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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반호 ㅣ 현대지성 클래식 12
월터 스콧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8월
평점 :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 12번째 책인 『아이반호』를 읽게 되었다. 고전소설 『아이반호』를 완역번역본으로 읽게 된다는 흥분과 기대로 책장을 펼쳐든다.
어느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
고전은 누구나 읽어야 할 권위를 지닌 책이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 어떤 외국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고전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 다시 읽고’ 있는 책이라고. 파우스트를 지금 읽는다고 하면 교양을 의심받을 수 있기에 ‘다시’ 읽는다고 퉁친다. 사랑스런 위선이다. 모든 책은, 영화는, 그림은, 심지어 삶조차 ‘다시 읽혀야’ 할 무엇이다. 처음 읽으면서 다시 읽는다고 하는 것은 유치한 앞가림이지만, 다시 읽기는 언제나 처음 읽기다. 진정한 반복은 없다. 반복은 다시 겪는 처음일 뿐이다. 들었어도, 읽었어도 그 속에서는 다른 울림이 튀어나오지 않던가. 낯익지만 낯선 이 순간.
- 박세현, 『시인의 잡담』 중에서
“고전은 누구나 읽어야 할 권위를 지닌 책이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는 글귀가 오늘 우리가 고전을 대하는 태도를 대변한다.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툼한 책. 게다가 요즘 출간되는 소설치곤 글자 크기도 상대적으로 작은 느낌이다. 여느 소설들의 경우, 한 페이지에 21-22줄 정도가 요즘은 읽기 편한 편집인 듯 싶다. 그에 비해 이 책은 27줄이나 된다. 그러니 시작부터 주눅이 들 법하다.
그럼에도 여태 짧게 각색된 내용으로만 접했던 『아이반호』를 완역 전부를 읽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각오를 다지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라? 따분하지 않다. 지루하지 않다. 솔직히 전부 읽는 데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그럼에도 지루할 새 없이 읽게 되었다. 각색된 내용을 통해 전체적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져 책장을 넘기게 된다.
『아이반호』는 역사소설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제법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자심왕 리처드가 그렇다. 여기에 잉글랜드 민담 속 주인공인 로빈 후드 역시 등장한다(로빈 후드가 누구일지는 소설을 읽는 가운데 등장하는 순간 아, 이 사람이 로빈 후드구나 알 수 있다.). 여기에 <로빈 후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몇몇 등장하여 이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또한 요즘도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인 ‘흑기사’의 유래가 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런 고전을 읽는다는 특별한 감회 역시 고전이 주는 선물이다.
12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고전역사소설 『아이반호』는 역사소설이다. 그렇기에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사회의 다양한 갈등구조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 타락한 귀족들, 타락한 종교인들의 작태가 가득하다. 자신들의 존재목적 내지는 본질을 상실해 버린 자들, 그런 그들에게 힘이 주어졌을 때, 얼마나 위험한 일들이 벌어지는 지를 소설 속에서 줄곧 발견하게 된다. 이런 본질을 상실한 자들의 모습은 등장인물들 간의 풍자와 해학, 익살 가득한 대화에서도 두드러지게 표현된다.
『아이반호』는 역사소설이면서 또한 연애소설이다. 아이반호와 로웨나 공주, 그리고 레베카 간의 사랑. 애설스텐, 드 브라시, 브리앙 등의 두 여인을 향한 관계가 얽혀 있어 재미(?)를 더한다. 결국 이 사랑의 결말이 어떻게 지어지게 되는지가 소설의 결말로 주어지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고전이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다. 특히, 마상시합 장면, 토퀼스톤 성 함락 사건 장면들은 박진감 넘치는 내용이다. 마치 무협소설을 읽는 것 마냥, 대하드라마를 시청하는 것 마냥 몰입하게 만든다. 마녀재판에 넘겨져 자신을 구할 기사를 기다리게 되는 레베카의 모습이 묘사되는 소설 후반부에선 마음을 졸이게 되고. 흑기사가 빨리 나타나길 바라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사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로의 흑기사는 소설 속 흑기사가 아닌 아이반호지만 말이다.).
이런 흥미진진하고 재미난 내용들 뿐 아니라 소설을 읽으며, 마음을 젖어들게 만든 몇 장면 가운데 하나는 아이반호의 아버지인 세드릭과 울리카 와의 대화 장면이었다. 울리카는 귀족의 딸이지만 아버지와 가족을 죽인 원수의 노리개가 되어 살아온 한 많은 여인이다. 이 여인을 바라보는 세드릭의 시선은 마치 우리 역사 가운데, ‘화냥년’이란 단어를 만들어낸 시선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긴 분량만큼이나 몰입해서 읽은 관계로 빠져나오는데 조금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다시 처음 어느 시인의 말로 돌아가 보자. 고전소설인 『아이반호』는 그 내용이 흥미진진 재미날뿐더러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 외에도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제는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소설의 세계에서 빠져나와야 할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기에 언젠가 다시 책을 펼쳐 읽음으로 어떤 외국 소설가가 말했다는 것처럼, 정말로 ‘지금 다시 읽고’ 있는 고전이라 말하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