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트 마운틴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고트 마운틴> 그곳은 11살 소년의 통과의례의 공간이다. 드디어 살상이 허락된 첫 사냥. 하지만, 그 첫 살상의 대상은 사슴이 아닌 사람이란 점이 문제의 시작이다. 자신들만의 사냥 공간인 <고트 마운틴> 그곳에 허락받지 않은 밀렵꾼이 있었던 것. 바로 그 사람을 향해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11살 소년의 무지함 탓일까? ‘나’에게는 살인의 죄의식도 없다. 그 일이 얼마나 끔찍한 큰일인지 아무런 감각도 없다.

 

나는 곧장 걸어가 시체를 보았다. 사슴의 시체를 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게 있다면, 다소 들뜬 정도? 그때껏 살아오면서 사슴 말고도 너무도 많은 죽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죽이고 있다. 이 세상에 온 것도 어쩌면 그래서일지도. (36쪽)

 

이렇게 시작된 <고트 마운틴>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소설 『고트 마운틴』. 작가는 이 소설 『고트 마운틴』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인을 행하는 모습이야말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고발하려는 걸까? 살상이 허락된 공간인 <고트 마운틴>은 다름 아닌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 그곳임을 고발하려는 걸까? 모를 일이다.

 

솔직히 이 소설 『고트 마운틴』은 상당히 어려웠다. 작가의 묘사 방식이 우선 그렇다. 비약은 예사다. 작가의 사색이 묻어나는 철학적 표현 역시 다반사다. 문제는 이런 사색, 그 영역에 접촉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더욱 책읽기를 어렵게 만든다. 현대 미국문학의 새로운 거장으로 부상하는 작가의 작품이라는 기대감을 모두 몰아낼 만큼 난해한 묘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책읽기를 어렵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행해진 살인, 그 살인을 뒤처리하는 과정, 그리고 첫 사슴 사냥과 그 처리과정 등은 마치 스플래터 무비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득 받게 된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영화보다 더욱 끔찍하게 여겨지는 것은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성찰이 가득한 가운데, 그리고 상당히 잔잔한 묘사 가운데서 피와 살점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엽기적인 느낌도 받게 된다.

 

아울러 상당히 비현실적인 묘사들로 인해 몽환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물론, 이런 몽환적인 분위기는 아름다운 몽환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스플래터 무비 안에서의 몽환적 분위기다. 과연 현실 묘사인지, 상상의 묘사인지, 회상인지가 모호한 서술 역시 책 읽기를 어렵게 만든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관심이 많다. 특히, 기독교의 내용을 많이 차용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서적이라 말하긴 어렵다. 종교적이지만, 성서적이진 않다. 이 부분 역시 작가만의 세계가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왠지 작가는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갇혀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호평과 수상이 단지 그네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이라는 것 때문은 아닐까 의심이 갈 만큼. 하지만, 분명 그렇진 않을 게다. 좋은 작품을 읽기 힘겨워하는 본인의 독서력의 미천함 탓일 게다. 작가의 메시지를 제대로 듣지 못함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다.

 

이처럼 독자의 독서력을 의심케 하는 소설임이지만, 이 책은 수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어쩌면 그 질문이 너무 많아 감당키 어려우리만치. 그 가운데 하나는 과연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사슴을 죽이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마도 작가는 차이가 없다 말하는 듯싶다. 또한 죄의식 없이 살인이 가능한지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답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인을 행하는 이들은 모두 악인인가? 답은 아니다. 악인이 아니더라도 죄의식 없이 살인을 행할 수 있다. 때론 그것이 잘못임을 아예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살상의 자연스러움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극중의 ‘나’가 바로 그렇다. ‘나’는 결코 악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죄의식 없이 살인을 행한다. 물론, 소설의 말미에서는 톰 아저씨를 향한 살인은 힘겹다. 왜 그럴까? 톰 아저씨는 ‘아는’ 사람이고, 밀렵꾼은 전혀 모르는 ‘익명’의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그럼에도, 두 살인은 같다. 심지어 사슴을 향한 살상마저.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음의 것일지 모른다. 우리의 ‘도덕’이란 껍데기 아래에는 이처럼 끔찍한 민얼굴이 감춰져 있노라고.

 

아버지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면,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바르게 살고 싶어했다. 가능하다면 우리를 녹인 다음 다른 틀에서 모양을 떠서 새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한테 기회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지워진 것도. 지금에 와서도 겨우 내 옆의 그림자로만 남은 것도 그래서였다. 미래의 내 모습이 되었어야 했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었던. 누구도 타고난 본성을 거스를 수는 없다. 도덕은 우리의 맨얼굴 앞에서 언제나 무력했다. (235쪽)

 

아무튼 어려운 책을 만났다. 평가는 읽을 여러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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