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도깨비 책독깨비 1
이상배 지음, 백명식 그림 / 좋은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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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이야기는 언제나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소재입니다. 물론, 오랫동안 도깨비에 대한 잘못된 도깨비 상이 전해져 온 것도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예를 든다면, 머리에 뿔이 솟아 있으며, 커다란 울퉁불퉁한 방망이를 들고 있는 도깨비 상은 우리나라의 도깨비와는 무관합니다. 이는 일본의 오니의 모습이죠. 일제강점기 오니의 모습이 우리의 도깨비 이야기로 둔갑해 버린 겁니다. 게다가 도깨비와 함께 이야기되는 혹부리영감 이야기 역시 우리의 전래동화가 아닌 일본 이야기라고 하네요.

 

그러니, 동화를 통해 잘못된 정보들이 재생산됨으로 어린이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도깨비 이야기는 여전히 어린이 독자들의 마음을 홀리는 소재입니다.

 

여기 국적을 알 수 없는 도깨비가 아닌 우리 한국 도깨비가 제대로 등장하는 동화가 있습니다. 이상배 작가의 책 읽는 도깨비인데요. 2008년에 출간되었던 책이 새 옷을 입고 새롭게 출간되었답니다.

  

  

동화 속 멍첨지는 돈만 밝히는 구두쇠 영감입니다. 돈을 돈 고리짝에 넣어 차곡차곡 쌓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돈 고리짝 하나가 사라졌답니다. 도둑이 훔쳐 간 거죠. 도둑은 고리짝 속의 돈을 모두 챙겨가곤 고리짝은 산속에 덩그러니 버렸답니다. 바로 이 고리짝에서 고리짝도깨비가 나와요. 작가는 이렇게 말해요.

 

하찮은 물건이라도 10, 20년 사람의 손때가 묻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나요? 사람과 오래 살며 정이 들면 사람을 닮아 신통방통한 영물이 된답니다.(24)

 

하찮은 물건이라도 귀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해줌과 함께 오랫동안 사용한 물건은 낡아빠진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귀하고 소중할 수 있음을 생각게 합니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돈이 꽉 차 있던 고리짝의 고리짝 도깨비는 돈이 없어지자 허전합니다. 그래서 멍첨지의 돈을 가져와 돈 냄새 속에 파묻히죠. 그러다, 이 돈을 가지고 아예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가게 되고요. 자신이 있을 새집을 찾던 가운데, 마음에 드는 땅을 사려는 선비와 대결하게 되고. 결국 이 대결을 통해 글을 알게 될뿐더러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된다는 재미난 이야기랍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디선가 친근한 도깨비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요. 아울러 동화를 통해, 책읽기가 얼마나 재미난 세상인지를 알려줍니다. 동화 속 도깨비들이 죽은 세종대왕을 만나 세종대왕의 심부름을 하며 알게 되는 두 가지 기쁨은 책방 가는 기쁨과 책 사는 기쁨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기쁨을 나중에 더 알게 되는데, 그건 바로 책 읽는 기쁨입니다.

 

책 읽는 기쁨은 언제나 재미난 것을 좋아하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도깨비들마저도 책 속에 붙들어 맬 정도로 큰 기쁨입니다. 책 읽는 도깨비는 굳이 책읽기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동화를 통해 자연스레 이러한 기쁨을 알게 해 주는 좋은 동화입니다.

 

이 동화를 읽은 어린이 독자들이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책읽기의 즐거움에 푹 빠져 있을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책을 읽으며, ‘캴캴캴캴!!!’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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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트 특급열차 철도 네트워크 제국 2
필립 리브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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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판타지 소설 철도 네트워크 제국1권을 재미나게 읽고, 2권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드디어, 1레일헤드에 이어 2블랙 라이트 특급열차가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책장을 펼쳐든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주인공 젠 스탈링과 로봇 소녀 노바는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을 열었고, 결국 철도 네트워크 제국과는 별개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다(이는 철도 네트워크 제국으로부터의 도피이기도 하다.). 일명 웹 월드란 곳으로. 그리곤 그곳에서 새로운 우주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간다. 자신은 철도 네트워크 제국에서 파견된 지구인 특사라는 거짓말과 함께.

 

한편 철도 네트워크 제국의 황제가 된 트레노디 눈은 챈드니 한사(1권에서 레이븐의 사주를 받고 탤리스 눈-젠이 탤리스 눈 행세를 한다-을 붙잡아 두려다가 탤리스 눈의 물건을 훔치는 바람에 냉동감옥에 갇히게 된다. 2권에서 트레노디가 챈드니를 감옥에서 풀어주고 곁에 둔다.)를 새로운 하녀로 맞아 곁에 둔다. 그러던 차, 비밀리에 전쟁을 준비했던 프렐 가문이 공격해 옴으로 하루아침에 트레노디는 황제의 신분에서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챈드니와 함께 퇴역 기차 유령 늑대를 타고 도주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엔 젠을 만나게 됨으로 함께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된다. 그것도 새로운 세계 속에서 철도 왕국인 레일 창조자의 고향을 향한 모험을. 과연 그곳에서 이들은 어떤 진실과 맞닥뜨리게 될까?

 

이번 이야기 역시 흥미진진하다. 솔직히 중간 부분에서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거의 대부분 처음부터 끝까지 우주 공간에서의 박진감 넘치는 모험이 계속된다.

 

철도 네트워크 제국의 즐거운 묘미 가운데 하나는 소설이 갖고 있는 독특한 세계관이다. 판타지 소설들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창조하곤 하는데, 철도 네트워크 제국의 세계관 역시 소설 속 자신만의 독특한 공간이다. 철도 네트워크 제국은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K-게이트라는 터널을 통해 행성 간에 연결된 철도제국이다. 이렇게 철도로 연결된 하나의 우주가 존재한다.

 

그런데, 2권에서는 또 하나의 우주가 드러난다. 단절되어 있던 또 하나의 우주가 연결된다. 그곳은 철도 네트워크 제국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아니 왕래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곳이야말로 철도 네트워크 제국을 만든 레일 창조자의 고향이다(물론, 이 레일 창조자의 고향 역시 이 새로운 우주 속의 한 공간, 한 행성이다.).

 

그 레일 창조자의 고향이 파괴되어졌으며, ‘철도 네트워크 제국과 단절되었고, 감춰졌었다. 바로 철도 네트워크 제국의 신과 같은 존재들은 거대 인공지능 가디언들에 의해서. 심지어, 레일 창조자(역시 거대한 인공지능이다.)에게 바이러스를 심어 넣어 파괴하였던 것도 가디언이다. 자신들이 철도 네트워크 제국을 창조한 양 사람들을 현혹했으며, 자신들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좋은 신인 것처럼 감춰왔던 이유가 있었다(물론, 대부분의 가디언은 좋은 존재다. 2편에서는 한(아니 둘인가? 쌍둥이 가디언이기에.) 가디언만이 파괴적이고 악한 가디언이며, 나머지는 자신들의 입장을 고려하며 묵인하고 침묵함으로 그 행위에 동참한다.).

 

레일 창조자를 죽인 건 두려움 때문이었지만, 레일 창조자의 업적을 비밀로 한 건 부끄러웠기 때문이야.(385)

 

자신들에게 일어나지도 않을 상황을 미리 예단하고 두려워함으로 파괴와 폭력을 행하는 자들. 그리고 자신들의 과오가 드러날까 부끄러워 철저하게 거짓을 만들어내고 침묵한 자들. 이들이 소설 속 가디언들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모습일까? 어쩜, 소설 속 공간이 아닌 현실 속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함에 경계심을 품어본다.

 

아울러 SF 소설 속 주인공인 젠 스탈링과 노바의 사랑은 인간과 AI 로봇 간의 새로운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과 로봇이 사랑을 할 수 있음에 대해.

 

아무튼 이런 소설 속 세계가 재미나다. 아울러 그곳에서 모험을 펼치는 젠 스탈링과 노바, 그리고 트레노디 눈과 챈드니 한사의 관계 역시 재미를 선물하고. 이제 3권에서는 또 어떤 모험이 펼쳐지게 될까 기대된다. 3권이 나올 때까지 잠시 ‘K-게이트의 문을 잠정폐쇄한다. 빨리 ‘K-게이트의 문을 열고, ‘철도 네트워크 제국으로의 모험을 떠나길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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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 시선 K-포엣 시리즈 5
안상학 지음, 안선재(안토니 수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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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한영대역 시리즈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시리즈와 <K-픽션> 시리즈에 이어 새롭게 시선집 들을 영어로 번역하여 함께 싣고 있는 한영대역 시리즈 <K-포엣> 시리즈를 출간하였다.

 

우리의 좋은 시들이 세계 여러 독자들에게 읽히게 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다. 또한 비록 영어가 짧긴 하지만 한영 대역으로 우리의 시를 접한다는 신선한 기대감을 품고 책장을 펼쳐본다.

 

안상학 시인의 시를 접하며 든 생각 하나는 시를 읽다보면 문득문득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점이다. 때론 무릎을 치며, ‘아하, 그렇구나!’ 공감하게도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시가 있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한다 / 아니다, 사람은 손 없이 왔다가 손 없이 가는 것이다 / 보라, 기어 다니는 아이까지는 손이 아니라 발이다 / 똥을 뭉개는 저 / 기어 다니는 노인의 손도 손이 아니라 발이다 / 사람은 네 발로 와서 두 손으로 살다가 / 네 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내 손이 슬퍼 보인다> 일부

 

문제는 두 손으로 살아가는 동안이다. 두 손을 가지고, 남의 것을 빼앗는데 사용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군림하는데 사용한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두 손의 역사는 끊임없이 싸움을 재생산하는 역사다.”라고. 시를 읽다, 두 손을 한참을 들여다봤다. 내 손 역시 슬퍼 보이는 손은 아닌지. 시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

 

적어두고 기억하고 싶은 시구들도 많다. 꼭 시로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문구로 외워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시구들이 말이다. “때가 되면 발밑에 연연하지 않아야 될 때가 한번은 오는 법이다.”<발밑이라는 곳> “세상에는 보이지 않아야 보이는 것이 있다 / 아득하니 볼 수 없을 때야 보이는 것이 있다.”<그려본다는 것>

 

인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평화에 대해, 아버지에 대해 등등 다양한 주제의 시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다. 엄청 어렵지는 않으면서 시 한 편 한 편 깊이 묵상하면 좋을 시들로 가득하여 얇은 시집이지만 배부른 느낌이다.

 

그 가운데 한편 적어본다.

 

내 걸어온 길 늘 어둠 속이었으나 /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 그 언젠가 단 한 번 번개 칠 때 / 잠깐 드러났다 사라진 그 길을 떠올리며 / 더듬더듬 한발 한발 줄여온 덕분 아니겠는가 // 남은 길도 / 캄캄한 길 더듬어 가는 중에 / 언제고 번개 한 번 더 쳐주길 학수고대하며 / 그렇게 더듬거리며 가는 길 아니겠는가 <노정> 전문

 

인생이란 결국 이런 노정을 걷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 노정에 길 밝혀줄 번개가 길을 잃을 때마다 한 번 더 쳐주길 학수고대하는 게 아니라, 자주 쳐주길 욕심 부려보며 시집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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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시선 K-포엣 시리즈 6
김현 지음, 전승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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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아시아 출판사에서는 한영대역 시리즈로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선별한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시리즈, 그리고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담은 <K-픽션> 시리즈를 출간해왔다. 그런 아시아 출판사에서 이제 시선집 시리즈를 출간했다. 바로 <K-포엣> 시리즈다. 국내 시인들이 자신의 시집 가운데 직접 선별한 시들을 우리말과 함께 영어로 번역한 한영 대역으로 접할 수 있다는 점은 신선한 기대감을 품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출간된 <K-포엣>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인 김현 시선집을 접하게 되었다.

 

시는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누군가는 그런 말을 했겠지, 아님 말고.). 그래서일까? 이 시집은 나의 존재를 철저하게 들여다보게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역시, 난 아직 풋내기 중에 풋내기. 시를 읽고 느끼며 상상하며 재생산하기에는 역시 턱없이 부족하단 생각을 들게 한다. 무슨 말이냐고? 한 마디로 시가 내 실력엔 너무 어렵단 말이다. 흑흑흑. 전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난 멍청이야. 흑흑.

 

그래도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건, 시집 뒤편에 실린 시인에 대해 적힌 글이다.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김현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핸드가이드북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의 시 한편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만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그런데 그의 시에는 해석에의 열정을 불태우는 무언가가 있다. 아무리 설명해도 부족한 잉여가 있다는 것이 역설적인 매력 때문이다. 김현은 우리의 삶이 단일하게 해석될 수 없으며 아무리 해석하려고 해도 손아귀를 빠져 나가는 해석 불가능의 대상이라는 것을 일러준다. - 안지영 (112)

 

어쩐지 위로가 된다. 시를 통해 위로받지 못하고 이런 글에 위로받는 신세라니 부끄럽다.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 어리석음을 탓하며, 이해되지 못하는 시들은 좀 더 내공을 쌓은 뒤 다시 읽어보기로 한다. 그러니, 무슨 서평을 쓴단 말인가.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 가운데,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시가 두 편 있었다. <정신의 모양><잔잔한 마음>이 그것인데. <정신의 모양>이란 시를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한 마리 오징어처럼울고 있는 교실. 그곳에 적힌 정신일도하사불성이란 문구. 아이들이 그 문구처럼 먼저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여전히 울고 있는 교사를 향해, 진도 나가자며 외친다.

 

시가 그려주는 그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생각해 본다. 그래 아이들은 마땅히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매진해야지. 교사가 쯧쯧. 얼른 아이들 해야 할 공부 그 진도를 나가야지. . 이라 말하면 좋겠지만, 어쩐지, 그런 모습이 진짜 정신을 차린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정말 정신을 차리는 것만이 최고인가? 때론 함께 울 수 있는 정신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 공감하지 못하는 지식인을 키워내는 것이 아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다운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교육이라는 생각을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시인의 말처럼 목소리의 미래를 품게 되는 것이며, 시가 품고 있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시집을 잠시 책꽂이에 꽂아 둔다. 언젠가 반드시 이해하고 말테야, 하는 이루지 못할 다짐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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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 시간이 멈춘 곳 작은거인 48
이귤희 지음, 송진욱 그림 / 국민서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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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할아버지와 살게 된 선우. 선우네 할아버지는 엄청난 부자에다가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신뢰도 얻고 있고요. 그런데, 그런 할아버지를 유독 미워하는 아이가 있답니다. 바로 선우와 같은 반 여자아이 지나 입니다. 지나와 그 가족은 왜 그리 선우네 할아버지를 미워하는 걸까요?

 

사실 선우는 마음 붙일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선우는 어느 날 집에 감춰진 지하방을 발견합니다. 그리곤 12시가 되면 열리는 나무문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을 하게 됩니다. 바로 선우네 집 지하에 감춰진 터널로 말입니다.

  

  

때는 1945815, 광복을 앞둔 시점, 그 터널은 폭발하여 무너지게 되고, 그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죽게 됩니다. 단 한 사람 그곳에서 만났던 소년 남규 만이 살아남게 되는데, 남규가 바로 현재 지나의 할아버지입니다. 선우네 할아버지를 유독 미워하는 남규. 과연 둘 간 에는 어떤 비밀이 감춰진 걸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선우가 과거 여행 속 그 터널에서 만난 남규에겐 전쟁터에 나간 형이 있고, 형의 이름은 김태산입니다. 바로 선우의 할아버지 이름인데 말입니다. 그럼 터널 속 소년 남규와 선우의 할아버지는 형제인걸까요? 그런데 왜 현재 시점에서의 남규 할아버지는 선우네 할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하는 걸까요?

 

선우는 터널 속 폭발을 막기 위해 다시 비밀의 문을 통해 과거 여행을 반복하게 됩니다. 과거를 바꿈으로 터널 속 미래, 즉 현실을 바꾸려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반복됨에도 여전히 터널 속에 갇혔던 사람들의 목숨을 건져내진 못합니다. 마치 선우는 보이지 않는 운명의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렇게 반복되지만 여전히 뜻을 이루지 못하는 부분이야말로 독자로 하여금 안달하게 하고, 독자로 하여금 선우가 뜻을 이루길 응원하게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반복되는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선우는 놀라운 진실을 알게 되는데,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요?

  

  

동화, 터널, 시간을 멈춘 곳진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친일을 했던 이들이 그들의 죗값을 치르기는커녕 겉옷만을 바꿔 입고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며 힘을 갖고 더 많은 것들을 누리는 모습을 동화는 보여줍니다. 또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갖기보단 오히려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진실을 덮으려 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동화 속 할아버지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선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을 명심해라. 진실은 강한 자의 것이다. 그 말은 강한 자의 말이 곧 진실이라는 뜻이지. 내 말이 곧 진실이고! 내 거짓도 진실이라는 말이다.”(156)

내가 말했지? 진실은 아무 힘이 없다고. 진실보단 지금 내가 가진 힘과 권력이 더 강해. 김선우. 너도 니 애비처럼 모든 걸 잃고 싶으냐? 지금 네가 누리는 게 그냥 생긴 것 같아? 아니,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은 거다. 그게 인생의 법칙이다.”(163)

 

여전히 진실을 외면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강한 자의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 진실을 덮으려는 자들의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진실은 진실을 밝히려는 용기 있는 자들의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약자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약해도 뭔가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163)

포기하려 할 때 네 아빠가 내게 이걸 주며 말했다. 이 작은 빛으로 전체를 환하게 밝힐 순 없지만, 진실이란 빛은 다르다고. 그 빛은 아무리 작아도 강하니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전부를 밝힐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159)

 

동화는 이처럼 진실을 밝힐 작은 빛, 그 노력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멋진 점은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다름 아닌 진실을 덮은 자의 아들, 손자에게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려는 노력, 이런 노력만이 우리 민족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 친일로 인한 분열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가족의 자각이야말로 당사자들을 압박하는 강력한 힘이 될 테니까요. 손자에게 부끄러운 할아버지가 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터널, 시간이 멈춘 곳은 일제 강점기 친일행각에 대한 반성과 자각을 촉구하고 있는 동화입니다. 하지만, 꼭 친일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 현대사 속엔 민중을 향해 만행을 벌인 권력자들이 여전히 수없이 많고,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으니 말입니다. 진실을 손바닥으로 덮을 만큼 힘을 가진 자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과연 자신들 손자에게도 떳떳할 수 있을까요? 아니 어쩌면 동화 속 길태처럼,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진실을 감추려 할 겁니다. 하지만, 진실이란 게 감추려 한다고 해서 영원히 감춰질까 생각하게 됩니다. 진실을 알아버린 손주들에게도 여전히 떳떳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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