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 유물과 유적으로 매 순간 다시 쓰는 다이나믹 한국 고대사 서가명강 시리즈 12
권오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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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책장을 열면 독자들의 이목을 솔직히 나만 그리 느꼈을 수도 있다 - 사로잡는 강력한 저자의 

주장이 언급되어 있는데, 그 문구는 웬지 모르게 나의 관심을 집중시키게 하였으며 작품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 단초를 제공한 문구인데.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는 한국이란 틀 안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역사학자는 민족사를 넘어서 인류 공동의 역사 연구에 앞장서야 한다"


몇 번을 읽어도 나는 해당 문구로부터 감흥을 크게 받았다.

이제까지 한국사를 여러 관점에서 다룬 몇몇 작품을 접하면서 한국사에 숨겨진 역사의 속살을 

알뜰히 뒤집어 보는 사람’ 이라 자부하며 살고 있지만 늘 가슴 한 켠에 남아 있던 아쉬움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정보 즉조선시대 이전의 이야기에 대한 부족함이 항시 아쉬웠었다.

특히, 우리 민족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와 신라, 백제, 고구려를 비롯한 가야사는 물론 위만조선과

발해사에 대한 부족된 정보에 대해서는 항상 목마름이었다.


내가 역사학과 무관한 분야에서 공부했고, 일하고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부분은 항시 갖고 있던

의문이며 아쉬움이었기에 지난 2005년부터 시간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한국 고대사, 그 의문과

진실'(김영사, 이도학)을 필두로 '한국사를 바꿀 14가지 거짓과 진실(지식파수꾼, KBS)’ '우리도

몰랐던 한국사 비밀 32가지(북오션, 이수광)' '고려사 재발견(Humanist, 박종기)라는 작품을

읽었지만 남는 것은 어느 것 하나 나름의 호기심에 대한 확신을 내게 던져주지 못 해 아쉬움

그 자체로 남았던 것이 사실이다.

앞 작품에서도 그러했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작품에서 언급된 모든 

사항들이 단순한 저자의 주장에 불과(너무 낮추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하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며 읽으면 읽을수록 아쉬움만 크게 남았기 때문이다

우리 고대사 연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저자의 주장처럼 나 역시 동의하는 입장이다

통일신라로 인한 고구려와 백제 문화의 흡수, 임진란으로 인한 일인들에 의한 훼손, 한일합방

으로 인한 관련 문화재들의 약탈과 함께 수많은 사료들의 수탈가까이는 한국전쟁과 근대에 

들어서는 개발논리에 밀려 우리의 귀중한 역사적 사료가 어느 것 하나 온전히 남아 있지를 

않기에 어렵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는 상태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께서는 외국을 넘나들며 우리의 작은 것 하나라도 그 속에 숨겨진 역사적 사실을 찾으시려는 노력은 참으로 고맙고 눈물겨운 사항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기에 역사를 사랑하는 평인으로서 저자께 무한한 존경심을 보내는

바이다.

 

코로나로 인해 외국에서 장기 체류를 하면서 요즘 부쩍 '유 튜브'를 가까이 하고 있는데,

최근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불고 있는 K-POP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앞날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올라온 것을 시청하고는 하는데 지금 기억이 잘 나지를 않지만 어느날 유튜브에서 

마주한 우리의 난방 문화, 온돌문화가 동쪽으로 전파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내용의 

방송을 접한 적이 있는데방송을 보면서 역사적 근거가 어느 정도 있는 사항이라고 한다면 

저자께서(역사학을 연구하시는 분들이라면)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왼쪽의 문화권에 대한 

조사만 하시지 마시고 우측 라틴 아메리카 쪽으로도 연구 범위를 넓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주 가끔 과거에는 자주 있던 일이지만 - 서부영화를 마주하게 되면 출연하는 인디언들의 

모습이 솔직히 우리 선조들의 모습과도 상당한 연관성이 있을 듯하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그쪽으로도 연구를 해 보시는 것은 어떤지 과감히 이야기해 봅니다

작품에서는 저자의 학자적 연구 성과 내지는 나름의 논리로 여러 주장을 전개하고 계시지만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에는 관련 지식과 학문이 짧은 나로서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다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매번 독후감을 정리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여기서는 작품 내용을 

축약, 정리하는 것을 배제하였지만 역사에 관심이 있고 우리 역사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쯤 해당 작품을 구매해 읽어 볼 것을 강력 추천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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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독재부터 촛불까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서가명강 시리즈 8
강원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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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 3


작품을 읽으며 길지 않은 정당정치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별별일이 다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생각이 들 뿐이었다.

나도 적지 않은 세월을 살면서 정치사적으로 격변의 중심을 정확히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목격하며 살아온 삶이기에 서울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동안 몰랐던

우리의 정치사를 들여다 볼 요량으로 작품에 도전했는데 머리만 더 복잡하게 만들고 말았다.

아무리 백 번 천 번 양보를 해서 우리의 정치역사를 좋게 바라보려 해도 작품 행간을 통해

발견하고, 느낀 것은 사람이었고, ‘권력욕이었으며 민생은 뒷전이었던 저급한 인간사 이야기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작금 시장 선거에 나선 후보들을 보면, 굴뚝에 들어갔다 나온 어린아이를 둘러싼 논쟁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같이 놀던 친구가 술래잡기를 하며 숨느라고 굴뚝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술래가 찾지 못하자 굴뚝에 들어갔던 아이가 의기양양 하게 술래 앞으로 나왔다.

얼굴이 엉망진창이다.

이를 본 술래인 굴뚝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는 좀 전에 자기도 술래가 아닐 때 숨었던 굴뚝에

대한 생각이 미치자 자기 얼굴도 혹시나 지금 굴뚝에서 나온 아이처럼 얼굴이 숱 검댕이를

묻히고 있는 줄 알고 재빨리 세수를 하러 뛰어간다.

반면에 굴뚝에 들어갔다 나온 아이는 굴뚝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검댕이를 묻히고 나오는 아이를

보고는 달려가 세수를 하고 와 깨끗하게 된 얼굴의 아이 얼굴을 보면서 자신도 그 아이처럼

깨끗한 줄 알고 깔깔대며 웃는다. 더럽다고…….

두 아이 모두 옷은 숱 검댕이로 얼룩져 있는데 말이다.


우리 선거판을 보면,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전부 굴뚝에 들어갔다 나온 아이 같은 데 마치

자기는 굴뚝 밖에 있었던 아이처럼 행동하며 유권자를 졸()로 알고 있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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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보다 더 소중한 것 - 송호근의 시대진단
송호근 지음 / 나남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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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 9 


작품을 논하기에 앞서 나는 누구처럼 촛불까지 들면서 광화문에서 이게 나라냐라고 목놓아

외쳤던 그런 사람도 아니기에 저자께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문제점에 대해 작품을 그냥

덤덤히 읽고, 느끼고, 나의 관점으로 받아 들일 것은 받아들이며 읽었다.

나는 직장 생활하며 업무 특성상 정말 많은 스크랩을 했었다.

종교, 정치 및 경제는 물론 심지어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들의 깨알 같은 이야기까지 훗날을 생각

하며 교훈이 될 만한 내용이라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아 놓고는 했었는데,

그런 내가 했던 스크랩의 대상들이 어느 날부터 하나, 둘 감옥으로 들어가 범죄자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또 빙산의 일각이지만 한때 모 재벌기업의 저격수(?)라 불리우시던 분이 부동산

장난질 치다 공직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간 애써 모아 놓았던 스크랩을 자료를

모두 불살라 버렸던 나의 행동이 옳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세상을 적지 않게 살아온 나는 이제는 누구를 닮으려, 존경하지도. 않으며 조용히 살고자 한다.

믿었던 게 바보고 천치였다.

그런 마음으로 작품을 짜증내며 읽었다.

작품을 읽으며 느낀 사항으로 내가 문구 하나를 만들어 보았는데 아무리 곱씹어봐도 정말 잘

만든 문구라 생각한다.(사실 문구는 예전에 만들었는데 지금 써 봐도 좋은 것 같다)

타인의 칭찬은 지나는 바람에 이야기해도 타인의 비난은 자신의 그림자하고도 말하지 마라

라는 문구로 본 작품의 소회를 대신하고자 한다.

책을 덮는 순간 마누라가 이야기합니다.

여보 확실한 개발정보가 있는 땅이 나왔다는 데 같이 가 볼래요

나는 주저 없이 이야기했습니다.

~~~! 거기가 어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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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모리시마 쓰네오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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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6


작품을 읽으며 느낀 생각은

이제까지 남의 나라, 남의 이야기처럼 마주했던 마녀 사냥’, ‘마녀 재판은 작금의 

 이 땅에서도 있었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작품을 읽다 보면 이런 내용 곳곳에 나오고 있어 이런 대목을 마주하게 되면 놀이동산에 있는 

귀신의 집에 온 듯한 느낌이 들고는 한다 - 이 나온다.


자신이 신봉하는 신조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자는 죽음으로 처벌하고자 하는

 불관용과 박해 정신에 있어서 신(개신교), (가톨릭) 양 종교의 입장은 완벽히 일치했다

이 문구를 갖고 우리 역사를 찬찬히 뜯어보면 비슷한 사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자학의 신봉자였던 송시열에 의해 주도되었던 사문난적과 관련된 

이야기다

사문난적이라 함은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주자의 가르침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내용이나 

해석을 가할 경우 송시열과 그의 추종 세력들은 그런 내용을 발설한 자를 사문난적’(斯文亂賊,

교리에 어긋나는 언행으로 유교의 질서와 학문을 어지럽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문(斯文)은 문장을 쪼갠다, 갈라놓는다는 뜻으로 학문을 어지럽히는 행동, 난적(亂賊)은 나라와 

사회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란 뜻으로 유학의 근본에 어긋나는 이단적인 학설 또는 정통에 어긋

나는 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쓰는 표현(naver 참조)’

으로 규정하고 매장시켰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작품을 읽는 내내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단어와 작품 내용이 오버랩 되었는데 본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나의 이런 주장에 공감할 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역사적 사실을 접하다 보니 특정 문구에서는 작금의 시대적 상황과 비교를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데 해당 문구를 접하면서 그 전율의 정도는 극에 달했는데 그것은


근대적인 르네상스 운동과 종교개혁 운동은 시작부터 최후까지 중세적 마녀재판이 이루어진 

 그 시기가 겹쳐진다


이 대목에서 할 이야기가 많다. 인문학이 꽃을 피우던 그 시기가 마녀를 처단하던 시기와 일치 

한다는 내용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의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우선 작가가 이야기한 르네상스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르네상스라는 말은 원래 누구나 알고 있듯이 '재생'(re)탄생(naissance)’을 뜻하는 프랑스 

언어에서 나온 것으로 구체적으로 14세기로부터 서유럽에서 시작된 그리스 및 로마의 고전

문화의 부활을 뜻한다.

봉건 제도가 무너지고 교회의 권위가 쇠퇴하는 중세 말에서 근대 초에, 유럽인들은 중세의

크리스트 문화와는 다른 새로운 것을 찾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리스, 로마의 학문과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중세와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다.

당시 사회는 인문주의의 발달로 사람들은 중세의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관

자연관, 세계관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학문과 예술이 크게 일어났다.

이러한 문화 운동을 르네상스라 한다.

따라서 르네상스는 구체적으로는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문예를 되살리자는 것이지만, 단순한 

옛 문화의 부흥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사회를 이룩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서 일찍이 도시가 번영하고 동방 무역이 

번창한 이탈리아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그런데 논지에 따라 르네상스의 정의는 종종 크게 다르다.

, 문화운동을 지칭하는 경우와 시대 구분을 지칭하는 경우에 종종 혼선이 생긴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에도 점성술과 마술 등 비과학적 사고가 많이 남아 있음이 밝혀졌다.

이로 말미암아 중세와 르네상스를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따라서 르네상스가 근대의 시작인가, 아니면 중세의 범위가 되는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naver 참조)


매번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청산이다, ‘적폐다’, ‘구태를 벗어나야 한다등을 외쳤지

새 역사 창조를 위한 노력은 집권 초창기에만 반짝하고 보였을 뿐 과거의 좋은 정책이 후임

권력자에 의해 연속적으로 진행된 적이 거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르네상스에 대한 정의 구분이 헷갈리듯 새롭게 탄생한 정권이 국민이 바라는

새 정권인지 아니면 구 정권을 응징하기 위해 즉, 한풀이를 위해 탄생된 정권인지가 심히 우려

된다는 것이다

고난 끝에 정권을 잡아 기득권이 된 세력들은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든다면서 바뀌기 이전

세상에서는 기득권이었고, 지금은 소수로 전락한 상대를 대상으로 주구장창 벌이고 있는 각종

행태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아닌 다수결이 먼저이고 구태의 척결이

우선인 세상으로 변질되고 있는 듯하였으며, 정권을 잡으며 새로운 집권층이 외쳤던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며결과는 정의롭게

라는 슬로건이 진정으로 실현되고 있는지가 자못 궁금할 뿐이라고 주장하면 또 어느 누가 냄새가 난다는 둥, 웃자고 한 이야기 갖고 죽자고 덤빈다는 등의 이상한 논리로 은근 슬쩍 넘어가려 

할 것이고 논점을 흐리려 할 것이기에 무엇을 말하던 주류에서 벗어난 주장은 곧 이단이고,

사탄이고, 마녀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우려가 생기고는 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인간의 존엄이 재평가되는 새로운 장을 열었던 르네상스의 진정한 

의미가 후대에 의해 논쟁거리가 되고 있듯이 이 정권 역시 진정성과 그들이 행하였던 업적도 

언젠가는 재 평가될 것이란 나름 무서운 생각을 해 본다.


종교개혁(과거청산)을 종교계(국가)의 르네상스라고 치자면 종교적 르네상스인(신진 집권층)

다들 열광적인 마녀 재판관이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런 마구잡이식 마녀 재판의 최전선에서 이를 부추긴 사람들은 일반 백성이 

아닌 역대 교황과 국왕, 귀족, 당대의 일류 대학자, 재판관, 문화인 등으로 대변되는 사람들로서 

마녀 재판을 벌였을 당시 주역들과 권력을 잡은 신진 집권층이 시대와 형태만 달리한 비슷한 

집단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머리가 아파온다.


나는 지금의 기득권층을 현대판 마녀 재판의 주역으로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김 대중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대통령처럼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정신을 상기해 어렵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과거의 잘못된 관행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았던 집단과 사람들은 

다수결이라는 미명아래 소수의 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소수시절 받았던 섭섭함을 다수라는 이름 하에 과거의 다수들에게 되돌려 준다면 그것만큼 

치졸한 집단은 없을 것이다.

어느 수준 낮은 몰상식한 인간이 내뱉었다는 억울하면 다수가 되던가라고 외치지 말고 소통

하고, 타협하면서 민생이 반겨 하는 그런 토론의 장에 앉아 마음과 마음을 열어 놓고 이야기를 

한다면 안 풀릴 문제가 있겠는가?


나는 공수처 문제가 왜 논란의 대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단지 알고 있는 하나는 소수가 된 과거의 다수가, 한 때는 공수처 발족을 열렬히 지지했다는

점인데, 지금의 그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공수처는 절대 안 된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난리를 치고 

있는데 그들의 논리가 왜 갑자기 바뀌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 것이 선결되지 않고는 아무리 노력을 하고, 억울해 못 살겠다고 길거리에서, 신성한 국회

의사당에서 자리를 깔고 누워 항의해도 다수의 국민들은 과거에 다수였던 소수는 발목만 

잡으려는 치졸한 귀태라는 소리 밖에 들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서로가 한발씩 물러서 소통하고 타협하고, 대화할 때만이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항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현재의 기득권은 과거의 기득권에게 너희들이 자행한 마녀재판을 청산하기 위해라는 소리를

현재의 소수들은 다수의 힘으로 밀어 부치는 마구잡이식 마녀 사냥을 한다라는 다람쥐 

쳇바퀴식 비난전만 벌어질 것이 자명하다 하겠다.


결론적으로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의 진정한 르네상스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찌해야 할

지는 나는 물론이거니와 국민 모두가 각고의 자기성찰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마녀 사냥을 종식시킨 주역이 다름 아닌 학식도, 명성도 없는 일개 상인 

, 백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두서 없이 정리해 보면


- 마녀가 박해를 당한 것은 마녀라서가 아니라 마녀가 주술을 이용하 사람을 죽이거나 농작물을 

  말려 죽이는 등의 악행을 저질러서였다. 마녀에 대한 탄압과 박해는 마녀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마녀가 행하는 반사회적인 범죄에 대한 것이었다.


- 성서에서 마녀에 대해 언급된 부분은 구약성서는 극히 소수, 신약성서는 전무했는데,

  구약에서 마녀를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 22:18)’라는 모세의 말을 후일 마녀재판관들이 

  인용하면서라고 한다.


- 12세기 남프랑스에서 발발한 대규모 이단 운동과 이것이 로마 카톨릭 교회에 준 충격,

  즉,  신의 나라가 붕되될지 모른다는 위기였다

  이단 운동이 일어난 원인은 강력한 교황의 권력과 이를 뒷받침한 성직자의 독선적인 우월성 

  때문이었다. 이 무렵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이 이를 부채질했다.

  인노첸시오 교황이 인민이 퇴패한 주원인은 성직자이다. 신앙이 죽고, 종교는 손상되었으며

  이단자가 증가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라고 이를 인정했다.


-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이단을 멸하기 위하여 전도사를 남프랑스로 파견하는데 주축 세력은

  ‘도미니크 수도회를 만든 성 도미니크였다.(알비 십자군)

  알비 십자군은 1229년에 해산되지만 이단 심문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십자군이 탄생한다.

  마녀 재판은 이 새로운 십자군에서 태어난 중요한 사항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단 심문에

  집중하자 개혁문제를 잊고 광신적인 주의 충직한 개가 되었으며 이단을 촉발시킨 타락한

  수도사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권위에 아첨하며 사리사욕에 눈이 먼 교황청 소속

  단체에 지나지 않았다.

- 당초 마녀는 이단 심문의 대상이 아니었다. 마녀를 싫어한 것은 교회가 아니라 일반 대중과 

  세속 재판관이었다. 교회는 오히려 마녀를 감쌌다.  이단자 처단 운동이 격화된 11~12세기 

  무렵부터 이단자를 재판하는 교회 측 법정에서 마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 마녀는 마녀가 행한 형사범적인 행위때문이 아니라 그 행위 이전에 악마와 결탁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영혼의 타락때문에 재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악마와의 결탁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유래했다.

- 이단 심문과 마녀 재판이 열렸던 중세는 신앙의 시대가 아닌 불신의 시대였다.

  특히, 템플 기사단에 행해진 엉터리 마녀 재판은 마녀가 정치적 도구로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프랑스는 템플 기사단 사건으로 강력한 왕권과 템플 기사단의 막대한 부를 챙기게 된다

- 프랑스의 잔 다르크의 이단 심문은 모두가 미워하고 기피하며 싫어하는 마녀 이단자로 꾸민 

  영국의 정치적 책략에 의한 희생양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 마녀 집회에 참석한 신참 마녀는 악마와 결탁했다는 증표로 몸의 특정 부위에 소위 마녀 

  마크가 새겨져 있다고 믿었으며, 이 마크가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을 경우 전신을 바늘로 찔러 

  무감각한 부위를 찾았다. 그 부위가 마크가 숨겨진 곳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바늘로 찌르기 업자의 정식 조합이 조직되기도 했다고 한다

  전문가는 수익을 늘이기 위해 부정한 도구(몸을 찌르면 바늘이 몸이 아닌 기구 안으로 들어

  가는 장치)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 14살 이상의 남자, 12살 이상의 여자에게는 이단을 고발할 의무가 있었다.

- 마녀로 처단되는 자는 사후 재산으로 마녀 사형 집행에 소요된 비용을 납부해야 했다.

  그리고 남는 돈이 있을 경우 마녀 재산의 3분의 2는 주교의 손에, 나머지는 재판관의 

  들어 갔다고 한다막대한 부를 소유한 유대인이 이단 적발의 타킷이 된 것은 몰수 재산액과 

  이단 추궁 열기가 정비례했다.

- 잔인한 도살에 의한 죄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겼고, 새로운 연금술은 사람의 피로  금과 

  은을 만들었다.(코넬리우스 루스 마법의 진실과 거짓, 1592)


- 이단 심문관은 신앙의 관리와 단죄는 이단 심문관의 권한이다. 이 권한은 다른 모든 권한

  위에 존재하며, 이를 방해할 그 어떠한 법률도 없다며 그 위세를 과시했다.

- 근대적인 르네상스 운동과 종교개혁 운동은 시작부터 최후까지 중세적 마녀재판이 이루어진

  그 시기가 겹쳐진다.

  1600년을 중심으로 100년간은 마녀사냥의 절정기임과 동시에 또한 르네상스 운동의 절정기

  였다, 종교개혁을 종교계의 르네상스라고 치자면 종교적 르네상스인은 다들 열광적인 

  마녀 재판관이었다. 휴머니즘과 실증주의의 시대였던 르네상스 시대는 한편으로는 잔학과 

  미신의 시대이기도 했다.    

  최전선에서 이를 부추긴 사람들은 일반 백성이 아닌 역대 교황과 국왕, 귀족, 당대의 

  대학자, 재판관, 문화인이었다는 이다.


- 마녀 개념을 장착한 것도 그것을 또 이단심문에 적용하여 마녀재판을 시작한 것은 구교도이나

  마녀 재판을 화려하게 만든 것은 신교도이다.

- 마녀재판에 관한 한 종교개혁은 종교 제도 개혁일 순 있어도 종교 정신 개혁은 아니었다.

  개혁자는 옛 교회의 독단주의에 항의했고 직접 성서로 귀의했다개혁자에게 하나님 말씀의 

  해석이란 단 하나뿐이었다. 그 단 하나의 해석이란 오로지 자신의 해석이었다

  신교의 불관용이 여기서 생겨났다.

  따라서 신의 말씀은 단 하나의 방식으로만 해석된다고 여긴 루터는 코페루니쿠스를 졸부

  점성술사라 매도했고, 지동설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 마녀를 재판하는 자의 부정과 악덕은 하늘을 찌를 듯하였는데, 그들이 저지르는 악덕 행위 

  자체보다는 신의 이름으로행하는 일이라고 확신한 탓에 그들이 신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구제불능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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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비로소이다 - 송익필 노비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정치 나는 OO로소이다
임상혁 지음 / 역사비평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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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 7


작품을 읽기 전에 구봉 송익필 선생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으나 구봉 선생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다 못해 

아는 게 별로 없어 또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게 옳지 않기에 율곡 및 성혼 선생과 벽을 나란히 한 실력자라는 선에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추후 관련 작품을 접하면 상세히 적시하겠다)

아무튼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는 사항은 구봉 선생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고 여겨진다.

우리 나라도 한 때 이야기할 때마다 잘 되도 누구 탓, 잘못 되면 더욱더 누구 탓을 외치던 시대가 있지 

않았던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조금만 이상하면 구봉 탓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


구봉 선생의 명성을 엿볼 수 있는 사항을 작품에서 찾아보면 인조 때의 명신인 김류는 재상이 되었을 때 

내가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 그날 구봉께서 몸소 차근차근 가르쳐주신 덕분이다

라고 했을 만큼 뛰어난 분이셨고 또한 사계 김장생을 율곡의 문하로 배정하는데, 그가 이이로 부터 배운 

바도 적지 않으나 일찍부터 수학하여 평생 스승으로 섬긴 이는 구봉이었다고 한다.

작품의 개요는 한마디로 요약해 보면 안씨 가문이 송씨 가문을 박살내는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 안씨 집안 사람들과 측근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 과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여종 비첩

(중금)의 후손 중 한 사람인 송사련이 자신의 처남(정상)’과 함께 관가에 고발하면서 일이 벌어진다

그 결과 안 씨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지만, 100년이 지난 어느날 안 씨 집안이 재기하면서 당시의 그 사건을 

들추어내 속된 말로 고소고발 전을 벌여 송 씨 후손들을 노비로 삼는다는 이야기며

그 송 씨 후손의 한 사람인 구봉 선생도 곤혹을 치룬다는 이야기로 작품은 일련의 이러한 과정이 타당하고도

합리적인 것이었느냐 하는 점에 대한 고찰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백 년 전에 일어난 일을 갖고 현재를 단죄한 내용이라는 점인데 그 과정이 합법성을 가장한

위법이 난무하였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고증한 작품이다.


위에 언급한 내용 외에 세세한 내용을 축약해 여기에 올리는 것은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또 출판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되어 이 공간에 작품을 축약해 올리지 않으려 한다

어찌되었던 중언부언하는 이야기지만 작품을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읽다 보면 한마디로 이야기해 

죽었다 살아난 권력이 원한을 가진 가문을 집요하게 망가트리는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작품 내용과는 별개로 다시 한 번 확인한 사항은 송강 정철에 대한 이야기다.

후세들이 그리 좋은 인물로 평가하지 않는 인물인 송강 선생에 대해 저자는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선생을 

변호하고 있는데 지난 2015년 송강 정철을 주인공으로 놓고 토론식으로 전개한 작품 유성룡인가 정철인가

/오항년 지음/너머북스에서도 밝혔듯이 정철 선생은 후세 역사학자들  평가에 의해 억울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을 본 작품에서도 역설하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작품을 읽다 보니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아 있는 권력과 쓰러져 가는 권력간의 혈전을 보는 

듯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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