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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갱 아저씨의 염소 ㅣ 파랑새 그림책 95
알퐁스 도데 글, 에릭 바튀 그림, 강희진 옮김 / 파랑새 / 2013년 2월
평점 :
많은 분들이 추천하는 도서이기에 읽어본 그림책입니다. 우리에겐 너무나도 유명한(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배운 <별>, <마지막 수업> 때문이겠죠. 정말 배웠던 건지 이젠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말이죠.^^) 알퐁스 도데의 글입니다. <풍차방앗간에서 온 편지>가 원작이라고 합니다.
이야기는 인클루지오 문학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명 샌드위치 구조라고도 하죠.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부터 이 책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시작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은 자유, 선택,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합니다. 맞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다 읽고 난 후, ‘뭘 말하려는 거지?’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샌드위치 구조에 있습니다.
앞뒤의 틀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은 아마도 조카처럼 여겨지는 어린이가 파리의 서정 시인인 피에르 그랭그와르 아저씨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한 마디로 꿈만 좇으며 가난하게 살지 말고, 유명한 신문사에서 제안한 기자가 되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젠 구멍 뚫린 셔츠, 해진 바지, 배고픔으로부터 해방되라는 거지요. 그러면서 아저씨에게 ‘스갱 아저씨의 염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겁니다. 이야기를 다 들려준 다음에는 다시 강조하죠. 스갱 아저씨의 염소는 결국 죽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저씨처럼 꿈만 좇으며 살다가는 결국 비참하게 죽게 될 거라는 논리입니다. 이게 처음과 끝의 내용입니다.
그럼, 스갱 아저씨의 염소 이야기는 뭘까요? 이게 바로 샌드위치 구조 안의 본 내용입니다. 스갱 아저씨는 염소를 기르는데, 염소가 자꾸 도망가는 겁니다. 그러다 일곱 번째로 기르게 된 아기염소가 ‘블랑께뜨’입니다.
블랑께뜨는 스갱 아저씨의 집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데 처음엔 만족합니다. 안전하게 생활하고 먹이도 풍부하니 좋은 거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싫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집을 나가 산으로 가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겁니다. 스갱 아저씨에게 산으로 보내 달라고 해보지만, 아저씨는 오히려 아기 염소 블랑께뜨를 가두고 맙니다. 산에 가면 그곳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특히, 늑대가 가장 위험한 동물이라며 말입니다.
하지만, 블랑께뜨는 결국 도망치고 맙니다. 그리곤 산으로 가서 자유로움을 누리죠. 블랑께뜨가 누리는 자유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유독 붉고 강렬한 색채를 많이 사용한 에릭 바튀의 그림 속에서도 이 부분은 붉은 색보다는 온통 초록색이 가득합니다. 물론, 이 초록색은 점차 다시 붉은 색으로 바뀌기 시작하지만 말입니다. 이야기 속 아기 염소 블랑께뜨의 자유와 행복도 끝나가거든요. 결국 늑대가 나타나 블랑께뜨를 잡아먹습니다.
이상이 가운데 부분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다시 아이는 꿈을 좇아 가난하게 살아가는 시인인 아저씨에게 말합니다. 기어코 염소는 늑대에게 잡아 먹혔다고 말입니다.
자, 그럼 책이 말하는 게 무엇일까요? 자유를 누리는 것, 또는 꿈을 좇아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걸까요? 대부분 이렇게 해석하는 눈치입니다. 저 역시 이렇게 해석하는 것에 더 구미가 당기고요.
그런데, 과연 그것이 진짜 옳은 선택일까요? 비록 늑대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지언정 자신의 꿈과 자유를 선택함이 고차원적인 선택이라는 걸까요? 그럼, 글을 감싸고 있는 껍질의 내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저 단순히 반어적 의미의 우화라 치부해 버리면 될까요?
저는 그렇게 볼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선택이 더 바람직한 선택이라는 것도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은 각자의 몫임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비록 안정적인 삶을 포기한다 할지라도 꿈을 좇아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옳은 길입니다. 반대로 안정적 삶을 살기 위해, 또는 부양해야 할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면 그것 역시 그 사람의 선택이고 존중해줘야 하는 겁니다. 어떤 선택이든 자신의 몫입니다. 물론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 역시 자신의 것이고요.
스갱 아저씨의 염소 이야기만으로 비록 늑대의 위험이 있다 할지라도 자유를 선택함이 옳다. 이 가치가 더 고차원적인 가치라고 주장한다면, 오늘날 가정을 위해, 또는 이런저런 현실적 상황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남녀 가장들은 모두 어리석다는 말이 됩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마찬가지로, 꿈을 포기하지 않고 가난을 식량삼아 꿈을 좇아 살아가는 인생 역시 멋지다거나, 반대로 어리석은 것 역시 아니고 말입니다. 그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라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느 선택이든 존중되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