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몇 년 동안 읽은 로맨스소설 중 추천할 만한 몇 권을 적어본다. 거의 질이 보장된 것들만 읽은데다가 별로인 책은 중도에 그만뒀기 때문에 아래 책들 외엔 거의 읽은 것 자체가 없지만.  

 

1. 레디메이드 퀸(어도담 저)  ★★★★★

 

 

 

 

     

 

 

 

 

 

 

시작은 매우 전형적인 판타지로맨스물 같으나, 뒤로 갈수록 로맨스소 설이라기보다는 정치소설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치 이야기가 정치(精緻)하게 다루어진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다. 문장이 담백하면서 서정적인 것이, <하얀로냐프강>이 조금 떠오르기도 한다. 특히 결말이 압권이다. 이 정도로 여운이 남아 계속 기억되는 로설은 처음 본다.

 

2. 타임 트래블러(윤소리 저)  ★★★★★

 

                                 

        

 

 

 

 

 

 

 

 

 

 

시간여행자라는 흔한 소재를 우리나라 역사와 연결하여 맛깔나게 그려냈다. 전체 구성이 탄탄하고 자료 조사를 많이 한데다가 필력도 좋다. 2부인 '얼굴없는 미인도'가 카카오페이지에서 기다리면무료로 올라왔기에 보고있는데, 1부와 달리 기다리면무료로 찔끔찔끔 봐서 그런지 몰라도 전개가 느리게 느껴지는 점은 있지만, 원체 글을 재미있게 쓰는지라 꾸준히 보고 있다. 2부에서는 역사 속의 실존인물을 등장시키고 있어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진진하다.

 

3. 정의 각인(선지 저)  ★★★★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조각가와 그의 제자로 들어가기 위해 남장을 한 여자의 이야기. 로맨스 부분은 전형적이지만 소재가 독특하고 자료조사를 많이 한 것 같아 읽을 맛이 난다.  

 

4. 루시아(하늘가리기 저)  ★★★★

 

 

 

 

 

 

 

 

 

 

 

 

 

 재밌다. 엄청 야하다. 끊임없이 베드씬이 나오는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지겨워서), 기본적으로 문장이 좋은데다가 상황과 대화를 다양하게 매칭하여 지겹지 않게 잘 썼다. 기본 내용도 전형적으로 보이면서도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카카오페이지 기다리면무료에 같은 작가의 <꽃의 노래>가 올라왔기에 보고 있는데 이 소설에는 베드씬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전체관람가니까) 재미있는 걸 보니 확실히 베드씬으로(만) 승부하는 작가는 아니다.

 

5. 달을 사랑한 괴물(김지우 저)  ★★★★

 

 

 

 

 

 

 

 

 

 피폐물이라는 용어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체험판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헉. 구매하여 다음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내용전개가 매우 독특하다. 기본적으로 이세계로 간 여주가 아무리 고생을 한다고 해도 고생의 내용이 전형적이고 적어도 외모는 아름답기 마련인데, 이 책의 여주는 아름답지 않은데다 건강하지도 않다. 정말 불쌍하다. 이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중도포기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계속 흥미를 끌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6. 비정규직 황후(한민트 저)  ★★★★

 

 유치찬란하게 느껴지는 제목과 표지 일러스트 때문에 읽지 않을 뻔했던 소설. 카카오페이지에 있는데 출간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제목, 표지와는 달리 담백한 문체와 남장여주임에도 남장소설에서 전개되기 마련인 뻔한 로맨스보다는 오히려 여성으로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어 결국 여성의 지위향상에 이바지하게 되는 여주의 활약상에 치중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통쾌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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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닉 2019-09-18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됀것 같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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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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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었던 <침묵의 봄>을 떠올리게 하는 기사를 읽었다.
경향신문에서 시리즈로 기획한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 - 세번째 인물 ‘반다나 시바‘와의 인터뷰 기사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761102&sid1=00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763152&sid1=001

과학자로서 농부이자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풀뿌리민주주의, 에코페미니즘을 주창하면서 유기농사를 통해 지구를 살리려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침묵의 봄>에서 말한 화학물질의 공격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의 문장은 그가 ˝올바른 행동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실패란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고 해야 함에도 하지 않을 때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인용한 인도경전의 글귀다. 인상적인 주장이어서 줄을 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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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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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1가구당 대개 5에이커 정도의 경작지를 가지고 있는데 여유가 있는 가구는 10에이커 정도를 경작하기도 한다. 적정한 경작지 면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일할 수 있는 가족의 수이다. 대략 한 사람당 1에이커 정도가 그 적정 면적인데 이곳 농부들에게 그 이상의 땅은 소용이 없다. 기본적으로 이곳 사람들은 경작하지 못하는 농지를 소유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 53쪽

이 지역에 있는 모든 마을의 입구에 있는 `초르텐(Chorten)`이라 불리는 이 석탑은 체스판의 `폰`처럼 생겼는데 마치 거대한 산이 땅에서 우뚝 솟아 올라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통 석회석과 진흙을 섞어 만든다는 이 석탑은 20피트 정도의 높이인데 윗부분으로 갈수록 좁아져 끝이 뾰족한 첨탑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이 석탁의 모양은 불교 교리의 기본을 상장한다고 하는데 탑 윗부분의 태양을 안고 있는 초승달은 생명의 단일성, 이원성의 종식,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생명은 결국 하나라는 의미라고 한다. 완전히 다른 것으로 여겨지는 해와 달이 그렇게 연결되어 있듯 세상 모든 것이 바로 그렇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 61, 62쪽

인간들이 도울 수 없는 곳에서
신들이 우리를 돕게 하소서. - 70쪽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어떻게 그토록 까다로운 환경 속에서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검약`이라는 말의 뜻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서구에서 이 `검약`이라는 말은 대개 자물쇠가 채워진 음식 창고를 지키는 나이 든 아주머니를 연상시키지만, 이곳 라다크에서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른다. 그것은 풍요의 기본이 된다. 한정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아껴쓴다는 것은 인색함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아주 적은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것. 바로 그것이 `검약`의 본래 의미라 할 수 있다. - 74, 75쪽

시간을 재는 경우에도 느슨하고 여유롭게 잰다. 1분 단위로 시간을 측정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내일 낮에 찾아올게" 혹은 "저녁쯤 찾아올게"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라다크 사람들은 그렇게 시간에 대해 넉넉한 여유를 남겨 놓는 것이다.
라다크 사람들의 언어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표현들이 많이 있다. `공그로트(gongrot)`는 `어두워진 다음부터 잠잘 시간까지`라는 뜻이고 `나이체(nyitse)`는 `해가 산꼭대기에 걸려 있는 한낮`을 말한다. 또 `새의 노래`라는 뜻의 `치페치릿(chipe-chirrit)`은 해가 뜨기 전 새들이 지저귀는 이른 아침을 뜻한다. 이 모두가 넉넉하고 친숙한 느낌을 주는 표현들이다. - 93쪽

전통적인 라다크 사회에는 사람들이 갈등을 피해갈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장치로 이른바 `자발적 중재자`라는 것이 있다. 양자 사이에 어떤 형태로든 의견 차이가 생기면 제3자가 거기서 조정 역할을 한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그리고 어떤 사람이 관련되어 있든 그에 맞는 중재자는 항상 그곳에 나타나는 것 같다. 그런 일은 타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그 중재자라는 것은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찾는 대상은 아니다. 상황이 일어나는 곳에 있는 어느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중재자이다. 누나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그곳을 지나가던 사람일 수도 있다. 나는 심지어 다섯 살 정도 된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그런 중재자가 나타나 언쟁을 하던 다른 아이들 사이를 조정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다투던 두 아이는 기꺼이 중재하는 아이의 말을 들었다. 갈등보다는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제3자의 중재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 113쪽

라다크의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무한정의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 그런 것이 서양 사람들에게는 어린아이를 `버리는 것`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 라다크의 아이들은 다섯 살 정도만 되어도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의식을 배운다. 이들은 어느 정도 힘만 있어도 자기보다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보살핀다. 이들은 결코 자기의 또래집단끼리 떨어져서 생활하는 일이 없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갓난아이에서부터 증조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생활한다. 다시 말해 라다크의 아이들은 사람들 사이의 주고받는 관계의 사슬 속에서 자신이 그 한 부분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성장하는 것이다. - 145쪽

라다크에 처음 왔을 때 나에게 제일 강한 인상을 남긴 것 가운데 하나는 여성들의 얼굴에 피어 있는 환한 미소였다. 라다크의 여성들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남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농담을 주고받을 때도 거리낌 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어린 소녀들은 때로 수줍음을 보이기도 했지만 성숙한 여인들에게는 자신감과 개성, 위엄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보다 먼저 라다크에 와 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도 이곳 여성들의 강력한 파워와 확고한 지위에 대한 이야기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 근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균형은 불교 교리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어느 승려의 말을 인용하자면 한 마리의 새가 날기 위해선 두 날개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처럼 지혜와 자비심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지혜의 상징이고 남성은 자비심의 상징이다. 그 둘이 함께함으로써 불교의 근본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 149 내지 151쪽

"(...) 중요한 건 그 사람 내면이 어떤가 하는 거예요. 외모보다 성격이 더 중요하지요. 라다크에는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라는 말이 있어요." - 153쪽

불교 교리의 핵심을 이루는 것 중 하나는 이른바 `공(空)`의 철학이다. 처음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해를 거듭하며 타스 라브기아스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
"(...) 어떤 대상 하나를 예로 들어보지요. 이를테면 마루를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당신은 나무를 다른 사물과 구분하고, 정의를 내림으로써 나무의 본질에 다가서려고 합니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그 나무는 독립된 실체가 아닌 것이 됩니다. 대신 그것은 관계의 사슬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이지요. 나뭇잎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이나 그것을 흩날리게 만드는 바람 그리고 그것을 지지해 주고 있는 토양 등 그 모든 것이 나무를 구성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궁극적으로 우주 만물이 바로 나무라는 존재의 실체를 구성하고 있는 본질인 것입니다. 각각의 존재는 절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그 본질은 결코 같은 상태로 머물지 않고 매순간 변화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공`의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각각의 사물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 155 내지 157쪽

만일 라다크 사람에게 `레에 가고 싶으세요? 아니면 그냥 마을에 머물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그는 분명 `레에 가면 좋을 것 같네요. 그런데 안 가더라도 좋을 거예요.`라는 식으로 대답할 것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일상의 음식보다 잔치를 더 좋아하고,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을, 아픈 것보다는 건강한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보여주는 기쁨의 모습과 마음의 평화는 적어도 외부 환경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특성들은 그들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만족이라는 것은 자신이 삶의 흐름에 있어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이해하면서 그것과 함께 여유롭게 흘러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긴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 비가 쏟아진다 해도 굳이 참담한 느낌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신이 그런 것을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그런 경우 `굳이 불행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지요`라는 반응을 보이리라는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 178,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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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가 일자리를 잃고 내 처자식의 밥 세 끼를 포기해야 하는 것. 이것이 도대체 '개혁'이란 말인가. 개인의 삶은 구조의 붕괴와 더불어 부수적으로 소멸돼야 하는 비눗방울 같은 것인가. 그렇다면 이 금융자본주의의 구조 속에서 개인은 무엇이고 개인의 가정은 무엇이며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개인의 삶을 제물로 삼고 다시 일어선다는 경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세차가 문제가 아니라, 세차를 해서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넉두리가 그의 울분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의 울분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밥의 생물학적 본질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것은 무조건 먹어야 하는 것이며 안 먹으면 죽는 것이다. 밥 세끼의 문제를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그 본질의 비논리성을 지적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고통 앞에서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진부한 잠언은 그야말로 위선이거나 허위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제도 안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자신의 노동과 피로를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그나마 정직할 것이었다.  (31쪽, '밥이란 무엇인가' 중)

 

2. 이영자는 재능 있는 연예인이지만 뚱뚱한 이영자는 뚱보에 대한 이 사회의 혐오와 모멸을 은연중에 대리만족시켜 줌으로써 인기를 누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렇게 얻어지는 인기가 그 여자의 내면에서 참혹한 상처로 작용했던 모양이다. 뚱뚱한 여자를 집단적으로 혐오하는 이런 미학적인 사회에서 그 뚱뚱한 여자에게 날씬해지고 싶은 비원이 있었다면, 수술을 했건 운동을 했건 간에 나는 그 여자가 날씬해진 것을 축하한다. 살을 빼서 날씬해진 여자를 상대로, 그 여자가 운동을 해서 살을 뺐느냐 수술로 살을 뺐느냐를 검색하고 입증하는 일도 언론의 사명일 수 있다는 것은 끔찍하다. (44쪽, '도덕적인 분노에 대해' 중)

 

3. '국민정서'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매우 비논리적인 것이라야 마땅하다. 내가 보기에는 내 주변의 나처럼 못난 좀팽이들은 안보도 원하고 통일도 원하고 주권수호도 원하고 군대가 군대답기를 원하고 평화도 원한다. 좋다는 것을 다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먹고사는 일이 좀더 수월해지기를 원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헛소리해대듯이 어느 한쪽 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정치적 욕망을 위장해 놓고서 벌이는 이런 난장 싸움판에 '국민정서'를 끌어들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다. 없는 '국민정서'의 허깨비를 만들어서 소란을 떨고 싸움질을 해대면 세상은 견딜 수 없이 무의미해진다. (60쪽, "'국민정서'의 허깨비" 중)

 

4. 나이를 겨우 먹어가니까,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이라면 몰라도 세상을 향하여 내놓을 수 있는 말이란 그다지 많지 않고 또 쉽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쓸쓸했지만,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세계는 무수한 측면을 갖는다. 그 측면마다 하나의 독립된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들여서 겨우 어떤 진술을 시도할 때 그 진술과 반대되는 또다른 진술이 성립되어 가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그런 회의가 나이 든 사람을 말더듬이로 만든다. (67-68쪽, '말하기의 어려움' 중)

 

5. 나는 개별적 삶의 구체성을 배반하거나 천대하거나 또는 그것을 추상화해버리는 모든 이론과 정책은 모두 사기극이라고 믿는다. 도덕인 인간의 개별성과 개별적 존재의 구체성 위에서 논의될 수 있을 뿐이다. 무너진 공가 속을 기웃거리며 떠난 사람들이 버린 가재도구를 뒤적거릴 때 분노와 슬픔으로 치가 떨렸다. 공가에 살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나. 버리고 떠난 사람들의 고통은 어떻게 분담되었나. 도대체 누가 그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졌다는 말인가. 경제발전의 학설과 위기극복의 정책들은 단 한 번이라도 그들을 개별적 존재로 이해한 적이 있었던가. (82쪽, '개 발자국으로 남은 마을' 중)

 

6. 모든 언어는 다른 언어에 의하여 부정당할 수 있다는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 언론과 공론의 기본윤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리 설정된 사유의 틀이나 논리의 질서 속에 이 복잡하고 중층적인 세계를 강제로 편입시켜서 일사불란한 논리를 전개하는 언론행위는 별 가치가 없어 보인다. (...) 설득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언론의 윤리이다. (97-98쪽, '언론의 부자유가 언론의 자유다' 중)

 

7. 회사에서 월급을 몽땅 온라인으로 마누라한테 보내니까 돈 구경하기도 힘들다. 원고료로 받은 10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마누라 몰래 쓰려고 책갈피 속에 감추어놓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맹자』속에 넣었다가, 아무래도 옛 성인께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다른 책으로 바꾸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맹자속에도 없고,『공자』속에도 없고,『장자』속에도 없고, 제자백가서와 동서고금을 모조리 뒤져도 없다. 수표를 찾으려고『장자』를 펼쳐보니 '슬프다, 사람의 삶이란 이다지도 아둔한 것인가! 외물에 얽혀 마음과 다투는구나'라고 적혀 있어 수표 찾기를 단념할까 했으나 또 그 다음 페이지에 '무릇 감추어진 것치고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내 언젠가는 기어이 이 수표 두 장을 찾아내고야 말 터이다. (105쪽, '돈 ·오카네 ·머니' 중)

 

8. 누구나 다 예외 없이 죽어야 한다는 보편적 종말이 나의 개별적이고도 구체적인 죽음을 위로할 수는 없다. (...) 나는 살아있기 때문에 죽음을 상종할 수가 없고 죽음에 관하여 말할 수 없다. 나는 다만 그 설명되지 않는 죽음이 살아 있는 동안의 시간을 끝없이 긴장시키고, 운명 앞에서의 경건성이 삶 속에서 작동되기를 바랄 뿐이다.

    (...)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인 각자의 죽음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의 의식 속에서 그 죽음은 통계화된 사회현상일 뿐이다. 죽음이 그렇게 사물화될 때, 삶 또한 우연성 속에 방치된 사물로 전락한다. 사물화된 죽음은 더 이상 삶의 시간들을 긴장시키지 못하고, 삶과 죽음의 자리매김은 불가능해진다. 죽는 일은 무섭지만, 죽음과 구분되지 않는 일상의 삶은 더욱 무섭다. (137, 139쪽, '대문 밖의 황천' 중)

 

9. 태풍이 먼 바다로부터 밀고 올라오듯이, 해마다 봄의 꽃들이 전선(前線)을 이루어가며 북상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꽃들은 피었던 자리에서 겨우내 숨어 있다가, 숨었던 자리에서 다시 피어난다. 우리 마을에 어서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꽃의 무리들이 남쪽 마을에서부터 피어서 북쪽 마을로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 꽃은 인간과 대면하기 위하여 피는 것이 아니지만 인간이 그 사이를 못 참아서 시름거리며 시(詩)를 적는다.

   (...)

   아이놈들이 옆집 마당의 꽃핀 매화나무를 매우 부러워해서 우리도 마당에 매화나무를 사다가 심자고 조른다. 꽃은 주인이 따로 없고 눈으로 보는 사람마다 다 주인인 것이어서, "옆집에 매화가 있으므로 구태여 돈 주고 나무를 사다가 심을 필요가 전혀 없으며, 옆집 마당의 매화는 돈도 안 들고 키우는 수고도 안 들면서 오히려 눈부시니 얼마나 더 기특한 나무냐"라고 아이들에게 말해주어도 다 큰 녀석들이 이 쉬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아이놈들은 나무를 뽑아서 제 집 울타리 안, 제 방 창문 앞에 옮겨심어 놓기 전에는 꽃핀 매화나무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평안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 아직 아이일 수밖에 없다. 봄날의 이 비린 시간들은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다 제쳐놓고서 천지간의 꽃잎을 모조리 휘몰아 사라지는 것이며 모든 꽃은 마침내 인간의 몫이 아님을 알게 되기까지, 반찬투정을 하듯이 꽃 투정을 하는 이 어린 것들은 수많은 봄을 더 겪어야 하리라. (239-241쪽, '꽃 몸살 나는 봄' 중)

 

10. 수박을 먹는 기쁨은 우선 식칼을 들고 이 검푸른 구형의 과일을 두 쪽으로 가르는 데 있다. 잘 익은 수박은 터질 듯이 팽팽해서, 식칼을 반쯤만 밀어넣어도 나머지는 저절로 열린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한 번의 칼질로 이처럼 선명하게도 세계를 전환시키는 사물은 이 세상에 오직 수박뿐이다. 초록의 껍질 속에서, 영롱한 씨앗들이 새까맣게 박힌 선홍색의 바다가 펼쳐지고, 이 세상에 처음 퍼져나가는 비린 향기가 마루에 가득 찬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한바탕의 완연한 아름다움의 세계가 칼 지나간 자리에서 홀연 나타나고, 나타나서 먹혀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

   무등산 수박이 다 익으면 여름이 끝난다. 메마른 산비탈의 돌밭에서 이 웅장한 수박은 온 여름 내내 폭양을 쪼여가며 익는다. (...) 어디로 피서를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온 여름이 다 지나갔다. 축복은 저 숨막히는 무더위 속에 있었던 것임을 여름의 끝물에 한 입의 과일을 깨물면서 문득 알게 된다. 이 많은 과일들을 지상에 차려놓고, 힘센 여름은 이제 물러가고 있다. (246, 249쪽, '수박과 자두' 중)

 

11. 해바라기는 그 꽃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세상을 낯설어하지 않고, 갑자기 터지듯이 활짝 피어난다. 해바라기가 열릴 때, 꽃이 세상을 수줍어하기보다는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이 꽃을 내외하게 한다.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 꽃은 강렬한 내면의 우월성으로 가득하다. 

     (...)

    맨드라미는 꽃이라기보다는 논리적 형태에 도달하지 못한 원한의 덩어리처럼 피어난다. 

     (...)

    수국의 화려함은 현란하지 않고 빛나지 않는다. 수국은 강렬한 원색의 꽃을 피우지 않는다. 수국의 꽃색은 조심스럽다. 그 꽃색은 자주색도 있고, 분홍색도 있지만, 수국의 색은 극한으로 치닫지 않고, 색의 초기단계에서 더 이상 색이기를 멈춘다. 그래서 그 색은 색이 아니라 색의 추억 같아 보인다. (256-258쪽, '여름 꽃밭에서 가을 꽃밭으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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