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라고 일단 엄마탓을 한번 해본다.
우리엄마는 아줌마치고는 작고 가느다란 골격에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 게다가 최근에는 살이 빠져서 55를 거뜬히 소화하는 (그 뱃살에도 불구하고!)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난, 아빠의 골격을 물려받았다. 으흑.
우리 팀 막내 H씨가 어학연수중이던 시절, 엄마와 화상채팅중일 때, 엄마가 H씨가 보고 싶다고 막 울더니, 갑자기 눈물을 훔치고는, 너 잠깐만. 근데 얼굴이 왜그러니? 라고 말하기 시작하더니. 잠깐 일어서봐. 겉옷 벗어봐. 뒤 돌아봐. 라고 얘기하며 그녀의 몸매를 체크했다는 일화는 우리 팀내에서 자주 회자되는 일화중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애가 살집이 좀 있어야지. 딱 보기 좋은데 뭘그래.
를 남발하신다. 으흑. 살이 여기서 조금만 빠져도 (그래도 날씬 축에는 끼지도 못하는데) 어머어머 어디 아픈거 아니니? 라며 급 걱정 모드로 돌입하시고, 귀가 얇은 나는 어, 진짜 어디가 안좋은가? 라며 마구 영양을 보충해 몸무게를 원상복귀해놓고는 급 안심 모드로 들어간다.
물론 고맙다. 세상에 딸한테 몸매로 스트레스 안주는게 어디야, 싶긴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땐, 음, 좀 아닌 것 같애. 음. 그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된 계기는 엄마가 M의 살빠지기 전 사진을 보더니 (지금은 15kg 정도가 빠진 상태다)
M은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요즘은 보기가 영 안쓰러워. 애가 이렇게 살집이 있어야지.
라고 얘기하셨을 때다. 엄마가 보고 있는 M의 사진은, 그러니까, 눈있는 자라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살이 많이 쪘던 시절의 사진이고, 나는 살 빠진 M의 모습이 좀 적응이 안되긴 하지만, 그 시절의 모습이 낫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 순간 알았다. 아. 엄마의 눈은 일반인과 다르구나. 엄마의 시선에 안주해서는 안되겠구나.
그런데 어제, 이틀을 뒹굴고, 작년에 벙벙하게 입던 청바지를 입어보니, 윽! 허리 쪽이 꽉 끼는 거다. 이럴 리가 없어. 살짝 괴로워하다가 집에 들어와 오늘은 며칠 전까지만해도 벙벙하게 입던 청바지를 입어보니, 윽! 이것도 끼는거다. 아아. 이건 말도 안돼. 몸무게를 재보니 불과 한달도 안되서 3kg이나 늘어 있었다. 아. 나 좀 편했나? 그럴 리가 없잖아. 추석연휴, 개천절연휴 이어서 너무 잘 쉬었나? 그래도 이게 말이 돼? 좀 누워서 드라마만 보긴 했지, 그래도 이게 말이 돼? -_-
갑자기 주변 사람들도 막 원망스럽다. 으흑. 말좀 해주지. ㅜㅜ 아니, 무신경하게, '살 빠진 것 같아'라는 말같은 건 해주지나 말 것이지. 사람들이 살 빠진 것 같다고 했을 때, 몸무게 변화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왜, 왜, 그래도 좀 빠졌을 지 몰라, 하며 안심했을까. 사람들은 타인에게 생각만큼 큰 관심이 없다. 살 빠진 것 같다,는 인사는 정말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우리 오랜만에 보네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알고 있으면서도!! 크크섬의 정민이도 원망스럽다. 아, 왜그렇게 라면은 또 맛있게 먹어가지구. 밤 11시에 날 라면을 끓이게 만든 거야.
셀룰라이트 크림이 두개나 들어왔을 때, 나는 심상치않음을 감지했어야했다. 그저 벙벙한 원피스 입고 (원피스 만세!) 안심하고 있을 문제가 아니었다. C양 살찐다고 구박할 때, 내 몸을 먼저 돌아봤어야 했다. 아흑. 3kg 앞에 무슨 이토록 처절한 반성문 모드냐마는. 암튼,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찍고 있는 지금, 다이어트 돌입을 선언해야겠다. 어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