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가 국가의 공식적 교육과정에서 투명인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상황은 최근 몇년간 언론에 보도된 몇건의 성소수자 관련 교육과정 논쟁과 무관하지 않다. 2014년 '동성애대책위원회'가 교육부에 제출한 교과서 관련 민원은 학교의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 개념을 제거하려는 보수시민단체의 끈질긴 노력을 잘 말해준다. 이 민원은 검정을 통과하여 공개된 총 15종 교과서에 등장하는 성소수자 관련 25개 부분에 대한 수정 또는 삭제를 요청했다. 동 위원회는 중학교 '도덕' 및 '보건',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과목의 일부 교과서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위험행동인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조장하고 학생들을 성소수자가 되도록 부추긴다고 주장하면서, 동성애자들의 불행한 삶, 다시 말해 동성애의 부정적이고 어두운 측면을 반드시 서술할 것을 촉구했다. 이같은 정치적 압박으로 인해 급기야 일부 교과서에서 동성애 관련 기술 내용이 부분 삭제되거나, 처음 내용과는 상당히 다른 관점에서 재서술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 조대훈, '성소수자와 학교교육' 중에서. 151쪽 

동성애대책위원회라니? 아니 무슨 동성애가 재해나 전염병이란 말인가, 뭔 대책을 세워. 이 사람들은 동성애가 흡혈귀나 좀비처럼 물리면 감염되는 것이거나 사상처럼 전파되는 것인줄 아는가 보다. 그런 오해가 사실이길 바라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동성애자 그들 자신일지도 모른다. 동성애가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면 이성애자로 전환도 가능하다는 얘기일 테니까.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뻔히 알고 스스로 그것을 조장하고 있으면서도 '성소수자가 되도록 부추김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딱 봐도 모순 아닌가. 저 사람들은 자신이 향후 동성애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이런 혐오야말로 대책을 세워야 할 대상이겠다. 


안전한 환경.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이 '안전'일 것이다. 안전한 가정, 안전한 학교, 안전한 사회가 보장된다면, 청소년들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며 미래를 계획해갈 것이다. 누구나 그러해야 하듯 말이다. 반면 안전하지 않은 환경이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조롱하고 괴롭히고 배척하면서 성소수자의 삶이 무가치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들의 말, 표정, 행동이다.  - 김지혜, '청소년 성소수자의 안전지대를 찾아서' 중에서. 131쪽 

매순간 부정당하면서 청소년기를 벽장 속에서 보내야하는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저런 식의 교과서에 대한 수정,삭제 요청과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모습은 얼마나 큰 상처가 될까. 


 "내 아이가 단 한번도 부끄러워 본 적이 없어요. 단 한순간도. 그러니까 엄마들한테 커밍아웃할 때는 난 그렇게 이야기해요. 난 내 아이가 자랑스럽다고. 진심이기도 해요. 저는 아이한테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세상에 어떤 아이가 20대에 너만큼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기 삶에 대해 이렇게 고민하고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겠냐. 너는 멋진 일을 해낸 사람이지, 모자란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너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라. 일반 아이들보다 네가 자부심이 없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네가 (...) 당당하게 살고 나서, 그 삶이 아름다웠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날이 분명히 올 거라고 엄마는 믿는다. 아이한테 그렇게 이야기해요. 그날이 반드시 올 거다."(연구참여자 E)  - 이지하, '부모가 경험하는 자녀의 커밍아웃' 중에서. 174쪽 

 감동적이고 존경스러운 부모의 태도. 비단 아이가 성소수자일 때 뿐만 아니라 아이가 어떤 말도 안 되는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 때 변함없는 사랑과 지지를 보여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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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6-29 1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은 그런 부모가 되겠어요.^^ 중2 든 딸이 긴머리를 싹둑 커트 치더니 목소리도 굵게 내는 거예요. 어느 날 묻더군요.
엄마, 내가 애인이라고 여자를 데려오면 어떡할거야??
뭘 어떻게. 밥 줘야지.
엄마, 엄마는 그게 뭔 소리냐고 왜 안 놀래? 왜 야단 안 쳐?
뭘 놀래고 뭘 야단쳐. 그게 인력으로 되니. 이성애자로 살기도 힘든데 동성애자로 살겠다니. 아이고야. 싶어 밥이라도 더 멕여야지.

라는 대화를 나눴슴다.^^ 교과서는 언제고 수정될겁니다. 그러자면 계속 싸워야겠죠^^

청아 2021-06-29 20:06   좋아요 2 | URL
역시 ˝밥은 묵고 다니냐? ˝이 말이 오래남은 이유가 있네요!!😊

행복한책읽기 2021-06-29 20:09   좋아요 2 | URL
그죠. 뱃속이 비면 더 서럽잖아여^^

독서괭 2021-06-30 10:47   좋아요 2 | URL
오오 아이가 불쑥 그렇게 물어보는데 ˝뭘 어떻게. 밥 줘야지˝라고 답하시다니. 멋지십니다. 저도 당황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의연한 마음가짐을 길러야겠어요. <딸에 대하여>에 나오는 엄마도 딸이 데려온 여자친구에게 들어오라 하고 먹을 걸 챙겨주긴 하더라구요. 나중에는 그 여자친구가 엄마 식사를 더 잘 챙겨줬지만 ㅎㅎ 역시 밥정이구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