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 42년간의 한결같은 마음, 한결같은 글쓰기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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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시대의 대표 서정시인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책장을 덮으며 한동안 그의 시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온갖 여러 가지 감정이 내 안에 뒤죽박죽 엉켜 붙어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삶의 다양한 양태들을 해석하는 시인의 노래로 인한 감정들, 고달픔, 외로움, 절망, 분노, 죽음, 소멸, 연민, 반성, 사랑, 서글픔, 애잔함, 소망, 희망 등등 무수한 감정의 테러에 시달린다. 그저 한 동안 그 모든 감정 앞에 영혼을 맡겨본다.

 

그전부터 익히 알던 시도 있고, 새롭게 읽은 시, 새롭게 읽혀진 시들도 있다. 이 모든 시들이 준 감정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건 먹먹함이다. 여러 시편들에서 그 먹먹함을 느끼게 되지만, 유독 <못>이란 시가 뇌리에 남는다.

 

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 구부러진 못을 그대로 둔다 /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 애써 헝겊으로 닦아놓는다 / 뇌경색으로 쓰러진 늙은 아버지 / 공중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놓는다 /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 / 때밀이 청년이 벌거벗은 아버지를 펴려고 해도 / 더이상 펴지지 않는다 / 아버지도 한때 벽에 박혀 녹이 슬도록 / 모든 무게를 견뎌냈으나 / 벽을 빠져나오면서 그만 /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 못 > 전문

 

문득, 연로하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일평생 가정을 위해 애쓰신 아버지. 하지만, 가정을 위해 가정보다는 일을 우선하셨던 아버지. 그렇기에 자녀들과 살가운 대화조차 나누지 못한 아버지.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릴 무척이나 사랑하시고 아껴 주셨는데. 문득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내게 볼을 비빌 때, 그 꺼칠꺼칠하던 느낌이 떠오른다. 이젠 내 아이들이 그 느낌을 받을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이젠 시인의 노래처럼 구부러진 못이 되어버려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도, 힘들어 하는 아들을 보면 더 괴로울 것 같아 아들네 집에 찾아오지도 못하시는 아버지. 우리 모두 우리의 아버지들이 “한때 벽에 박혀 녹이 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생각해본다.

 

그렇기에 나 역시 벽에 박혀 녹이 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내 보자 다짐한다. 언젠가 나 역시 그러한 구부러진 못이 될 것이지만.

 

 

너무 무거운 감정을 털어보려, 시를 읽으며, 시인의 재치와 해학, 철학 그리고 시인은 넓은 마음까지 느꼈던 시, 와~~ 하며 이마를 치게 했던 시 한편도 함께 소개해 본다.

 

경주박물관 앞마당 / 봉숭아도 맨드라미도 피어 있는 화단가 / 목 잘린 돌부처들 나란히 앉아 / 햇살에 눈부시다 //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 / 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 / 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 / 자기 머리를 얹어본다 // 소년부처다 / 누구나 일생에 한 번씩은 / 부처가 되어보라고 / 부처님들 일찍이 자기 목을 잘랐구나

< 소년부처 > 전문

 

비록 다른 종교를 갖고 있지만, 경주박물관에 갈 때마다 그 목 잘린 돌부처들의 모습에 마음이 좋진 않았다. 그런데, 시인의 눈은 역시 다르다. 그 돌부처들에 장난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소년부처를 보는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처럼 아름다운 눈을 갖고 싶다.

 

 

마지막으로 힘겨운 삶의 자리에서도 치열하게 살길 결단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시인의 또 다른 시를 소개한다.

 

개가 밥을 다 먹고 /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 수백 번은 더 핥는다 /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나 /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 없이 다 먹었으나 /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 맛있게 먹어보았나 /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 그릇에도 맛이 있다 /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 밥그릇 > 전문

 

나에게 주어진 삶의 밥그릇을 이제 나 역시 치열하게 핥고 핥아 그릇의 밑바닥까지 맛있게 먹게 되길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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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인 10 당신이 알아야 할 시리즈
서경덕.한국사 분야별 전문가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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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한민국을 대표할 우리의 영웅은 누구일까? 대한민국 하면 떠오르는 영웅은 누구일까? 바로 이 질문에서 서경덕 교수는 이 책,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인 10』 출판을 기획하였다 한다. 서경덕 교수는 우리에게 수많은 영웅들이 있음에도 한국의 영웅들에 대한 대외적인 홍보가 부족하여 우리를 대표하는 영웅이 없다는 자각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세계를 향해 한국의 영웅을 널리 앞서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 영웅을 올바르게 알게 하기 위해 이 책을 기획하고 출간했다 한다.

 

그 말이 맞다. 우리 먼저 우리의 영웅들을 바로 알고, 또한 자긍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울러 이런 우리들의 수많은 영웅들을 세계를 향해 알리고 수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이라 했을 때, 떠오르는 대표 영웅이 없다는 말은 또한 그만큼 우리에게는 뛰어난 영웅들이 많아서는 아닐까? 여기 소개하는 10명의 영웅들은 모두 우리 대한민국을 대표할만한 경쟁력을 가진 분들이다.

 

안중근, 김구, 윤봉길, 안창호, 헤이그 특사, 세종대왕, 이순신, 정약용, 윤동주, 백남준. 아마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웅이 누구라고 생각됩니까?”란 질문에 누굴 뽑을까 망설이다가도 이들 한분 한분의 이름을 들으면, ‘그렇지. 이들이야말로 우리 영웅이지’라고 생각할 법한 분들이다.

 

그래도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뽑으라면? 뭐,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지만, 올해 2014년도의 분위기라면 이순신 장군이 최상위에 오를 확률이 크지 않을까? 하지만, 다른 한 분 한 분도 모두 이에 뒤지지 않는다.

 

조선 최고의 성군이자,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임금님은 당연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의 경우 참 대단하다 싶은 부분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었다. 왕이 된 후에도 경연을 게을리 하지 않고, 어느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신하들이 쩔쩔 맸다니 대단한 열정이다. 개인의 학문적 열정과 능력 뿐 아니라, 빼어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활용함이 뛰어난 리더. 자신과 반대되는 인물조차 등용하는 통 큰 정치를 펼친 성군. 무엇보다 백성들이 사람답게 살도록 애쓴 참 어버이. 왠지 이 책을 읽으며, 마음 한편으로는 자긍심이 일어남과 함께, 또 한편으로는 이 시대에는 이러한 리더가 없음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옴은 어쩔 수가 없다.

 

“나라가 없고서 한 집과 한 몸이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천대 받을 때 혼자만이 영광을 누릴 수 없다.”며 부강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투신한 도산 안창호를 살피며, 오늘 우리는 너도 나도 자신의 욕망을 꿈과 비전이라 포장하며 나아가고 있음이 부끄럽기도 하다.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은 의사가 되어 부자가 되길 꿈꾸는 나라. 인술은 기대하지 않고, 의술을 펼치기보다는 상술을 펼치려는 머리 좋은 아이들. 돈 되지 않고 힘들기만 한 외과 지망생은 없는 의대(물론, 여전히 사명감을 가지고 의대에 가고 의사가 되어 선한 인술을 펼치는 분들도 많다. 그분들껜 대단히 죄송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꼭 그들만 욕할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욕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을 읽으며, 부끄러운 감정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끄러움만이 아닌, 이들 영웅들을 통한 자긍심을 가지고, 우리 역시 닮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본 종살이를 하라고 가르치는 교육은 받아 뭘 하냐며 자퇴하였지만, 적국을 알기 위해 그들의 말을 배워야 한다며 일본어를 혼자 공부하여, 후에 상해 의거 때 일본인 행세를 하며 유유히 행사 장소에 입장하여 거사를 행한 윤봉길 의사의 모습을 닮아 보는 건 어떨까? 이게 참 애국 아닐까?

 

사형전날에도 담담히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한 안중근 의사는 또 어떤가? 단순한 테러가 아닌, 동양평화를 생각하며 의열투쟁을 행한 분들. 이분들의 민족 사랑을 닮아 보는 건 어떨까?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이 있는 예산 충의사에 언젠가 다녀온 적이 있다. 넓은 주차장이 텅텅 비어 있었다. 반면 바로 그 근처의 고급 스파에는 차량이 들어설 수 없을 지경이었다. 물론, 고급 스파에서 쉼과 여흥을 즐기는 분들을 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대조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이러한 책을 출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쉼을 즐기는 분들도 많아야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영웅들을 알고 그들의 마음을 닮아가기 위해 애쓰는 분들도 많아지게 하려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영웅들을 우리의 가슴에 품음으로 우리가 내일의 대한민국이 되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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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 함께 사는 게 뭔가요? - 생각을 키워 주는 어린이 논어 이야기 봄나무 어린이 인문학 시리즈 2
우쭤라이 글, 우잉잉 그림, 고상희 옮김, 임익권 감수.해설 / 봄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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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님, 함께 사는 게 뭔가요?』는 봄나무 출판사에서 출간된 어린이 인문학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이랍니다. 공자님의 <논어>를 쉬운 동화 형식으로 풀어놓은 3권의 책 가운데 두 번째 책입니다. 이 책 안에는 도합 21개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답니다. 공자와 제자들의 토론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놓고 있어, 아이들이 논어의 딱딱한 내용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네요.

 

21개의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몇몇 인상 깊은 가르침이 가슴에 와 닿네요. 몇 가지만 소개해 봅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가르침이 있네요. 배움에 대한 공자의 겸허한 자세를 알 수 있네요. 맞아요. 우린 누굴 만나도 상대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교만함을 버려야 한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죠. 사실, 나 역시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으면서도 상대를 무시하려는 못된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나곤 하거든요. 세 사람을 만나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내가 배울만한 스승이 있음을 언제나 기억하는 참 지혜가 나에게 있길 소망해봅니다.

 

또한 부끄러움을 알게 하라는 가르침도 있네요.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법으로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도 필요하겠죠. 하지만, 그렇게 법으로 통제하는 것보다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된다는 의미랍니다.

 

흥미로우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가르침이네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역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사고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네들이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왜 일까요? 진정 부끄럼을 느껴서일까요? 그렇다면 다행인 거죠. 하지만, 많은 경우 고개는 숙이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재수 없게 걸렸다는 생각을 품거나 또는 두고 보자. 내가 누군데, 감히 나에게 이런 모욕을 줘? 라며 이를 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말을 들으며,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꼭 그네들 뿐 아니라, 우리 역시 부끄러움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정치인도, 지식인도, 종교인도, 경제인도 모두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세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우리 아이들,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만큼은 부끄러움을 아는 아이들로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또 하나 이런 인상 깊은 내용도 있네요. 정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가르침이랍니다. 공자님은 한 나라의 정부가 정치를 해 나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세 가지로 들고 있답니다. 바로 식량, 군대, 신용이 그것입니다. 이 가운데 하나를 버려야만 한다면, 공자님은 군대를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도 또 하나를 버려야만 한다면, 이번엔 식량과 신용 가운데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오늘 우리들이라면 마땅히 신용을 버릴 겁니다. 하지만, 공자님은 말하네요. 식량을 버릴 것이라고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이기 때문이랍니다. 이것 없으면, 다른 것 모두 있어도 그 정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네요.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고, 안보가 제일 중요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이 가르침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네요. 신용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이해하며 힘쓰는 우리 정부가 되길 소망해봅니다.

 

그 외에도 참 많은 가르침이 있답니다. 아이들이 읽고, 그 내용들을 한번 깊이 생각하고, 함께 토의한다면, 우리 아이들의 생각주머니가 많이 커지리라 여겨지는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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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합시다 함께 삽시다 - 생명 평화의 스님 도법 우리 인물 이야기 30
임어진 지음, 김무연 그림 / 우리교육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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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우리교육에서 기획 출판된 <우리 인물 이야기>의 마지막 30번째 이야기랍니다. <우리 인물 이야기> 시리즈엔 이런 설명이 따르고 있네요. “평생을 한 가지 일과 뜻에 매달린 우리 시대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 그처럼 한 가지 사명을 향해 일생을 바친 우리 시대의 인물, 그 마지막 30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도법스님이란 분입니다.

 

이 분은 현재 지리산에 있는 실상사라는 절에서 생명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운동,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답니다. 인드라망 공동체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바탕이 되며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한 마디로 선불교의 연기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사상이랍니다.

 

이처럼 세상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사상을 근거로 스님은 부패한 종단 개혁에 앞장섰으며, 그 이후에는 종단에서의 자신의 모든 권한을 내려놓고, 실상사에서 대안학교를 통해 새로운 배움의 터전을 마련하기도 하고, 지리산 살리기 등 생명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기도 하고, 평화운동을 해나가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운동은 서로간의 마음을 열고 대화를 통해 확장되길 바라고 있답니다. 그래서 타 종교와의 대화창구도 열어놓고 있죠.

 

무엇보다 연기론을 바탕으로 한 생명 살리기 운동은 사실 불교만의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생태가 파괴된다는 것은 결국 그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것이 되거든요.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해나감에 있어 종교적인 차이를 떠나 같은 목표를 향해 함께 대화하며, 함께 일해 나가는 것이 큰 힘이 되리라 생각되네요. 서로의 신앙 확신의 차이를 떠나 옳은 일은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스페인 왕정시대 전성기에 왕들에게 조언을 해주던, 유럽최고 지혜의 대가라 불리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이란 분은 있답니다. 어느 책을 보니, 그 분이 이런 말을 했네요. “주위에는 우리가 더불어 살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없어도 살지 못한다.” 정말 마음에 와 닿는 말이네요. 더불어 살 수 없을 만큼 끔찍이 싫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없으면 내가 살 수 없다는 이 말이 참 마음에 와 닿네요. 도법 스님이 강조하는 연기론과도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고요. 맞아요.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죠. 그렇기에 어쩌면 내가 먼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겠고요.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도법 스님은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닐까요?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 나 한 사람이 평화가 되면, 그것으로 그칠 것처럼 보인다 하지라도 결국엔 그 긍정적 에너지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고, 점차 그 긍정적 에너지는 눈덩이처럼 커져가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도법 스님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네요.

 

도법 스님의 가르침처럼 우리 모두 설령 나와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대화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애쓰는 아름다운 움직임이 확산되길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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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인육 비사 - 肝膽 (간담)
조동인 지음 / 미래지향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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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세종 인육 비사』는 우선 재미있다. 대단히 자극적인 소재이기에 그만큼 흥미롭다. 게다가 우리민족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성군 세종대왕에 얽힌 비사라는 타이틀 자체만으로도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세종대왕 시절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백성들이 인육을 식용하는 이야기, 이것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이 소설은 팩션이다. 실제 세종대왕 당시의 끔찍했던 기근과 역사자료에 남겨진 인육식용에 대한 흔적들을 근거로 픽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주된 인물들은 백정으로서 양반들의 비인간성에 대해 앙심을 품고, 양반만을 골라잡아 먹는 반야산 호랑이 돌쿤과 그 부하들, 이러한 돌쿤을 추격하는 이인손과 착호갑사(세종의 비밀 부대다). 굶주리는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인육을 도살하는 백정 골추. 그리고 골추를 잡아들이는 일을 시작으로 세종의 비밀 임무를 맡는 좌포도청 4조 조장 조배호. 고려 권문세족의 후예로서 엄청난 무예를 자랑하는 악귀 박윤회. 세종의 지시로 팔도 인육사건을 조사하는 전리 김의정. 그리고 뭔가 모든 사건들의 배후에서 엄청난 음모를 꾸미는듯한 예조판서 정숙호와 그 일당들. 세종과 장영실 등이 소설을 채워나가는 주요인물들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날줄씨줄이 되어 촘촘하게 엮여나간다.

 

아울러 그 잔상이 오랫동안 남는 굶주림으로 인해 죽어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죽여 독에 담기는 슬프고 끔찍한 이야기.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해 자신들의 허벅지를 잘라 봉양하지만, 결국 그 일로 인해 굶주린 백성들의 표적이 되는 스님들 이야기 등이 있다.

 

원한으로 인해 양반의 인육만을 골라먹던 돌쿤은 이제는 양반의 우두머리 왕을 먹기 위해 도성으로 떠나게 되고, 한편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등용의 길이 막히자 엄청난 살육의 악행을 저지르며 나라를 뒤집으려는 박윤회의 칼날 역시 도성으로 향하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예조판서 정숙호를 중심으로 뭔가 조직적 인육 거래의 냄새가 풍기는데. 과연 기근을 배경으로 한 조직적인 인육 거래의 실체는 무엇이며, 이들로 인해 도성에는 어떤 풍파가 몰아치게 될까?

 

이 소설에는 [간담]이란 부제가 달려 있다. 왜 부제가 “간담”인지는 소설을 마지막까지 읽어봐야 알 수 있다. 물론, 대단히 촉이 좋은 분들은 그전에도 추리해낼 수도 있겠지만, 실상 쉽진 않으리라 여겨진다.

 

대단히 자극적인 소재로 흥미진진하게 그려지는 소설, 『세종 인육 비사』는 책을 덮은 후에도 상당 기간 그 잔상이 남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그만큼 강한 각인과 재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덮고 이런 생각을 해본다. 대의가 무엇일까? 대의를 위한다는 확신이 있다 할지라도 그 확신이 잘못된 가치관에 의한 것이라면 엄청난 죄악과 불행을 낳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말이다.

 

아울러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 판단하는 것 역시 지양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진짜 악귀는 누구일까라는 질문도 던져본다.

 

세종을 지켜내기 위해 벌인 충성스러운(?) 행동들이 과연 정당할까? 아울러 왕을 위해 백성이 존재하는가? 백성을 위해 왕이 존재하는가?

 

아무튼 무척 재미난 소설이다. 무척 자극적이기도 하고 말이다. 작가는 소설을 이렇게 끝마친다. “이제 조선은 다시 싹을 틔울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시 일어설 것이다.”

 

이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은 조선초이다. 그런데, 웬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시 일어설 것이다”일까? 사실 대단히 어색하다. 어쩌면 소설 속 이야기라기보다는 오늘 우리를 향한 작가의 바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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