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추는 거울 - 지혜.자비.용기.감사의 마음을 길러 주는 이야기
팀 말닉 지음, 캐티 그린 그림 / 담앤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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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다면, 거울로 비춰봐서 혹 내 마음속에 먼지가 묻었다면 깨끗하게 지울 수도 있고, 혹 내 마음에 살이 비정상적으로 찐 부분이나, 홀쭉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을 다시 채울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여기 이처럼 마음을 비춰 볼 수 있는 동화가 있네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란 책이랍니다. 도합 5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답니다. 자비심을 길러 주는 이야기인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괴물」, 상상력을 키워 주는 이야기인 「거장 화가」,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지혜를 담은 이야기인 「늘 마음이 변하는 소녀, 폴리」,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이야기인 「박쥐 오스왈드 이야기」, ‘지금, 여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길러 주는 이야기인 「바다에서 만나는 무지개다리」가 그것이랍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이야기인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괴물」은 자비심을 길러 주는 이야기라는 설명이 붙어 있네요. 자비심도 자비심이지만, 이 이야기는 편견에 대한 것을 돌아보게 하네요.

 

한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있는 괴물이 있었답니다. 외모와는 다르게 아주 착한 괴물이고요. 그런데 괴물을 무찌르는 것을 일생일대의 사명으로 알고 있는 한 기사가 괴물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싸움을 신청한답니다. 물론 괴물은 싸우고 싶지 않답니다. 그래서 이 결투에서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괴물은 그저 기사를 꼭 껴안아 준답니다. 그리고 결국에 둘은 친구가 되어 함께 차를 마시는 사이가 된답니다.

 

우린 외모로 인한 편견을 가지고 상대를 대할 때가 많죠. 이것 역시 내 안에 낀 때가 아닐까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을 통해, 내 마음을 비춰봤을 때, 혹 내 안에 이러한 얼룩이 있는 아닌가요? 그렇다면 그 얼룩을 발견하고 깨끗하게 지울 수 있다면 좋겠네요.

 

또한 네 번째 이야기인 「박쥐 오스왈드 이야기」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이야기인데, 무엇보다 우리에게 도전의식을 고양시켜주는 이야기네요. 밤에만 활동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던 박쥐들 가운데, 다른 생각을 품고 있던 박쥐가 있었답니다. 이 박쥐가 바로 오스왈드인데요, 오스왈드는 다른 삶에 대한 꿈이 있답니다. 바로 어둠 너머의 세상 즉 낮이 어떤지 알고 싶은 마음이었답니다. 다른 박쥐들이 생각할 때는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죠. 하지만, 결국 오스왈드는 점차적으로 아침에 동굴로 돌아가는 시간을 늦추며, 결국에는 아침의 빛을 견뎌내며, 다른 박쥐들은 볼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낮의 세상을 누리게 된답니다. 나중에는 오스왈드의 절친인 수 역시 도전하게 되고요.

 

우리는 지레 할 수 없는 한계를 그어 넣고 그 안에서만 만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네요. 내 안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보다는 익숙한 것 안에서만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되네요. 세계적 자동차인 포드 자동차의 설립자인 헨리 포드는 이런 말을 했답니다. “인간이 해낸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발견은,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두려워하던 일조차도 사실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 역시 익숙한 것보다는 그 너머에 있는 세상을 꿈꾸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살아가는 건 어떨까요?

 

반대로 ‘지금, 여기에’ 감사하는 마음을 길러 주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마지막 이야기인 「바다에서 만나는 무지개다리」가 그것이랍니다. 왠지 분위기가 묘한 이야기인데요. 바다에서 무지개다리만을 쫓아 살아가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찾고, 누리며, 감사하는 삶이 된다면 좋겠네요.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비춰보면, 우리 역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여기’에서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누릴 수 없는 무지개다리를 쫓아 살아가느라 소중한 것들을 잃고 사는 삶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러한 예쁜 이야기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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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언덕의 안개
김성종 지음 / 새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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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작가들의 추리소설들이 참 많이 접하게 된다. 그만큼 일본추리소설 작가들의 활동이 왕성하며, 또한 우리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에 반해, 우리의 추리소설은 그 숫자적인 면에 있어 빈약한 느낌이 없지 않다. 여기 우리 한국 추리소설의 대부라고 불리는 김성종 작가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달맞이언덕의 안개』란 제목의 단편연작소설인데, 작가가 2014년 1년 동안 부산일보를 통해, 매주 한편씩 단편소설을 연재한 것 가운데 상반기의 작품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출간한 것이라 한다. 작가는 신문에 연재할 당시 지면상 이유로 생략한 부분들까지 다시 살려내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홈스 선생이라 불리는 원로 추리소설 작가인 노준기란 인물이다. 노준기는 언제나 부산의 달맞이언덕에 있는 ‘죄와 벌’이라는 카페에서 커피와 포도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는 안개가 빈번하게 끼는 달맞이언덕에 사건이 발생하면 그런 사건들에 슬며시 개입하는 캐릭터다. 노준기의 애인은 다름 아닌 ‘죄와 벌’의 노처녀 여주인 포란 여인이다.

 

연로한 작가이며 겁이 많은 캐릭터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전재산을 털어 캠핑카를 구입하여 타고 다니는 저돌성 내지 앞뒤 안 가리는 모습, 일견 무책임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런 홈스 선생 노준기는 ‘죄와 벌’에서 온종일 포도주에 취해 살아가며, 나이 차이가 나는 애인의 육체에 탐닉하기도 한다.

 

이런 노준기의 활약이 담긴 25편의 단편들로 이 책은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참 재미나다. 물론 추리소설이란 전제하에 접근할 때, 조금 실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흔히 추리소설에서 기대하는 냉철한 판단력, 추리력으로 진행되는 내용이 솔직히 별로 없다. 게다가 많은 이야기는 추리소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지 주인공이 추리소설작가라는 점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렇기에 추리소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접근할 때, 어쩌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추리소설로서의 기대감 없이 이 책을 접근한 다면, 굉장히 재미난 책읽기가 될 것이다. 특히, 노준기가 어느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축사를 부탁받고 참가하여 연설하던 중 똥을 누는 장면, 그래서 출판기념회를 난장판으로 만들던 이야기인 「안개 속의 초라한 자화상」은 정말 배꼽을 잡고 웃다가 눈물을 흘릴 만큼 재미난 이야기다.

 

25편의 이야기들 모두는 제목에 ‘안개’가 등장하며, 실제 이야기 역시 꼭 안개가 등장한다. 이렇게 작가가 이야기 하는 안개는 때론 관능적이기도 하며, 때론 음침하기도 하다. 때론 안개 속에 범죄의 더러움을 감추고 있기도 하며, 때론 죽음마저 품고 있다. 또한 때론 안개 속에 눈물이 있으며, 삶의 회한이 담겨 있기도 하다.

 

또한 작가는 안개 속에 시대적 아픔을 담기도 한다. 특히, 우리 현대사 가운데 암울한 역사를 작가는 고발하기도 한다. 정권의 공작과 고문, 그리고 빨치산과 미전향 장기수 문제까지 언급하기도 한다.

 

이 책에 실려 있는 25편의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별개의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본적으로 이야기는 주요 등장인물이 같으며, 그 등장인물들이 순차적으로 사건들을 접하고 있는 구성이며, 실제 내용 가운데는 다른 에피소드의 내용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노준기의 가정사에 있어 오류가 있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찢어진 안개」에서 노준기의 아버지는 소학교 교장이며, 큰형은 소학교 교사로 등장하지만, 어린 노준기를 대신하여 인민군으로 전쟁에 참여하여, 후에 빨치산이 되고, 미전향장기수로 수십년을 복역한다. 그런데, 「안개 속으로 사라진 여인」에서 노준기의 아버지는 대학교수로 언급된다. 그리고 큰 형은 어린 시절 헤어졌으며, 추후에 알아본 결과 월남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것으로 나온다.

 

또한 노준기의 아내 역시 그러하다. 「여보! 안개가 부르는 소리」에서 아들을 낳았던 첫 번째 아내는 난소암으로 32살에 죽는 것으로 나오지만, 「밤안개」에서는 아내가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후에 흑인의 아내가 되는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임으로 주인공인 노준기의 가정사에 통일성을 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사소한 오류가 있음에도(물론 어쩌면 작가에게 이 부분은 아예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달맞이언덕의 안개』를 읽어가는 시간은 김성종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기쁨이 있던 시간이었다. 한국추리소설 발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품고 있는 노작가 김성종 작가를 통해, 한국추리소설의 비약을 기대해본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인 『해운대, 그 태양과 모래』 역시 빨리 출간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품어 본다.

 

언제 기회가 되면 부산의 달맞이언덕을 찾아 작가가 운영하는 추리문학관을 방문해 보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 실제 있는 카페 ‘죄와 벌’에서 커피한잔 마시며, ‘도망간 여자’를 홀짝거리는 홈스 선생 노준기를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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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이빨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10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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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르센 뤼팽 전집』의 첫 10권 가운데 마지막 이야기인 『호랑이 이빨』은 어떤 모험이 기다릴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연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억만장자 코스모 모닝톤은 갑자기 사망하게 되는데, 그가 사망 직전 작성한 유언에 의하면, 자신의 전재산 4억 프랑 가운데 2억 프랑을 자신의 어머니의 동생들 가족에게 상속하게 하는데(그 대상이 몇 명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정해진 시간 안에 그들을 찾아 상속하지 못할 경우, 2억 프랑은 자신의 절친인 루이스 페레나(『서른 개의 관』에서도 사용하였던 뤼팽의 이름이다)에게 상속하라는 내용이다. 그리고 뤼팽이 바로 그러한 상속을 맡아 진행시킬 것을 부탁하며.

 

이렇게 해서 엄청난 액수(8편인 『황금 삼각형』에서 어마어마한 분량의 황금이 3억 프랑으로 나오니, 2억 프랑이 어느 정도일지는...)의 재산상속이 걸려있는데, 놀랍게도 그 상속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제거되어진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의심은 루이스 페레나(뤼팽)에게로 향하게 되는데, 과연 뤼팽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게 될까? 그리고 2억 프랑을 갖게 될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 이야기에서 숨어 있는 악당은 대단한 천재로 설정되어 있다. 뤼팽을 번번이 궁지로 몰아넣는 그런 능력자. 그러면서도, 전편 『서른 개의 관』의 악당인 보르스키만큼 냉혈한이다. 아니, 『호랑이 이빨』에 등장하는 악당은 한 번도 본인이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고도 억만 장자인 코스모 모닝톤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에 더 나쁜 악당 녀석이다. 물론, 뤼팽은 더 뛰어나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에서 또 하나 등장하는 새로운 이야기는 뤼팽이 왕국 건설을 꿈꾼다는 거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들에서는 어떤 작용을 할지도 궁금해진다. 그리고 뤼팽의 사랑이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기도 한다(물론, 앞에서도 결혼하는 경우가 몇 차례 있었지만). 이런 뤼팽의 사랑이 때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에 눈이 멀어 사리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느낌을 계속 받기에.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는 이 이야기 『호랑이 이빨』을 통해 비로소 뤼팽은 음지에서 양지로 버젓이 자리를 옮긴다는 점이다. 여태껏 영웅적인 행동을 하였다 할지라도, 음지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활동하였으며, 드러내더라도 비공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냈다면, 이 사건을 통해, 뤼팽은 이제 공식적으로 양지에 존재하게 된다. 물론, 모두가 뤼팽임을 알고 있지만, 공식적인 이름은 루이스 페레나란 이름으로.

 

이제 뤼팽 전집 10번째 책의 책장을 덮는다. 뤼팽은 절대자적인 능력을 가진 사랑스러운 악당의 이미지에서 시작하여, 한 때는 악당에게 절절 매는 우리와 별반 차이 없는 이미지, 그리고 또 다시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구원자(위기에 처한 남을 돕는)의 이미지로 변신하였다. 그런 그가 이제 뤼팽 전집 하반부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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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개의 관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9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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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뤼팽이 그의 본업(?)을 포기했나 보다. 뤼팽은 이제 더 이상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이 아니다. 이제 뤼팽은 누군가의 구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에서 구해주는 ‘구원자’ 내지 ‘슈퍼영웅’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르센 뤼팽 전집』 아홉 번째 책인 『서른 개의 관』이 그렇다.

 

이 이야기는 여태껏 보여줬던 뤼팽 시리즈 여느 책보다 기괴하고 신비주의적인 분위기(아니 어쩌면 음산한 분위기라고 해야 할 지도)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런 분위기는 작가가 처한 당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하던 당시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다(연재와 출간은 전쟁 후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렇기에 음산한 분위기와 구원자의 이미지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른 개의 관』은 여자 주인공 베로니크가 14년 전 잃어버렸던 아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 ‘서른 개의 관’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사레크 섬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이곳 사레크 섬은 켈트족의 전설적인 부족인 ‘기적의 돌’을 가진 부족이 최종적으로 이주해 온 곳으로, 후에 드루이드교(맞는지 모르겠다)가 자리 잡은 곳이며, 또한 이 드루이드교에 기독교가 습합되어진 독특한 미신적 종교가 계승되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기괴한 이야기는 켈트족의 전설인 ‘기적의 돌’과 함께 또 하나의 예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15세기 중반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 토마 수사의 허무맹랑한 예언인데, 이 예언이 이 이야기 『서른 개의 관』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그런 공포스러운 분위기의 이야기다(이야기 속에서 토마 수사의 예언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물론 이 이야기에 더하여 사레크 섬의 주민이자 이야기 초반에 죽게 되는 마르녹 영감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진다).

 

이 이야기에서는 여태껏 등장한 여느 악당보다 강렬한 악당인 보르스키가 등장한다. 이 보르스키는 여자 주인공인 베로니크의 남편으로 완전 사이코패스다. 이 이야기 속에서 29명이나 살인하는 살인광이기도 하다. 이 보르스키의 살인행각은 바로 토마 수사의 허무맹랑한 예언을 이루어가는 형식으로 행해진다(토마 수사의 예언은 사실 엉터리예언이었다. 하지만, 보르스키가 그 예언을 실제 믿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광기로 그 예언을 이루려 하는지 몰지만, 아무튼 보르스키에 의해 예언은 실제 이뤄지기에 참 예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보르스키의 존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이 이루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이 범인은 처음에는 베로니크의 아들 프랑수아와 후에 베로니크와 맺어질 스테판이 행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더 괴기스럽다. 이들은 평소 천사와 같은 인물이었다는 주변의 증언에 의해서 말이다)이 토마 수사의 예언 그대로 이루어지기에 더욱 기괴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이런 기괴한 사건들, 끔찍한 사건들이 이루어지는 원인은 물론, 보르스키라는 절대 악당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끔찍한 사건들을 당시 실제 일어나고 있던 전쟁과 연결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모든 게 밝혀질 거야. 이런 잔혹한 수수께끼 뒤에는 사실 아주 단순한 원인이 있을 테지. 겉보기에는 초자연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랑 똑같은 인간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범죄일 뿐이라고, 모든 일은 분명 전쟁이 일어났기에 가능했던 거야. 전쟁은 이런 일이 벌어질 만한 독특한 환경을 만드니까 말이야...”(122쪽, 베로니크의 독백)

 

“이번 사건은 미친 사람의 행동이 불러운 결과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광기와 방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고요. 전쟁이 벌어진 탓에 그런 괴물 같은 인간이 마음 놓고 안전한 곳에 틀어박혀 그 따위 범죄를 고안해 실천에 옮길 수 있었던 겁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괴물이 자신의 망상을 끝까지 실현할 여유가 없지요.”(407쪽, 루이스 페레나-아르센 뤼팽-의 말)

 

『서른 개의 관』은 스토리 자체도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어지며 또한 반전(反戰) 메시지, 그리고 신화의 어우러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제 다음 이야기에서 뤼팽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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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시간 하늘의 시간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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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어느 누구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 그리고 모두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은 동일하다. 부자라고 해서, 힘이 세다고 해서,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하루에 25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 동일하게 24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어떤 이는 24시간을 마치 48시간처럼 사용하는 반면, 어떤 이는 24시간을 12시간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이 시간의 상대적 개념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시간의 개념이 나온다. 바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다. 크로노스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절대적 시간이며,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향하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다. 즉 연대기적 시간이 크로노스이다. 반면 카이로스는 연대기적 시간이 아닌, 어떤 순간, 어떤 사건이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어떤 순간, 때가 카이로스다. 그리고 이 시간은 느낌의 시간이기도 하다. 예를 든다면, 똑같은 한 시간(크로노스)을 보낼 때, 사랑하는 연인과 보낸다면, 이 시간은 마치 몇 분처럼 여겨질 것이며, 정말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사람과의 1시간의 시간은 마치 천년과 같이 느껴질 것이다. 이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다.

 

이렇게 구분되어지는 시간을 신앙 안에서는 또한 이렇게 정의한다. 크로노스는 세상의 시간이며,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땅의 시간이며, 카이로스는 하늘의 시간이다. 그렇기에 특히 카이로스는 하나님과의 관계 아래서 정의되어지는 시간이다.

조정민 목사의 신작 『땅의 시간 하늘의 시간』은 바로 이 시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에 대해 말한다. 아마도 저자가 신앙공동체 안에서 행한 설교를 정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강조하는 바를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구원이라는 것은 땅의 시간에서 하늘의 시간으로의 초대, 인간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의 초대, 크로노스에서 카이로스의 초대다. 물론, 우리는 땅의 시간인 크로노스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린 여전히 크로노스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안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구원이란 내 시간이 끝나고 하나님의 시간이 시작되는 사건이다. 이렇게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시간의 우선순위를 바로 알아야 하며, 영원이라는 하나님의 시간을 알고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크로노스)은 언젠가 끝이 있음을 기억하며, 종말론적인 시간을 살아가야 하며, 시간을 아끼며 사명의 부지런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크로노스의 시간, 즉 인간의 시간 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일이 주어졌다는 것이고, 그 일을 해야 할 책임과 소명이 주어졌다는 뜻이기에, 우리는 인간의 시간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우리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매 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저자는 이처럼 크로노스의 시간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옮겨가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시간이 내 시간 속으로 찾아오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내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닌, 내 시간 위에 하나님의 시간이 덧입혀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옮겨간다고 하면 자칫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릴 하나님의 시간을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각자 개인의 시간이 끝났을 때, 온전히 하나님의 시간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구원은 장차 죽어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역시 누리는 것이다(물론 저자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내야 함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저자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저자의 말이 틀리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옮겨감이란 어감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 땅의 시간에 하늘의 시간이 덧입혀져서, 이곳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구원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시간을 누리는 사람들은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관점이 바뀌게 되고, 시간을 아끼며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제 우리 땅의 시간 속에서 하늘의 시간을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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