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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락일락 라일락 ㅣ 푸른 동시놀이터 7
이정환 지음, 양상용 그림 / 푸른책들 / 2018년 8월
평점 :
동시나 동시조는 마음을 맑게 한다. 그래서 어린이 독자 뿐 아니라 어른 독자 역시 가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어른 독자들이 어린이 독자보다 더 가까이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른들이 어린이보다 맑음을 더 부족할 테니 말이다. 아무튼, 세상에서 탁해진 마음을 맑게 세탁하는 데 동시나 동시조만큼 좋은 것도 드물다. 그래서 난 동시나 동시조를 가까이 하곤 한다. 요즘 동시조집을 몇 권 연달아 접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일락일락 라일락』이란 재미난 제목의 동시조집이 있다.
책 제목에서부터 진한 라일락 향기가 흘러나올 것 같은 느낌의 시집. 이번 시집에선 어떤 맑음이 감춰져 있을지, 또 얼마나 많은 맑음을 공급받을지, 기대감을 품고 책장을 펼쳐본다.
책에 수록된 동시조들 속엔 역시 푸른 기운이 가득하다. 다소 예스러운 느낌과 가르치는 듯한 느낌을 받긴 했다(이는 시인의 경력을 알게 된 후 그렇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역시 선생님으로 은퇴하셨다니 말이다. 어쩐지 가르치는 느낌의 시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그럴지라도, 시집 전반에 푸른 기운이 가득 넘실거린다. 시인은 나무를 참 많이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시집 속엔 자연에 대한 노래가 가득한데, 그 가운데 나무에 대한 동시조가 단연 눈에 많이 띤다. 그러니 푸른 기운 가득 담길 수밖에.
어린 시절, 사촌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연신 지절댔던 이야기가 있다. 뽕나무가 방귀를 “뽕~” 하고 뀌자, 옆에 있던 대나무가 “대끼놈!” 야단을 쳤대. 그러자, 곁에 있던 참나무가 점잖게 “참아라!” 말하자, 지나가던 지렁이가, “지야하네.”말했대(원래는 지랄하네. 이지만, 당시 내 앞니가 빠져 있어 발음이 새어, ‘지야하네’가 되었는데, 이런 발음 때문에 할머니도, 이모도, 엄마도 마구 웃으셨던 기억, 그래서 무한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식의 이야기.
역시 뽕나무는 방귀를 떠올리게 마련인가 보다. 그런데, 시인의 마음은 다르다. “지야하네.”란 천박함이 아닌, 뽕잎을 갉아먹는 누에를 향한 따스한 시선, 배려가 느껴진다.
뽕나무 / 앞에 서서 / 방귀 뀌지 / 말아요. // 뽕뽕뽕 / 뽕나무 잎 / 누에들의 / 밥이니까.
<뽕나무> 일부
역시 시인은 따스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나 보다. <물과 얼음>이란 동시조에서도 이러한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먼저 / 얼지 않으려고 / 한참 / 몸싸움하다 // 힘이 / 조금 모자란 물 / 얼음이 되었대요. // 어쩌나 / 힘 센 물은 그만 / 얼음 밑에 / 갇혔대요.
<물과 얼음> 전문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는 약자. 그리고 경쟁에서 이긴 강자. 하지만, 결국 강자가 약자에게 갇혀 버리는 아이러니. 그로 인해 느끼게 되는 통쾌함이 있다. 이 역전, 이 반전이 얼마나 재미난 지 한참을 웃었다. 이런 통쾌함은 역시 약자를 향한 따스한 시선에서 나온 게 아닐까? 어쩜, 힘 있다고 으스대지 말라 일침을 놓는 것도 같고. 또 한편으론 힘없다 기죽지 말라 격려하는 것도 같다. 이런 따스한 시선을 갖게 해주는 동시조를 만나는 시간이 행복하다.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정서 역시 부러웠다. 우린 특별한 이유 없이도 바삐 걸어야만 할 것 같은 나날을 살아간다. 그런 우리로 하여금 해가 질 때까지 줄장미를 감상한 적 언제였던지 반성케 하는 동시조가 있었다.
줄지어 / 피었어요/ / 길섶 따라 / 줄장미 // 꽃으로 / 만든 줄 / 끝없이 / 이어져서 // 그 길을 / 따라가다가 / 해가 꼴딱 / 졌어요.
<줄장미> 전문
다음번 줄장미가 피는 계절이 오면, 작심하고 해가 꼴딱 질 때까지 줄장미의 아름다움을 누려봐야겠다. 그런데, 꼭 줄장미 피는 계절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머릿속이 노랗게 될 지경으로 감상할 계절이 곧 올 테니 말이다.
노란 / 눈 위에 / 노란 눈 / 내리쌓여 // 모든 것이 노랗게만 보이는 오솔 길을 // 머릿속 / 노래지도록 / 걸어가요, 가을 길
<은행나무 길> 전문
동시조집 『일락일락 라일락』을 읽으며, 자연을 오롯이 느낄 감성이 나에게 가득하길 소망해 본다. 동시조가 주는 맑음이 내 마음을 조금은 깨끗하게 씻어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