽)

 

‘제럴드데이’가 제럴드에게 도피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곳엔 타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함만으로도 누군가를 힘겨워하고, 그의 부재가 누군가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존재라면 이 얼마나 무가치한 삶이며, 불행한 삶인가. 아무튼 제럴드에게 누나 타샤는 그런 존재다.

 

제럴드는 ‘제럴드데이’가 있기에 분노를 억누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진짜가 아니다. 이곳은 상상 속의 공간이다. 이곳에 자주 드나들수록 도리어 제럴드의 삶은 정상적일 수 없다. 다른 또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둘째, 제럴드에게 찾아온 사랑이다. 제럴드는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자신을 똥싸개가 아닌 제럴드로 관심을 가져주는 한나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한나는 제럴드로 하여금 ‘제럴드데이’로의 도피 없이 일상적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여기에 조라는 친구의 만남, 그리고 몇몇 사람들의 진정 어린 관심이 제럴드를 ‘제럴드데이’에서 벗어나 일상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결국엔 사랑이 제럴드를 돌려준다. 사랑이 제럴드에게는 구원이다. 분노조절장애를 떨쳐내고 자신을 돌려받게 된 제럴드에게 응원을 보내며, 제럴드와 같은 아픔, 슬픔, 분노를 삼켜야만 하는 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들에게도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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