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의자로 앉아 있다 도토리숲 동시조 모음 8
박방희 지음, 허구 그림 / 도토리숲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조란 장르를 떠올리면 고리타분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던 게 사실입니다. 물론, 이는 저만의 선입견일 수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장르처럼 느껴지는 시조동시가 만나면 어떨까요?

 

역시, 따분하고 어렵지 않을까?’, 아님 조금 쉽게 따분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저도 어쩐지, 동시와는 다르게 동시조라고 하면, 어렵고, 예스럽다는 생각이 든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시조는 형식이 있기에 딱딱한 느낌 역시 갖게 되지 않나 싶어요. 그런데, 요즘, 동시조집을 몇 권 만났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따분하고, 어려울지 몰라.’ 이런 생각은 완전히 편견에 불과했답니다. 오히려 동시조는 맑고, 재미나고, 쉽답니다. 특히, 박방희 시인의 동시조집 나무가 의자로 앉아 있다는 더욱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박방희 시인의 동시조집은 두 번째 만나게 되었답니다. 역시 이번에도 맑은 에너지 하나 가득 선물 받게 됩니다.

 

오늘은 우리 해님 얌전하다 싶었는데 // 산 넘어 / 집에 가며 / 기어이 / 불장난질 // 자다가 / 오줌 쌀지 모르니 / 비설거지 / 해야겠죠?

< 저녁놀 > 전문

   

 

이 동시조를 감상하는데,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예전엔 불장난하면 자다 오줌 싼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죠. 아무래도 요즘보다 불장난할 기회가 더 많던 시절이었기에 불장난을 경계하기 위한 어른들의 계략이었을 텐데, 이런 말이 불장난을 억제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빈 공터에서 낙엽 잔뜩 모아 성냥으로 불을 붙여 보려다가도 밤에 정말 자다 오줌 쌀까봐. 그래서 온 동네에 창피한 녀석으로 소문이 날까봐서 불장난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랍니다.

 

그런 아이들(어쩌면 지금 아이들의 마음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의 마음으로 저녁놀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부러웠답니다. 저녁놀을 아이들의 불장난과 연결하고, 오줌을 비설거지와 연결하게 되는 시인의 발상에 무릎을 탁하니 쳤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 또 하나의 동시조가 있었어요.

 

배고픈 산토끼가 / 먹을 것 찾아 나와 // 깡충 깡충 눈밭에 / 발자국을 찍어 놓네 // 제 굴을 안 들키려고 / 어지러이 찍어 놓네

< 산토끼의 꾀 > 전문

   

 

어린 시절 겨울방학을 맞아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사촌들과 함께 모였던 적이 있어요. 마침 밤새 눈이 내려 자고난 아침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답니다. 사촌들과 함께 눈 덮인 뒷동산에 산토끼를 잡겠다고 몰려갔는데, 정말 산토끼들 발자국이 제법 많더라고요. 곳곳엔 녀석들의 배설물도 있어, 한껏 토끼 사냥의 성공을 예감하며 들떴던 우리들. 하지만, 아무리 발자국들을 쫓아 가 봐도 토끼는 그림자도 구경하지 못했답니다.

 

우리들의 미숙한 사냥실력만 내심 꾸짖었는데, 이 동시조를 읽곤, 아하~ 우리의 미숙함만이 아닌 토끼의 꾀에 속았던 거구나 싶더라고요. “제 굴 안 들키려고/어지러이 찍어 놓은 발자국에 속아 한껏 들떴던 거구나 싶어 한참을 웃었답니다.

 

이 두 동시조 외에도 미소 짓게 만들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동시조들이 가득하답니다. 박방희 시인의 동시조집 나무가 의자로 앉아 있다를 통해, 맑은 에너지 하나 가득 선물 받아보는 건 어떨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