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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 저택의 피에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8월
평점 :
이 책, 『십자 저택의 피에로』는 2014년에 도서출판 재인에서 번역 출간된 책이지만, 일본에서 출간된 건 1989년이다. 그러니,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작품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인지 작가의 초창기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들이 제법 눈에 띈다.
우선,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인 ‘십자 저택’에 대한 도면들이 작품 속에 실려 있다는 점 역시 초창기 작품의 특징(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초창기의 여러 작품들에 도면이 실려 있다.) 가운데 하나다.
아울러 사회의 묵직한 주제를 고발하거나 꼬집는 사회파 미스터리가 아닌, 범인을 추격하며 범인이 누구인지, 왜, 어떤 방법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이를 감추기 위한 트릭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밝혀내는 본격추리소설이라는 점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창기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너무나도 반가운 내용이다.
여기에 이 소설 『십자 저택의 피에로』만의 또 하나의 특징은 소설 전반에 공포분위기가 잔잔하되 은근한 으스스함을 동반하여 깔려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으스스함의 중심에 피에로라는 인형이 있다. 소설 속 피에로 인형은 특별한 힘이 있다. 피에로는 “어떤 집에 배어 있는 다양한 냄새로 그 집의 과거를 읽어 낼 수 있다.” 특히, 집에 실려 있는 슬픔의 기운들을 피에로는 빨아들이고 자신의 마음에 새겨 놓는다. 이러한 슬픔의 기운이 축적되어서 일까? 피에로를 소유한 자들은 큰 불행의 사건들에 휩싸이게 된다. 이는 인형을 만든 사람의 아들인 고조에 의해 밝혀진 내용일뿐더러, 실제로 피에로가 밖으로 드러난 날 끔찍한 사건들이 십자 저택에서 벌어지곤 한다. 십자 저택을 지은 다케미야 산업 창업자인 고이치로의 큰 딸이자, 다케야마 산업의 사장이었던 요리코가 자살하던 그 순간에도 새롭게 사온 이 피에로가 복도에 진열되어 있었다. 그 뒤 기분 나쁘다고 감춰져 있던 피에로가 다시 밖으로 끄집어내지게 된느데, 마침 그 날 요리코의 남편이자, 다케야마 산업의 신임 사장인 무네히코 역시 살해되고 만다. 자신의 정부이자 비서인 미타 리에코와 함께.
이처럼 피에로에겐 뭔가 특별하고 음산한 기운이 서려 있다. 게다가 소설은 피에로를 의인화함으로 피에로의 시선으로 십자 저택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이런 부분들을 통해, 피에로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져 음산함을 느끼게 한다. 어쩐지 등 뒤가 시원해진다(요즘과 같은 무더위에 읽기에 딱 인 책이다.).
이처럼 피에로의 시선으로 묘사되는 장면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건을 이해하게 하는 장치이다. 물론, 때로는 이 시선이 도리어 독자들로 하여금 사건을 오독하도록 의도적으로 유도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피에로는 제목에도 등장할 만큼 소설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십자 저택에서 벌어지는 연쇄사건들. 과연 사건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이 진실을 찾아가는 작업이 재미나다. 이 작업을 주도해나가는 등장인물은 소설의 주인공인 미즈호(다케미야 가문 둘째 딸인 다케미야 고토에의 딸로 1년 반 만에 십자 저택을 찾았다가 사건을 만나게 되고, 그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추격하기에 이른다.), 다케미야 가에 신세를 지고 있는 아오에 진이치(뛰어난 머리를 가진 대학원생으로 다케미야 가에서 숙식하고 있다. 다케미야 요리코의 무남독녀이자 미즈호의 사촌 동생인 장애를 갖고 있는 가오리를 사랑한다.), 그리고 인형사 고조 신노스케이다(자신의 아버지가 만든 피에로가 불행을 가져온다고 믿기에 피에로를 수거하기 위해 십자 저택을 찾는다.). 이들 세 사람이 소설 속에서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탐정 역할을 맡은 자들이다. 이들을 통해 밝혀지게 될 사건 이면의 진실은 무엇일까?
본격추리소설 인만큼, 본격추리를 사랑하는 독자들이라면 열광하기에 충분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요즘 작품들처럼 감동소설이나, 사회파 소설 역시 좋지만, 초기 작품들인 본격추리소설을 빼놓을 순 없다. 비록 작가는 스스로 이 세계에서 멀어졌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작가의 본격추리소설들은 매력적이다. 작가가 다시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어떨까 싶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