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려줘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2
A. S. 킹 지음, 박찬석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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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tv 프로그램 가운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란 프로그램이 있다. 사실 이 아이들은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tv 프로그램에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 있는 모습이 방영되어지고, 그 문제 있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깊게 각인되어져서, 두고두고 그 아이가 문제 있는 아이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진다면 어떨까?

 

『나를 돌려줘』란 이 청소년소설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는 소설이다. 주인공 제럴드는 어린 시절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하여 일약 스타가 된다. 제럴드는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장소에 똥을 쌌기 때문이다. 식탁 위에 올라가 그곳에 똥을 싸기도 했고, 엄마가 아끼는 신발 안에 똥을 싸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장소에 다양한 모습으로 똥을 싼다. 이런 이 일로 인해 그는 일약 똥싸개가 된다. 문제는 한 번 똥싸개는 영원한 똥싸개라는 점.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벌인 일로 인해, 그는 열일곱살이 된 지금도 똥싸개로 손가락질 받는다.

 

이를 통해, 소설은 먼저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의 부작용에 대해 고발한다. 한 아이의 인생과 그 가정의 문제에 진정성 있게 접근하기보다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위해 보다 더 자극적인 내용을 원했던 그들에게 똥을 싸는 퍼포먼스야말로 대박 사건 아니었겠나? 이러한 방송 매체의 일그러진 초상을 작가는 고발한다. 그리고 실제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의 인생이 진짜 달라졌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붙은 똥싸개라는 꼬리표는 끝까지 제럴드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런데, 진짜 제럴드를 괴롭히는 것은 따로 있다. 사실, 제럴드가 똥을 싼 이유는 사실 똥을 싸는 것만이 어린 제럴드에게는 유일한 항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물건에 똥을 싸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아직 살아있고, 아직 화가 나 있다는 걸 그들에게 일깨워주는 유일한 소통 방법이었기 때문이다.”(100쪽)

 

그렇다면, 무엇이 이토록 제럴드로 하여금 똥을 싸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토록 제럴드를 화나게 하는 걸까? 그건 바로 큰 누나 타샤라는 존재다. 소설에 등장하는 타샤는 싸이코패스다. 동생들을 괴롭히는데, 단순히 부모의 사랑을 빼앗겼다는 생각에서 괴롭히는 게 아닌, 동생들을 악의적으로 괴롭히며 그 안에서 쾌감을 느끼는 아주 악한 모습이다. 심지어 엄마를 정기적으로 구타하기도 하는 그런 악의 화신이자 인간말종 같은 모습이다.

 

이런 싸이코패스 성향의 타샤로 인해 제럴드는 세상을 향해 똥을 쌀 수밖에 없다. 누나는 마치 자신을 죽일 것처럼 괴롭히는데, 눈을 감고 타샤 편만 들어주는 엄마의 편애와 바쁘다는 핑계로 무관심한 아빠의 모습이 더욱 타샤의 엇나감을 부추긴다. 편애와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되는지, 편애와 무관심은 죄악임을 이 소설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런 상황 가운데 제럴드는 분노조절 장애를 갖게 된다. 그 안의 응어리가 시시때때로 분노로 표출되는 것. 왜 그렇지 않겠는가? 어렸을 때에야 그러한 응어리가 똥을 싸는 행위로 분출되었다면, 커서도 같은 퍼포먼스를 행할 수도 없지 않나. 그렇기에 제럴드는 분노 조절 장애로 힘겨워한다. 그런 제럴드가 분노 조절 장애를 이겨낼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제럴드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든다. 바로 ‘제럴드데이’라는 가상공간인데, 제럴드는 시시때때로 자신만의 세상으로 도피한다. 그곳은 마치 꿈꾸는 공간으로 제럴드의 꿈과 바람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행복의 눈물, 아이스크림, 거기서는 타샤 누나 때문에 안달복달하느라 바빠서 엄마가 리지 누나랑 나한테 무신경하지 않았다. 제럴드데이에는 타샤 누나가 없었다. 타샤 누나가 리지 누나 머리에 비닐봉지를 씌우지도 않고 나더러 ‘저능아 게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타샤 누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38쪽)

 

‘제럴드데이’가 제럴드에게 도피처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곳엔 타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함만으로도 누군가를 힘겨워하고, 그의 부재가 누군가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존재라면 이 얼마나 무가치한 삶이며, 불행한 삶인가. 아무튼 제럴드에게 누나 타샤는 그런 존재다.

 

제럴드는 ‘제럴드데이’가 있기에 분노를 억누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진짜가 아니다. 이곳은 상상 속의 공간이다. 이곳에 자주 드나들수록 도리어 제럴드의 삶은 정상적일 수 없다. 다른 또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둘째, 제럴드에게 찾아온 사랑이다. 제럴드는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자신을 똥싸개가 아닌 제럴드로 관심을 가져주는 한나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한나는 제럴드로 하여금 ‘제럴드데이’로의 도피 없이 일상적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여기에 조라는 친구의 만남, 그리고 몇몇 사람들의 진정 어린 관심이 제럴드를 ‘제럴드데이’에서 벗어나 일상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결국엔 사랑이 제럴드를 돌려준다. 사랑이 제럴드에게는 구원이다. 분노조절장애를 떨쳐내고 자신을 돌려받게 된 제럴드에게 응원을 보내며, 제럴드와 같은 아픔, 슬픔, 분노를 삼켜야만 하는 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들에게도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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