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아이 - 한국어 더빙 수록
호소다 마모루 감독, 야쿠쇼 코지 외 목소리 / 버즈픽쳐스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자네의 눈빛엔 한 점 망설임도 없군."

 

 

모비딕을 읽는 큐타.

 

 1. 내 마음 속에서 분명 타인의 소리가 들렸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의 일이다. 그 때부터도 심리학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정신병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정신상담 이력이 호적에 적히는 줄만 알아(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낙인에 대해서 나에게 설명해 주려는 게 아니었나 싶다.)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면서도 한번도 심리검사를 받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소리도 흐릿해지고 있지만, 나는 정신상담을 받지 않길 잘했다고 나름 스스로 생각한다. 만약 정신상담을 받았더라면 더 이상 그 타인이 소리를 들려주지 않거나, 혹은 내가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내 마음 속의 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신이라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우정으로 얼버무리지만 실상은 공동생활가족에 대한 이야기.

 

 2. 부모는 언제나 아이의 무언가가 되려고 생각한다. 욕심이 많은 인간은 아예 신이 되려고 생각한다. 이는 큐타같이 '내 뱃속에서 나온 것 같지 않은', '결혼하지 않은 방탕한 상태에서 낳은 아이같은' 까다로운 아이를 기를 때 자연스럽게 드는 부모의 생각이다. 특히 부모의 성격이 거칠면 거칠수록 더욱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는 큐타를 도와주려 할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바치려 했다. 아이가 아프다면 자신 하나를 갈아서 송두리째 아이에게 먹이고 싶어하는 것. 그것이 제대로 된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떤 부모나 다 그러하길 바란다. 그렇지만 그렇지 못한 부모가 많다. 이는 부모의 마음으로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되는 게 사랑이지만, 사랑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부모는 인격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인격적으로 성숙해야 한다는 건, 아이를 위해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목숨 전부를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나는 절대 공동생활가족에 반대하지 않는다. 핏줄이 섞인 가족이란 것들이 얼마나 치사한 짓을 할 수 있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중 정말 나쁜 놈들은 가족들의 약점을 정확히 찔러서 파멸시키기까지 한다. 그러나 최소 '가족'이라는 단어를 쓰고 같이 동거하면서 살려면 모든 상황에 대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 즉, 목숨을 바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거다.

 

 

 

물론 큐타나 쿠마테츠도 자신들이 그런 인물이 될거라 믿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무엇보다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3. 물론 큐타나 쿠마테츠도 자신들이 그런 인물이 될거라 믿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무엇보다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사람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 명확히 잘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공동생활가족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고... 인간인 큐타가 언제까지나 요괴들의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순 없다는 뜻이다. 뭐든지 빠져나갈 타이밍이 있으니 그걸 큐타처럼 잘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론 그냥 1인 가정이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가슴 속 검은 예전부터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검을 받아들여 내 마음 속의 구멍을 메우는 법은 몰랐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게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 하나도 간수하기 급급한데 가슴 속 검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쳐줄 수 있겠는가. 가슴 속 검은 결국 남이 아니라 나에게 꽃히기 위해 있는 검이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 오해하고 있는 이 사실을, 이 영화는 너무나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큐타같은 아이였다.

 내 부모님이 진짜 날 길렀는지 끊임없이 의심스러워하는. 마치 괴물의 아이같은. 하지만 괴물은 아닌.

 괴물이라는 '신'이 날 길렀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들이 신이 없다고 한들, 그리고 나의 신이 그들의 입방아에 무참히 찧인들, 상관없다. 나 하나만은 그를 응원할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루레이] 아이돌 마스터 무비: 빛의 저편으로! - 일반판 - 캐릭터 카드 4장
니시고리 아츠시 감독, 하세가와 아키코 외 목소리 / 미디어허브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좀 더 좋은 방법이 있겠지만 난 아마미 하루카니까.

 

 

 얘네 정말 제노그라시아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것 같다.

 

 1. 엘리자베스 여왕이 만든 구민법이라는 게 있다. 영국의 빈민을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법이다. 봉건제의 붕괴와 인건비 상승과 엔클로저 운동 등등으로 인해 영국에 정처없이 떠도는 부랑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데 엘리자베스가 그들에 대한 손길을 내민 것만으로도 빈민들에겐 물론 분에 넘치는 영광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분이 대체 어떻게 대처했길래 빈민의 수를 줄일 수 있었는지 약간만 자세히 들여다보자. 노동자 칙령. 노동력이 있는 자에겐 개인적 자선을 못한다. 일하지 않는다? 그럼 굶어 죽어라. 케임브리지 법. 걸인은 물론이요 모든 '노동자'의 이동을 금한다. 아놔. 왜 그렇게 밖을 돌아다니세요. 술집이나 카페라도 들어가세요. 뭐? 돈이 없어서 술집도 카페도 못 들어가? 집 없어? 그럼 얼어 죽어라. 캬캬캬.

 .... 엘리자베스 여왕을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남녀 포함하여 영국에서 제일 정치를 잘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워낙 개망나니같은 아버지 밑에서 강하게 살아서 그런가 굉장히 자비가 없다. 나는 이 극장판에서 강하게 그런 인상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하루카의 이 표정 정말 사랑한다. 마이 엔젤.

 

 2.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백댄서가 살이 쪄서 잠적을 탄다는 반전으로 시간을 질질 끄는 건 좋았다. 내 10대 시절을 생각해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살이 쪘지만(...) 몸무게가 늘어갈 때마다 정말 손으로 뱃살을 꼬집은 다음에 칼로 자르고 싶었다. 그게 안 되면 죽어버리고 싶었다. 휴가를 얻어 외출할 때를 제외하고는 도저히 화장할 시간조차 안 나는 지금조차 그러하다. 10킬로를 뺐는데도 불구하고 (아니 빼서 오히려 더 그런지) 거울로 내 모습을 보면 여기는 빼야 하지 않나 저기는 빼야 하지 않나 짚어보고는 한다. 10대에 아이돌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스쿨 아이돌은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하루카는 매우 긴 시간의 고민 끝에 여신처럼 그녀를 포용한다. 첫째로 그 과정이 너무나 지지부진했다. 그거야 그렇다고 치자. 10대의 여린 마음엔 원래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법이니까. 어찌보면 하루카가 카나를 찾아간 타이밍이 끝내주게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카나는 의상을 입기 위해 살을 빼기 시작한다. 열심히 아이돌 춤을 연습하다보니 살이 빠진 게 아니다. 일단 카나부터가 정확히 자신을 지적한다. 나는 너무 살이 쪄서 저 의상을 도저히 입을 수 없다고. 아니 그럼 늘려서 입으면 되잖아? 적당히 통통한 것도 얼마든지 귀엽고 개성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말이다. 마치 이건 영화 자체에서 '우리 업계에서 프로가 되려면 일단 살부터 빼야지. 그럼 갈비뼈 한 두개쯤이야 희생할 수 있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종의 강요다. 대체 어느 조선시대에서 이런 교훈을 주려고 두 시간동안 영화를 상영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라이브에서도 지적할 게 너무 많아서 다 말하기가 힘들지만 일단 몇가지만 거론하겠다. 

 3. 솔직한 느낌으로 말하겠는데, 분노했다. 라이브곡인 마스터피스는 정말 에바였다. 차라리 초반에 나왔던 라무네빛 청춘이 더 좋았다.

 그리고 라이브에서조차 작화 붕괴가 발견되는 건 너무 심했다. 예고편에서도 불안하다는 말이 나왔었는데 난 이 정도인줄 몰랐다. 아이돌마스터 애니도 볼까 했다가 이거 보고 그냥 패스하기로 했다. 러브라이브 극장판처럼 뭔가 발전이라도 해라.

 하루카랑 유키호랑 라이브 복장 입히니까 너무 구분이 안 갔다. 제작진도 구분이 안 가서 꽃을 오른쪽으로 꽃고 왼쪽으로 꽃아서 구분해 놓은 듯한데 장난까냐?  아니 그렇게 오랫동안 아이돌마스터로 해먹었으면 최소한 그 둘의 머리 스타일이 비슷한 걸 고려해서 얼마든지 개성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결과물은 너무 실망스러웠고 난 얘네들 춤추는 거 보면서 계속 하루카랑 유키호가 헷갈렸다. 정말 극장판 도중에 박차고 나가서 술 마시러 가고 싶었다. 졸라서 같이 영화 보러 간 친구에게 사과했음은 물론이다. 그 녀석은 왠만하면 영화 같이 보려고 노력하는 녀석인데 정말 마지막 5분 라이브만 딱 보고 나머지 시간엔 계속 자더라.

 

 

 그리고 애니를 선정성 때문에 까는 경우는 여태 없었는데 이 리뷰에서 최초로 까겠다.

 

 아이돌 애들이 계속 프로듀서에게 대쉬하는데 신데마스같은 타당한(?) 원인도 없이 그냥 거기에 있는 유일한 남자라서 그러는 티가 너무 확 났다. 최대한 서비스 장면이 나오게 하기 위한.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꿔다놓은 보릿자루. 내가 이 영화 보러 갔을 땐 분명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같이 영화를 보는 어머니도 있었다. 그 모녀는 속옷이 다 비치는 그 여자애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사람들이 일본 아이돌 만화영화를 보러 또 이 극장을 찾을까? 나같으면 두 번 다시 찾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퍼퓸 MV에서처럼 남자를 빼는 게 진리였는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입] Clannad: After Story Complete Collection (클라나드: 애프터스토리) (한글무자막)(Blu-ray) (2006)
Section 23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정말 행복했어요.

그러니 부디 방황하지 마세요.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더라도

저와 만난 걸 후회하지 마세요.

 클라나드는 처음엔 토모요로 시작해서 본 거였다.

그러나 최애캐가 코토미로 바뀌어버렸지만...

역시 제일 좋아하는 화는 토모요편이었다. (응?)

역시 해피엔딩이 좋은 듯.

 

 저번 클라나드 1기에서 나기사의 꿈이 아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연극을 하는 것이라면, 이번 2기에서는 꿈이 조금 더 커진다. 아픈데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것. 둘 다 소박해보이는 꿈이지만, 싱글파파에게서 자란 오카자키와 병이 다시 재발한 나기사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과정이었다. 결국 그 과정에서 나기사를 떠나보내고, 우시오가 자라나고, 오카자키는 문득 아버지가 다시 생각나서 아버지와 좋게 이야기한 끝에 헤어지고, 이후 많은 일이 일어난다.

 아마도 나기사편 결말은 배드엔딩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걸린 건 21화에서 오카자키가 직장을 떠날 때 요시노가 준 드라이버이다. 손잡이 부분도 목재부분이라 굉장히 탄탄하고, 끝은 상당히 날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위태로웠다. 굳이 그 드라이버를 사용(...)하진 않았다고 해도, 우시오를 잃었을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아서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 로봇이 분해될 때 굳이 머리가 잘리고 부러진 등뼈가 붙여진 채 날아가는 끔찍한 장면이 보여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숨을 놓았을 때 빛 더미가 밀려와 그에게 영원히 깨지 않을 꿈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그 예로 할머니 집에 우시오랑 한 번 놀러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버지가 안 나온다.) 그리고 한 번 생사를 넘나든 적 있는 후코가 저 세계에 있는 우시오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기사편이 클라나드의 주요 스토리가 되는 이유는 아마도 우시오 때문일 것이다. 토모요랑 결혼하면 안정적으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모요와 다시 재회할 때 눈이 내리는 장면은 기쁘다기보다는 매우 슬퍼보였다. (근데 그 스토리 이후엔 토모야가 아프다고 하더라. 이 녀석은 뭐 공부를 열심히 하던 말던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게 운명인 듯. 맨날 막노동 같은 일을 하고;;;) 사실 난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나기사가 죽고 나서 그녀와 다시 재혼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아무튼 토묘요가 벚나무길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에 감화받은 토모야가 그녀를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데선 상당히 감동받았다. 그러나 토모야가 아파서 그런가 결국 아이를 낳지는 못하는 듯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맘에 안 들었던 후지바야시 쿄 편. 

 

 쌍둥이 자매인 쿄와 료가 둘 다 오카자키를 좋아하는 삼각관계 스토리인데, 글쎄. 진짜 끝까지 보면서 료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쿄가 하고 있는 짓이 임자있는 남자를 꼬시기 위한 아주 기초적인 순서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에 더욱 그러했다. 긴 머리를 뎅겅 잘라버리고 료랑 거의 흡사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아무래도 나기사가 목숨을 희생하고 토모요가 창창한 미래를 희생했던 것처럼 쿄는 성격을 희생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은데... 남의 행복까지 희생해서 만든 행복이 잘 될 것 같냐. 아무래도 저 세계에서는 이후에도 쿄와 료가 번갈아서 토모야를 쟁탈하려고 분주히 싸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혹은 그러다가 토모야가 드디어 분노 폭발해서 마을을 떠날 수도 있고. 결국 토모야와 쿄 사이에서도 애가 생기기엔 무리일 듯.

 

 

 

그러니 아무리 토모야가 나기사의 대화를 씹고 지나가더라도

결국 클라나드 세계에서의 최종 승리자는 나기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음. 나기사. 무서운 여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렌드 코리아 2018 (10주년 특집판)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18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굿즈에는 특정 취미에 극단적으로 몰입하는 현상을 일컫는 이른바 '덕질'코드도 있다. 굿즈 소비가 소비문화에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는 움직임을 보이자 기업들은 아예 굿즈로 '덕후'를 양성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오류있는 내용이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많이 쓸 것 같다.

 

경제는, 마르크스의 표현에 의하면, 사회의 '하부구조'다. 그 사회 내 다른 구조들의 토대가 된다.

 

 

 

맑스가 확실히 유행이구만 여기서도 인용해대고 ㅋ


흐음.. 분석맑스주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경제는 사회의 하부구조가 아니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의 주 대상은 생산관계이고 생산관계를 사회보다 우위에 놓는다고 봐야 한다. 정확히 "토대"란 말은 "근거"라고 볼 수 있는데 생산관계는 사회의 토대는 아니고 "생산관계는 생산력에 토대한다"라고 할 때 써야지.

 

1인 가구의 증가도 주목 대상이다. 낮은 출산율과 소자녀화, 늦어지는 결혼,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이혼 등 비혼 가구의 증가, 고령화 등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변화가 1인 가구의 증가와 관련이 있으며, 이는 다시 소비트렌드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 최근 확장되고 있는 소포장 상품의 인기, 24시간 편의점의 성장, 그리고 혼술 혼밥 혼영(영화) 혼행(여행) 등 '혼'으로 시작하는 트렌드는 모두 1인 가구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최근 폭발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간편식 시장HMT이나 소형 가전제품의 프리미엄화 현상은 이러한 1인 가구화의 직접적인 수혜 산업이다. (...) 1인 가구는 하나의 소비자군이 아니다.


 


왜 1인가구의 증가가 여자 탓인지 알 수가 없다.


여자가 경제성장을 하니 눈만 높아져서 결혼을 안 한다는 것인가, 아님 여자가 경제성장을 하니 남자들이 존심 상하고 불편해져서 결혼을 안 한다는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엔 후자인데. 그렇지만 1인 가구를 무작정 소비트렌드에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건 공감한다.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인지라 뭘 소비할지 알 수가 없다.

김난도는 가만히 보면 존내 부르주아라 청년들이 어떻게 사는지 왜 그러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음.
셰어하우스 설명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게 무슨 요즘 애들이 남과 만나는 게 자유롭다고 한다. 뭔 개소린지 모르겠다. 사실 그 사람들도 남과 살고 싶겠음? 가좆들은 껄끄럽고 회사(학교)는 본가와 멀고 그렇다고 도심에서 집 구해서 혼자 사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러지. 난 셰어하우스 가본적도 없지만 그렇게 살다 남녀가 불장난나서 파탄난 케이스들 너무 많이 봤다. 그 사람들은 그걸 모르겠냐고.
트렌드코리아는 참 좋지만 읽다보면 무슨 하루 23시간 공부하면 서울대학교 정문 뿌수기 할 수 있다는 공부의 신 보는 거 같다.

 


 요즘의 사회현상에서도 좀 까고 싶은 게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집에서 운동하기다.


그래 내가 먹슬림까지는 이해하겠다. 그치만 어떻게 집에서 운동하면서 살이 빠지냐 ㅋㅋㅋ 연예인들이 집에서 하는 운동은 다 스트레칭이다. 나머지는 다 전문가 불러서 관리한다. 나처럼 괜히 집에서 웨이트 트레이닝하다가 손목 삐어서 평생 왼쪽 손 물렁뼈 불룩 튀어나온 채 살지 말고 조깅 좀 해요... 미세먼지가 걱정일지 모르나 죽진 않아... 무서워서 밖엔 어찌 나가나. 아, 개인 승용차를 타나? 미세먼지 추가하기 오지고요.

 

소셜미디어에는 다양한 색깔과 스타일이 다른 그늘막이 인증샷으로 자주 올라왔다. 횡단보도 그늘막의 시작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 동작구에서 주민들의 열사병 피해를 막기 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그늘막을 선보였는데 시민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지면서 인근 구 및 타 지자체에도 속속 설치되었다.

 

 

이 책에서 언급되었던 물건들 중 가장 좋았던 점으론 횡단보도 그늘막을 들 수 있다. (작년에 만들었다곤 하지만.) 공무원이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의외이다. 그래도 어떤 점에선 지역차별 개 오지고요 시X.


야 우리 지역 베짱이 놈들아 보고 있니? 본받아 좀
그늘막까진 안 바라고요 건물 지을 때 먼지 막는 거나 제대로 설치해라. 아주 그냥 출근할 때마다 건물 짓는 냄새에 먼지 날리는 것 때문에 장님되겠다야 눈 멀면 먹여살려줘 ㅋ 소문나겠네 트렌드코리아에서 ㅋ

이렇게까지 여성의 고충이 적나라하게 세상에 알려지는 건 또 전에 없던 일이 아닐까 싶다. 수천년동안 여성들의 억눌렀던 분노가 쌓이고 쌓이다 전례없이 세계에 자신을 알리는 시대가 오면서 결국 폭발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급진 페미니즘이던 뭐던 상당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확립된다는 신호다. 그래서 이런 시기에 더더욱 여행 같은 걸로 도망가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떠나는 여성의 수가 증가함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들이 여행할 때 여성으로서 느끼는 부담감을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찍어 올릴지 나는 상당히 궁금하다.

파워건이나 슈퍼소닉 헤어드라이어는 어차피 기존부터 있었던 창의력과 아이디어가 빛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수제버거나 웰빙 다이어트 반찬은... 원래 식생활이란 게 그렇게 되야 하지 않았나 싶고. 이전 세대가 너무 돈돈거려서 인간이 먹지 못할 걸 먹은 거다. 나 학교다닐 때 매점 앞 햄버거 패티가 닭머리로 만든 거란 소문이 있었는데 가히 틀리지는 않았었다 봄.

트렌드코리아가 왜 인기있는지 알 것 같다. 2018만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작년에 샀거나 사용했던 게 다 여기있네 ㅋㅋㅋ 김난도 아재가 너무 어려보이기 위해 (옛날에 유행했던) 유행어까지 이야기하면서 힘쓰는 게 좀 안쓰럽지만, 확실히 보편적으로 히트한 만화 캐릭터나 단어를 경제로 해석한 건 특이하다. 독서모임할 때 서로 이 책에 나오는 물건 중 질렀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 재밌겠다. 난 김난도가 참여했다 해서 긴장했는데 이 아저씨 아프리카 청춘 때 너무 두들겨 맞았었나 전보다 유해졌더라. 그래도 난도 아저씨 왜 평창에 기대를 건다는 글을 써서 중간에 책 보는 속도 느리게 만드는지 모르겠다(와장창)

 


 

만일 지금 아즈망가 대왕이 우리나라에 연재되고 오사카(우리나라에선 부산댁)가 나왔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지역주의가 심한 게 우리나라 특징이긴 하지만 부산은 이렇지 않다는 등 강한 반발감이 나올 것 같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어쩐지 그런 반응을 예상한 것 같은데, 예를 들면 러브라이브의 미래즈라짱이 사는 동네가 가상으로 표현되어서 여행을 가고 싶어도 일본의 오키나와 어디쯤?이라고 나오지 자세한 정보는 없다. 그러고보면 지금은 지역감정과 관련된 농담이 크게 통하지 않는 듯하다. 교육받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더 이상 교양없는 소리를 참지 못한다는 뜻인 것 같기도 하다. 지역감정이 긍정적이기보단 부정적인 뜻이 훨씬 더 강한 걸 볼 때 참지 않는 성격은 이런 점에선 이득 같기도 하다.


근데 앞의 2017년 회고란을 너무 신나게 읽어서 그런가. 2018 본문은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고 책 구절을 너무 많이 인용했다. 무엇보다 2017년에 일어난 현상에 대한 중복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뭐 당연한 일이겠지만.
장사하는 사람들이 보기 좋은 책이다. 공부하듯이 읽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서적 매장이 리뉴얼한다고 한다. 2015년에 전국으로 대규모 리뉴얼이 있었던 듯하여 잠깐 글을 찾아봤다. 말이 좋아서 리뉴얼이지 사실상 인테리어를 개선하는 대신 책을 놓는 양을 줄인다고 한다. 또 나는 소문의 도마에 올랐고 사람들은 낄낄댄다. 일부 고객들은 여전히 내가 듣는 앞에서, 인터넷으로 책을 사 준다고 한다. 그렇게나 사람을 보기가 싫은 걸까? 그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이 그렇게나 필요없는 존재였나? 그리고 최저임금을 늘리는 대신 왜 시간을 줄일까? 어쩌면 대기업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욜로로 몰아가면서 놀라고 추궁한 다음, 일하는 시간을 점점 줄이는 게 아닐까? 생각이 많아진다. 높으신 분이 나에게 했던 말대로, 어쩌면 오프라인 서점은 한국에서 줄어들다 못해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이미 서점은 책 읽는 곳이 아니라 학용품이나 굿즈를 사는 곳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어쩌면 내가 이 서적 매장에서 마지막으로 일하는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 그 다음은 무인매장이 될 테지.
말이 동네서점이지, 일부 땅과 건물을 미리 산 서점 외의 다른 곳들 많이 힘들다. 설령 당신들이 책이 중요하지 않더라도, 쿠션처럼 깔고 앉더라도, 핵심내용을 마구 오려가더라도, 책을 직접 만지는 사람들에겐 다 일하는 이유가 있다. 책이 생명인 사람이 있다. 그 지역에 책의 소중함을 알리고 팔려는 사람이 있다. 책덕후를 늘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 책 관련한 일 외에 아무 일도 오래 즐겁게 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맨 마지막이 바로 나다. 뭐하러 별로 팔리지도 않고 무거운 책을 들고 나르며, 손가락이 부러져가며 허리가 꺾여가며 일하겠는가.
요새 성서 중 에제키엘편을 읽고 있는다. '그제야 너는 내가 주님임을 알 것이다'라는 문장이 눈에 밟힌다. 언제야 사람들은 책과 서점의 소중함을 알까? 트렌드코리아 2018에선 서점이 흥할 날이 오지 않는다 단언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2018년에도 나는 끝까지 일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책과 서점과 점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리겠다. 이 글을 보는 다른 분들도 각자의 일에 힘내시길 바란다.



 


 


 

올해엔 좋은 점보다 좋지 않은 점이 정말 많이 쳐들어올 거란 걸 이 책은 증명하는 듯하다. 그 중 하나가 아무리 합리적 소비를 한다고 해도 결국 소비인 이상 물건을 삼으로써 심기를 달래려는 마음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자신에게 있는 물건을 무리하게 합리화해서 사는 경우도 있는데, 난 대표적인 경우가 무선청소기라 본다. 그리고 꼭 집에 없는 물건이라 해서 본인에게 필요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서 알찬 소비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독서대 사서 읽다가 반나절만에 망가뜨리지 말고.


요즘 페북과 인스타로 사람들이 근황을 알린다. 유명한 맛집, 여행, 스트레스 받아 지른 신상 등등. 그 사람들은 대체로 셀카를 찍고, 실명을 적어놓으며 당당하게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 화장실이나 집 베란다가 배경이다. 또한 20대 이상으로, 월급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는 직장을 다니거나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10대들이 익명으로 활동하는 걸 난 자주 봤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구직사이트를 뒤적이고 나면 장문의 자소설을 쓰곤 했다.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도 그 자소설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다 읽어본 후 날 취직시켰다고 했었다.
아마 그런 자소설도 쓰지 못해 취직을 못한 사람이 이 세상엔 가득할텐데 이런 사람들은 sns에 나타나지 않는다. 나 아직 괜찮아!을 외칠 수 있어야만 sns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보다. 여러 이유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에게 왜 미리 구조요청을 하지않았냐고 말하는 것조차 어렵다. 나 괜찮아!라는 가면을 억지로 쓰고 괜찮은척 살아가는 이들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니까. 그렇게 자꾸 가려지고 묻혀진다. 연락이 끊어진 몇몇 친구들이 이제는 잘 지내고 있기를.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잘 지내고 있기를.


 


 앞으로 서비스 즉 떡밥이 중심이 될 거라는 말이 난 굉장히 불안한데...


서비스는 돈 씀씀이가 좀 헤퍼야 줄 수 있는 분야다. 아무리 미소를 짓고 점원이 미인이고 친절해도 실물을 척 안겨주는 떡밥만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당장 외식업만 해도 그런 서비스를 안겨다 주는 데엔 상딩한 무리가 있다. 결국 비즈니스에서 서비스가 관건이 되리라는 말은 스타트업,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이 앞으로도 더 죽어나간다는 이야기다. 빅데이터를 제작하는 데도 어쨌던 돈이 필요하지 않은가. 결국 여유가 있던 사람들이 더 돈을 쓸어모으고 여유없는 사람들은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태가 올 것이다. 부모가 가난하거나 혹은 태어나서 10대까지 용돈을 모으지 못했다는 죄로 앞으로의 인생에 어마어마한 장애를 받는 사람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것.

 

'츤데레'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일본어 'ツンデレ'에서 온 말인데, 처음에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후에는 우호적인 태도로 변화하는 것, 혹은 인간관계에서 적대적인 태도와 호의적인 태도의 태도의 양면을 함께 가지는 경향을 뜻한다.

 

 

츤데레는 히라가나로 쓰는 게 아니라 가타카나로 쓰는 겁니다 난도 아재 ^^
인터넷 검색 좀 하고 글 써 주세요 ㅎㅎ

 

제주도와 강원도처럼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국내에서, 혹은 쿠알라룸푸르 다낭 발리 등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해외에서 느리게 살기에 도전하는 '한 달 살기'는 초등학생 이상의 자녀를 키우는 맘카페의 단골 주제가 됐다.


 


P.S 그래서 강릉에 곤돌라 들어오냐 ㅋㅋㅋ 명백히 세울 장소를 잘못 선택했구만. 첫 사공을 아리시아 짱으로 세울 용기도 머리도 없으면서 ㅋㅋㅋ 짓지만 말고 좀 열과 성의를 보이세요 공무원들 븽시들아 ㅠㅠㅠ 그리고 주민들은 요새 슬라임이 왜 팔리는지도 모르는 것들이 건물들만 쳐지으면 답니까? 매력이 있어야지. 보나마나 무슨 보헤미안 전통 살린답시고 수염 달린 아재들 직원으로 앉혀놓고 곤돌라 토오리마스!! 이럴거 뻔하다 아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계의 저편 - 과거편
이시다테 타이치 감독, 치하라 미노리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고 안경 안 쓴 너도 좋아."

 

 

 애니편과 연결된 미래편.
 그러나 역시 개망나니 칸바라로 인해 몸도 마음도 다 망가진 미라이는 너무나도 힘들었는지 기억 자체를 닫아버렸다.

 

 그래도 칸바라에게 미련이 남았는지 계속 눈으로는 그를 쫓는다. 이는 사실 기억을 닫은 것이 아니라 '칸바라 때문에 괴롭힘당한' 기억을 무리하게 닫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싶은 미라이의 본능적인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미라이의 능력조차도 지워버린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칸바라가 보기엔 '미라이의 능력이 망각 속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 좋았다. 그것이 미라이의 행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라이의 행복은 미라이가 정해야 하므로, 이는 그가 멋대로 판단한 것이 된다. 게다가 머릿 속으로 행복을 생각하고 마음 가는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는 행복해질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칸바라의 친구가 말한 대사. 그리고 정확히 내가 몇 년 전에 들었던 말과 일치한다. 결국 난 머릿 속에 그린 행복을 실천에 옮겨서 지금에 왔지만, 일단 칸바라는 그 충고를 받아들여 마음가는 대로 미라이에게 연락을 한다.

 그러나 사랑은 타이밍인 것을. 자신의 능력을 보고 고민했던 그녀에게 자신을 칸바라라고 속이는 시커먼 악당이 찾아와서 의심과 증오의 요괴를 그녀의 마음 속에 심는다. 한눈에 보기에도 징그러운 그 벌레 요괴는 마치 촉수같아 보이는데, 촉수는 심리적으론 집단강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상당히 미심쩍은 장면이었다. 칸바라의 시점에선 자신 말고 미라이와 사귀는 모든 남자가 그런 요괴로 보일 수도? 아무튼 미라이는 그 촉수같은 것으로 인해 타락하고 미쳐버려서 칸바라를 공격한다. 사랑은 증오로 바뀐다. 이럴 때 정말 여자는 무서워진다. 안경이고 반지고 상관없이 모두 집어던진다. 자신은 물론 자신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특히 그녀가 평소에 강인한 여성이었을 경우, 그 증오는 더욱 압도적이다. 이런 때 칸바라는 어떻게 하는가?

 

그는 불사신이다.

 정말 죽어라고 미라이에게 매달려서 자신에게 돌아와달라고, 자신을 좋아해달라고 사정한다. 어차피 죽지도 않으니 그녀가 증오를 하던 폭행을 하던 살의로 찔러대던 꿈쩍도 안 하고 달라붙는다. 그에겐 미라이에게 맞설 수 있는 아무 방법도 없다. 일단 경계의 저편은 인간적인 칸바라에게 완전히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히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동시에, 열정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그녀에게 매달린다. 그리고 그녀에게 결정적인 자신의 무기를 딱 때려넣는다.

 그것은 바로, 미라이 어머니의 승낙.

 사실 결혼하고 싶은 여성이 생겼을 땐,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공략하는 게 맞다. 섣불리 티나게 공략했다가 눈치빠른 어머니에 의해 되려 퇴짜맞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하지만, 현명한 여성은 사실 결혼할 때 자신의 어머니에게 의견을 묻고 그 조언을 참조한다. 왜냐하면 어머니도 아버지를 만나 몸도 마음도 다 빨리고(...) 갖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자신의 딸이라면 대충 이런 남자를 만나야 잘 산다는 걸 알거든. 물론 자신이 금지옥엽 이뻐하던 딸인지라 '저 놈은 죽여야 할 놈이다' 같은 말도 할 수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남자는 다 나쁜놈이니까. 하지만 '더 나쁜놈'인지 아닌지는 결혼할 여자의 선택에 달린 일이다.

 미라이는 어디에 합격점을 줬겠는가?

 나는 칸바라의 "그리고 안경 안 쓴 너도 좋아."에 의미를 뒀다. 그는 미라이의 모든 측면을 봤다. 하얀(의롭고 용맹한) 측면도, 검은(힘이 세서 분노하면 걷잡을 수 없는) 측면도. 안경 쓴 모습과 안경을 쓰지 않은 모습은 단순히 사물이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다. 칸바라가 미라이에게 자신이 지니고 다니던 안경을 쓰길 권유했을 때, 미라이는 '선배를 만난 기억이 없다'며 그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칸바라가 안경 권유는 잠정적으로 포기하고 미라이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미라이는 그의 삶으로 걸어들어왔다. 칸바라의 회심에 의해 그녀는 자유롭게 칸바라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인간이 변화하는 건 언제나 흐뭇한 일이다. 그야말로 사랑이 일으키는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주로 남자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뭔가 노골적으로 사랑학개론같은 내용이었지만 정말이지 주변을 보면 사랑에 서툰 사람들이 너무 많으므로, 꼭 이 애니를 보라고 추천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평점이 4.5점인 이유.

 

 

 P.S 이렇게 생고생하기 전에 정신이 박약하거나 이상해보이는 남자를 목격하면 꼭 정신병원에 상담보내라. 제발 좀 함부로 사귀지 말고. 왜 정신 멀쩡하지 않은 사람이랑 밀당하면서 그걸 즐기고 있냐. 


 남자들 중에선 정신이 불안정해 보이는 여자랑 다툼하는 게 사랑인 줄 아는 케이스가 다분한데, 편한 연애도 많다. 괜히 매력적으로 '보이는' 여자들 집적대지 말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으면 차라리 고자인 척이라도 해라. 아님 정신이 불안정한 여자의 그 광란도 매력적이라고 받아들이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