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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사
유스토 L.곤잘레스 지음, 서영일 옮김 / 은성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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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의 종교개혁이란 말에 대해서 모르는 신앙인들은 없다. 아니, 불신자들조차 종교개혁에 대해서, 그리고 루터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작 종교개혁에 대해 자세히 또는 정확히 알고 있는 신앙인들 역시 드물다. 그러면서 신자들은 그들의 작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성경공부를 할 때 어떤 사상이 루터가 주장했다든지, 칼빈이 주장한 사상이라고 하면, 여과 없이 그냥 믿고 따르게 되는 맹종을 보인다. 이는 바꿔 말하면 개신교인들에게 있어 종교개혁 사건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 사건이었었는지를 입증하는 것이다. 이처럼 개신교도들에게 중요한 사건인 종교개혁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서적이 바로 후스토 L. 곤잘레스의 <종교개혁사>이다.

저자는 어렵지 않고 간단한 문장으로 종교개혁사를 풀어나간다. 따라서 이 책은 종교개혁에 대한 선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종교개혁에 대한 입문서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저자는 종교개혁에 대해 역사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종교개혁이 일어날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종교개혁의 다섯 줄기라 할 수 있는 루터교의 뿌리인 루터, 장로교의 근원인 쯔빙글리와 칼빈, 성공회가 일어난 영국에서의 종교개혁(정치적인 개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과격파 종교개혁이었던 재세례파, 마지막으로 이들 종교개혁에 맞서 일어난(저자는 카톨릭의 반종교개혁은 개혁가들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개혁 필요성에 의해 카톨릭 내부적으로 자생한 종교개혁이라 보고 있다) 카톨릭의 종교개혁까지를 알기 쉬운 언어로 풀어나간다.

이 책을 통하여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은 당시 왜 개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으며, 개혁에 성공한 사람들은 어떻게 성공했으며, 반면 개혁에 실패한 자들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를 살피게 된다. 우리가 종교개혁에 대하여 공부할 때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아는 것은 물론 중요하며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만 돌려버린다면 이는 무의미한 학습이 되고 만다. 종교개혁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계속되어야할 매우 중요한 물음이다.

이는 우리 모든 신자들이 특히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항상 해야할 질문이며, 또한 그러한 시대의 요청에 의해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한 사상들이 무엇이었으며 그 사상은 우리의 신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역시 현 기독교인들이 숙지해야 할 과제이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전자(종교개혁의 동기와 진행과정, 결과)는 책에 잘 제시되어져 있지만, 후자(종교개혁가들의 사상)는 그리 잘 제시되어 있지 않은 점이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종교개혁에 대해서, 우리의 신앙의 뿌리에 대해서 알고자 하지만 접근방법을 몰라 시작하지 못하시는 분들에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하여, 현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종교개혁사건을 통해 항상 자신의 신앙에 도전이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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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산의 눈먼 벌치기
홍기 / 바오로딸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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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어느 정도 픽션이 가미된 소설로써 벌을 치는 한 눈 먼 사람의 이야기이다. 우리 신체의 어느 부위인들 덜 소중하겠느냐만은 우리의 두 눈은 신체에 없어서는 안될 기관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두 눈의 고마움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이 사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들에 만족하지 못하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함으로 인해 불평하고 이웃을 시기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본서 속의 주인공인 눈먼 벌치기는 그러한 우리 일반인들보다 오히려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간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바로 자신의 행복임을 깨달으면서 살아간다. 어렸을 때(4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 사고로 인해 하반신 불구가 되어 눈먼 자신에게 의지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실 즈음 병에 걸려 시각을 완전히 상실한 자신, 오랜 세월 홀로 보내다 뒤늦게 얻은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아내의 돌연한 죽음. 어느 것 하나 긍정적으로 세상을 볼 수 없을 것 같은 조건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두 눈을 볼 수 있는 우리보다 오히려 더욱 밝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물론 주인공 역시 자신의 그런 비관적이 현실로 인해 한때 자살을 시도하지만, 몸이 불편하여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아버지 때문에 자살을 포기하고, 그런 자신의 안타까운 현실에 솟구쳐 오르는 울화를 억누르기 위해 의미 없이 통나무에 구멍을 파서 벌통을 만든다. 이 우연의 산물인 벌통이 주인공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이듬해 봄, 이 통에 벌이 찾아옴으로 두 눈이 성한 사람도 하기 힘들다는 벌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주인공은 모든 사물을 사심 없는 진정으로 대한다. 그런 그의 마음이 통하여 그가 치는 벌들은 자꾸 늘어나며, 그가 키우는 채소들은 언제나 싱그럽다. 모든 것을 진정으로 대하는 그에게 마을사람들도 벌치기의 일엔 자신의 일처럼 앞장선다. 하지만, 그러한 벌치기에게 가장 큰 위험은 역시 사람들이다. 벌치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벌치기의 약점을 이용해 그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많은 악제 속에서도 주인공은 여전히 세상을 밝게 바라보며, 아내가 남긴 세 자녀를 키워간다.

본서를 읽으면서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불공평하더라도 역시 세상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임을 독자는 깨닫게 된다. 아니, 사실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은 조건에서도 오히려 세상을 불평하며 어두운 눈으로 바라본 자신을 반성하게 될 것이다. 눈이 멀었지만 오히려 성한 자보다 더 밝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는 벌치기를 통해 많은 독자들이 세상을 밝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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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굿 빛깔있는책들 - 민속 8
황루시 지음 / 대원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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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우리 민족의 고유 종교인 무속에게 필요이상의 폄하와 멸시가 돌아갔던 것이 사실이다. 이 서평을 쓰는 본인 역시 기독교인으로써 그들 무속인들을 멸시하고 천시해 왔음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멸시와 폄시 이면에는 수 천년 동안의 집권세력들의 의도적인 정책과 기타 외래종교들의 무속 죽이기, 그리고 일제시대의 한민족정신말살정책의 일환으로써의 무속 폄하화가 그 기조에 깔려 있음이 사실이며, 이러한 인식이 차츰 생성되고 있다.

물론 무속이 오랜 기간 우리 민중들의 정서 속에서 기층문화로 자리잡았다 하더라도 그들이 여전히 경멸과 천대의 대상이며 이러한 갈등구조하에 그들 스스로 폐쇄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음이 현실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자각 아래에서 민속문화를 발굴 전승시키려는 많은 노력의 결실로 인해 무속이 일정부분 양성화되었다.

본서는 이러한 무속신앙의 가장 대표적이며 또한 무속 종교의례 중 가장 큰 의례인 굿에 대한 연구물이다. 본서의 장점 중 하나는 이러한 굿에 대해 접하지 못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일환으로써 굿의 전개과정의 실제 모습이 사진이라는 시각적 표현으로 책 분량의 절반 가량 실려 있음이다. 이러한 실제 모습의 시각화을 통해 독자들은 굿의 사실적 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굿의 본래 의도는 공동체성의 회복을 지향하며, 산 자와 산 자,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신들과 인간들간의 화해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화해를 통해 인간의 안녕을 추구한다. 본서의 저자는 오늘날의 굿을 행하는 자들이 이러한 굿의 본래 의도인 공동체성의 회복과 공동체의 안녕을 바람을 점차 잃어가며, 개인의 복을 바라는(이러한 바람을 많은 무속인들과 무속연구가들은 기복신앙이라 말한다) 이기주의적인 굿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음을 아쉬워하며 글을 전개해 나간다.

본서의 저자는 다른 연구가들에 비해 특이하게도 무속신앙의 신들간에는 어떤 순위가 없으며 계층이 없다 주장한다. 이는 바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는 평등한 마음이 투여된 신관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는 인간간의 평등성을 강조함이 지나쳐서 초래한 실수인 듯 하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무속신앙에 등장하는 많은 신들간에 어떤 권세나 힘의 차이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신들간에는 일정한 서열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굿의 마지막 절차인 뒷전이 바로 이러한 하위 신들(잡신)에 대한 대접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본서의 저자는 오히려 이러한 뒷전이 있음 자체가 바로 신들간의 차등이 없음을 밝히는 단서라 주장하지만 이는 저자의 오판인 듯하며,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다. 오히려 이러한 잡신들을 대접하는 뒷전을 하급신들, 즉 신들 사이에서조차 대접받지 못하는 그들에까지도 무속인들이 세밀한 관심을 가져줌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개연성이 있을 듯하다.

본서는 굿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밝히고 있는 장점을 가진 반면, 분량의 제한성 때문에 보다 세밀하고 자세한 내용과 깊이 있는 연구내용을 내포하지 못하는 단점 역시 가지고 있다.

끝으로 본서를 통하여 독자들이 한국문화를 올바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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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마지막 날 분도소책 59
게르하르트 로핑크 지음, 이경우 옮김 / 분도출판사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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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의 저자는 예수의 수난사(특히, 마지막 날로 한정해서)를 역사비평적 성서 주해를 통해 조명하려 한다. 따라서, 저자는 예수 당시 유대 사회의 갈등 구조로부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쉬운 점은 전반적 유대의 갈등 구조 설명의 미약함이다. 본인이 생각키에는 단편적인 갈등구조의 언급만으로 마치고 있다. 조금 더 세부적인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는 저자가 본 연구 범위를 '예수의 마지막 날'로 한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러한 갈등구조 아래에서 유대인의 최고의회가 어떻게, 그리고 왜 심야에 열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예수는 빌라도에게로, 헤로데에게로 인도되었는지를 풀어나간다. 또한 이러한 배경하에서 우리가 오늘날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듯이, 예수 수난사의 최고 악역인 빌라도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저자는 잘 설명해 준다.

본서는 성서(복음서)에 그 연구의 바탕을 두면서 역사적 접근 방법을 채택하여 '예수의 마지막 날'에 대해 역사적인 배경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특히, 빌라도의 역할과 그의 행동들이 갖는 역사적 배경들을 간단하지만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예수의 수난사화에서의 단편적인 몇몇 사실들도 역사적 근거를 통해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또한,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맺음말 부분에서 독자들이 복음서, 특히 이중에서 수난사화를 읽을 때, 예수의 입장에서만 읽는 것을 지양하고, 당시 등장인물들의 각각의 입장에서도 읽을 것을 권고한다. 본인이 생각키에는 본서 전반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연구결과들 역시 중요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의 저자의 권고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열매가 아닌가 싶다. 현대의 많은 성서 독자들이 편협한 성서 읽기, 틀에 박힌 성서 읽기만이 아닌, 다른 여러 관점으로의 성서 읽기를 통해, 성서 기자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찾아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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