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샤
이찬석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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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인 성근이는 어느 날 ‘짜샤’가 되어 버렸다. 이제 그는 그저 ‘짜샤’에 불과하다. 사실, 성근도 초등학교 시절 학교 짱이었다. 아버지가 조직 폭력배 두목이었기에 아버지로부터 싸움을 배운 덕분이다. 물론, 아버지는 진정한 건달이었기에, 약한 사람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 싸움을 가르쳐줬고, 그로 인해 결국 성근은 학교 짱이 된다. 그 덕분에 중학교에 올라간 그를 건드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고, 이제 외교관의 꿈을 품고 열심히 공부하는 성근이었지만, 어느 순간 악마와 같은 동식의 표적이 됨으로 폭력의 제물이 되고 만다.

 

과연 성근은 ‘짜샤’에서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동식의 표적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결론을 이야기하면 그럴 수 없다. 물론, 성근은 동식의 표적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이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음으로 인해서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사실 쉽게 읽히는 문체이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기는 쉽지 않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때론 너무 안타깝고, 때론 너무 화가 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학교폭력에 대한 소설이다(작가는 왕따에 대한 소설이라고 말하지만, 왕따보다는 학교폭력이 맞을 듯싶다). 먼저 폭력의 주체인 동식에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런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른 척 방관해야 하나? 아님, 더 크고 강한 폭력으로 짓눌러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계도에 최선을 다해야 할까? 쉽지 않은 문제다. 그 폭력성에 대해 분노함과 동시에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이 불쌍하다. 아울러, 그 폭력의 끔찍함에는 치가 떨리기도 한다.

 

작가는 무엇보다 폭력의 대상이 된 자들의 심리 상태에 주목한다. 무엇보다 그 두려움, 용기를 잃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우리는 폭력 앞에 왜 그런 반응들을 보였을까 싶은 생각들을 할 수 있지만, 실상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는 그 두려움 때문에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음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처음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곧장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왕따줄이기국제연대> 창립자인 작가 역시 이것이 최우선적인 대안임을 이야기한다.

 

내가 만약 처음 그에게 학대당할 때 반발을 하거나 누군가에게 고해바쳤다면 그는 내가 방어 능력이 있는 줄 알고 더는 나를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까지 참담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뜨려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172쪽)

 

처음 용기를 내지 못하면, 폭력이 진행될수록 용기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음을 소설은 보여준다. 두려움, 분노, 체념의 순으로 진행됨으로 나중에는 영원히 폭력의 피해자로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처음 용기를 내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성근이 용기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누군가 먼저 성근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성근의 엄마 역시 더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그리고 성근의 담임의 무감각에도 화가 난다. 분명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 있음에도 본인에게 귀찮은 일이 생길까 모른 척 하는 그 모습은 사실 직무유기를 넘어서서 폭력의 동조자일뿐더러 또 하나의 폭력의 주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이 땅의 청소년들이 더 이상은 ‘짜샤’로 남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마음껏 나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울러 힘이 약하다고 해서 자신의 자존감을 상실하게 되는 그런 안타까운 현실이 더 이상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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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시스터 4 - 비밀과 진실 벽장 속의 도서관 9
시에나 머서 지음, 심은경 옮김 / 가람어린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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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는 새로 이사하여 전학 간 학교에서 자신의 쌍둥이 자매 아이비를 만나게 됩니다. 쌍둥이 자매가 서로 다른 곳으로 입양되었기에 자신의 쌍둥이 자매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죠. 그런 그들이 이제 자매임을 알고 우정을 쌓아가게 되는데,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놀라운 비밀이 있답니다. 그건 아이비는 뱀파이어라는 겁니다. 반면 올리비아는 그냥 사람이고요. 토끼(뱀파이어들이 인간을 부르는 용어)는 결코 뱀파이어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답니다. 그리고 뱀파이어는 토끼에게 뱀파이어의 비밀을 누설할 수도 없고요. 그럼에도 아이비는 자신의 쌍둥이 자매인 올리비아에게 뱀파이어의 비밀을 누설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올리비아는 시험을 거쳐 토끼임에도 뱀파이어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제 둘 앞에는 어떤 어려움도 없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두 자매는 자신들의 부모에 대한 비밀을 조사하던 가운데 놀라운 비밀을 알아냅니다. 바로 자신들의 친아버지는 아이비를 입양한 양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모든 비밀들을 밝혀냈으니, 올리비아와 아이비는 행복한 순간들을 보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답니다. 어찌된 일인지, 아이비의 아빠(올리비아의 친아빠이기도 하죠)가 유럽으로 이사를 결정한 겁니다.

 

이제 올리비아와 아이비, 그리고 그들의 절친들이 나서서 아이비가 이사 가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아이비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유럽으로의 이사를 취소할까 싶어 아버지 데이트 상대를 찾기도 합니다. 또한 아버지가 유럽에서의 일자리보다 더 좋은 자리가 나면 어떨까 싶어 일자리도 찾아 나섭니다. 과연 이 일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뿐 아니라 올리비아와 아이비가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음도 밝힌답니다. 그런데도 아이비의 아버지는 유럽 이사 계획을 포기하지 않네요. 왜 그럴까요?

 

사실, 아이비 아버지가 유럽으로 이사 가려는 것은 그곳 직장이 탐나서도, 그리고 올리비아를 딸로 생각하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죠. 올리비아의 친 아버지는 올리비아를 너무 사랑한답니다. 하지만, 떠나야만 하는 이유는 도리어 올리비아를 지켜내기 위해서랍니다. 온전히 사람으로 태어난 올리비아가 혹시라도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아이들의 친모가 죽었던 것처럼 아이를 낳다 죽을까 염려해서지요. 올리비아와 아이비의 친부가 부녀 관계마저 끊으려 하는 이유는 도리어 딸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랍니다. 친아버지의 입장에서 얼마나 올리비아가 보고 싶었을까요? 그럼에도 딸을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으로 딸을 보고 싶은 마음마저 참아내는 그 부정(父情)이 참 아름답네요.

 

남들이 볼 때는 비록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딸들을 생각하는 그 부정(父情)이 우리 모든 아버지들의 마음이 아닐까 여겨지네요. 잘 표현하진 못해도, 그 무뚝뚝함 이면에 감춰진 자녀를 향한 사랑을 생각해 보게 되네요.

 

다음 편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기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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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고향 이야기 어린이작가정신 어린이 문학 5
김용운 지음, 김옥재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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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할 때가 많을 겁니다. 그런 친구들은 이 동화집 『엄마 아빠 고향 이야기』를 읽으면 좋을 것 같네요. 물론, 이 동화책 속의 이야기들은 어쩌면, 우리 친구들(초등학생이라 생각했을 때)의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기보다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기도 하네요. 60-70년대의 풍경이기에 당시 청소년들이라면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엄마 아빠 가운데 어쩌면 60-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분들도 계실 수 있고, 또한 그 이후 세대라 할지라도 자란 곳이 도회지가 아닌 시골이라면 분명 이 동화 속의 모습을 공감할 테니 말입니다.

 

아무튼 이처럼 엄마 아빠의 어린 시절 모습이 담겨진 도합 23편의 단편 동화집이 『엄마 아빠 고향 이야기』랍니다. 이 책은 2003년에 처음 출간된 책인데, 금번에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답니다. 23편의 단편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4개의 단락에 묶여 있네요.

 

많은 동화들 가운데, 마지막 부분의 겨울 부분이 유독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답니다. 아무래도 놀거리가 많지 않던 당시의 놀거리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거든요. 연싸움도 그렇고, 자치기 역시 옛 추억에 빠져들게 만드네요. 예전엔 친구들과 자치기를 참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자치기가 무엇인지 아는 친구들이 아마 없을 거예요. 요즘 아이들이 이 놀이를 하는 모습은 전혀 보질 못했거든요. 친구들과 자치기를 하며, 친구가 몇 자를 부르면 때론 선심 쓰듯 재보지도 않고 허락해주다가, 괜히 얄미운 친구가 몇 자를 부르면, 꼬박꼬박 재보던 기억도 나네요. 동화 속처럼 더 길게 쟀네, 숫자를 반복했네, 토닥거리던 기억도 나고요.

 

이야기들을 읽으며, 맞아. 예전엔 저런 일들이 있었는데. 싶은 내용들이 참 많네요. 지금보단 훨씬 궁핍하던 시절이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의 추억이 기분 좋은 이유는 뭘까요? 추억 속으로 신나는 시간여행을 하게 된 고마운 책이네요.

 

물론 어린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새로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내용들이겠지만요. 한 번 이 책을 통해, 엄마 아빠,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 풍경을 엿보는 것도 재미있을 그런 이야기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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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내 삶의 퍼즐 조각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41
마리 콜로 지음, 박나리 옮김 / 책속물고기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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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에게 2012년 5월 24일은 ‘최악의 날’이다. 끔찍한 교통사고로 여동생 레아를 잃은 날이며, 사랑하는 엄마의 아름답던 발가락을 잃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고로 인해 샤를리의 삶은 잔뜩 꼬여버렸다. 마치 맞추기 어려운 복잡한 퍼즐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꼬인 것은 전망이 좋던 높은 층에서 1층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이는 하반신 불구가 된 엄마를 위한 조처였겠지만, 샤를리에게는 자신이 평생을 살아온 거리를 떠난 슬픔 그 자체인 것이다.

 

게다가 방학인데, 샤를리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샤를리가 선택한 것은 아파트 ‘안’. 아파트의 각 가정을 방문하며, 그 가정에서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는 작업에 돌입한다. 그리곤 그것들을 일일이 기록한다. 바로 ‘아파트 탐험록’이 그것이다. 이 ‘아파트 탐험록’에 들어갈 또 하나의 내용은 바로 각 집마다 방문하여 나올 때, 그곳에서 기념품을 한 가지씩 몰래 챙기는 것이다. ‘임대’표지판, 현관 매트 조각, 양초, 꽃병, 목공 가게의 광고 전단지, 마스카라, 기타 포크 따위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물론 한 곳에서는 핸드폰을 훔쳐오기도 한다. 이것은 후에 돌려주게 되지만 말이다. 바로 그곳이 샤를리의 가장 빈번한 방문 가정이 된다.

 

그곳은 늙은 여 작가 슬라빈스키아 부인의 집이다. 이곳을 방문하며 샤를리는 슬라빈스키아 부인과 우정을 쌓아가게 되고, 각 가정을 방문하는 가운데 아파트 최고 인기인이 된다. 과연 샤를리는 자신의 ‘아파트 탐험록’을 무사히 완성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마지막 퍼즐은 어떤 멋진 내용일까?

 

성장소설인 『찰칵! 내 삶의 퍼즐 조각』을 덮으며 먼저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의 상처가 수많은 ‘관계’를 통해 치유된다는 점이다. 샤를리의 상처는 아파트 ‘안’의 수많은 가정들을 방문하고, 그들과 짧은 교제의 시간(처음엔 15분으로 정해진다. 아빠는 15분 안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도록 알람을 맞추게 한다)을 갖는 가운데 치유된다.

 

그렇다. 상처는 안으로 감출 때 도리어 더 단단해진다. 반면 많은 관계 속에서의 교제를 통해 상처는 말랑말랑해지고 결국 치유하게 된다. 만약, 그 ‘최악의 날’의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끝내 샤를리가 집 안에만 머물렀다면 그 상처는 더욱 커질 수도 있었다. 우리 안에 깊은 상처가 있다면 이러한 상처들이 또 다른 좋은 관계(신과의 관계일 수도 있겠고, 좋은 사람과의 관계일 수도 있겠다)를 통해 치유될 수 있다면 좋겠다.

 

샤를리의 마지막 퍼즐 조각은 바로 슬라빈스키아 부인을 위한 하루 동안의 가출에 있다. 슬라빈스키아 부인은 사실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이름도 다르고, 직업도 소설가가 아닌. 이 사실에 샤를리는 또 다른 상처를 입게 되지만, 한 번도 외국 여행을 하지 못한 슬라빈스키아 부인을 위해, 파리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게 된다. 하루의 일탈, 그것도 누군가 타인을 위한 일탈이 샤를리의 치유 여행, 마지막 퍼즐이라는 것도 의미 있겠다.

 

물론 나의 아픔과 힘겨움도 크겠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아픔을 위한 일탈은 삶을 아름답게 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본다. 내가 맞출 마지막 퍼즐 조각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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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 마운틴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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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 마운틴> 그곳은 11살 소년의 통과의례의 공간이다. 드디어 살상이 허락된 첫 사냥. 하지만, 그 첫 살상의 대상은 사슴이 아닌 사람이란 점이 문제의 시작이다. 자신들만의 사냥 공간인 <고트 마운틴> 그곳에 허락받지 않은 밀렵꾼이 있었던 것. 바로 그 사람을 향해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11살 소년의 무지함 탓일까? ‘나’에게는 살인의 죄의식도 없다. 그 일이 얼마나 끔찍한 큰일인지 아무런 감각도 없다.

 

나는 곧장 걸어가 시체를 보았다. 사슴의 시체를 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게 있다면, 다소 들뜬 정도? 그때껏 살아오면서 사슴 말고도 너무도 많은 죽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죽이고 있다. 이 세상에 온 것도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36쪽)

 

이렇게 시작된 <고트 마운틴>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소설 『고트 마운틴』. 작가는 이 소설 『고트 마운틴』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인을 행하는 모습이야말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고발하려는 걸까? 살상이 허락된 공간인 <고트 마운틴>은 다름 아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 그곳임을 고발하려는 걸까? 모를 일이다.

 

솔직히 이 소설 『고트 마운틴』은 상당히 어려웠다. 작가의 묘사 방식이 우선 그렇다. 비약은 예사다. 작가의 사색이 묻어나는 철학적 표현 역시 다반사다. 문제는 이런 사색, 그 영역에 접촉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더욱 책읽기를 어렵게 만든다. 현대 미국문학의 새로운 거장으로 부상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기대감을 모두 몰아낼 만큼 난해한 묘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책읽기를 어렵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행해진 살인, 그 살인을 뒤처리하는 과정, 그리고 첫 사슴 사냥과 그 처리과정 등은 마치 스플래터 무비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득 받게 된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영화보다 더욱 끔찍하게 여겨지는 것은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성찰이 가득한 가운데, 그리고 상당히 잔잔한 묘사 가운데서 피와 살점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엽기적인 느낌도 받게 된다.

 

아울러 상당히 비현실적인 묘사들로 인해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물론, 이런 몽환적인 분위기는 아름다운 몽환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스플래터 무비 안에서의 몽환적 분위기다. 과연 현실 묘사인지, 상상의 묘사인지, 회상인지가 모호한 서술 역시 책 읽기를 어렵게 만든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관심이 많다. 특히, 기독교의 내용을 많이 차용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서적이라 말하긴 어렵다. 종교적이지만, 성서적이진 않다. 이 부분 역시 작가만의 세계가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왠지 작가는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갇혀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호평과 수상이 단지 그네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이라는 것 때문은 아닐까 의심이 갈 만큼. 하지만, 분명 그렇진 않을 게다. 좋은 작품을 읽기 힘겨워하는 본인의 독서력의 미천함 탓일 게다. 작가의 메시지를 제대로 듣지 못함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이처럼 독자의 독서력을 의심케 하는 소설임이지만, 이 책은 수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어쩌면 그 질문이 너무 많아 감당키 어려우리만치. 그 가운데 하나는 과연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사슴을 죽이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마도 작가는 차이가 없다 말하는 듯싶다. 또한 죄의식 없이 살인이 가능한지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답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인을 행하는 이들은 모두 악인인가? 답은 아니다. 악인이 아니더라도 죄의식 없이 살인을 행할 수 있다. 때론 그것이 잘못임을 아예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살상의 자연스러움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극중의 ‘나’가 바로 그렇다. ‘나’는 결코 악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죄의식 없이 살인을 행한다. 물론, 소설의 말미에서는 톰 아저씨를 향한 살인은 힘겹다. 왜 그럴까? 톰 아저씨는 ‘아는’ 사람이고, 밀렵꾼은 전혀 모르는 ‘익명’의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그럼에도, 두 살인은 같다. 심지어 사슴을 향한 살상마저.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의 것일지 모른다. 우리의 ‘도덕’이란 껍데기 아래에는 이처럼 끔찍한 민얼굴이 감춰져 있노라고.

 

아버지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면,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바르게 살고 싶어했다. 가능하다면 우리를 녹인 다음 다른 틀에서 모양을 떠서 새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한테 기회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지워진 것도. 지금에 와서도 겨우 내 옆의 그림자로만 남은 것도 그래서였다. 미래의 내 모습이 되었어야 했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었던. 누구도 타고난 본성을 거스를 수는 없다. 도덕은 우리의 맨얼굴 앞에서 언제나 무력했다. (235쪽)

 

아무튼 어려운 책을 만났다. 평가는 읽을 여러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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