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경제 이야기 - 화폐통일 진시황부터 거시경제학자 제갈량까지
왕링옌.왕퉁 지음, 이서연 옮김 / 시그마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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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 5

 

작품을 읽은 소회를 이야기한다면 결론적으로 모든 역사적 사실 뒤에는 경제가 알게 모르게

숨어 있었다라는 사실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작품은 그 어떤 국가보다 시대적 변천사가 뚜렷하게 남아 있는 중국중국인들에 의해 씌여

졌으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지만 배경으로 주()나라로부터 춘추전국 시대로 이어지면서

벌어졌던 역사적 사실 뒤에 숨겨져 있거나 역사적 사실이 품고 있으나 일반 세상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여러 경제적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데 작품의 내용이나 깊이가

우리가 경제에 있어서 문외한에 가까운 이들이 알 수 있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다시 이야기해 단순히 무력에 의해 이루어진 전쟁의 역사 속에 복잡다단하게 얽혀져 있는 경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학창 시절 우리가 단순하게만 받아들였던 진시황이 이룬 여러 업적 중 도량형 통일문자

통일등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 여러 부족국가를 병합해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해 진시황이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만 생각해 왔던 사실에 경제개념을 덧입혀 설명을

하는 순간 진시황의 통일 국가와 그의 통치술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 학창시절 주입식 교육의 결과로 단순히 그의 여러 치적 중 일부로만 알고 외우고 있었던

사실이 그 보다는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좀 더 안정적인 경제기반을 닦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취한 조치였다는 점을 느끼면서 그의 통치술에 경의를 표하게 되었다.

* 후세 학자들이나 후세 사람들이 진시황을 폭군에 가깝게 설명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에 대한

  치적 내지는 여러 활동에 대해 경의라는 표현이 너무 과하지 않은가 하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에 대한 여러 역사적 사실, 예를 들어 아방궁 건설, ’병마 무덤, ‘분서갱유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위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한편의 일방적 주장만을 받아

  들여 폄하하기에는 나의 지적 수준이 아직은 일천하기 때문에 경의라는 표현을 썼다.

- 앞전에 읽은 진시황가의 CEO이라는 작품에서도 상기의 역사적 내용에 대한 학설이 분분

  하여 진시황을 폭군의 범주에 넣지 않았다. -

(나의 이런 주장이 궁금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해당 작품을 읽어 보았으면 한다)

또한 중국의 역사 속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수십만 대군끼리의 전투 뒤에 숨겨진 또 다른 경제

이야기는 자못 감탄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례로 과거 중국의 부족국가에서 직분을 매매할 수 있었으며 그 폐해가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배웠고, 알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마치 부패한 무력에 의해 세워진 국가의 모순된 모습의 한

단면으로 이해되고 있었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그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을 때 위에서

언급된 그런 관점은 짧은 상식에서 비롯된 인식의 오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당시

권력자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하나의 정책적 전략이었다는 점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작품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진시황이 도입했던 반량전이란 무엇인지 또 동전으로

구리가 사용될 수 밖에 없었는지 등에 대해 평소 역사나 경제에 다소간의 궁금증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상식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도전해 볼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작품을 접해 본 결과, 역사적으로 곳곳에 숨어 있는 경제 이야기를 경제 분야에 있어 거의 까막눈

수준에 가까운 이들에게 많은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려고 작금의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금융 사고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연계시키며 설명하고 있는 나름 의미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되는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역사 이야기에 경제 이야기를 가미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도 상당히 작품 내용에 부담을 느끼며 읽었는데 그러한

지식 조차없는 이들이 해당 작품을 접하게 되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크게

작품이었다.

 

작품의 목차를 살펴보면

1. 혼돈의 전국시대와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경제

2. 한나라의 화폐 전쟁

3. 한나라를 재정위기에서 구한 금융상품

4. 한무제의 국영기업과 시장독점

5. 공신의 운명과 게임 이론

6. 황금과 백옥으로 장식된 칼

7. 광무제의 등장과 동한의 운명

8. 동탁이 초래한 악성 인플레이션

9. 제갈량의 경제외교

10. 위진시대의 토지 개혁과 인재 경영

11. 망국 황제의 마지막 선택

12. 천하를 손에 넣은 북방 민족의 한화 개혁

13. 제어가 불가능한 총체적 난국

14. 수문제의 제도 개혁과 철권 통치

경제학 용어 해설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진시황 못지 않게 눈여겨 볼 대목이 불세출의 책사로 알려져 있는 제갈량의 경제관 및 이를

전쟁에 어떻게 이용했는지에 대한 분석 내용은 현세를 사는 우리들도 한 번쯤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었다는 게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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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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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작품을 덮으며 이 시대의 진정한 마키아벨리마키아벨리즘을 실현하고 있는 개인 혹

집단은 누구일까를 짧은 지식을 동원해 나름대로의 이유를 들어 찾아보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정의를 외치며, 불의한 권력에 맞서고, 언제나 한없이 약한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자처하고 있는 미디어 집단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사실과는 달리 그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약자의 편에 서기도

하였지만 어느 순간에는 특히,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사항이 발생되면 침묵과 외면으로 진실에

다가서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생존과 관련된 구독율시청율만 중요했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자세도, 약자를 위하는 마음도, 권력을 견제 하려는 정의감도, 사회의 모순을 바로 잡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모습도 이제는 어느 신화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처럼 회자될 뿐 현실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관심사는 월드컵 중계권을 누가 먼저 획득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고

사회적 문제에 기인한 각종 사건 사고를 좀 더 자극적으로 뽑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공공의 선을 위한 근본적 처방을 위한 제언 보다는 보다 어떻게 하면 구독자와 시청자의 눈과

귀를 먼저 사로잡아 자사의 이익에 부합이 되게 할 수 있을까를 더 고민했지 진정으로 서민과

가지지 못한 자들이 목말라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외면해 온 게

사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앞 작품을 읽고 올린 서평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역사에 남을 만한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

하고 있으면서 역사에 남을만한 팔로워가 되기를 주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의 선량들이 서민 문제를 외면하고 국회에서 감투(?)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일 때 모든 매스콤은 '친박이다', '친노다', '비박이다', '낀박이다' 라는 용어를 동원해 싸움만

부추겼지 서민의 입장에서 무엇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고 서민의 눈물을 닦는 일인지에 대한

분석 기사를 심도 있게 취급한 매체는 거의 없었다고 본다.

또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미세먼지’나 '바이러스'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문제를 분석함에 있어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는 중국에 대한 쓴 소리 한마디 못하고 미세 먼지에 대해서는 삼겹살고등어’ 탓과 폭스바겐으로부터 시작된 매연 저감장치 조작으로 촉발된 경유차문제만 갖고 관료들이 이야기할 때 거기에 장단을 맞춰 난리를 치기만 했고,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이즈음에는 '신천지'가 '중국에서 돌아온 우리 국민이 문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만 하고 있을 때 문재의 본질에 접근도 못한 채 그냥 변죽만 울리고 있다.

그런 그들이 정의 사자사회 정의 수호자라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강자가 주는 달콤한 광고에 목을 매고 중소기업과 하도급 업체들이 받아야

할 피와 눈물로 얼룩진 돈인 광고료에만 관심이 있었음을 알고 있고 그런 달디단 달콤함에

도취해 강자들의 잘못된 행위에 오늘도 그들은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이런 느낌은 언론에 간혹 흘러나오고 있는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뒤집는 - 특히, 간첩단

조작 사건 - 사건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고는 한다.

그 사건이 최초에 불거졌을 당시 매스콤들은 어디서 무얼 했는지가 정말 답답하다.

사건의 조작을 담당했던 권력의 실세들이 당시 사건을 조작해 발표를 할 때 진위 여부를 파악도

하지 않고 앵무새처럼 기관이 불러주는 대로 외치고 있다가 관련 기관의 힘이 빠졌다고 생각되자

자신들이 진정한 민주화 투사인양, 정의 사회를 구현하는 최첨병인양 난리를 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너무도 많아 일일이 열거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아무리 서슬퍼런 독재 정권

시절이라 어쩔 수 없다고는 할지라도 군부시절 그런 정권에 맞서 무광고로 전면 백지 신문을

발간하던 그런 패기의 인물과 조직들은 다 어디로 가고 여기 저기 눈치를 보며 구차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미생같은 존재들만이 살아서 활개치는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우리의 미디어들이 중세 암흑기 시절 살아남기 위해 또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하기 위해 치열하게

군주론을 집필했던 마키아벨리의 심정으로 오늘날 약자들 편에서 미디어들이 다시 살아나기를

열망하는 마음에서 간단한 나의 생각을 여기에 적어 보았다.

 

작품을 통해 핵심적인 여러 단상이 떠올랐으나 나름대로 작품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던졌거나

저자가 강조하였던 주제를 중심으로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1. 진정 마키아벨리는 천하의 나쁜 놈이었던가?

- 영국에서 발간된 영어 사전에서 조차 통치술 전반에서 권모술수를 부리는이라는 의미의

  마키아벨리안이란 형용사로까지 표현되고 있다. , 사악함의 대명사란 뜻.

- 하지만 그가 집필한 군주론은 원래 철저한 약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위해 집필됐는데, 작품의

  가공할 만한 가치를 알아본 당시의 강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읽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를

  악의 축으로 몰고 간 것이다.

  , 권력을 가진 강자들은 마키아벨리의 책을 혼자서만 읽고 싶어 했다.

- 그의 작품은 약자들에게 더 이상 당하고 살지 마라고 조언한 것이다.

 

2. 약자들이 마키아벨리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

- 그는 늘 약자였고 권력을 지닌 자들이 서로 부와 명예, 영토와 백성을 놓고 무한 경쟁을 펼칠

  때 철저한 약자의 삶을 살았다. 그는 늘 가난에 쪼들리면서 공직에서 해고당할까 두려워했고,

  줄을 잘못 서 공직에서 파면되고 실업자로 15년 동안 빈둥거리며 살았다.

- 피렌체의 외교와 국방을 책임지고 있던 그는 유럽에서 권력을 잡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피렌체 정치가들의 한심한 작태를 지켜보면서,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약자들의 한심한 현실 인식에 혀를 찼던 것이다.

- 공직에서 쫓겨난 그는 피렌체의 정치 실세로 복권된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일종의 자기 추천서와 같은 성격의 군주론을 집필했던 것이다.

  그는 군주에게 참모와 책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군주론의 내용을 극단으로 몰고 갔던

  것이다,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읽어 볼 가치가 있다.

 

3.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인문학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

- 예술과 인문학을 적극 후원하던 메디치 가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마키아벨리는 과도할 정도로

  인문학적 정보를 집필에 활용했지만 인문학적 정보에 능숙하지 않은 현대의 독자들은 그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포기하고 결국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 읽으면서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를 가르쳤다는 일반적 선입관과 결합해 군주론각자가 읽고 싶은 대로 읽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 수시로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마키아벨리 사상

  전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다.

- 그는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고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며 스스로도 군주론’, ‘로마사 논고’, ‘전쟁의 기술과 같은 명저를 남기고 있는데 그의

  고전 사랑은 가난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었다.

- 또 그는 고전과의 대화를 통해 현재의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모색함으로써 한 시대를

  버텨낼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 것이다.

 

4. 마키아벨리의 저서가 음모전쟁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이유?

- 메디치 가문을 몰아내기 위한 파치가의 음모’(8)피렌체 - 나폴리 전쟁’(9)경험하면서

  음모가 꾸며지는 동기와 과정, 성공하는 음모와 실패하는 음모의 차이점 그리고 음모를 효과적

  으로 진압하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 프랑스(샤를 8) 군대가 어마어마한 대포를 이끌고 피렌체 시내를 관통할 때25세의 청년

  마키아벨리는 조국 피렌체의 약한 국력에 대한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 강자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 어쩌지도 못하는 약자의 설움에 힘겨웠을 것이고 이를 반복

  하지 않기 위해 나름 연구를 했을 것이다.

 

5. 연속된 불운이었지만 그는 긍정형 인물이었고 항상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 1512년은 마키아벨리에게 비극의 해였다. 공직에서는 파면과 메디치 가문을 전복시키려

  한다는 반역 혐의로 체포 및 구금되었으며 구금된 감옥에서는 '고문까지 당했으나 유쾌함과

  금정적인 삶의 태도는 바꾸지 않았다.

- 그는 한때 유능한 외교관이었으나 공직에서 파면된 직후 피렌체 중산층 상공인들이 주축된

  라 피에타라는 조직에서 하찮은 일을 수행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었지만 자신 속의 희망을

  잃지 않았는데 그런 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 군주론끝부분에 나타나 있다.

  [인간의 자유로운 의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잃어서는 안 된다. 가령 운명이 인간 활동의

  절반을 주재한다고 해도, 적어도 나머지 반은 우리의 지배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고난과 시련을 견뎌낸 방식이다.

 

6. 마키아벨리가 바라본 이상주의자 지롤라모 샤보나롤라의 몰락에 대한 분석

-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아들은 군주론의 실제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였는데 교황이 자식을 둘

  정도로 당시의 종교계는 썩어 있었는데, 이런 교황에 반기를 든 자가 지롤라모 샤보나롤라

  그는 교황청의 타락과 피렌체 시민들의 향락에 물든 삶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대중적 인기

  몰이에 성공하나 시뇨리아 광장에서 화형당한다.

- 마키아벨리는 샤보나롤라가 권력을 잡은 후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변절한 정치가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이든 권력을 잡으면 변하기 마련이고 무장을 한 예언자는 승리를 차지할 수

  있으나, 말뿐인 예언자는 멸망하고 만다는 권력자의 실패원인을 정확히 분석한다

- 메디치 가문 몰락 이후 생긴 권력의 공백 속에서 피렌체 정치판은 충돌과 대립으로 얼룩지는데,

  위기가 지속적으로 닥치면 이상주의자들은 인기를 끌게 마련이다. 곤경에 처한 대중들은 이상

  주의자들의 견해를 통해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갈구하지만 이상주의와 정치 현실은 함께 오랜

  길을 가지 못하는 길동무이다.

  결국 공화정의 수호자로 임명된 샤보나롤라는 공화정의 수탈자가 되고 만다.

 

7. 마키아벨리가 바라본 군중의 모습과 통치방법에 대한 분석

- 마키아벨리의 눈에는 대중의 모습이 얼빠진 짐승이었고, ‘우리에 갇혀 있는 노예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대중이란 늘 강자의 논리에 휘둘리고 힘을 가진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나약한

  존재였다.

- 고전 연구를 통해 대중이란 결국 권력을 가진 강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며, 이런 나약한 대중은 강경한 규제로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면서 현명한 

  지도자는 권력을 잡은 초기에는 단 한 번만 대중에게 잔혹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러나 계속해서 잔혹하게 행동하면, 그는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대중을 탄압하는

  독재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은 절대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대중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자유를 빼앗기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며 대중을 이끄는 방식에 대해

  예리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8.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무장하라

- 마키아벨리는 공직에서 쫓겨 난 후 정권의 실세로 복귀하며 또 자국의 안위를 위해 고용한

  용병과의 사용료 협상을 통해 그간 자신이 느꼈던 사항을 피력하고 있는데 짧은 문장으로부터

  그의 사상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사람이 박복한 처지에서 높은 신분이 되는데 있어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지위를 갖고

    있지 않는 한, 실력 내기 책략을 쓰지 않고 출세하는 경우는 드물다

 

  항상 다른 사람의 칼에 의존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적이 침입해 올 때 언제나 허리에 찰 수

    있도록 칼을 몸 가까이 두는 게 좋다

 

   있는데 결국 모략만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외치고 있다.

 

9. 때를 기다리고 단호하게 결정하라

- 마키아벨리는 약자의 위치에서 프랑스와의 용병 계약을 추진할 때 상대의 특징을 간파하고

  100% 확실한 해결책이 없을 때는 시간을 끄는 것이 상책이라고 믿었으며, 번개와 같은 단호함

  과 과감한 실행력을 상실한 지도자는 항상 적과 동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아노미 상태로 조직을

  이끌게 마련인데,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지도자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0. 인간의 본성에 대한 냉혹한 관찰과 신중함보다는 과단성 

- 마키아벨리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타인의 무력이나 호의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 남의 호의나 외부의 판단에 내 운명을 맡기지 않겠다는 체사레 보르자의 정세 판단과

  인간의 내면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 대해 배우면서 극찬하게 되는데, 그와의 거듭된 만남을 통해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즘(냉혹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마키아벨리의 정치공학)’을 전수

  받게 된다. 체사레 보르자가 위대했던 점은 그가 용의주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과단성 있게 ' 

  행동했기 때문이다.

-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의 영향을 받아 군주론에서 군주는 자기 백성을 단결시키고

  충성을 지키게 하려면 잔인하다는 악평쯤은 개의치 말아야 한다. 그것은 자애심이 너무 깊어서

  혼란 상태를 초래하여 급기야 시민들을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에 비하면,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하여 질서를 바로잡는 잔인한 군주가 훨씬 인자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라고 일갈하고 있다.

 

11. 사랑받지 말고 두렵게 하라

-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속성을 냉정한 시선으로 관찰하면서, 대업을 이루는 리더의 자세와

  품격 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데,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사고와 행동 양식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대업을 이루려는 리더는 냉혹할 정도로 인색해야 하고, 권력을 절대 남과 나누지 말 것

  강조하고 있다

 

12. 무능한 노예근성이 나쁜 지도자를 만든다.

- 탁월한 리더가 없다는 것은 그 리더의 품격이 문제가 아니라, 그 조직에 탁월한 팔로워가 없기

  때문이다. 탁월한 팔로워가 없는 사회에 나쁜 리더가 등장하며 리더가 우리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노예근성이 우리를 나쁜 팔로워를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그들을

  나쁜 리더로 만들게 된 것이다. 탁월한 리더를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작품 속에 피렌체 시민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면 등장한 지롤라모 샤보나롤라를 보며 우리의

정치계를 바라 볼 때, 너무도 많은 인간들이 그의 모습과 닮았다는 느낌이 많이든다.

(그의 모습에 대해서는 작품을 직접 읽으며 느끼시길...)

또 하나는 군주론의 실제 모델이라고 여겨지는 위대한 지도자 체사레 보르자라는 인물이 한낮

미물에 불과한 모기때문에 자신의 뜻도 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크게 느꼈다는 점이다.

(이 부분 역시 독자들이 작품을 접하며 느끼시길....)

 

마지막으로 작품에 일본인이며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라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작자는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을 아주 폄하하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앞으로 절대 이 인간의 책은 읽지 않을 예정이다. 아주 나쁜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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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제국 진시황가의 CEO들
진문덕 지음, 원지명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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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천 권유도 8

 

작품은 진(, 벼이름 진)의 흥망성쇄를 통해 기업들이 배울 점은 무엇인가를 병행해서 기술한

작품으로 경영적인 측면에서의 활용도 보다는 역사서로서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 나의 손길을

다시 불러들이고 말았다.

나는 지난 2002년 당시 작품을 읽고 다음과 같은 소회를 남겼었다.

은 전통적으로 전투 부족국가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용맹스런 장수나 실제 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략가 양성에는 상당한 노하우를 지닌 반면, 국가를 경영하는 핵심참모나 제도의 수립과

시행을 책임질 행정 관료의 양성 측면은 소홀했다.(P 46)

그런 나라의 통일 과정을 기업 운영에 적용해 보기를 권하는 측면에서 작품이 집필된 것으로

판단된다.

 

영웅은 탄생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점()의 집합체이듯, 지금에 찍혀지는 점이 훗날 직선이 될지 아니면 사선이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점을 찍는 순간, 점을 찍는 행위자의 마음이 진정 이루려는

대상에 대한 정성과 노력 그리고 간절한 소망 속에서 점을 찍는다면 점들의 모임은 행위자의

의도대로 그려져 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대 시황가의 CEO들은 언제 올지 모르나 자신들 후손의 손으로 중원의 평정이루어지기

를 간절히 빌어 온 결과, 그 꿈을 후손인 진시황대에서 이루어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왕들은 그렇게 하지를 않았는가?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국의 왕족 CEO들 역시 자신들이 점을 찍는 순간 수많은 노력과 심혈을 기울였지만 시대와

상황이 그리고 그런 목적 달성을 위한 구심점이 적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원의 패자로 등극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또 다른 진()이라는 나라이다.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중국의 '평화유지군' 역할을 해 왔던 나라는 사분오열되면서 패자의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중국의 또다른 역사서인 열국지라는 작품을 통해서도 살펴보면,

나라에 관한 일화나 귀중한 사례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사례가 많다는 것은 당시 중원의 중심에 위치했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 국가가 왜 중국이라는 대 제국을 평정하지 못했을까.

이유는 하나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력만큼, 준비를 하지 않았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나라를 이끌어

갈 구심점이 없던 것이 큰 원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변방의 소국으로 출발한 ,

그들은 오랑캐라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과 열린 정치의 장을 마련하여 '관중'

버금가는 '백리해', '왕전' 등과 같은 신하를 얻었으며 어렵게 얻은 신하들이 제안하는 각종

우수한 정책을 제도에 적절히 반영한 결과, 나라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고

판단한다.

 

자신의 어머니는 여불위가 소개한 '노애'라는 작자와 통정을 하는 등 모후로서의 자격을 상실

했다고 판단하자, 진시황은 자신의 어머니를 별궁에 유폐시키며 어머니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하는 자가 나오면 죽이겠다고 공표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거꾸로 해석해 보면 그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도 끊임없이 신하들이 진시황

에게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

이겠는가.

죽기를 각오하고 또 다시 진언을 하기 위해 찾아 온 이름 없는 선비(모초)의 간언을 듣고, 진정

으로 뉘우치며 진시황은 다시 어머니를 모후의 자리에 복귀시키는 것을 보면서, 나는 진시황의

됨됨이가 중원을 평정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인물이라고 판단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이라는 나라는 아주 옛날부터 통일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져

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조선의 연산군에 버금가는 진시황에 대한 여러 극악 무도한

  이야기를 조목조목 반박을 하고 있다

 

본 작품은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는 기업 생태계 속에서 활동하는 기업인들에게 있어서는 언제

인지는 모르나 일류 기업으로 나아가는 초석으로, 책을 읽는 개인들에게는 미래를 준비하는

예비 CEO’로서의 한 점을 긋는 순간에 불과하다. 그러니 작품을 통해 전부는 아닐지라도 조금

이나마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옥의 티]

1) 466'성장했기 때문이' -----> '성장했기 때문에'

2) 2125'사망 천리' -----> '사방 천리'

3) 265쪽 밑에서 7'변화 욕구과' ----> '변화 욕구와

  

() 왕조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목공효공이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배출하며 당당히

역사의 전면에 나서며 특히, 효공에 이르러서는 왕과 찰떡궁합의 콤비를 보여준 상앙(商鞅)’

이라는 불세출의 개혁가가 등장하면서 부국강병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혜왕과 소양왕으로

이어지는 명군의 등장으로 전국시대 말에 이르러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군단

()’의 위용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선조들의 노력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걸출한 제왕 시황제(始皇帝)에 이르러 비로소

그 결실을 보게 되었으니 바로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탄생한 것이다.

 

- 제후국 진()에게 부여된 주요 임무는 주 왕실의 큰 고민이자, 역사 이래 중원의 가장

  위협이었던 서역 오랑캐 서융(西戎)’에게서 중원을 지키는 일이었다.(P 36)

- 주 평왕은 진 양공의 충성심을 믿고 중원 최대 위협인 서융을 책임지게 하여 왕실의 안전을

  보장하고 제후들의 신임을 유지하고자 했다.(P 41)

- () 목공(穆公)은 자신의 인간적 매력과 백성들의 절대적 신뢰를 토대로 진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였다. 특히 외부 인재 영입을 강력히 실행하여 공손지’, ‘건숙’,

  ‘백리해와 같은 인재를 얻는다.

  특히, ‘건숙과 같은 인물은 목공에게 천하의 패자가 되기 위해서는 탐욕하지 말고, 화내지

  말고, 재촉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큰 깨달음을 주었다.(P 47 ~ 51)

- () 효공(孝公)21세에 등극하여 뛰어난 지도력과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중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개혁을 주도하며 혁명을 주도했다.(P 81)

  효공 역시 과거 목공처럼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암울한 현실에 탈춣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할 때 상앙(商鞅)’을 만나게 된다.(P 83)

- 상앙은 이극오기에게 영향받은 인물로 효공의 절대적 지지와 신임을 얻어 강력한 법의

  집행을 통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치술(治術)을 펼치고자 했다.(P 85)

- 관습에 위해된다 하여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되며, 이를 따른다고 해서 무턱대고 칭찬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발전을 원하다면 변해야 한다.(상앙) (P 93)

- 뛰어난 조직 장악력을 갖춘 상앙도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는데 그것은 바로 탄력적인

  운영의 묘미였다. 그는 현실의 비이성적 상황을 외면한 채 무조건 공권력의한 강제

  집행만을 고집하는 과오를 범했다.(P107)

- 소진과 장의에 의한 합종연횡책이 바로 이즈음 나타난다.(P123-137)

- () 역량을 극대화시킨 인물은 혜왕의 이복동생인 소양왕(昭襄王)’이다

  그 휘하에는 저리질’, ‘위염’, ‘백기범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P140)

- 조나라와의 장평전투가 진의 앞길을 가늠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P152 ~ 163)

* ‘장평전투리더관리자라면 반드시 읽고 연구해 볼만한 사건으로 자초여불위

  ‘이사의 활약에 대한 사항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P164~179)

- 진왕의 축객령에 의해 축출될 위험에 노출되자 그는 무릇 능력과 충성심만 출중하다면 어디

  출신이든 무슨 상관이며 진심으로 진에 충성하고자 하는 수많은 인재를 내치지 말고 더 훌륭한

  정책과 지략으로 대왕에게 은혜에 보답하고 대왕의 영광을 만천하에 빛내게 할 기회를 주자

  이사는 집요하게 통치자에게 건의해 성공한다.(P186)

- 여불위는 진왕 정()’에게 자기 사람을 시종으로 천거해 왕을 보좌하면서 뒤로는 조정

  왕에 대한 상세한 관찰,보고를 하게 했다.

  그는 왕에게 첩보전을 통한 새로운 통일전략을 제시하며 그 중요성에 대해 여불위와 같은

  금전적 로비 활동 외에 왕 직속의 강력한 정보, 전략 조직망 구축을 건의했다. 이 조직을 통해

  각 제후국에 퍼져 있는 진의 정보 조직을 일원화하고 일사불란한 정보 전달 체계확립을 통해

  통일을 대비한 한 차원 높은 첩보전을 주장했다.

  진왕 정은 이사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자신이 직속 정보 조직을 관장할 자리에 위료

  임명하고 진나라 정보 전략의 총책을 일임한다.(P188)

- 효공 시대는 상앙, 혜왕 시대는 장의와 소양왕 시대를 장식했던 양후’, ‘범저’  그리고

  마지막 진시황 시대의 여불위위료’, ‘이사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전략과 첩보전의 대가들의

  활약에 의해 중원 최강자의 위상을 유지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P201)

- 영토 확장으로 진나라의 판도가 하루가 다르게 넓어지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는데 바로 영토

  확장과 대규모 신민 영입에 따른 효율적인 통치권 확립 및 적절한 제도 개혁이 뒷받침 되어야

  했다.(P210)

- 진시황은 전국적인 군현제 실시를 천명하고 천하를 36개 군으로 재편하며 각 군()최고

  행정집행관인 군수(郡守)와 군사를 관장하는 도위(都尉) 그리고 감찰 업무를 수행하는

  군감(郡監)을 두었다. 또 군 밑에는 현()을 두어 현령(縣令)이 다스리게 하고 현승(縣丞)

  보좌하게 했다.

  실질적인 권한을 잃은 각국의 구 귀족세력을 포함하여 모든 백성을 평등하게 진의 지배를

  받도록 배려했다. 특히 군수는 물론 현령 등 각 지방의 하급관리까지 중앙에서 직접 선발하고

  파견하여 명실상부 중앙 집권제의 구축을 실현했다.(P219)

  졸속 시행된 군현제는 이후 맹목적인 중앙집권제 옹호와 혹독한 법치주의 이상 실현이란

  중대한 과오를 불러일으켜 진 제국 멸망을 앞당기는 또 하나의 결정적 도화선이 된다.(P221)

- 진 제국이 처한 문제는 융통성이 없는 반강제적 법령 시행에 본질적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며

  노생서복같은 간신들에 의해 정권 농단이 펼쳐지면서 몰락의 길을 재촉하게 된다.(P259)

    [경영의 포인트]

- 만약 창업자가 빠른 시간 안에 회사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그 기업만의 독특한 문화적 토대를 확립하는데 역점을 두어라.(P 62)

- 창업자가 명심해야 할 점은 창업자의 경영철학이나 방침이 기업 문화를 전적으로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초기에 기업문화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방향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P 62)

- 걸출한 지도자란 반드시 환경의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뛰어난 적응력과 통찰력을

  지녀야 하며, 이를 기업 문화에 적극적으로 투영할 수 있어야 한다.(P 63)

- 행동이 앞서는 저돌적 성격의 개인이나 단체에 의해 창립되는 영업형 조직은 좌충우돌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수많은 도전과 난관을 극복해 나가면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다. 따라서 이런

  형태의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독립된 가치관, 사고를 가진 각각의 구성원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일치된 목표와 이익을 제시하고 일사분란한 계획과 운영으로 내부 역량을

  하나로 결집시켜 잠재된 영업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전체

  구성원의 단결된 힘이 필요하며 일정 규모가 되면 외부 전문가를 영입해야 한다.(P 70)

- 성장 가도를 달리는 기업일수록 성장 과정에서 드러난 위협요소를 없애거나 개선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오히려 안정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P 76)

- 본디 개혁이란 상호간의 신뢰와 믿음이 뒷받침되어야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P104)

- 대부분의 경영자나 기업 관리를 담당하는 책임자가 제일 우선하는 작업이 바로 제도의 정비 및

  수립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제도를 수립하고 관리하는 작업이야말로 그 어떤 경영 과제

  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일이라는 점이다.(P116)

- 중국의 왕조들이 그토록 수많은 제도를 시행했음에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 제도는 손에 꼽을

  만큼 적은 것은 바로 보수적 관료계층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이 개혁이나 새 제도의 수행에

  소극적 자세를 취한 데 원인이 있다.(P118)

- 제나라 환공과 관중의 개혁이 성공하게 된 것은 점진적 개혁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인데 그의

  개혁은 40년이란 긴 시간을 두고 진행되었다.(P119)

- 성공한 기업의 기업 문화는 자칫 창조적 사고와 언로의 차단을 가져오며 능동적 변화 욕구와

  환경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성공한 기업의 최대 적은 매너리즘에 빠진

  바로 그 자신이다.(P265)

- 진 제국의 천하통일은 상앙 변법 이후 절대적 가치를 부여받아 온 법가적 전통큰 힘이

  되었으나 반대로 구성원들의 창조적 사고와 탄력적 운영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해 결국

  국가 체제 수립 및 운영상에 치명적 오류를 가져오고 말았다.(P266)

- 성공을 거둔 기업은 무엇보다도 전통은 계승하되 새롭게 재창조하는 기술을 개발해야만 한다.

  (P 262)

- 위기를 겪는 기업들이 모두 망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겐 수많은 기회가 있으며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것이다.(P296)

- 망하는 기업들의 특징(P297)

   1) 문제의 핵심을 찾지 못한다.

   2)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3) 목적 달성 후에는 기업의 전망이나 위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 기업의 사활을 손에 쥔 경영자라면(P299)

   1) 이성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며, 감정이나 정서적 접근을 철저히 차단한다

   2) 가시적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더 큰 이익을 위해 개혁의 칼날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3) 지원 세력을 찾는다

   4) 경영층은 조금이라도 개인의 이익이나 희생의 댓가를 염두에 두지 말아야 한다

 

   [작품으로부터 얻은 지식들]

 

   * ‘시황제라는 단어의 탄생?

- 아주 오랜 옛날에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태황(泰皇)이라 불리던 3자가 군림했으며 그 중에도

  태황이 가장 존엄한 존재였다고 한다. 그러니 앞으로는 왕을 태황(泰皇)이라 존칭하고,

  왕명(王命)을 제(), 왕령(王令)을 조(, 고할 조)라 개칭하며, 천자 스스로 칭할 때는 짐()

  라 하기를 권유하였다.

- 이전까지 주 왕실에서는 천자가 스스로를 칭할 때 과인(寡人, 부족한 사람)이라 했다.

  과인이란 겸양의 표현 대신 천하의 공주(共主)로 군림하던 오제를 본따 제왕의 지칭을

  ()’으로 하자는 건의를 올렸다.

- 그러나 진왕 정()태황이란 너무 구시대적이고 새로운 제국의 출발을 의미하는 참신한

  기상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자는 버리고 ()’자는 남기되 전통적 제왕의 상징인

  ()’를 첨가하여 황제(皇帝)’라 칭하기로 결정했다.(P211~213)

 

   * 중화민족(中華民族)의 유래?

- 위진 남북조(후한 때부터 수나라가 통일하기까지 220 ~ 589)시대 이래 중원에 편입된 여러

  부족들을 위한 융합정책이었다.

- 참고로 주 왕조 때 겨우 각 부락간의 관계가 제도화되고, 조공 및 군사 지휘권이 체계화되면서

  비로소 천자를 중심으로 한 중국 특유의 국가 개념이 형성되었다.

  천자란 주 왕조의 근간을 이루었던 태양 토템족의 상징으로 이후 국가의 최고 권력 및 군신

  간의 주종 관계에서 절대적 위치를 의미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당시 천하(天下)’주 천자의 땅이라는 뜻이었다.(P222~223)

- 중국에서 진정한 의미의 국가 개념이 확립된 시기는 춘추시대 중기에서 전국시대 초기.(P224)

 

   * 진시황의 진면목

1)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정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관행으로

   볼 때 이는 정책 실패에 따른 필연적 결과이다.

   * 제나라 방사(方士, 신선의 술법을 닦은 사람) ’서복(徐福)‘불로장생의 명약노생이란

     작자에 의한 국정농단으로 갱유(坑儒)‘를 촉발시켰고,

     분서(焚書)는 이사의 건의로 추진된 일종의 사상 통제 정책의 일환이었으나

     갱유(坑儒)는 전적으로 진시황의 배신감에서 비롯된 대규모 보복 사건인 것이다.(P262)

2) 진시황의 키는 184정도였다고 한다

3) 집권 초기부터 자신이 죽을 때까지 왕권 회복 과정에서 일어났던 유혈정변 외 단 한 번도

    이유없이 중신이나 신라를 죽인 적이 없었다.

4) 첩보 전략의 대가였다고 한다.

5) 잦은 순행으로 민심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 장군 몽염(蒙恬)과 만리장성

- 대외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쌓인 진시황은 노생이라는 자로부터 제국과 자신에 대한 예언을

  받아 오는데 이때 받은 글자가 망진자호(亡秦者胡)‘였는데 ()‘를 흉노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장군 몽염에게 오랑캐를 정벌하도록 지시를 내리고 오랑캐의 침략에 맞서고 중원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만리장성을 축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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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김태완 지음 / 현자의마을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8

"책문은 젊고 싱싱한 넋을 가진 지식인이 시대의 부름에 답하는 주체적 결단의 절규

  이다. 사람이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하늘과 땅의 만물 창조가 의미를 갖게 

  된다. 문화를 창조하는 이런 행위가 정치이고 정치가 바로 도()를 실현하는 행위

  이다. ()는 사람이 자연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길이다. 이러한 삶의 도리를 먼저 

  깨달은 사람이, 정치적이자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어 사람들을 이끌어 가야 한다."

위의 문장은 이 작품의 앞부분에 나온 글인데 작품의 함축적인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는

문구라 생각되어 여기에 원문 그대로 옮겨 보았다.

 

작품을 읽기 전에 기초 상식적인 '과거제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과거제도는 수() 문제(文帝)(581~604) 때 처음 실시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949~975) 때 중국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가 건의하여 958년 처음 실시되었다고 한다.

과거시험에는 문과, 무과, 잡과가 있는데,

문과는 소과, 대과로 나뉘어 지고, ‘소과는 예비시험 성격으로 생원과(사서오경)와 진사과

(,부 등)로 나뉘어 여기서 급제한 사람에게 초급관리나 성균관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주었는데,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과를 보아야 했다.

대과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간지로 자()자가 들어가는 해부터 3년마다 열리는 

'식년시(式年試)', 나라에 특별한 경사가 있을 경우 열리는 '증광시(增廣試)', 임금이

공자와 성현들을 모신 문묘를 참배하고 나서 보는 '알성시(謁聖試)'가 있는데, 알성시를

제외하고 반드시 책문(策文)을 지어 합격해야 한다. 최종 합격자는 33명으로 하며 이들이

왕 앞에서 치르는 최종 시험인 전시(殿試)에서 치르는 시험이 바로 '책문(策文)'이라고

한다.

 

과거 시험문제는 대책(對策), (), () 10과목 가운데 한 편을 출제하고 있는데,

'대책(對策)'이란 '대책과 정략'을 진술하는 글이며, '()'란 임금에게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건의할 때 쓰는 글이며, '()'란 미사여구를 대구 형식으로 현란하게 구사하면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한문학의 장르이다. 대체적으로 '대책'이 자주 출제되었다고 한다.

, 국가 현안이나 왕이 현실적인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과거

제도를 이용했다는 이야기다.

참고로 과거 응시자들의 책문에 자주 인용한 문헌은 '서경'이었다고 한다.

 

작품을 읽어보면 총 13편의 책문이 실려 있는데, 광해군(3), 중종(4), 명종(3), 선조

(1), 세종(2)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도 역대 왕조 가운데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의 책문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실상과 너무도 흡사(?)해 작품을 풀고

쓰고 한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갖고 그렇게 엮었는지는 저자와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작품을

엮은 의도를 알 수 있다 할 것이다.

본 작품의 내용을 꼼꼼이 체크하다 보면 어느 시대이건 '하나의 줄기'가 이어져 연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더욱 세밀히 분석해 보면 대체적으로 궁궐기강(환관, 궁녀), 언로

유지, 인척 관리, 자기 수양, 인재 양성, 파벌 조성 금지 등이 최우선의 국정 과제가 되어야

함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과거나 오늘날이나 동일한 문제로 나타나고 있음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작품을 접하면서 또 다르게 느낀 점은 우리의 위정자들이나 저명 인사들이 연말 혹은

휴가철이 되면 경쟁이라도 하듯 몇 권의 책을 들고 휴가지로 떠나고는 하는데 우리를 돌아

보게 하고 새로운 정신 무장을 가늠하게 하는 귀감이 될만한 작품을 들고 가는 것을 들어

본 적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지도자나 위정자 기업의 총수들이 역사가 되었던 다른 그 무엇이 되었던지 간에

제대로 성찰의 시간을 갖지를 않으니 맨날 그 밥에 그 나물 타령만 하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바이다.

우리 사회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이런 류의 책을 조금이라도 빨리 읽었다면 또 누구를 시켜

요약본이라도 들고 들어가 읽었더라면 자신들의 아들들 혹은 인척들이 서슬퍼런 검찰청

로비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고 검찰청 계단을 오르다 귀때기를 맞거나 원숭이 비슷하게

생긴 놈의 비뇨기과 CCTV 앞에서 폼잡는 일이나, 쓸데없는 일에 나대다 구속되어, 병보석

운운하며 풀려나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을 터인데 왜 그런 치졸한 일들이

무한 반복이 되고 있는지가 자못 궁금하다.

 

어느 정권이던지 간에 정권이 처음 들어서던 날 창업공신이라 불리우던 분들이 자신들이

그렇게 밀었던 통치권자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백의종군하겠다고 외치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그런 분들의 바램대로 되지 않고 또다시 이상하리

만치 반복되고 있는게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국, 호랑이가 없는 굴에 여우가 왕노릇하는 양상으로 변질되고 말았던 것이다.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런 마음이니 그렇게 믿고 같이 일하자고 손을 뻗은 위정자의 마음은 얼마나 쓰리고

아프겠는가, 자신이 뽑았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화투판으로 이야기하면 3.8광땡인

줄 알고 패를 들고 레이스를 걸었는데 뒤집어 놓고 보니 4.7따라지 형국이어서 망연자실한

마음뿐일 것이다. 속 뒤집어 지는 그런 시기라는 것이다.

 

다시 작품 속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 보면

언젠가 내가 이런류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하자 주변인들로부터 돌아온 질문이 작금의 국내

외적 환경과 역사 속 환경이 가장 유사한 시대가 어느 시기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간혹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주저없이 작금의 현실이 '광해군' 때와 유사하다고 일갈

하고는 했다.

열강들의 틈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어려운 시절 자신의 피를 쏟으며 우리를 보호해 준

나라에 대해 '예의'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야단들 치는 꼴을 보니 꼭 '광해군'시대의

어느 한 단면을 보고 있는 듯하다는 뜻이다.

 

분명 역사는 반복되고, 순환된다.

나는 작품이 두꺼워 다 읽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광해군 1(1609) '조위한

선생께서 공자의 '계사전'의 문구를 인용하여 작성한 책문읽기를 권해보고 싶다.

현직에 계신 우리의 지도자들에게는 더 요약해서

 

[훌륭한 군주는 마음을 털어 놓고 진심으로 충고하는 신하의 말을 기꺼이 듣고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충고를 받아 들였습니다.]

 

그 분의 추종 세력들에게는

 

[자신을 수양하더라도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수양할 수 없고 또 남에게 일을

맡기더라도 믿음으로써 하지 않으면, 임무를 제대로 이룰 수 없고,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조치를 취하건,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다.]

 

는 작품에서 발굴한 문구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책문에서 언급된 주요 문구를 정리해 보았다.

   

1)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광해군, 임숙영)

- 전하께서 마땅히 먼저 근심해야 할 것이란 궁중의 기강과 법도가 엄하지 않은 것, 언로가

   열리지 않는 것, 공평하고 바른 도리가 행해지지 않는 것, 국력이 쇠퇴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P 35)

- 임금의 처한 자리는 하늘이 준 자리이고, 다스리는 일은 하늘이 맡긴 직분이며, 받들 것은

   하늘의 명령이고, 부지런히 노력할 것은 하늘이 맡긴 일입니다.(P 37)

- 하늘이 특별히 누구를 좋아하고 미워하는 일이 없듯이, 임금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미워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P 37)

- 오직 어진 신하만이 바르게 간언할 수 있고, 현명한 임금만이 간언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P 39)

관직은 크건 작건 간에 반드시 재능으로 천거해야 하며, 벼슬은 높건 낮건 간에 반드시

   능력으로 선발해야 합니다.(P 41)

- 나라에 대한 신뢰가 인심과 픙속에 튼튼히 뿌리내려서, 꺽어도 꺽이지 않고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안에서 재난이 일어나도 극복할 수 있고, 밖에서 적이

   침략해도 막아내어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P 42)

- 섬나라 오랑캐는 독기를 뿜어대며 틈을 엿보고 있고, 북쪽 오랑캐는 흉악한 욕심을

   드러내며 틈을 노리고 있으니, 오늘날의 근심스러운 형편이 이와 같습니다.(P 44)

- 중궁의 기강과 법도를 엄숙하고 맑게 하고자 하면, 그 말을 살펴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언로를 넓히고자 하면, 성실한 마음으로 남의 말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공평하고 바른 도리를 활짝 열고자 하면, 그 근본을 바르게 세워 이끌어야 합니다.

   국력을 튼튼히 하고자 하면, 맡은 임무를 힘써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P 44)

- 묻기를 좋아하고 일상적인 말을 잘 돌아보았던 순 임금처럼 살피시고,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했던 우 임금처럼 잘못을 간하는 사람을 존중하여야 합니다.(P 46)

- 다른 사람들의 불공정한 행위가 싫다면 반드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

   에게 사사로운 마음이 없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합니다.(P 47)

- 명철한 임금이 잘 다스릴 수 있었던 까닭은, 근심이 없을 때 미리 경계하고 난이 일어

   나지 않았을 때 미리 대비했기 때문입니다.(P 48)

- 전하께서는 자기 수양에 깊이 뜻을 두시되, 자만을 심각하게 경계하십시오. 자신을

   억누르고 하늘의 명을 경외하는 마음을 보존하면서 겸양의 도리를 숭상하십시오.(P 50)

* 광해군은 자신의 실리적인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반대파의 정략적 견제를 극복하고

   영창대군과 인목대비를 낀 권력투쟁의 빌미를 사전에 차단하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결국 인조반정으로 실각하고 만다. 이때 물론 척신들의 전횡도 광해군 실각의 한 몫을

   했다. 뿐만 아니라 서인 정권이 광해군의 등거리 외교를 비판하면서 대명의리를 내세운

   것도 결국 광해군 패륜이 정권 상실의 원인임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의 하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P 58)

 

2) 술의 폐해를 논하라(중종, 김구)

- 생기기 쉬운 폐단은 사물의 폐단이고, 구제하기 어려운 폐단은 정신의 폐단으로 정신의

   폐단은 원인이고, 사물의 폐단은 결과이다.(P 67)

- 지도자가 마음으로 인도하지 않고 법으로만 금지하였기 때문에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P 74)

- 구구한 법령으로만 바로 잡고자 한다면, 명령을 해도 간사하게 응할 것이고 법을 내려도

   거짓으로 대할 것입니다.(P 75)

- 전하께서 마땅히 먼저 근심해야 할 것이란 궁중의 기강과 법도가 엄하지 않은 것,

 

3) 나라를 망치지 않으려면, 왕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명종, 노진)

- 제왕의 도리는 학문을 강론하는 것이 가장 먼저이고 학문을 강론하는 요령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가장 절실하다.(P 93)

- 군자는 쓰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항상 배척과 모욕을 당하며, 소인은 제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항상 세상을 어리럽히고 잘못을 저지릅니다.(P 94)

- 군주는 반드시 스승을 높이 받들고, 벗과 친하게 지내며, 덕을 존중하고 도를 즐기며 널리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옛날과 오늘날의 성공과 실패를 헤아리면서 진리를 탐구하고

   사물의 변화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P 95)

- 학문을 강론하고 진리를 밝힌다면 간사한 사람과 정직한 사람을 얼마든지 변별할 수

   있다.(P 98)

-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글이든 글씨든 그 사람의 인품이 보잘 것 없으면 아무리

   조형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라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P110)

  

 

4)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광해군, 이명한)

 

5) 그대가 공자라면 어떻게 정치를 하겠는가?(중종, 조광조)

- 도는 마음이 아니면 깃들어 있을 곳이 없고, 마음은 성실이 아니면 작용할 수 없다.

   임금이 하늘의 이치를 잘 관찰해 그 도리에 따라 성실하게 일을 행한다면 나라를

    다스리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 공자의 도가 하늘과 땅의 도이고, 공자의 마음이 바로 하늘과 땅의 마음(P134)

- 일을 잘 파악하는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자취만 보지 않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봅니다.(P137)

- 정치원리를 잘 아는 사람은 반드시 사전에 근본에 속하는 일과 말단에 속하는 일을

   구별해서 먼저 근본을 바로잡습니다.(P137)

- 근본이란 도의 실현을 정치의 목표로 삼고, 마음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아 성실하게 도를

   행하는 것이다.(P138)

- 도란 뿌리는 하늘에 두되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통해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의

   방도가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다스릴 때 정치의 도를 터득하면, 기강과 법도는 억지로

   세우려고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듣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저절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P138)

- 성실은 기강을 세우는 근본이고, 실효를 거두는 바탕이다.(P139)

- ‘도를 밝히는 것혼자 있을 때 조심하는 것을 마음 다스리는 요체로 삼고 그 도를

   조정에도 세워야 합니다.(P142)

- ‘도학정치란 맹자의 왕도주의를 현실정치에서 실현하려는 정치이념이다.(P148)

- 중종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쿠테타를 통해 집권한 왕으로 혁명을 주도한 상고시대의

   왕들은 자신의 행위가 훗날 개인의 권력욕을 정당화하는 데 빌미가 될까 봐 매우 두려워

   하고 부끄러워 했다. 그래서 혁명이 성공한 후에는 민심을 수습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려 노력했다.(P150)

- 사림은 잔존하는 훈구세력을 포용해 대국적인 정국운영의 이념을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 바람에 관료사회가 동서 붕당으로 분열되어 조선

   사회의 누적된 모순의 개혁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사림이 주축인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렸던 것은, 이들의 정치적 관심이 당파적 이익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음을

   나타낸다.(P153)

 

6)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위기를 구제하려면?(광해군, 조위한)

- 공자는 계사전에서 의 뜻을 이렇게 풀었다

   "위태로울까 걱정하는 사람은 자리를 편안히 지킬 수 있다. 망할까 걱정하는 사람은

    나라를 지키는 원리를 보존할 수 있다. 어지러울까 걱정하는 사람은 정치의 원리를

    지닐 수 있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편안하더라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존속하더라도

    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잘 다스려지더라도 어지러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몸은 편안해지고 국가는 보존된다.(P163)

- 말이 과격하지 않으면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말투가 절실하지 않으면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P177)

- 자신을 수양하더라도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수양할 수 없습니다.

   또 남에게 일을  맡기더라도 믿음으로써 하지 않으면, 임무를 제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조치를 취하건,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다.(P180)

 

 

7) 정벌이냐 화친이냐(선조, 박광전)

- 정벌의 원칙은 힘을 따져보는 데 있고, 화친의 요령은 형세를 살피는 데 있다.(P207)

- 상대를 정벌한 빌미가 없고 이쪽에도 이길 만한 힘이 없다면 화친을 해야 한다.

   또 상대방이 재앙을 일으킨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있고, 이쪽이 화친을 해야 할 형세

   라야 화친할 수 있지만 상대방이 재앙을 일으킨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없고, 이쪽이

   신뢰를 펼칠 만한 세력이 없으면, 화친해서는 안된다.(P211)

- 옛일을 자꾸 들먹이는 것은 이롭지 못하고, 대책을 말할 때는 오늘날에 관해 토론하는

   것이 중요하다.(P211)

 

8) 6부의 관리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명종, 김효원)

- 거룩하고 현명한 제왕들이 관직을 만들어 행정체계를 세운 까닭은, 무엇보다 책임이

   중요하고 지극히 크기 때문입니다.(P235)

- 적당한 사람을 얻으면 정치가 이루어지고, 다스리는 사람이 현명하지 않으면 그 자리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P239)

- 문화란 예의와 절도의 결인데, 문리가 상세하고 분명하다라고 할 때의 문화다.

   공경함이란 경건해서 안을 곧게 한다는 뜻의 공경함입니다.(P242)

* 행정부처를 여섯으로 나누는 방식은 주례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 하늘, , , 여름, 가을, 겨울에서 관직 제도의 이미지를 따왔다.

   하늘과 땅이 낳고 기르는 일은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이루어진다.(P252)

  

 

9) 외교관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중종, 김의정)

- 자기 나라의 실정을 잘 알리는 방법은 말을 올바로 잘하는 데 있고, 자기 나라의 외교적인

   방침을 전하는 데는 덕이 가장 중요하다.(P260)

- 사신을 파견할 때는 덕을 숭상해야지 말재주만 숭상해서는 안 되며, 행실을 보아야지

   재능만 보아서는 안 됩다.(P267

* 조선은 주자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으면서, 중국과 거의 동등한 문화민족이라는 자존

   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 자존을 확보하는 길이 중국문화의 정통을 승계한 명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었다.(P272)

 

10) 교육이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명종, 조종도)

* 임금부터 마음을 바로잡고 교화를 해서 정치가 융성하고 풍속이 아름답게 이루어진

   후에, 학교에서 뛰어난 학자를 모셔서 인재를 올바르게 길러내야 한다.(P288)

* 관리가 통치자의 의사를 따라 백성을 잘 이끌지 못하거나, 백성의 여망이 무엇인지

   헤아려 통치자에게 알리지 못한다면, 올바른 관리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관리를 선발하는 데 시나 문장을 짓는 재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P289)

* 정치와 교육은 유가의 지식인에게 내려진 지상과제이다. 그래서 유가의 지식인은

   기회가 주어지면 나아가서 정치를 행하고 시기가 적당하지 않으면 물러나 교육했다.

   정치는 일시적인 교화이고, 교육은 오랜 세월에 적용되는 정치이다. 정치란 현재에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행위이고, 교육이란 미래에 자기이상을 실현하는 행위다.(P295)

 

11) 인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세종, 강희맹)

- 세상에는 인재가 한 없이 많다 그러니 임금은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인재를 존중해야

   한다.(P310)

- 인재는 성인이라는 뛰어난 대장장이가 빚어내는 데 따라 여러 가지 그릇으로 바뀐다.

* 강희맹은 군주가 교화를 숭상하여 현명한 사람을 불러모아 밝은 마음으로 인재를 분별

   할 것, 자신을 비우고 인재를 등용할 것, 인재를 등용할 때는 재능을 따라 적합한 자리에

   맡기고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보완할 것, 정치를 바르게 하여 인재를 양성할 것 등을

   주장했다.(P318)

* 좋은 인재가 주위에 많기를 바란다면 인재가 저절로 찾아들도록 먼저 자신을 닦아야

   한다.(P323)

 

12)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란?(중종, 권벌)

- 쉬울 때 어려움을 생각하며, 작은 일에서 시작해 큰일을 이루어야 한다. 시작할 때는

   마칠 때를 생각하고, 시작을 잘했으면 끝마무리도 잘해야 합니다.(P335)

- 조정은 한 나라의 근본이고, 임금은 조정의 근본이며, 임금의 마음은 또한 임금의 근본

   이다. 그러니 마땅히 즉위한 처음에 조심해야 한다. 마음을 간직하는 요령은 경건에

   있고, 경건의 요령은 혼자 있을 때 조심하는 것에 있을 뿐이다.(P336)

* 안동 권씨 마을을 연 사람이 충재공 권벌이다.

* 정책의 일관성은 정책이 신뢰를 받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다.(P349)

 

13)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가?(성삼문)

- 마음은 정치의 근본이고, 법은 정치의 도구이다.(P355)

- 법이 제정되면 그에 따라 폐단도 함께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현명한 제왕들은

   마음을 보전하는 것으로 정치의 근본을 삼았기에, 법이 제정된지 오래 지나서야 폐단이

   생겼고, 폐단이 생기더라도 구제하기 쉬웠다.(P356)

- 대신은 임금의 보좌이다. 대신이 존중을 받은 후에야 임금의 권세도 존중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옛날에는 대부에게 형벌을 적용하지 않았다.(P359)

- 정권이 조정에 있으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정권이 대각에 있으면 천하가 반드시 환관

   에게 돌아갑니다.(P360)

- 나라는 한 사람을 주인으로 삼고, 임금은 마음을 주인으로 삼습니다. 따라서 마음은

   잡으면 간직되고 놓으면 없어지기 때문에 간직하고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P366)

(신숙주)

- 창업 때의 정치는 시의를 참작해, 손익을 헤아려서 폐단을 구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수성 때이 정치는 옛법을 좇아, 조심스럽게 지켜서 폐단을 구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석형)

- 시대는 옛날과 오늘날의 차이가 있지만, 이치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차이가 없다.

   세대는 앞뒤가 있지만, 정치의 원리는 앞뒤가 없다.(P381)

- 세상이 무사태평할 때는 높은 대신의 말도 기러기 깃털처럼 가벼운 취급을 받는다.

   세상에 일이 생기면 보통 사람의 말도 태산처럼 중요한 취급을 받는다.(P389)

- 세상의 일은 폐단을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구제할 방도가 없는 것이 문제

  이다. 또한 구제할 방도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의견이 채택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P390)

*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면 반드시 폐단이

   생겨난다.(P392)

* 설화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역사는 사실을 해석한다.(P395)

* 조선시대 선비들이 천리(天理)와 인욕(人欲) 사이의 갈등을 늘 의식하면서,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막으려고 긴장했던 것은, 바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기본 자세를

   연마하기 위한 것이었다.(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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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한 세계사 -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술이 빚어내는 매혹적인 이야기
마크 포사이스 지음, 서정아 옮김 / 미래의창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추천 권유도 : 3

결론적으로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술에 취해 있었다’.

 

나의 이 한 문장을 읽어보면 독자들은 혹은 이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작품에

어떤 의미 있는 내용 때문에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혹은 세계사적으로 술에 대한

여러 가치 있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 그런 것인가 할 수도 있겠으나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전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을 읽을수록 정신만 산란할 뿐이다. 그냥 술에 취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맨정신에 책을 읽기 바란다. 나는 술에 취한 내용의 역사서였기 때문에 술을 먹고

읽은 부분도 많았다.

 

어떤 작품이던 다 그러하지만 작가의 일방적이고도 주관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

예를 들어 잉글랜드의 탄생 배경건배의 유래라든지 미국 서부개척 시대의 살룬의 탄생

배경 등에 관한 내용은 어떤 타당한 근거 없이 작가의 상상력에서 유추된 것인지 아니면 어떤

근거를 갖고 이야기되고 있는 내용이었는지 상당한 의구심이 들었고 나와같은 무지몽매한

독자들이 작가의 주장을 마치 정설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어서 나는 쉽게 작품에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로마의 콘비비움’, 바이킹과 관련된 이야기 역시 일부는 수긍되는 부분도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의문점으로 점철된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읽은 소회를 술에 취한 느낌이 작품을 읽는 내내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작품을 전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인간의 역사란 과 불가분의 관계로서 떼어놓고 이해될

있는 부분이 적다는 생각이 든 것 외에는 다른 소회는 없고 추후 지인들과 술자리를 함께할

재미삼아 작품에서 얻어들은 몇가지 소소한 소재를 이용해 즐거운 술자리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 외에는 크게 다른 감동은 받지 못한 작품이었다.

내가 볼 때 작가는 술을 아주 좋아하던지 아니면 아주 싫어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 이유는 작품을 읽어보면 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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