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테미스의 검 ㅣ 와타세 경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6월
평점 :
지금(2018.7.)까지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은 모두 읽었다(현재 열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그 열 번째 책, 『테미스의 검』은 특별히 좋았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와타세 반장이다. 드디어 와타세 반장이 전면이 나서게 되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몇몇 작품에서 살짝 살짝 등장하던 와타세 반장(주로 고테가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에서 살짝 얼굴을 내밀거나 이름이 등장하곤 했다.)이 드디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이렇게 서로 다른 작품 속 등장인물이 서로 중첩되는 것이 나카야마 시치리 작품의 특징이다. 단 한권도 전혀 새로운 인물만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 지금까지 읽어 본 10권의 책에서 말이다.).
소설은 이제 갓 와타세가 형사로 시작하던 시기의 한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러브 모텔 밀집지역에 위치한 어느 부동산 사무실, 그곳 사장 부부가 피살된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건은 오리무중으로 빠지게 되지만, 이런 가운데 아타세와 그의 사수이자 파트너 선배 형사인 나루미는 한 사람의 용의자를 찾게 되고, 결국 결정적 증거들을 가지고 검거하게 된다. 그리곤 심문 과정을 통해, 자백을 받기에 이른다.
범인은 재판을 통해 사형선고를 받게 되고, 형무소에서 그만 자살하고 만다. 이렇게 사건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5년 후, 비슷한 사건을 만나게 된다. 와타세는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되고, 결국 오리무중으로 빠져들 뻔한 사건의 범인을 와타세가 잡게 된다. 그리고 이 범인을 통해, 5년 전 사건 역시 이 자의 범행임이 밝혀진다. 즉, 5년 전 사건은 원죄사건이었던 것.
여기서 잠깐 ‘원죄’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우리는 잘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지만, 일본에선 억울하게 덮어 쓴 죄를 ‘원죄(冤罪)’라고 부른다고 한다(冤罪라고 한자로 쓰고 보니 특별히 일본만의 용어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말에도 단어가 있으니 일본만의 개념은 아니다. 우리에게 조금 낯설 뿐.).
이렇게 벌어진 원죄. 그로 인해 희생된 억울한 희생자. 그 원죄를 만든 공권력. 과연 이런 진실을 알게 된 와타세는 어떻게 해야 하나? 와타세는 결국 진실을 은폐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잘못을 솔직히 드러내기로 한다. 이렇게 수면 위로 드러난 원죄 사건. 매스컴은 물 만난 듯 신나게 비난의 날을 세우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된다. 진실을 밝혔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와타세는 조직 내에서도 영원히 왕따 아닌 왕따가 된다. 이렇게 소설은 와타세의 풋내기 시절부터 시작하여 원죄를 드러내며 조직과 싸운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주인공 와타세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다시 23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와타세는 검거율 최고의 베테랑 형사, 와타세 경부가 된다. 그리고 그는 또 하나의 사건 앞에 선다. 바로 원죄 사건의 실제 범인 사코미즈 지로가 모범수로 가석방되고, 가석방 된 그 날 살해당한 것.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이번 소설, 『테미스의 검』은 ‘원죄’사건을 통해, 공권력의 부당함을 고발한다. 강압수사, 강압심문, 이를 통해 조작된 범인. 공권력 앞에 아무리 소릴 질러보지만 속절없이 희생되는 시민. 진실보다는 자신들의 보신을 우선하려는 조직의 생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조직 앞에 선 한 사람의 처절한 투쟁. 이런 모습들을 통해 공권력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거듭 묻고 있다. “권력을 쥔 사람이 진지하지 않으면 정의는 언제나 파탄 나기 마련”(126쪽)이라는 사실. “정의가 사라진 권력은 폭력에 불과”(184쪽)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를 통해, 세상의 권력이 정의에서 벗어나지 않길 소설은 촉구하고 있다.
소설은 이처럼 묵직한 사회 고발적 내용을 담고 있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다. 주제가 상당히 묵직하며, 이런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사회파 소설’이다. 그런 한편 소설은 미스터리의 끈을 전혀 놓지 않고 있다. 와타세 경부의 성장소설처럼 느껴질 만큼 장장 28년의 세월을 지나며 소설은 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여러 사건들이지만, 이 모든 사건은 집요하게도 한 가지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런 각 사건들을 추격하는 미스터리적 요소는 ‘정통추리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촘촘하게 사건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반전의 제왕’이라 불리는 작가답게 마지막 반전 역시 멋지다. 이 반전을 통해, 감춰져 있던 진짜 못된 악질 범인을 밝힌다. 책 띠지에 적힌 “저 새끼가 진범이야.”라는 문구의 그 ‘새끼’. 그 진범이 누구인지를 밝혀낼 때는 씁쓸하면서도 통쾌한 쾌감을 누리게도 된다. 이 진범에 대한 단서 역시 알고 보면 소설 처음 부분부터 감춰져 있다.
이런 미스터리적 요소 역시 뛰어나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들을 재미나게 읽고 있으며,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10편의 소설을 모두 읽었는데, 이번 작품 『테미스의 검』이야말로 최애작품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