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학 시선 K-포엣 시리즈 5
안상학 지음, 안선재(안토니 수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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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 한영대역 시리즈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시리즈와 <K-픽션> 시리즈에 이어 새롭게 시선집 들을 영어로 번역하여 함께 싣고 있는 한영대역 시리즈 <K-포엣> 시리즈를 출간하였다.

 

우리의 좋은 시들이 세계 여러 독자들에게 읽히게 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다. 또한 비록 영어가 짧긴 하지만 한영 대역으로 우리의 시를 접한다는 신선한 기대감을 품고 책장을 펼쳐본다.

 

안상학 시인의 시를 접하며 든 생각 하나는 시를 읽다보면 문득문득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점이다. 때론 무릎을 치며, ‘아하, 그렇구나!’ 공감하게도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시가 있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한다 / 아니다, 사람은 손 없이 왔다가 손 없이 가는 것이다 / 보라, 기어 다니는 아이까지는 손이 아니라 발이다 / 똥을 뭉개는 저 / 기어 다니는 노인의 손도 손이 아니라 발이다 / 사람은 네 발로 와서 두 손으로 살다가 / 네 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내 손이 슬퍼 보인다> 일부

 

문제는 두 손으로 살아가는 동안이다. 두 손을 가지고, 남의 것을 빼앗는데 사용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군림하는데 사용한다. 그래서 시인은 말한다. “두 손의 역사는 끊임없이 싸움을 재생산하는 역사다.”라고. 시를 읽다, 두 손을 한참을 들여다봤다. 내 손 역시 슬퍼 보이는 손은 아닌지. 시가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

 

적어두고 기억하고 싶은 시구들도 많다. 꼭 시로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문구로 외워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시구들이 말이다. “때가 되면 발밑에 연연하지 않아야 될 때가 한번은 오는 법이다.”<발밑이라는 곳> “세상에는 보이지 않아야 보이는 것이 있다 / 아득하니 볼 수 없을 때야 보이는 것이 있다.”<그려본다는 것>

 

인생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평화에 대해, 아버지에 대해 등등 다양한 주제의 시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다. 엄청 어렵지는 않으면서 시 한 편 한 편 깊이 묵상하면 좋을 시들로 가득하여 얇은 시집이지만 배부른 느낌이다.

 

그 가운데 한편 적어본다.

 

내 걸어온 길 늘 어둠 속이었으나 /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 그 언젠가 단 한 번 번개 칠 때 / 잠깐 드러났다 사라진 그 길을 떠올리며 / 더듬더듬 한발 한발 줄여온 덕분 아니겠는가 // 남은 길도 / 캄캄한 길 더듬어 가는 중에 / 언제고 번개 한 번 더 쳐주길 학수고대하며 / 그렇게 더듬거리며 가는 길 아니겠는가 <노정> 전문

 

인생이란 결국 이런 노정을 걷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 노정에 길 밝혀줄 번개가 길을 잃을 때마다 한 번 더 쳐주길 학수고대하는 게 아니라, 자주 쳐주길 욕심 부려보며 시집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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