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 그의 첫 번째 서스펜스 도전 소설이라는 『나오미와 가나코』를 읽은 후, 드는 생각은 ‘역시 오쿠다 히데오구나.’라는 생각. 물론, 서스펜스로서 구성이 탄탄하다거나 대단히 뛰어나다고 평하기에는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없진 않다. 하지만,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임에도 지루함 없이 언제 읽었는지 모를 만큼 소설에 몰입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후한 평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책 제목처럼 이 소설의 주인공은 두 여인이다. 대학동창인 나오미와 가나코가 그들이다. 나오미는 백화점의 외판부 직원으로 언제나 백화점 vip 고객들만을 상대하는 올드미스이며, 언제나 당차게 살아가는 여인이다. 반면, 가나코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다 은행원과 결혼하여 가사에만 전념하는 순종적 여인이다. 대학 졸업 후에도 정기적인 만남을 갖던 두 동창. 어느 날 나오미는 가나코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며, 가나코를 남편의 끔찍한 폭력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가나코의 남편 ‘제거’를 계획한다.

 

이 소설, 『나오미와 가나코』는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되는데, 전반부인 <나오미 이야기>는 나오미가 가나코와 함께 가나코의 남편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과 실행을 다루고 있다면, 후반부인 <가나코 이야기>는 남편 제거 후, 둘의 범행이 드러나게 되는 과정과 이를 피해 도주하게 되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과연 나오미와 가나코는 무사히(?) 수사기관을 피해 도망칠 수 있을까?

 

이 책은 무엇보다 가정폭력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가나코의 남편은 평범한 은행원이자 성실한 회사원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뒤에는 아내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며, 아내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는 추악함이 감춰져 있다. 이런 추악함을 대하며 연약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점차 나아지겠지 하는 거짓 희망을 품고 참아내며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괴롭히는 남편의 마수에서 도망치는 것인가? 두 여인이 선택한 것은 둘 다 아니다. 남편의 ‘제거’를 선택한다. 그것도 완전범죄를. 물론, 이것은 끔찍한 범죄이지만, 그럼에도 그 선택은 가나코를 ‘지옥’에서 해방시키는 구원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어젯밤 가나코에게 들은 남편의 폭력 이야기에 나오미는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봉인됐던 기억의 상자가 열려 이중의 타격을 받았다. 기억에서 생생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얻어 맞던 폭력의 광경. 가정 폭력은 주변 사람들마저 지옥에 빠뜨린다.”(28쪽)

 

그렇다. 나오미가 가나코를 위해 가나코 남편의 ‘제거’ 작전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이유는 자신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를 향한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해 지옥을 맛봤기 때문이다. 가정폭력은 지옥을 만들어내는 범죄다. 이러한 범죄 앞에 ‘제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나가는 모습은 어떤 윤리적인 질문을 넘어 당연시된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두 여인의 복수극이 성공하길 응원하게 된다. 작가는 이처럼 독자들을 나오미와 가나코의 살인의 공범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질문한다. 아무리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할지라도 과연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후반부 <가나코 이야기>에서 반복되는 질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어쩌면 이런 질문 때문에 평소 오쿠타 히데오의 작품처럼 통쾌함에서 그치지 않고, 뭔가 찜찜함이 후반부에는 가득한 것이 아닐까? 통쾌한 복수극, ‘제거’의 성공 뒤에 독자들이 갖게 되는 찜찜함이야말로 독자를 향한 작가의 무언의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가나코의 불안함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밤 11시가 되어서도 전화는 없었다. 오늘 중으로는 아무 일도 없을 것 같다. 마치 언제 집행될까 두려워하는 사형수의 심정이었다. 밤이 새고 다시 요코의 전화 앞에서 떠는 하루가 시작됐다.” (424쪽)

 

범행 성공 후에도 여전히 가나코는 불안함에 떤다. 이러한 불안함이야말로 그들의 제거작전은 윤리적인 부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두 여인은 완전범죄로 여겨졌던 자신들의 제거작전 안에서 드러나는 허술함 때문에 불안함에 떨게 된다.

 

이러한 불안함을 통해, 작가는 거듭 질문한다. 과연 이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작가는 말한다. 두 여인이 벌인 ‘제거’작전은 어쩔 수 없는 범죄라고, 이런 행동은 동물적인 행위였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행위(살인, 제거)를 후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두 주인공의 고백이자 작가의 결론이다.

 

“사람 하나를 죽였다는 의식은 본인 스스로도 놀랄만큼 희박했다. 어쩌면 그날 밤의 광경이 되살아나 괴로워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했지만, 이젠 생각나지도 않았다. 기억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될 것 같았다. 인간은 의외로 동물적인지 모른다.” (330쪽)

 

“세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이건가. 아니,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자신에게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죄를 인정할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점이다. 후회하지도 않는다.” (423쪽)

 

분명, 두 여인의 제거작전은 찜찜함을 낳는다. 불안함을 동반하는 죄악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거사는 두 여인에게는 해방의 출구였음을 작가는 말한다. 결국, 작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였다는 결말을 우리에게 전한다. 두 여인은 세상의 심판을 거부한다. 그리고 두 여인의 체포로부터의 탈출을 독자들은 끝내 응원하게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작가는 독자들을 공범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기꺼이 공범이 되며, 책장을 덮게 된다. 올 여름 더위를 식혀줄 재미난 소설임에 분명하다.

 

참,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들이라면 이 소설로 인해 평생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다. 내 아내가 날 제거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니, 회개하라! 그렇다고, 이 소설을 여성들이 열광하는 소설이라 말하는 것 역시, 조금 저어된다. 남성인 나에게도 신나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역시 오쿠다 히데오는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