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 그리스어 원전 번역, 개정판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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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인문 고전 강의> 따라읽기를 하며 읽게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니코마코스'가 무슨 뜻이지. 뭔가 심오해 보여...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 이름이자 아들의 이름으로 그냥 붙여진 것이라고 하니 허무하다. 그냥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강의다. 강의노트 형식으로 쓰여진 글이라서 그런지 책 전반을 통일적으로 쭉 밀고 나가는 힘이 부족한 듯 하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단락들이 비교적 쉽게 씌어 있음에도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올바로 알면 올바로 행할 수 있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였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올바로 아는 것과 올바로 행하는 것 사이에는 폴리스에서 형성되는 좋은 습관이라는 다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폴리스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그의 윤리학은 정치학으로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제국을 건설하면서 일반인들은 정치와 멀어지게 되고, 이 시기에 나온 윤리학설인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키니코스 학파 모두 정치와 무관한 이론이 되었다고 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전반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 비해 상대적이고 유연한 논리를 펴고 있는 듯 하다. 개별성과 가변성을 무시하지 않고 미덕에 있어서나 실천적 지혜에 있어서나 개별적 가치판단의 영역을 인정하고 있다.

<인문 고전 강의>에서 인용한 부분들과 이 책을 비교해 보니 종전 번역을 상당히 많이 수정한 것 같다. 훨씬 읽기가 편하다.


제1권. 인간의 좋음

 - 모든 인간 활동은 '좋음'을 추구한다.

   하나의 목적은 다른 목적에 종속될 수 있다.

 - '좋음'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

    인간의 최고선을 연구하는 학문은 정치학이다(다른 학문들의 목적을 포괄한다).

 - '좋음'에는 가변성이 내포된다.

 -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 우리는 행복을 언제나 그 자체 때문에 선택하고, 결코 다른 것 때문에선택하지 않기 때문.

 - 삶의 세 가지 유형 : 향락적인 삶/ 정치가의 삶/ 관조적인 삶

 - 하나의 보편적인 좋음은 존재할 수 없다.

 - 좋음 : 외적인 좋음/ 혼의 좋음/ 몸의 좋음

 -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완전한 미덕과 필생의 노력이 필요하다.

 - 진정한 정치가는 무엇보다도 미덕을 연구하는 사람.

 - 행복은 궁극적인 미덕에 걸맞은 혼의 활동

    (혼) - (비이성적 부분) - (식물적인 부분)/(욕구적인 부분)

           - (이성적 부분) - (이성에 귀를 기울이려는 부분)/(엄밀한 의미에서 이성적인 부분)

    (미덕) - (지적인 미덕) : 철학적 지혜, 이해력, 실천적 지혜

              - (도덕적 미덕) : 후함, 절제


제2권. 도덕적인 미덕

 - 도덕적인 미덕들은 본성에서 생겨나지 않음. 습관화함으로써 완성됨.

 - 중용 : 지나침과 모자람은 피해야 한다.

 - 우리가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쾌락 때문이고, 우리가 고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고통 때문. =>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다.

 - 미덕은 감정이나 능력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마음가짐 : 우리가 감정들에 잘 대처하거나, 잘못 대처하게 해주는 심적 상태.

 - 도덕적인 미덕의 특징은 중용을 선택하는 것. 산술적인 중간이 아님.


 - 때로는 지나침 쪽으로, 때로는 모자람 쪽으로 치우쳐 봐야 좋은 것(중용)을 알아낼 수 있다.


제3권. 도덕적인 책임

 - (자발적 행위)

    (비자발적 행위) - (강요당한 행위) : 제1원리(행위의 도구인 사지를 움직이는 원리)가 외부

                              에 있어, 강요당한 사람의 의지와는 완전히 무관한 행위

                          - (무지로 인한 행위) : 선택에서의 무지X, 일반적인 무지X, 행위의 상황과 대

                             상에 대한 무지O + 고통과 뉘우침이 뒤따를 것

 - 미덕와 악덕은 수단에 관련된 것으로, 숙고와 합리적 선택의 대상이며, 자발적이다.

 

제5권. 정의

 - 정의는 대인관계에서 행해지므로, 타인을 위한 좋음으로 간주되는 유일한 미덕이다.

 - 분배적인 정의 : 명예나 금전 등 구성원들 사이에서 분배될 수 있는 것들의 배분에서 발견됨.

   조정적인 정의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래에서 조정하는 역할.

 - 정의는 일종의 비례이다.

 - 조정적인 정의(재판관의 정의)와 달리 사람들이 교환을 목적으로 서로 교류할 때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것은 균등함이 아니라 비례에 따른 응보이다. -> 돈이 도입되어 일종의 중용 역할을 함.

 - 어떤 행위가 불의한가 아니면 옳은가는 자발적인가, 비자발적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분배하는 사람이다.

 - 법의 보편성으로 인한 결함은 공정성에 의하여 시정된다.

 - 자살은 법에서 허용하지 않는데(손이 잘리고 따로 묻힘), 자기 자신이 아니라 국가에 대해 불의를 행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


제6권. 지적인 미덕

 - 혼의 이성적인 부분 - (제1원리가 불변하는 것들을 관조)= 인식

                              - (제1원리가 가변하는 것들을 관조)= 헤아림(숙고)

 -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마음가짐

   (1) 학문적인 인식 :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마음가짐. 대상은 필연적인 것.

   (2) 기술 : 참된 이성이 수반되는 제작할 수 있는 마음가짐.

   (3) 실천적인 지혜 : 사람의 좋음과 관련하여 행동할 수 있는 이성적이고 참된 마음가짐. 대상은 가변적인 것.

   (4) 직관 : 실천적인 지혜, 학문적인 인식, 철학적인 지혜로 파악할 수 없는 진리를 파악하게 해주는 것.

   (5) 철학적인 지혜 : 가장 소중한 진리들에 대한 최정상의 학문적인 인식. 본성상 가장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학문적이며 직관적인 인식. 개별적이고 경험적인 실천적인 지혜와는 구별됨.

 - 실천적인 지혜와 정치학은 같은 마음가짐이지만 본질은 다르다.

   국가와 관련된 실천적인 지혜 - (기획) -> 입법적인 지혜

                                           - (개별 상황) -> 정치학

 - 인간의 기능은 실천적인 지혜(수단)와 도덕적인 미덕(목표)이 결합될 때 완전하게 실현된다.

 * 강유원 : 플라톤 철학에서는 지혜와 학문적인 인식이 구별되지 않음.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적인 것은 '인식', 실천적인 것은 '지혜'로 구분하였다.  


제10권. 쾌락

 - 쾌락은 하나의 전체이며, 시간이 경과해야 비로소 그 형상이 완성되는 쾌락은 어느 순간에도 발견하지 못한다. -> 쾌락은 과정이 아니다.

 - 사고와 관조에도 그에 걸맞은 쾌락이 있듯 모든 감각에는 그것에 걸맞은 쾌락이 있는데, 가장 완전한 것이 가장 즐거우며 건강한 상태에 있는 기관이 가장 훌륭한 대상과 관련하여 벌이는 활동이 가장 완전하다.

 - 쾌락은 활동을 완전한 것으로 해주며, 따라서 모두가 바라는 삶도 완전한 것으로 해준다. 그렇다면 모두가 쾌락을 추구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 진지한 활동에 고유한 쾌락은 훌륭하고, 하찮은 활동에 고유한 쾌락은 나쁘다. 분명히 누구나 다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인정하는 쾌락들은 쾌락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

 - 관조적인 삶은 가장 지속적, 자족적인 것으로 신적인 경지. 가장 행복한 삶.

 -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입법이 필요. 정치학으로 이행.

  

정치학은 다른 모든 학문을 이용할뿐더러 우리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정하는 만큼, 정치학의 목적은 다른 학문들의 목적을 포괄할 것이며, 따라서 정치학은 인간을 위한 좋음을 추구한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의 좋음과 개인의 좋음이 같은 것이라고 해도, 국가의 좋음을 실현하고 보전하는 일이 분명 더 중요하고 더 궁극적이기 때문이다. -24쪽

고상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쾌락들은 본성상 즐겁다. 유덕한 행위들도 이와 같아서 유덕한 사람들에게도 즐겁고 그 자체로도 즐겁다. 따라서 그들의 삶은 자체 안에 쾌락을 내포하고 있어, 쾌락이라는 장신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 -43쪽

입법자들은 시민들을 습관화를 통해 좋은 시민들로 만들며, 바로 이것이 모든 입법자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입법자들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좋은 정체(政體)와 나쁜 정체의 차이점이다. -63쪽

소망의 대상은 목적이고 숙고와 합리적인 선택의 대상은 수단이므로, 수단에 관련된 행위는 합리적인 선택에 따른 것이며 자발적인 것이다. 그런데 미덕의 활동은 수단에 관련된다. 따라서 미덕의 실행은 우리에게 달려 있고, 그 점은 악덕도 마찬가지이다. -106쪽

방종은 비겁함보다 더 자발적인 것 같다. 방종은 쾌락에 의해 유발되고 비겁함은 고통에 의해 유발되는데, 방종은 선택의 대상이고 비겁함은 회피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통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의 본성을 흐트러뜨리고 파괴하는 데 반해, 쾌락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따라서 방종이 더 자발적이다. 그래서 방종이 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 -132쪽

자부심이 강한 사람의 또다른 특징은, 아무것도 또는 거의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고 기꺼이 남들을 도와주며, 영향력 있고 잘나가는 사람들에게는 거만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겸손하다는 것이다. (...) 전자에게 거만한 것은 비열하지 않지만, 미천한 사람들에게 거만한 것은 약자에게 힘을 과시하는 것처럼 야비하다. -156쪽

법은 위법 행위의 변별적 성격에만 주목하고 당사자들을 동등한 자로 취급하며 한쪽은 불의를 행하고 다른 쪽은 불의를 당했는지, 다시 말해 한쪽은 해를 끼치고 다른 쪽은 해를 입었는지 물을 뿐이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불의는 불균등한 것이기에 재판관은 이를 균등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 재판관이 하는 일은 균등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마치 한 선분이 동등하지 않은 두 부분으로 나뉘었을 때, 더 긴 선분에서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부분을 떼어내 더 작은 선분에 덧붙이는 것과도 같다. 그리하여 전체가 동등한 반쪽들로 나뉘어 양쪽이 동등한 몫을 갖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들이 제 몫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균등한 것은 올바른 것(dikaion)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균등한 것이란 마치 동등하게 두 쪽으로 나뉜 것(dichaion)이라고 불려야 하는 것처럼 동등한 두 쪽(dichaia)으로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판관(dikastes)은 둘로 나누는 사람(dichastes)이다. -189쪽

정의와 공정성은 일치하며, 둘 다 훌륭하지만 공정성이 더 우월하다. 다만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공정성은 정의이지만 법적인 정의가 아니라 오히려 법적인 정의의 교정(矯正)이라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모든 법은 보편적인데, 어떤 것에 관해서는 어느 것이 옳은지 보편적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편적으로 말할 필요는 있지만 제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영역들에서는 법은 그렇게 하면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더 자주 일어나는 경우를 취한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법이 덜 올바른 것은 아니다. 오류는 법이나 입법자 탓이 아니라 사태의 본성 탓이기 때문이다. (...) 법의 보편성 때문에 법에 결함이 있는 곳에서 법을 교정하는 것, 바로 이것이 공정성의 본성이다. -212~213쪽

자제력 없는 사람은 올바른 법안들을 모두 통과시켜 좋은 법률을 갖고 있지만 그 법률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 국가와도 같다. (...) 하지만 사악한 사람은 법률을 이용하되 나쁜 법률을 이용하는 국가와도 같다. -286쪽

우리는 인간이니까 인간의 일들을 생각해야 하며, 필멸의 존재이니까 필멸의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권고를 따라서는 안 되고, 오히려 우리 자신을 되도록 불멸의 존재로 만들고 우리 안에 있는 최고의 것에 걸맞은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4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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