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퀴어의 유연성과 확장성을 둘러싼 논의
1)퀴어라는 이름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가?
퀴어를 마치 마음대로 입고 벗을 수 있는 젠더 개념으로 오인하여 비웃음을 던지는 혐오세력들이 있고, 그에 대한 비판과 논의가 담겨 있다.
퀴어라는 용어를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는 자유롭고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취급하면서 '퀴어'라는 용어와 그 이름으로 불리어왔던 혹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러왔던 사람들을 서로 떼어놓을 때, 그리하여 트랜스를 배제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상상하는 단일한 여성 정체성을 위한 이론적 자원으로만 끌어다 쓸 때, 이는 퀴어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퀴어 정체성을 부정하고 이 사람들을 페미니즘 의제에서 배제한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는 퀴어를 전면 거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교묘한 퀴어 혐오일 것이다. - 88, 89쪽
2) 물질, 현실, 역사를 사유하기
(즉,) 혐오폭력 가해자들이 어떤 사람을 희생자로 선택하는 이유는 그 희생자에게 차별(처벌)받을 만하다는 물질적인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터너는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왜 가해자들이 인종적 차이나 성적 차이를 기반으로 희생자를 선택하는가?'하는 질문이 자주 등장하지만 이 질문이 그러한 차이에 책임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한다. 언론과 경찰이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서둘러 단정한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가해자는 왜 아무나 죽이지 않고 여자가 지나갈 때까지 세 시간이나 기다렸는가? 젠더퀴어로 보이는 사람은 왜 희생자로 선택되는가? (...) 이는 "범주에 관한 질문이고, 재현에 관한 질문이고, 개인들을 그들의 정체성에 부착시키는 과정에 대한 질문이자, 관습적으로 정의된 정치와 법에 대한 질문이다." - 93쪽
3) 경계 짓기/열어놓기의 변증법
위 1)의 문제와 관련된 논의로, 적절히 경계를 지으면서도 그것이 또다른 규범이 되어 누군가를 배제하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열어놓을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경계를 가로지르고 한 곳에 고정될 수 없는 퀴어 개념의 특성이 마치 마음만 먹으면 위치성을 초월할 수 있는 양 오용될 위험을 어떻게 경계할 수 있을까? 위치를 본질적인 것으로 사유하지 않으면서도 위치성을 중시할 방안은 어떻게 모색해야 할까? - 95쪽
그리스의 패럴림픽 수영 챔피언이라는 안토니스 차파타키스가 찍은 화보(구글에서 Antonis Tsapatakis를 검색하면 사진이 나온다. 수영장 물 속에서 옆으로 쓰러져 있는 휠체어 곁에 우뚝 서 있는 안토니스의 모습이다)를 예로 들면서,
지금 이 사회에서 규범적인 것은 매우 이분법적으로 범주화되어 있는 데다 더 좋고 나쁨의 위계가 그사이를 촘촘하게 채우기 때문에 이런 위계질서에서 이미 가치가 낮춰진 존재들이 재현될 때마다 이 재현이 과연 규범을 전복시키는 것인지 공모하는 것인지 확답할 수 없는 복잡한 의미가 덕지덕지 쌓이게 된다. - 98쪽
이 부분 굉장히 공감이 간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외모 품평 같은 것에 대해서도 이를 뒤집는 광고라든지 언어가 전복인지 공모인지 약간 헷갈릴 때가 있다.
4.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식론적 겸손의 정치
무엇보다도 퀴어 이론을 퀴어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주장이 토대삼은 것들도 심문하면서 스스로를 항상 비판에 열어놓는 태도다. - 101쪽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지 인권이 무엇인지 여성이란 무엇이고 누가 여성이 아닌지 등에 대해 하나의 정답을 딱 말할 수도 없고 그럴 수 있다는 오만을 가져서도 안 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발언하고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싸움에 침묵하는 자는 방관자고 체제 유지에 기여하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또한 인식론적인 겸손함으로 이 무지를 받아들이고 이 무지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해나가는 것이 우리의 윤리적 책무이기 때문에. - 104쪽
위 인용문과 관련해서, 각주 137(127쪽)에서는 저자가 주디스 버틀러의 <Undoing Gender(2004a)>(<젠더허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중 일부 내용에 대한 번역의 잘못을 지적한다.
원문: Indeed, I think we are compelled to speak of the human, and of the international, and to find out in particular how human rights do and do not work, (...)
한글판 번역: 사실 나는 우리가 인간에 대해, 또 국제적인 것에 대해 말하도록 강요받는다고 생각하며, 특히 인권이 어떻게 작동되고 또 작동되지 않는지, (...) 알아내라는 강요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번역: 사실, 내 생각에 우리는 인간에 대해, 또 국제적인 것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특히 인권이 어떻게 작동하고 작동하지 않는지(...)를 찾아내지 않을 수 없다.
=> 위 한글판 번역은 우리의 윤리적 책무를 담아낸 원문의 표현을 '너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라는 말이 부담스럽고 그건 강요다'라는 내용으로 해석될 수 있어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127쪽)
이런 내용을 읽으니 주디스 버틀러 책을 읽어보기가 더 두렵다. 안 그래도 어려운 책이 번역상 오류까지 있으면.. 곤란한데..
+ 각주 20(109쪽)
여기에서 저자는 수간이나 소아성애까지 성소수자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면서 퀴어이론이 아이들을 위협한다는 혐오세력의 여론몰이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한다. 이건 이번 EBS 위대한수업에 주디스 버틀러가 출연한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며 항의성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좀 읽으면 좋겠다.
수간이나 소아성애를 행하는 부류의 인간들은 집단적인 억압과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겪어오지도 않았고 사회의 규범성에 도전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러한 욕망이 실천에 옮겨질 때 상대방(동물과 아이)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성폭력으로 구현된다는 점에서(그리고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에서) 이 사회를 지배하는 특정한 폭력적 규범성을 따르고 강화한다. - 109쪽
또 이 각주 부분에서 퀴어 페미니스트 학자 게일 루빈이 쓴 <일탈>이라는 저서를 소개하면서, 그에게 붙은 소아성애를 옹호했다는 오명에 대해 상세히 비판하고 있다.
휴, 이제 1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