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와 엉킨 실타래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 파일 3
데이비드 스튜어트 데이비스 지음, 하현길 옮김 / 책에이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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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대표적 홈지언 작가 데이비드 스튜어트 데이비스의 세 번째 홈즈 이야기가 나왔다. 『셜록 홈즈와 엉킨 실타래』라는 제목으로 이 책은 아서 코난 도일의 대표적 작품인 장편소설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를 그 기본배경으로 하고 있는 내용이다.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에서 바스커빌 가문의 막대한 유산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 가문에 내려오던 무시무시한 사냥개의 전설을 이용하여 재산을 가로채려던 악당 스태플턴. 홈즈에 의해 황무지의 늪 속으로 빠져 죽는 최후를 맞았던 스태플턴. 그가 만약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아울러 다시 홈즈를 향한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면? 바로 이런 질문에서부터 이 소설 『셜록 홈즈와 엉킨 실타래』는 출발한다.

 

그렇다. 죽은 줄만 알았던 스태플턴이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는 홈즈를 향한 복수의 칼을 들이민다. 과연 홈즈와 왓슨은 복수의 화신 스태플턴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대결의 승자는 누구일까?

 

이처럼 복수의 화신 스태플턴은 홈즈를 향한 복수의 날을 세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스태플턴 말고 또 하나의 큰 축이 있다. 바로 흡혈귀의 출현이다. 홈즈와 왓슨은 스태플턴 사건과는 별개로 또 하나의 미궁의 사건을 만나게 된다. 일명 ‘유령여인 사건’인데, 의문의 시신들이 계속하여 발견된다. 그것도 온몸의 피가 빠져나간 채. 과연 이 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

 

사실 이 소설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사건은 흡혈귀 사건이다. 스태플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홈즈의 대적자는 바로 드라큘라 백작이다. 악마군단을 만들려는 계획을 품고 트랜실바니아를 떠나 런던에 도착한 드라큘라 백작. 그리고 그 하수인들과의 싸움이 홈즈와 왓슨이 헤쳐나가야 할 과제다.

 

이 두 가지 사건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의 악당 스태플턴의 복수와 드라큘라 백작과의 싸움, 이 두가지 사건은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엮기고 꼬여 있다. 바로 이 실타래를 홈즈와 왓슨은 하나하나 풀어나가게 된다. 물론, 그런 가운데 큰 위기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아슬아슬하고 때론 괴기스러운 이 위험한 모험을 독자들은 소설을 통해 함께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홈즈는 무엇보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신봉하는 자이다. 그렇기에 홈즈는 당연하게도 흡혈귀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의 과학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충돌하는 과정을 소설을 그려내고 있다. 이성적 사고를 최우선으로 두는 홈즈, 초자연적 현상과 사고에는 콧방귀를 뀌는 홈즈가 흡혈귀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흡혈귀와 대결하는 또 다른 차원의 싸움을 그려내고 있으니 말이다(물론, 이 싸움에서도 홈즈의 이성적 추리력은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이 소설이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 차용한 이야기는 다름 아닌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라는 것도 재미나다.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야말로 초자연적이고, 비논리적인 접근이야말로 허무맹랑한 사고구조임을 증명하는 사건이니 말이다(『바스커빌 가의 사냥개』에서 전설은 사실이 아니었다. 전설의 사냥개는 악당 스태플턴의 조작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 소설에서 홈즈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고영역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물론, 여전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하겠지만, 이제 홈즈는 초자연적인 영역에 대해 사고를 열어놓게 된다. 어쩌면 더 강해지는 홈즈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대의 대표적 홈지언 작가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홈즈의 이야기, 『셜록 홈즈와 엉킨 실타래』, 참 재미난 소설이다. 과연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들(?)이 얼마나 더 작가를 통해 발굴될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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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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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에서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돌아와요 아저씨>의 원작 소설인 아사다 지로의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을 읽어봤다. 이 소설은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야 하겠다. 죽은 영혼이 다시 잠시 돌아와 못다 한 일들을 해결하게 된다는 설정이니 말이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 49일 동안 머무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곳을 중유(中有)라고 하는데, 소설 속에서 주인공 쓰바키야마 과장은 어느 날 갑자기 죽어 이곳 중유에 도착하게 된다(사실 과도한 백화점 업무로 인한 과로사다.). 이곳에서 죽은 영혼들은 극락과 지옥행을 결정 받게 되는데, 극락에 가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죽은 자들에게 죄를 이야기하고 각기 해당되는 죄의 방에 들어가 교육을 받게 되는데, 그곳에서 자신들의 죄에 대해 잘못했다는 버튼을 누르면 쉽게 극락으로 향하게 되기 때문이다(참 천국가기 쉽다^^).

 

하지만, 쉽게 잘못했다는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현세에 대한 미련이 너무 많은 자들이다.

 

당신들은 정말로 현세에 미련이 없는가? 그렇게 간단한 인생이었나? 자기만 그렇게 극락으로 가 버리면 끝이란 말인가!(69쪽)

 

이런 자들은 심사를 거쳐 합당하다고 여겨지면 다시 현세로 돌아가게 되고, 주어진 시간동안 자신의 볼 일을 보게 된다. 이들이 지켜야 할 것은 단 세 가지. 제한시간엄수(죽은 지 7일 안에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복수 금지, 정체의 비밀 유지(이게 제일 어려운 항목이다.)가 그것.

 

죽는 순간까지 백화점 할인행사 실적을 걱정한 쓰바키야마 과장. 청부살인자가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여 쏜 총에 죽은 야쿠샤 두목. 그리고 부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부잣집에 입양되었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소년. 이렇게 세 사람은 각자 현세에서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과연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사제이자 독일 대학의 교수인 신학자 게르하르트 로핑크는 죽음 이후의 심판이란 이 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었음에도 하지 못한 일을 떠오르게 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 심판이라 말했다. 그만큼 이 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임에도 하지 못한 것은 죽어서도 한이 된다는 말일게다. 이 소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은 바로 이런 모티브에서 출발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땅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마치지 못한 한, 미련으로 인해 3명의 주인공들은 잘못했다는 버튼(극락, 천국행 티켓과 같은 버튼)을 쉽게 누르지 못한다. 특히 현세에 남은 자들을 향한 걱정과 미련이 이들을 다시 현세로 돌아오게 한다.

 

그렇게 돌아온 이들이 만들어가는 좌충우돌 활약이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주어진 시간은 짧고 해결해야 할 것은 많다. 회사일, 집안일, 갚아야 할 대출금 문제, 게다가 자신이 범했다는 음행죄가 무엇인지 궁금한 쓰바키야마 과장. 자신을 착각하여 죽인 자는 누구이며, 누구 대신 자신이 죽게 된 것인지도 알아야 하며 남겨진 고붕들의 미래가 걱정되는 정의파 야쿠샤 두목. 아울러 자신을 버린 부모님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 부모님들께 후회하지 말라고, 용서한다고 전해줘야만 하는 소년. 이들이 펼쳐나가는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재미나고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이들의 히스토리는 서로 이리저리 엮여 있기도 하다.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이렇게 실타래처럼 엮인 그 사연들을 주인공들이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때론 웃음 짓고, 때론 분하기도 하고, 때론 아쉬움의 한숨을 짓기도 하며, 때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도 된다.

 

소설 속에서 사자(死者)들은 다시 현세로 돌아옴으로 그전에 알지 못했던 감춰진 진실들을 직면하게 된다. 이 진실들은 알고 싶지 않은 내용들도 있고, 미처 알지 못했던 후회스러운 내용들도 있다. 이렇게 감춰진 진실을 알아가는 장면들을 통해 과연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 좋은 것인가도 생각해보게 한다. 물론 소설은 밝혀지는 감춰진 진실들을 알아감으로 궁극적 화해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 작가는 비록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라 할지라도 그 원치 않는 진실도 뛰어넘을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소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참 재미 난 마치 종합선물과 같은 소설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인가. 자신은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몸이 가루가 되도록 열심히 일하는 것만이 정의라고 믿어왔다. 그리고 말 그대로 몸이 가루가 되고 나서 겨우 깨달았다. 일을 핑계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들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을. 피와 살을 물려받은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피와 살을 물려준 자식의 고통도 눈치 채지 못했다. 즉, 자신은 돈을 버는 기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174쪽)

 

몸이 불편한 사람도, 나이가 많은 노인도, 또는 나이가 적은 어린아이도, 그들은 모두 사회적인 약자이긴 하지만 결코 인간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아니야. 인간들 사이에 강약은 있어도 우열은 없단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돌봐주는 사람의 의사가 아니라 본인의 의사야. 내 말을 이해하겠니?(25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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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목장
모리 에토 글,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 해와나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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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이라는 것, 일반적이라는 것 그리고 영리한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비상식적이지만 옳은 경우도 많죠. 예를 든다면 길을 가는데, 아무도 없는 한적한 거리에서 강도들이 한 사람을 향해 강도질을 하고 있어요. 손에 흉기도 들었고요. 그럴 경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물론, 신고를 하는 것이 좋겠죠. 하지만, 신고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내가 저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강도당하는 사람을 구할 능력도 없다면? 그냥 모른 척 하는 것이 어쩌면 현명한 선택일 수 있죠. 그런데,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정의감에 강도들을 향해 달려든다면 어떨까요? 분명 이런 선택은 상식적이지 않은 선택입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어리석은 선택이고요. 바보 같은 짓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분명 정의로운 선택이죠. 어리석지만 나쁜 선택이 아닌 옳은 선택이라는 겁니다.

 

『희망의 목장』이란 이 짧은 그림책을 보고 난 후에 든 생각은 이와 유사한 생각입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소치기’ 아저씨의 선택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선택이에요. 과연 그 선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선택에 가슴이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머리는 바보 같다고 외치지만, 가슴은 나도 몰래 뜨거워져요. 왜냐하면, 아무런 의미 없는 선택, 어리석은 선택처럼 보이는 그 선택, 그 행동함이 생명을 살려내는 정의로운 일이고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에요.

이 그림책은 일본의 대지진 이후 방사능에 오염된 지역에서 실제 벌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어요. 방사능에 오염되어 아무도 살 수 없는 그 지역에서 소를 키우던 농부가 있었어요. 방사능으로 인해 모든 소를 죽이고 그곳을 떠나야만 했어요. 그런데, 이 분은 소를 그냥 죽일 수 없었대요. 이 소들은 이미 방사능에 오염되어 아무리 잘 길러도 그 고기를 팔 수 없게 되었지만, 살아 있는 생명 특히 자신이 기르던 소들을 죽일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그곳 방사능에 오염된 땅에서 소를 계속 돌보기로 한 거예요.

돈을 벌수도 없는데, 계속하여 소를 돌봐야만 하는 ‘소치기’의 소는 점점 더 늘어갔대요. 왜냐하면 이웃 목장의 소, 그리고 버려진 소들까지 맡게 되었으니까요. 팔수도 없는 소들을 돌보는 이 ‘소치기’ 아저씨의 모습에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돕고 기부하고 견학 오곤 한 대요. 이제 그곳은 ‘희망의 목장’이라 불리게 되었고요. 희망이 쓸려 나간 땅에서 의미 없는 행동, 어리석고, 바보 같은 행동을 보며 많은 사람의 가슴이 함께 뜨거워진 거죠.

내가 그 ‘소치기’ 아저씨라면 아저씨처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아마도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소치기’ 아저씨 참 바보 같은 아저씨라고 생각돼요. 그래도 그 바보같음이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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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3-0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상식적인 행위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건필하십시오. ;^^

중동이 2016-03-08 14:4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가슴은 뜨거워지고 감동을 느끼게 하더라고요. 이미 의미 있는 행동이란 거겠죠. 언제나 건강하세요~^^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 하 - 조선의 왕 이야기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박문국 지음 / 소라주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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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조선의 왕 이야기 상』에 이어 하권이 출간되어 읽게 되었다. 역시 상권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역사를 알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인 총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주력하며, 조선왕조 역사를 들려준다. 마치 옛 이야기를 들려주듯 조선의 왕들을 연대기적인 순서로 조곤조곤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무엇보다 문장이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이기에 딱딱한 역사가 아닌, 들려지는 이야기로 역사를 쉽게 접하게 해주는 책이다.

 

하권의 시대적 범위는 두 차례의 왜란, 그 전란 이후 왕위에 오르게 되는 광해군부터 시작하여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왕들의 이야기이다(물론 이 말은 왕만을 이야기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왕이 중심된 역사라는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의미이겠다.).

 

조선은 과연 왕들의 나라일까? 아니면 신하의 나라일까? 누군가는 왕 역시 사대부를 대표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왕은 특별한 존재라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둘 다 맞을 수도 있겠고, 둘 다 틀릴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나라는 백성의 나라가 되어야 맞다. 하지만, 그건 당위성이고 실제 역사는 때론 왕의 나라였고, 또한 때론 당파의 나라, 때론 외척의 나라, 때론 신하의 나라이기도 했겠다.

 

때론 힘의 무게중심을 붙잡는 당사자들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조선의 역사 그 한 가운데에는 언제나 왕이 있었음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런 왕을 중심으로 한 힘의 역학관계를 잘 풀어 설명해준다(솔직히 이런 부분은 읽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그럼에도 책을 덮고 나면 그 모든 역학관계가 뒤죽박죽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는 나의 우월한 망각의 능력 때문이겠지만.^^). 때론 여론을 조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증거를 조작하기도 하며, 또 때론 막무가내로 상대를 겁박하기도 하면서 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건곤일척의 정치적 승부. 이런 과정의 스토리텔링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재미나기도 하다.

 

아무래도 다양한 왕들 가운데 광해군이나 북벌의 상징인 효종, 조선 후기의 성군인 정조, 그리고 비운의 왕 고종 등에 관심이 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보게 된 왕은 현종이었다. 왜냐하면 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힘의 역학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인데, 그런 측면에서 특별할 것이 하나도 없는 왕인 현종이야말로 이런 균형을 맞춰나가는 감각을 가진 감춰진 정치고수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송논란에 대해 접할 때마다 뭐 이런 한심한 놈들이 있나 싶었는데, 저자가 설명하는 예송논란 이면에 담겨진 의미를 들으며, 아하~ 한심한 이 힘겨루기 안에 이토록 깊은 의미가 담겨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솔직히 상권을 읽을 때는 그 평가나 접근에 대한 이견이 많은 역사적 부분들을 저자가 너무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품었었는데, 하권을 읽으면서는 오히려 그런 단정적인 접근이 역사를 이해함에 또 하나의 해석으로 확실하게 각인이 되는구나 싶어 좋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정치적 통찰력을 갖고 끊임없이 정치적 줄다리기를 해야 하며, 힘의 균형을 위해 몸부림친 자리에 앉아 있던 왕들에 대한 이야기. 분명 재미나고 흥미로운 역사 접근 서적임에 틀림없다. 특히, 쉽게 읽혀지며, 조선의 왕들을 연대기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으며, 또한 때론 색다른 시각의 역사 해석을 만날 수 있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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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만이라도 멋지게 사랑하라
용혜원 지음 / 나무생각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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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원 시인의 신작 시집 『단 한 번만이라도 멋지게 사랑하라』가 나왔다. 시인의 시를 음미하며, 십여 년 전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던 시인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된다. 꿈꾸지 못하고, 그저 제도권 안에서 끌려가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꿈꾸길 외치던 그 모습이 슬며시 떠오른다. 때론 열정적으로, 때론 위트 있게, 또 때론 우리의 감성을 울리던 그 모습. 시인은 다음과 같은 글로 시집을 시작한다.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시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슴에 심장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일까? 그건 심장이 살아 움직이는 삶일 게다. 심장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풍성한 감성으로 살아낸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고. 그래서일까? 시인의 시들은 다양한 감성이 담겨 있다. 사랑, 그리움, 기다림, 외로움, 슬픔, 아픔, 행복, 따스함, 꿈, 설렘, 힘겨움, 회한, 쓸쓸함, 실망, 절망, 분노 등 참 다양한 감성들을 시인은 그 가슴으로 끌어안는다.

 

시집의 제목이 참 예쁘다. 『단 한 번만이라도 멋지게 사랑하라』 왠지 제목만을 생각한다면, 사랑시들로 가득할 것 같다. 물론 사랑시도 담겨져 있다. 우리의 삶에 사랑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니 말이다. 하지만, 사랑뿐 아니라 시인이 품고 만나는 삶의 감정들, 인생의 씁쓸함, 힘겨움, 아픔과 눈물, 고독과 한숨도 담아낸다. 그럼에도 시인의 시가 좋은 느낌을 갖게 하는 이유는 결코 삶의 힘겨움에도 회의적이거나 염세적으로 노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힘겨움 가운데서도 다시 희망을 바라보고 다짐하는 노래들이 많다. 예를 든다면 이런 시들이 있다.

 

늘 전전 긍긍하며 실망 속에 머물기보다는 / 온갖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

초록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힘차게 살자 // 어둠에 빠져 길을 잃어버리지 말고 /

어두울수록 더 빛나는 길을 찾아 / 빛 가운데로 걸어가자

< 빛 가운데로 걸어가자 > 일부

 

강한 사람은 무수한 슬픔 속에서 / 자신의 상처를 회복하고 /

다른 사람의 상처를 감싸줄 수 있는 / 깊고 넓은 마음을 갖고 있다

< 상처가 있을 때 > 일부

 

삶의 힘겨움 어두움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엔 빛 가운데로 걸어감을 노래한다. 삶의 다양한 슬픔과 상처를 이야기하지만, 결국엔 회복을 넘어 타인을 감싸줄 수 있음을 노래한다. 그렇기에 시인의 시는 힘겨운 삶에 힘을 준다. 다시 일어나 힘차게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어쩌면 시집의 제목 『단 한 번만이라도 멋지게 사랑하라』 역시 그런 의미이겠다. 이렇게 희망으로 우리는 이끌어주기에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용혜원 시인의 신작 시집 속엔 역시 많은 사랑을 받을 시로 가득하다. 그 가운데 하나만 적어본다.

 

숲길을 걸으며 / 야생화에게 길을 물었더니 /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숲을 걷고 걸으며 / 나는 알았다 //

야생화들이 / 가는 길마다 피어나 / 길 안내를 해주었다 //

희망의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걸어간다

< 숲길을 걸으며 > 전문

 

어쩌면 오늘 우리의 삶은 여전히 힘겹고 암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의 햇살은 처음부터 여전히 우리를 향해 비추고 있음을 발견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젠 그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걸어가자. 시인이 꿈꾸는 희망을 향해, 그리고 오늘 우리의 꿈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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