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리커버 특별판)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 8

 

작품은 비장애인을 향한 장애인들의 외침이고, 주장이며, 요구 사항이다.

 

해당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작품 서두에 저자가 인용한 문구가 있는데 모두가 읽어

보고 작품에 들어갔으면 합니다.

모든 삶에는 상처가 있고, 아쉬움이 있고, 한계가 있고,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도 있다.

 논리적인 글은 두뇌로 쓸 수 있지만 진심이 담긴 글은 삶으로만 쓸 수 있다

이 문구를 독후감의 서두에 왜 올렸는지는 독자들은 작품을 읽어보면 아실 것이다.

내가 저자가 서문에 이 글을 올려놓은 이유를 작품을 읽으며 알게 되었듯이.

 

아마 80년대 말로 기억되는데, 태어나 해외라는 곳을 처음나간 대만의 번화가에서 우연히 마주한

광경인데, 좁은 길에서 휠체어 장애인이 일용잡화를 팔고 있었다. 거리의 통로가 좁아 정상적인

성인 일반인들이 교행하기에도 약간은 벅찬 공간이었는데 그곳에 있던 장애인 노점상과 부딪혀

장애인 판매대가 흐트러지게 되었는데 그 사건을 처리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각기 보여

모습이 굉장히 인상깊게 나에게 각인되어 있다.

당시 상황은 내가 중국어를 못 알아들으나 그들의 표정과 말하는 톤으로 보아 장애인비장애

인 일반인에게 다친데는 없는가묻는 듯하였고, ‘비장애인본인 부주의로 당신 판매대를

망가트려 죄송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듯하였다.

당시 장애인과 비장애인 두 사람 모두 일반 정상인들 간에 벌어진 사소한 실수처럼 사건을 처리

하는 모습에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 우리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야 장애우들에 대한 인식이 좀 나아졌으나 아마

  당시 그런 일이 우리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졌으면 아마도 재수없게..XX이 집에나 있을 것이

  지라는 저급한 언어가 나왔을 것이다 -

 

내가 직장인 시절, 한 잔 걸치고 늦은 퇴근길을 서두르기 위해 지하철 계단을 내려 마을버스

정류장 쪽으로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의 팔꿈치를 잡아채는 것이었다.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자 나를 잡은 그 손의 주인공이 나에게

저는 맹인입니다. 제가 늦게 지하철을 타는 바람에 지금 시간상 저희 집에 가는 마을버스 막차를

 놓칠 것 같습니다. 보시는 바와같이 제가 앞을 볼 수 없습니 죄송하지만 시간이 되시면 제가

 저의 집까기 가는 막차를 놓치지 않게 버스 정류장까지 빨리 데려다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막착 도착 시간을 고려했을 때 거리상 시간이 빠듯했지만 나는 흔쾌히 수락하고 그 맹인과 함께

밤거리를 내달려 간신히 마지막 버스에 올라타게 한 적이 있다.

 

작품을 읽으며 나는 위의 두 사례를 기억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작품을 읽으며 그간

장애우를 우리 삶의 동반자로 정식 인정하며 살아오지 않았다는 일종의 죄책감에 대한 나름의 도덕적 면죄부를 찾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장애우들이 정상인들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을 우리

사회가 도와줘야 할 지원의 대상으로만 생각해 보았지 진정한 동반자로 깊이 있게 생각을 해 본

정상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 단순히 우리가 도와줘야 할 사람내 생활의 불편함을 초래할 경우는 특수학교 건축을 집단

적으로 반대하던 주민들처럼 가차 없이 외면해도 되는 그런 사람들 정도로만 이해되었고 또

그렇게 대해 왔던 게 사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콩따리 샤바라로 유명했던 모 연예인이 불의의 오토바이 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어 방송인으로

거듭나면서 자신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일상에서 장애인들이 당하는 불이익 내지는 불편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어느 병원을 찾아가는 프로가 있었다.

휠체어로 천천히 도로의 갓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옆으로 차량이 지나갈 공간이 나오지 않는 그런 갓길이었는데 뒤따르던 차량이 그 몇 미터의 거리를 빨리 지나지 않는다고 연신 클라션을 누르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 연예인이 아저씨 죄송하지만 조금만 걸음이 느려서 그러니 조금만 참아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쁜 세상에 왜 장애인이 집 안에 틀어박혀 있지 않고 거리에

나와 바쁜 정상인들의 발목을 잡느냐며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방영되었는데, 분명 그 자리에는 방송 카메라도 있었고 그런 말을 듣는 사람도 과거 한 때 유명 연예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터인데 삿대질까지 해 가며 난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유명 연예인에게도 저 정도인데

이름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수모를 당하며 살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니 답답했었다.

정립회관 황연대 여사께서는 우리 모두는 집 밖에 나가면 언제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상황이었다

이 작품은 정상인들 모두가 한 번은 읽어보고 각자가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그들과

어떻게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많이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작품 곳곳에 여러 생각을 던져주는 문구가 있지만 특히,

대중교통 수단이라는 용어 속의 대중은 장애인도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란 극히 제한적인 것이 우리들 세상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구체적인 책무이며, 장애인에게는 이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아무리 낙관적이고 강인한 정신을 가진 이라도 횡단보도를 건널 수 없고, 화장실을 제대로 가지 못한다면 삶에 동기 부여를 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문구는 그동안 장애우에 대한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아온 나에게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장애우들이 자신의 몸을 쇠사슬에 묶어 지하철과 버스에 오르는 모습은 정상인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불편함을 초래하는 막장스런 몸짓이었을지는 몰라도 장애인 그들에게는 처절한 삶의 방편을 획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었다는 사실에 숙연해 질 수 밖에 없다.

 

나는 작품을 읽으며 지난 2000년 창원지법에서 경남대학교 장애우 학생이 학교를 상대로 ()

를 제기해 받아낸 판결문의 일부에 크게 공감하여 여기에 그 일부를 옮겨 보았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더는 가진 자들의 은혜적 배려가 아닌 전 국민이 함께 고민하며 풀어가야 할 사회적 책무로서 막연히 예산상의 이유만을 들어 그러한 의무를 계속적으로 회피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방법으로 일상생활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일상생활에 있어 아무런 제약이 없어 비장애인에게는 그 존재의 가치조차 논의하지 아니하는 이동권이 단순히 예산상의 이유만으로 제약을 받는 것은 이 시대의 모순일 수밖에 없는 바, 이러한 모순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결할 문제로서 조그마한 노력과 비용의 부담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므로 더는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그 시기를 늦출 수는 없다고 할 것이고. 인간에게 있어 가장 기초적인 이동권마저 비장애인과의 형편성 및 예산상의 문제 등을 거론하며 그 시기를 늦추려고 하는 것은 비장애인들의 편의적인 발상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판결문의 내용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국 장애우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의무를 진다는 것은 그저 장애인을 배려하라는 말이 아니라, 장애인이 그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가지고 오랜 기간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존중하라는 요구와도 같다는 장애인 전체를 대변한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며,

여기서 이야기되고 있는 모든 사항이 단순히 육체적 장애인에 국한되어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인의 가능성을 모두가 안고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이야기라 생각하였다. 

 

가슴으로 읽어보는 작품에서 언급된 이야기들

 

- 성찰은 어떤 행위나 인식에 나선 자기 자신을 더 깊은 곳에서 바라보는 인식 행위(P 35)

- 인간은 자신을 스스로 관찰할 수 있을 때는 수치심을 느끼지만, 절벽 끝에 매달렸을 때는

  스스로를 관찰하는 반성적 시선을 잃기 때문에 수치스러울 겨를이 없다.(P 47)

-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빛내는 데만 몰입하는 사람들은 작은 진실을 위해 큰 거짓을

  연기한다. 이를 품격주의적 태도라 한다.(P 50)

- 품격이란 주변형편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때 혹은 자신의 지위, 역할, 신분에 맞는 대우를 받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할 때 달성되는 형식적 가치다. 존엄은 품격과 대비된다.(P 56)

- ‘칸트에게 존엄성이란 다른 것의 수단으로만 존재하지 않는, 그 자체가 반드시 목적으로도

  존재할 때 부여되는 내적 가치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어떤 인간이 존엄하다면 우리는 그 인간을 자신의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 삼아서는 안 된다.(P 57)

- ‘존엄은 정치제도의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특정 신분이나 명예에 한정되지 않는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가치로 여겨지게 된다.(P 57)

- ‘품격에는 최고 품격과 저질의 품격이 있지만, 존엄에는 최고와 최저가 없다.(P 58)

- 품격있는 나라의 국민은 자신의 이해 관계가 아무리 다급하고 절실해도 법이 정해놓은 절차를

  평점심을 가지고 차근차근 밟아 나간다.(P 59)

- ‘속물은 언제나 타인을 의식한다.

  속물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이 전시의 대상이고 삶의 모든 측면이 연극적이다.(P 62)

- ‘품격이 상대방을 적절하게 접대하는 연기에 의해 구성된다면,

  존엄은 상대를 환대하고 그 환대를 다시 환대하는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P 71)

- ‘농인농문화를 지칭할 때는 대문자 ‘D’를 써서 ‘Deaf’라고 표현하며, 청각장애인을 지칭하는

  맥락에서는 ‘the deaf’라고 구별하여 쓴다.(p 100)

- 소리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자의식을 전개하는 사람들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의 존재 방식과 언어적 풍성

  함을 간과하는 일이다.(p 109)

- 시각장애 여성의 남편은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을 사랑한 것이지 그녀의 시각장애 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 유전자 진단이나 임신중절은 일정범위 안에서는 당신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다만, 그 자유를 제대로 행하지 못해 장애아가 태어나면, 그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결국 모든 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 ‘농아 부모의 자녀들이라는 뜻의 영문 축약어인 ‘CODA(Children of Deaf Adults)’장애를

  가진 부모의 자녀라는 의미이지만, 이를 결여가 아니라 어떤 존재의 특성을 상기시키는 말로

  바꾸고 스스로 나는 코디입니다라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순간 스타일이 출현한다.

                                                                                                                 (p 125)

- ‘매드 프라이드운동은 정신장애인들의 정체성 운동이다.

  이들은 정신장애가 그저 범죄의 원인이나 인격성이 박탈된 비정상적 상태라는 통념에 맞서

  이 역시 하나의 인간적 특질일 수 있고, 적절한 약물치료와 사회적 지원, 편견없는 문화적 태도

  가 뒷받침된다면 풍요로운 삶의 일부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p 126)

- 모든 인간은 몸과 정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법적, 도덕적으로 평등해야 할 뿐 아니라 실제로도

  각자 풍요로운 삶을 살 가능성을 똑같이 지닌다고 확신했다.(p 134)

- 우리가 무엇인가를 수용(accept)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철저히 자발적인 선택을 의미한다.

  믿음은 의지에 따라 믿거나 믿지 않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수용은 오로지 나의 의지에 달려

  있다.(P 139)

- ‘수용은 우리 삶의 전반적인 방향과 연결된 윤리적인 결단이므로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유리한

  이유가 있어서 믿는 일종의 전략적 믿음과 구별된다.(P 142)

-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각자의 인간적 상황에 맞서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수행적

  가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P 148)

- 수용은 그럴만한 이유도 별로 없고,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유리하지 않을 때조차 삶의 전반적

  인 기획의 일부로서 그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기꺼이 감당하는 결단을 의미했다.(P 151)

- 2015년 기준 같은 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 수(55,213)보다 정신병원과 요양시설에

  입원한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P 166)

- 장애인 제도는 장애 당사자는 대화의 주체가 아닌 관찰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다.(P188)

- 헌법은 개인이 고유한 저자성을 갖기 때문에 존엄하고, 그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자유권,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그 권리 보호의 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존엄의 핵심인 저자성을 침탈당해야 하는 셈이다

- 자기 서사를 존중하고 고려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각 개인의 고유성을 보여주기 때문이지

  개개인의 뛰어난 예술성을 드러내는 지표라서가 아니다.(P 196)

- 장애인, 소수인종, 성적 소수자들에게 요구되는 커버링 압력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이

  가진 비주류적인 특성을 티내지 말라는 요구를 말하는 것이다.(P 199)

- ‘디보티(devotee)’란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서 이런

  현상을 디보티즘이라고 한다.(P 257)

- 장애아를 기르는 일이 때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초월할 만큼 힘겨울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P 292)

 

이 땅에 살고있는 모든 장애우들이 정상인들과 함께 밝게 웃으며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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