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살다보면, 박연진이 필요한날 같은 것이 있는 거다. (이니셜 놀이를 즐기는 나이지만, 오늘은 Y가 필요한 날이 아니라 박연진이 필요한 날이라고 너무 얘기하고 싶기에 실례 무릅쓰고. 그냥 '박연진이 필요한 날' 자체를 고유명사로 받아들여주시길. 박연진을 아신다고요? 당신이 아는 그 박연진이 아닐거에요. 그리고, 맞음 또 어때요.)

왜 박연진을 떠올렸는지 모르겠지만, 박연진을 떠올리는 순간부터, 아, 오늘은 박연진이 필요한 날이었구나, 그래서 지금 박연진이 생각났구나, 라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이건 일종의, 무의식중에 내가 스스로에게 내린 처방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무기력증에 빠져버렸을 때는 박연진을 만나세요. 박연진의 행복 바이러스가 눈과 맘에 스며들면 좀 더 살만해질지도 몰라요. 빙고.

원래는 맞은 편 사무실에서 일하지만, 외근 중이어서 8시는 돼야 강남에 도착한다는 박연진을, 나는 기다렸다. 커피와 베이글 따위로 (아, 나의 완소 점심을 따위,로 표현하다니, 좀 미안하다) 떼운 점심 때문인지 배는 완전 고팠지만, 30분 일찍 도착할 것 같다는 말에 또 쾌재를 부르며, 사무실에 더 앉아있기 싫어 그냥 10분 먼저 밖으로 나와버렸다. 

얼마 후 박연진을 만났고, 우리는 11시가 넘도록 가벼운 수다를 지속했다. 화장 지워진 얼굴로 사무실 뒷골목에서 만났기에 정말 쓰레빠 끌고 동네 나와 친구랑 수다 떠는 기분이었달까. 그래서였나. 늦은 시간까지 놀다가 들어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8시든 9시든, 기다리길 참 잘했다. 박연진의 어떤 부분은 나와 매우 비슷한데, 그 부분은 내가 자꾸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누르고 있는 생각들을 꺼내어준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내게 언니, 좀 그러면 어때요,라고 얘기해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꼭 좀/그/러/면/어/때/요 라는 저 7글자를 굳이 입밖에 내지 않아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공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러니까, 실은 오늘은 내가 박연진을 이용한 날이다. 그녀의 젊은 피와 긍정적인 기운이 필요해 원기 쪽쪽 받고 것도 모자라 위로까지 도모했으니. 자식, 나에게 이용당하다니. 그래도 이런 이용은 좀 당할만하잖아. ㅎㅎㅎ. 그래도 둘이 한참동안이나 헤헤거리고 나니, 뭔가 쑥 내려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봐야 내일이면 다시 제자리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일단. ㅎㅎㅎ.

돌아오는 길에 나는 박연진에게 말했다.
역시 박연진을 만난건 탁월한 선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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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8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8-09-18 11:33   좋아요 0 | URL
아, 저 완전 감동이요 ㅜ-ㅜ

누구엄마 2008-09-18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훠훠훠훠훠훠훠

이용이면어때요

쫌그러면어때요


^▽^

웽스북스 2008-09-18 18:22   좋아요 0 | URL
어머 박연진이다! ㅎㅎㅎ
우후훗 역시~난 니가 그럴줄 알았다구~ ㅎㅎㅎ

Arch 2008-09-1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완전^^* 별표 두개 ^^**

웽스북스 2008-09-20 01:10   좋아요 0 | URL
어머, 별표두개 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