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시간에 비교적 한산한 지하철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남은 자리는 몇 되지 않았고, 사당에서 남은 자리보다 많아보이는 사람들이 탔고, 그 가운데는 할아버지도 한 분 섞여 있었다. 잠깐 고개를 들었다. 아, 저 할아버지가 빈자리로 빨리 가서 앉으셔야 나도 편하게 갈텐데. (이런!) 다행히 할아버지는 맞은편 의자에 앉으셨고 나는 안심하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잠시후 도란도란 이야기소리가 들려온다. 앞좌석에 앉은 아주머니와 그 할아버지의 대화였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건 매우 좋지 않은 버릇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실은 나는 나이가 든 사람은 자신의 인상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말 역시 신뢰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아주머니는 신뢰하기 어려운 인상이었다. 아, 그러니까, 내가 괜히 지나가는 엄한 사람 붙잡고 이런 믿을 수 없게 생긴 사람 같으니!! 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아주머니의 신뢰성 여부를 판단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황에 기반하여 말하자면 그랬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축농증이 있으신지, 자꾸만 킁킁 숨을 쉬셨나보다. 아주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매우 친절한 목소리로' 자신이 축농증을 치료해드리겠다며 어떤 명함을 내밀며 월요일에 중앙역으로 오시라고 얘기했다. 옷차림으로 직업을 짐작하는 것 역시 좀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핫핑크 재킷에 핫핑크 가방을 매고 내 취향은 아닌 -_- 색조 화장으로 진하게 치장한 (우리 엄마는 주로 '야하다'고 표현하는 치장이랄까...) 아주머니는 의사는 아닌 것 같았다. 저 아주머니가 도대체 어떻게 축농증을 치료한다는 거지? 나는 너무 궁금해 자꾸만 그쪽을 흘끔흘끔 바라봤다. 자기가 줄 무언가를 먹으면 다 낫는다고 하는 걸로 봐서, 아주머니는 아무래도........ 약장수인가보다. 할아버지더러 '병원이 아닌' 자기네 사무실로 자꾸만 오라고 얘기하신다. 싹! 낫는다고 얘기하는 걸로 봐서는 확실히 의사는 아니다. 비염은 완화는 가능해도 완치는 어려운 병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살짝 비염이 있어서 찾아봤다) 나이 든 것도 서러운데, 돈 챙겨서 가실 거냐고. 아낌 없이 건강 위해 투자하는 게 남는 거라고, 자꾸만 그렇게 얘기하신다. 난 자꾸만, 아주머니가 비염을 어떻게 치료하실 거냐고, 그게 어떻게 낫는 병이냐고 묻고 싶다. 하지만, 용기는 나지 않는다. 아.... 소심하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 (그리고 만에 하나, 저 아주머니가 정말 좋은 사람이면 어쩌지, 하는 마음... 정말 만에 하나이긴 했지만...)
여기서 재밌는 건, 할아버지가 아주머니에게 '혹시 교회를 다니냐'고 물었던 것이다. 할아버지 역시 아주머니를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려웠나보다. (그런 걸로 봐서 의사가 아니라는 나의 심증은 더욱 굳어졌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어야만 믿을 수 있다는 걸까.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는 심정은 가끔 지하철에 뿌려져 있는 구직 찌라시에서 '교인 환영'이라는 문구를 보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그런 방법으로 의심이 가는 사람의 진정성에 대해 확인하려고 하는 할아버지의 나이브함이, 실은, 안타까웠던 것 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목적이 아닌 도구로 삼은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이건만, 할아버지는 아주머니가 '그럼요~' 하면서 내민 성경책에 마음이 누그러지셨나보다. 나는 아주머니의 저 큰 핑크 레쟈 가방 안에, 사실은 기독교용 성경책과 천주교용 성경책, 그리고 불경이 모두 들어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 이후로도 두 분은 계속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셨다. 성경책 이후로 분위기 급 반전. 우리는 다 형제 자매다, 막 이런 얘기까지 나오기 시작한다. 귀가 어두우신 할아버지는 아주머니에게 다정하게 귓속말로 얘기를 했다. 귓속말을 하는 도중에도 킁킁. 아주머니는 할아버지를 드릴 휴지를 막 찾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본인이 가지고 다닌다며 패애애앵 하고 코를 푸셨다. 할아버지는 외로워보이기는 했지만 궁색해보이는 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매우 풍족해 보이는 분도 아니었다. 어쩌면 아주머니는 사람을 제대로 잡은 건지도 모른다. 그걸 보는 중에도 나는 내가 비겁한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니지, 부디, 이게 나의 편견이길. 하고 바라는 이중적 마음을 갖는다. 그 마음은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었을까,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할아버지는 인덕원에서 내리셨다. 아주머니는 말끝마다 꼭 월요일에 중앙역으로 오시라는 얘기를 한다. 너무나 걱정스러운 말투로, 할아버지 꼭 나으셔야 한다고. 창밖에 보이는 할아버지는 자리를 금방 뜨지 않으셨다. 아주머니는 창밖을 향해 웃으며 손까지 흔드신다.
할아버지가 내리자마자 아주머니는 갑자기 썬글라스를 꺼내어 쓴다. (밤에, 실내에서...-_-) 동그란 테 양쪽 가장자리에 0.5cm 간격으로 큐빅이 종종종 박힌. 그리고는 미소짓는다. 미소는 웃음으로 번진다. 내쪽까지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피식, 피식, 아주머니는 매우 오랫동안 웃으셨다. 한 건 했다,는 회심의 웃음이었을까. 중요한 건 아주머니의 그 웃음과 마주치는 순간 소름이 돋으며, 역시 내가 비겁했다는 심증에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나는 뭘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최선이었을까? 앞에서 얘기할 용기가 없었다면, 할아버지를 따라 내려서 가지 마시라고 얘기라도 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 때는 왜 생각이 거기에 이르지 못했을까? 할아버지는 월요일에 중앙역에 가실까?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