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 시간이 멈춘 곳 작은거인 48
이귤희 지음, 송진욱 그림 / 국민서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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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할아버지와 살게 된 선우. 선우네 할아버지는 엄청난 부자에다가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신뢰도 얻고 있고요. 그런데, 그런 할아버지를 유독 미워하는 아이가 있답니다. 바로 선우와 같은 반 여자아이 지나 입니다. 지나와 그 가족은 왜 그리 선우네 할아버지를 미워하는 걸까요?

 

사실 선우는 마음 붙일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선우는 어느 날 집에 감춰진 지하방을 발견합니다. 그리곤 12시가 되면 열리는 나무문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을 하게 됩니다. 바로 선우네 집 지하에 감춰진 터널로 말입니다.

  

  

때는 1945815, 광복을 앞둔 시점, 그 터널은 폭발하여 무너지게 되고, 그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죽게 됩니다. 단 한 사람 그곳에서 만났던 소년 남규 만이 살아남게 되는데, 남규가 바로 현재 지나의 할아버지입니다. 선우네 할아버지를 유독 미워하는 남규. 과연 둘 간 에는 어떤 비밀이 감춰진 걸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선우가 과거 여행 속 그 터널에서 만난 남규에겐 전쟁터에 나간 형이 있고, 형의 이름은 김태산입니다. 바로 선우의 할아버지 이름인데 말입니다. 그럼 터널 속 소년 남규와 선우의 할아버지는 형제인걸까요? 그런데 왜 현재 시점에서의 남규 할아버지는 선우네 할아버지를 그토록 미워하는 걸까요?

 

선우는 터널 속 폭발을 막기 위해 다시 비밀의 문을 통해 과거 여행을 반복하게 됩니다. 과거를 바꿈으로 터널 속 미래, 즉 현실을 바꾸려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반복됨에도 여전히 터널 속에 갇혔던 사람들의 목숨을 건져내진 못합니다. 마치 선우는 보이지 않는 운명의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렇게 반복되지만 여전히 뜻을 이루지 못하는 부분이야말로 독자로 하여금 안달하게 하고, 독자로 하여금 선우가 뜻을 이루길 응원하게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반복되는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선우는 놀라운 진실을 알게 되는데,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요?

  

  

동화, 터널, 시간을 멈춘 곳진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친일을 했던 이들이 그들의 죗값을 치르기는커녕 겉옷만을 바꿔 입고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며 힘을 갖고 더 많은 것들을 누리는 모습을 동화는 보여줍니다. 또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갖기보단 오히려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진실을 덮으려 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동화 속 할아버지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선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을 명심해라. 진실은 강한 자의 것이다. 그 말은 강한 자의 말이 곧 진실이라는 뜻이지. 내 말이 곧 진실이고! 내 거짓도 진실이라는 말이다.”(156)

내가 말했지? 진실은 아무 힘이 없다고. 진실보단 지금 내가 가진 힘과 권력이 더 강해. 김선우. 너도 니 애비처럼 모든 걸 잃고 싶으냐? 지금 네가 누리는 게 그냥 생긴 것 같아? 아니,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은 거다. 그게 인생의 법칙이다.”(163)

 

여전히 진실을 외면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강한 자의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 진실을 덮으려는 자들의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진실은 진실을 밝히려는 용기 있는 자들의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약자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약해도 뭔가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163)

포기하려 할 때 네 아빠가 내게 이걸 주며 말했다. 이 작은 빛으로 전체를 환하게 밝힐 순 없지만, 진실이란 빛은 다르다고. 그 빛은 아무리 작아도 강하니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전부를 밝힐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159)

 

동화는 이처럼 진실을 밝힐 작은 빛, 그 노력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멋진 점은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다름 아닌 진실을 덮은 자의 아들, 손자에게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려는 노력, 이런 노력만이 우리 민족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 친일로 인한 분열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가족의 자각이야말로 당사자들을 압박하는 강력한 힘이 될 테니까요. 손자에게 부끄러운 할아버지가 되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터널, 시간이 멈춘 곳은 일제 강점기 친일행각에 대한 반성과 자각을 촉구하고 있는 동화입니다. 하지만, 꼭 친일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 현대사 속엔 민중을 향해 만행을 벌인 권력자들이 여전히 수없이 많고,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으니 말입니다. 진실을 손바닥으로 덮을 만큼 힘을 가진 자들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과연 자신들 손자에게도 떳떳할 수 있을까요? 아니 어쩌면 동화 속 길태처럼,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진실을 감추려 할 겁니다. 하지만, 진실이란 게 감추려 한다고 해서 영원히 감춰질까 생각하게 됩니다. 진실을 알아버린 손주들에게도 여전히 떳떳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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