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 저택의 피에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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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십자 저택의 피에로2014년에 도서출판 재인에서 번역 출간된 책이지만, 일본에서 출간된 건 1989년이다. 그러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작품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인지 작가의 초창기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들이 제법 눈에 띈다.

 

우선,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인 십자 저택에 대한 도면들이 작품 속에 실려 있다는 점 역시 초창기 작품의 특징(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초창기의 여러 작품들에 도면이 실려 있다.) 가운데 하나다.

 

아울러 사회의 묵직한 주제를 고발하거나 꼬집는 사회파 미스터리가 아닌, 범인을 추격하며 범인이 누구인지, , 어떤 방법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이를 감추기 위한 트릭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밝혀내는 본격추리소설이라는 점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너무나도 반가운 내용이다.

 

여기에 이 소설 십자 저택의 피에로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소설 전반에 공포분위기가 잔잔하되 은근한 으스스함을 동반하여 깔려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으스스함의 중심에 피에로라는 인형이 있다. 소설 속 피에로 인형은 특별한 힘이 있다. 피에로는 어떤 집에 배어 있는 다양한 냄새로 그 집의 과거를 읽어 낼 수 있다.” 특히, 집에 실려 있는 슬픔의 기운들을 피에로는 빨아들이고 자신의 마음에 새겨 놓는다. 이러한 슬픔의 기운이 축적되어서 일까? 피에로를 소유한 자들은 큰 불행의 사건들에 휩싸이게 된다. 이는 인형을 만든 사람의 아들인 고조에 의해 밝혀진 내용일뿐더러, 실제로 피에로가 밖으로 드러난 날 끔찍한 사건들이 십자 저택에서 벌어지곤 한다. 십자 저택을 지은 다케미야 산업 창업자인 고이치로의 큰 딸이자, 다케야마 산업의 사장이었던 요리코가 자살하던 그 순간에도 새롭게 사온 이 피에로가 복도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 뒤 기분 나쁘다고 감춰져 있던 피에로가 다시 밖으로 끄집어내지게 된느데, 마침 그 날 요리코의 남편이자, 다케야마 산업의 신임 사장인 무네히코 역시 살해되고 만다. 자신의 정부이자 비서인 미타 리에코와 함께.

 

이처럼 피에로에겐 뭔가 특별하고 음산한 기운이 서려 있다. 게다가 소설은 피에로를 의인화함으로 피에로의 시선으로 십자 저택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이런 부분들을 통해, 피에로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져 음산함을 느끼게 한다. 어쩐지 등 뒤가 시원해진다(요즘과 같은 무더위에 읽기에 딱 인 책이다.).

 

이처럼 피에로의 시선으로 묘사되는 장면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건을 이해하게 하는 장치이다. 물론, 때로는 이 시선이 도리어 독자들로 하여금 사건을 오독하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피에로는 제목에도 등장할 만큼 소설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십자 저택에서 벌어지는 연쇄사건들. 과연 사건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이 진실을 찾아가는 작업이 재미나다. 이 작업을 주도해나가는 등장인물은 소설의 주인공인 미즈호(다케미야 가문 둘째 딸인 다케미야 고토에의 딸로 1년 반 만에 십자 저택을 찾았다가 사건을 만나게 되고, 그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추격하기에 이른다.), 다케미야 가에 신세를 지고 있는 아오에 진이치(뛰어난 머리를 가진 대학원생으로 다케미야 가에서 숙식하고 있다. 다케미야 요리코의 무남독녀이자 미즈호의 사촌 동생인 장애를 갖고 있는 가오리를 사랑한다.), 그리고 인형사 고조 신노스케이다(자신의 아버지가 만든 피에로가 불행을 가져온다고 믿기에 피에로를 수거하기 위해 십자 저택을 찾는다.). 이들 세 사람이 소설 속에서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탐정 역할을 맡은 자들이다. 이들을 통해 밝혀지게 될 사건 이면의 진실은 무엇일까?

 

본격추리소설 인만큼, 본격추리를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열광하기에 충분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요즘 작품들처럼 감동소설이나, 사회파 소설 역시 좋지만, 초기 작품들인 본격추리소설을 빼놓을 순 없다. 비록 작가는 스스로 이 세계에서 멀어졌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작가의 본격추리소설들은 매력적이다. 작가가 다시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어떨까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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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의 검 와타세 경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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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2018.7.)까지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은 모두 읽었다(현재 열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그 열 번째 책, 테미스의 검은 특별히 좋았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와타세 반장이다. 드디어 와타세 반장이 전면이 나서게 되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몇몇 작품에서 살짝 살짝 등장하던 와타세 반장(주로 고테가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에서 살짝 얼굴을 내밀거나 이름이 등장하곤 했다.)이 드디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이렇게 서로 다른 작품 속 등장인물이 서로 중첩되는 것이 나카야마 시치리 작품의 특징이다. 단 한권도 전혀 새로운 인물만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 지금까지 읽어 본 10권의 책에서 말이다.).

 

소설은 이제 갓 와타세가 형사로 시작하던 시기의 한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러브 모텔 밀집지역에 위치한 어느 부동산 사무실, 그곳 사장 부부가 피살된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지게 되지만, 이런 가운데 아타세와 그의 사수이자 파트너 선배 형사인 나루미는 한 사람의 용의자를 찾게 되고, 결국 결정적 증거들을 가지고 검거하게 된다. 그리곤 심문 과정을 통해, 자백을 받기에 이른다.

 

범인은 재판을 통해 사형선고를 받게 되고, 형무소에서 그만 자살하고 만다. 이렇게 사건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5년 후, 비슷한 사건을 만나게 된다. 와타세는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되고, 결국 오리무중으로 빠져들 뻔한 사건의 범인을 와타세가 잡게 된다. 그리고 이 범인을 통해, 5년 전 사건 역시 이 자의 범행임이 밝혀진다. , 5년 전 사건은 원죄사건이었던 것.

 

여기서 잠깐 원죄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우리는 잘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지만, 일본에선 억울하게 덮어 쓴 죄를 원죄(冤罪)’라고 부른다고 한다(冤罪라고 한자로 쓰고 보니 특별히 일본만의 용어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말에도 단어가 있으니 일본만의 개념은 아니다. 우리에게 조금 낯설 뿐.).

 

이렇게 벌어진 원죄. 그로 인해 희생된 억울한 희생자. 그 원죄를 만든 공권력. 과연 이런 진실을 알게 된 와타세는 어떻게 해야 하나? 와타세는 결국 진실을 은폐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잘못을 솔직히 드러내기로 한다. 이렇게 수면 위로 드러난 원죄 사건. 매스컴은 물 만난 듯 신나게 비난의 날을 세우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된다. 진실을 밝혔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와타세는 조직 내에서도 영원히 왕따 아닌 왕따가 된다. 이렇게 소설은 와타세의 풋내기 시절부터 시작하여 원죄를 드러내며 조직과 싸운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주인공 와타세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다시 23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와타세는 검거율 최고의 베테랑 형사, 와타세 경부가 된다. 그리고 그는 또 하나의 사건 앞에 선다. 바로 원죄 사건의 실제 범인 사코미즈 지로가 모범수로 가석방되고, 가석방 된 그 날 살해당한 것.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이번 소설, 테미스의 검원죄사건을 통해, 공권력의 부당함을 고발한다. 강압수사, 강압심문, 이를 통해 조작된 범인. 공권력 앞에 아무리 소릴 질러보지만 속절없이 희생되는 시민. 진실보다는 자신들의 보신을 우선하려는 조직의 생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조직 앞에 선 한 사람의 처절한 투쟁. 이런 모습들을 통해 공권력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거듭 묻고 있다. “권력을 쥔 사람이 진지하지 않으면 정의는 언제나 파탄 나기 마련”(126)이라는 사실. “정의가 사라진 권력은 폭력에 불과”(184)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를 통해, 세상의 권력이 정의에서 벗어나지 않길 소설은 촉구하고 있다.

 

소설은 이처럼 묵직한 사회 고발적 내용을 담고 있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다. 주제가 상당히 묵직하며, 이런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사회파 소설이다. 그런 한편 소설은 미스터리의 끈을 전혀 놓지 않고 있다. 와타세 경부의 성장소설처럼 느껴질 만큼 장장 28년의 세월을 지나며 소설은 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여러 사건들이지만, 이 모든 사건은 집요하게도 한 가지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런 각 사건들을 추격하는 미스터리적 요소는 정통추리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촘촘하게 사건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반전의 제왕이라 불리는 작가답게 마지막 반전 역시 멋지다. 이 반전을 통해, 감춰져 있던 진짜 못된 악질 범인을 밝힌다. 책 띠지에 적힌 저 새끼가 진범이야.”라는 문구의 그 새끼’. 그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혀낼 때는 씁쓸하면서도 통쾌한 쾌감을 누리게도 된다. 이 진범에 대한 단서 역시 알고 보면 소설 처음 부분부터 감춰져 있다.

 

이런 미스터리적 요소 역시 뛰어나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들을 재미나게 읽고 있으며,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10편의 소설을 모두 읽었는데, 이번 작품 테미스의 검이야말로 최애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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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형사 부스지마 스토리콜렉터 6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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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시치리가 새로운 느낌의 작품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작가 형사 부스지마라는 책이다. 이 책은 5편의 단편소설이 연작의 형태로 실려 있다. 5편의 단편은 모두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건이 벌어진다. 그 사건들은 출판계와 이런저런 연관이 있다. 특히, 작가들과. 그래서 주인공 형사는 사건 조사를 위해 특별한 형사에게 도움을 받는다. 바로 부스지마라는 이름의 형사다. 그는 형사이자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다. 조기 은퇴하였던 형사이지만, 다시 복직하여 현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그의 본업은 작가다. 작가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과 지식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갈뿐더러,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작가지망생 등을 훈계하기도 한다(사실, 이런 내용, 작가지망생이나 초보작가, 정체기를 겪는 작가 등을 향한 준엄한 질책과 훈계 등이 이 책의 주된 내용처럼 느껴진다.).

 

독특한 캐릭터의 부스지마. 그의 이름을 한자로 쓰면 독도다. 우리의 소중한 섬 독도(獨島)가 아닌 독의 섬이란 의미의 독도(毒島). 얼마나 독한 캐릭터이기에 독도(毒島)일까? 그의 독한 성격은 작가로서 작가지망생이나 신인작가들을 향한 독설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책을 소개하는 문구 가운데 작가 지망생이 읽어서는 결코 안 될 책!”이란 선전문구가 눈에 띈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럴만하다 싶다. 출판계의 어두운 부분, 작가계의 암울한 부분들이 여실히 드러날뿐더러, 작가지망생들의 부끄러운 부분들을 한 점 망설임 없이 꾸짖는 내용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작가에 대한 환상과 망상을 단번에 깨뜨려버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작가 지망생들의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통렬하게 꾸짖는다. 그래서 작가가 되고 싶어, 그 언저리에 머물러 있지만, 여전히 마땅한 결과물은 없는 작가지망생들을 더욱 자괴감에 빠뜨리고, 꾸짖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읽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소설 속 캐릭터 부스지마의 계략이라 여길 수도 있다. 자신의 잠정적 경쟁자를 사전에 떨구어내기 위한(소설 속 부스지마는 이런 의미의 대사를 반복적으로 읊조린다.). 소설 속 부스지마의 추상같은 꾸짖음을 달게 받아들이고, 더욱 작가의 길을 향해 정진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이 책이 몸에 좋은 쓴 약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작가 지망생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다섯 편의 단편, 다섯 개의 사건들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처음엔 장차 희생자가 될 등장인물의 삶의 자리가 나온다. 물론 출판계의 인물로 그의 행동은 누군가의 미움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인격이다. 이런 삶의 자리가 나온 후, 시신이 발견되고. 이제 형사들이 사건에 접근한다. 그리곤 용의자들이 출판계, 작가계 임을 알고 부스지마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럼, 부스지마가 살인 사건의 범인 찾기에 도움을 준다. 그리곤 범인이 붙잡힌다. 이런 구도로 되어 있다.

 

특히, 각 사건들의 범인은 드러난 몇 명의 용의자 범위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반전의 제왕이라 불리는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 치고는 반전의 재미는 없다. 게다가 추리의 과정 역시 다소 느슨한 느낌이다.

 

그럼, 이 책의 재미는 뭘까? 바로 독도(毒島), 부스지마를 통해 작가가 전해주는 독설, 내지 조언, 바로 창작의 길을 걷고자 하는 자들을 향한 쓴 약에 있다. 바로 작가지망생들, 그리고 작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들을 향한. 그러니, 작가지망생들은 꼭 읽어야 할 소설이다. 자신의 민낯을 발견하고 화끈거리는 자기반성과 함께 다시 한 번 정진할 것을 다짐하게 할 테니. 그러니 느슨해 질 때마다 작품 속 인물로 동일시하며 부스지마의 독설을 들어보자. 그 독설을 견뎌내는 자라면 작가의 길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 나카야마 시치리 소설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작품 속 등장인물 가운데, 다른 작품과의 중첩되는 인물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그런 인물이 없다. 정말 없는 걸까? 누군가 매우 익숙한 사람이 있는 듯 싶은데...

 

궁리해보고 궁리해보는데, 역시, 있다. 이번 작품 속 형사 쪽 주인공인 아스카라는 여형사. 그 형사의 사수이자 파트너인 이누카이 형사다. 이누카이는 바로 살인마 잭의 고백(서울: 웅진씽크빅, 2014)의 주인공 형사다. 또한 어쩐지 아스카 형사 역시 어디선가 잠깐 나온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소설은 어쩌면 독자들의 평가가 다소 갈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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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리 씨, 어디 가세요?
곤도 나오코 지음, 에가시라 미치코 그림, 김버들 옮김 / 한림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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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리 씨, 어디 가세요?란 제목의 동화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아카리 씨)로 인해 가족이 겪게 되는 일들, 그리고 할머니를 향한 가족의 사랑 등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다케시 네 집에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동생의 빨간 구두가 냉장고 속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다케시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먹으라고 엄마가 싸놓은 도시락을 누군가 먹어 치우기도 합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니 이게 무슨 일일까 싶습니다. 그러다 가족은 집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이 할머니인 아카리 씨와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평소엔 파킨슨병으로 인해 움직이는데 어려움을 겪던 할머니인데, 치매를 앓게 되면서 이상한 힘을 발휘하여 평소에 할 수 없던 일들을 벌여놓곤 했던 겁니다. 이제 집에는 두 명의 아카리씨가 존재합니다. ‘평소의 아카리 씨’(파킨슨병으로 힘없는 할머니, 잘 움직일 수는 없지만 정신은 말짱한 할머니.)이상한 아카리 씨’(치매로 정신은 이상해지지만 묘한 힘을 발휘하여 밖으로 나가기도 하는 할머니.)입니다.

 

이렇게 문득 문득 이상한 아카리 씨가 튀어나오기 때문에 다케시 네 가족은 힘겨움을 겪게 됩니다. 과연 다케시 네 할머니 아카리 씨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요즘 치매에 대한 동화들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그만큼 치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겠죠. 가족 가운데 치매 환자가 생기게 되면, 다른 가족은 힘들어지게 마련입니다. 동화 아카리씨, 어디 가세요?는 이처럼 할머니의 치매로 인해 가족들이 겪게 되는 힘겨움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런 힘겨움을 무작정 견뎌내고 감내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도 동화의 장점입니다. 무작정 가족이 희생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것만이 당연한 것처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왠지 그 가정의 힘겨움을 바라보지 못하는 무신경함과 책임지지 못할 당위성만을 주장하는 무책임함으로 느껴져 불편할 때가 종종 있거든요. 이 동화는 그런 점에서 좋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버리듯 요양원으로 내모는 것 역시 아닙니다.

 

종종 이상한 아카리 씨가 튀어나와 가족들을 당황스럽게 만들지만, 가족들은 할머니는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라 아픈 것뿐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픈 이에겐 의료진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함을 시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가족은 돌봄 서비스 시스템을 이용하게 되죠. 처음엔 할머니의 증세에 따라 단기 체류하는 방식으로 가족과 기관을 오가며 할머니에 대한 기관의 치료와 가족의 돌봄을 병행하게 됩니다.

 

이런 지혜로운 선택이 돋보이는 동화입니다. 도덕적 강박을 가진 동화보다는 이처럼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선택을 하며, 그 가운데서도 가족 간의 사랑을 잃지 않고, 도리어 사랑이 깊어져가는 동화인 아카리 씨, 어디 가세요?, 치매를 주제로 한 동화 가운데 추천할만한 좋은 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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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씻는 냇물 북멘토 가치동화 30
홍종의 지음, 박세영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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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어른들이 다툴 때 곧잘 사용하던 욕설 가운데 화냥년이란 욕이 있었습니다. ‘화냥년이란 욕설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에서 기녀를 가리키는 말 화낭(花娘)’이 있는데, 정유재란이나 병자호란 때 적들에게 잡혀갔다 돌아온 여인들을 가리켜 화낭과 비슷한 발음의 환향녀(還鄕女)로 빗대 쓴 듯하다. 이 여인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그들이 오랑캐들의 노리개 노릇을 하다 왔다고 하여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을 뿐더러 결혼한 여성의 경우 이혼을 당하기도 했다. 인조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환향녀란 이유로 이혼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출처, 이재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1000가지에서.

 

나라가 백성을 지켜주지 못해 겪었던 끔찍한 일들. 그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유하기보다는 내치고 외면하고 돌아온 가족을 오히려 부끄러워했던 남성들(남성들만은 아닐 겁니다. 가문에 속한 이들이 모두 화냥년이라며 부끄러워했겠죠.)의 모습이 같은 남성으로서 부끄럽습니다.

 

동화 몸을 씻는 냇물은 바로 이런 환향녀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조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혼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만이 아니라, 이들을 포용하고 용납하기 위한 또 하나의 장치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내를 지정해 냇물로 몸을 씻은 환향녀에 대해서는 과거를 묻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정된 내가 바로 홍제천입니다. 동화 몸을 씻는 냇물은 바로 이 홍제천을 가리킵니다.

 

그럼, 잠깐 동화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주인공 우마의 아버지는 전쟁에 나가 오랑캐와 싸우다 한 줌 뼛가루가 되어 돌아옵니다. 이렇게 해서 우마는 병약한 엄마와 단둘이 살아갑니다. 그 생활이 얼마나 힘겨울지 상상이 갑니다. 우마란 이름의 뜻 역시 아들이 소와 말을 갖길 바라는 부모님의 소소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아들을 위한 부모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 뭉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그 삶이 힘겹고 팍팍했으면, 소나 말을 갖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아야 했던가 싶어 먹먹하기도 했답니다.

 

이런 우마의 힘겨운 삶은 우마의 엄마가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서도 표현됩니다. 언제나 정직한 삶을 살길 말하던 엄마였는데, 언젠가부터 양심이나 인정보다는 쌀 한줌에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도덕적 양심이나 정()조차 가난 앞에 쉬이 힘을 잃게 됨을 알려줄뿐더러, 당시 민초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환향녀 당사자들의 절망과 애환에 눈이 갑니다. 아무도 반기는 이 없지만 그럼에도 고향으로 향하는 이들, 넘어지면 기어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이들의 마음이 먹먹함을 넘어서게 됩니다. 가족조차 수치로 여기며 외면하는 현실 속에서도 같은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여인들을 보듬어 안고 새로운 삶을 향해 당차게 일어서는 이대감 댁 딸 화홍의 모습은 연약함 껍질 안에 감춰진 전사의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이런 여인들에게 홍제천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임금님의 명이 내려졌으니, 이 냇물에 몸을 씻으면 악몽같은 순간들이 다 지워질 것이라는 희망의 냇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현실 속에선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시간들, 외면하는 가족의 몰인정함에 몸을 떨어야만 했던 절망의 냇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홍제천에서 몸을 씻고 또 씻는 것밖에 없던 수많은 여인들. 동화 속에서 그 여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부여하는 건 같은 상처를 안고 있는 화홍이었습니다. 결국엔 상처 입은 영혼들의 연대가 새 희망을 열어간다는 의미 아닐까요?

 

어쩌면 오늘도 자신만의 홍제천에서 몸을 씻고 또 씻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한 번 희망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야말로 밝은 미래를 열어갈 자격이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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