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본색 - 1인자의 본심을 읽어야 국가의 운명이 보인다
김덕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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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제목만 보고 지도자다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혹은 지도자라면

태생적으로 또는 후천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시대와 환경이 요구하는 지도자로 육성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 상을 그려보기 위해 

해당 작품을선정해 읽어 보았는데 그런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작품은 우리 모두가 평소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다 알고 있는 고대 로마시대 

대표적 위정자의 통치 등극과정 그리고 그들이 행했던 통치 내역과 업적 분석을 통해 

지도자라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또 위기의 순간에 어떤 혜안을 갖고 난국을 헤쳐 나갔는지를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스스로 분석하고 판단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작품이다.

나는 작품을 읽으며 우리의 여의도와 용산을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당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인물과 비슷한 사람을 찾지가 쉽지 않았다.

어찌되었던 간에 작품을 통해 지도자 상에 대한 어떤 정보를 얻어보고자 덤벼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니 주의하기 바랍니다.

 

지도자에 대해 내가 내린 결론은 언젠가 다른 작품을 통해서도 이야기하고, 강조한 사실이

있지만 지도자는 스스로 타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여러 작품을 통해 얻은 결론은

첫째, 지도자를 키우는 확실한 조력자(부모, 친구 등)가 있어야 하고

둘째, 지도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시대적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야 하며

셋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도자는 태생적으로 그런 인격을 갖고 태어나야 하며

넷째, 다른 여러 조건보다 우선적으로 어떤 경우라도 상대를 포용하려는 강력한 

      자세가 있어야 하고

다섯째,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한 각고의 개인적인 노력과 더불어 지도자를 지지해

         줄 강력한 동참세력이 있어야 한다

는 게 나의 생각이다.

 

작금의 우리 주변을 보면 어떤가?

기가 차고, 한심스런 작태가 연일 벌어지고 있으며 모두가 난리를 치며 당신은 틀렸다고

외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자신은 억울하며 아니라면서 모함이라고 울부짖으며

난리를 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최근에 방송된 모 프로에 나온 어느 유명 여자 탈렌트가 어느 영화 촬영 당시 아무리 노력

해도 시나리오에서 요구하는 표정 연기가 안 되어 속상해 하며 돌아서서 눈물지을 때 그

영화감독이 문자 한통을 보내 왔다고 한다.

모두가 환호할 때 인정하십시오

라는 문자였다고 한다.

자꾸 아니라고 하지 말고 모두가 의심할 때 인정하고 자중 모드로 들어가는 그런 지도자가

보고 싶다. 진짜로 .......

 

[선견지명의 함정] --- 그라쿠스 형제(티베리우스, 가이우스)

- 기원전 2세기 중엽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해 서부 카르타고와 마케도니아를

 속주로 편입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지만

각종 전리품과 전쟁 포로의 유입으로 경제적 활기

헬레니즘 문화와 함께 동방의 선진문물이 급속 유입

전쟁의 장기화, 대농장의 등장으로 중소 자영농이 급속 붕괴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사회 혼란 가중의 폐해 발생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즉, 그라쿠스 형제의 등장

- 그라쿠스 형제의 아버지는 한니발을 물리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딸인 코르넬리

  아와 결혼하면서 권력을 독차지하나 12명의 자녀만 남기고 죽는다.

자녀 중 그라쿠스 형제와 셈프로니아()만 남고 모두 죽는다.

어머니 코르넬리아는 재혼도 거부한 채 자녀 교육에 몰두, 그라쿠스 형제를 로마의

   위대한 개혁가로 성장시킨다.

딸은 그라쿠스 가문과 좋은 관계가 아니었던 스키피오가문과 혼인하나 개혁 운동에

   앞장선 그라쿠스 형제와는 달리 개혁에 중도적, 부정적 견해를 보인 스키피오파 가문과

   반목하게 된다.

- 그라쿠스의 형인 티베리우스가 제안한 농지개혁법이 통과되자 원로원중심의 기득권

  과 평민중심의 민회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간극이 발생한 끝에 기득권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티베리우스의 비타협적이고 강력한 개혁 추진과 비록 가짜 뉴스로 인한 오해로부터

   시작되기는 하였으나 원로원이 주축이 된 폭력 행사가 사회 위기를 증폭해 불신과

   증오의 불씨를 심는 결과를 초래했다.

티베리우스의 동생 가이우스도 형처럼 평민을 위한 개혁 운동에 참여하나 죽임을

   당하고, 그의 동생들인 그라쿠스 형제 역시 호민관에 등극하여 평민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다 형은 1년 만에, 동생은 2년 만에 정치 폭력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공화정 초기의 타협과 소통의 정신은 사라지고 극단적인 대치와 폭력만 난무하며 사회

   갈등이 심화돼 결국 로마는 길고 긴 내전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

   혼란의 시기가 지나가고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평화시대를 연 이후 그라쿠스 형제

   가 제시한 개혁정책들이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다.

-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반대하는 자들을 일소하는 대신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만 옳고 따라서 나만 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는 순간 개혁은 명분을 잃은 채 이권

  다툼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바로 그라쿠스 형제의 실수였다.

 

[피를 부른 지도자의 근시안]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시도와 죽음 이후 로마는 민회와 원로원, 평민파와 귀족파로 분열

  되고, 마리우스(평민파)와 술라(종신 독재관)의 등장

- ‘술라는 몰락한 귀족 집안이었는데 여인(부유한 연상녀와 계모)를 만나 재산과 명예를

  물려받으며 정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 당시 실권자인 집권자 마리우스밑에서 재무관을 지낸 술라는 킴브리아 전쟁과 동맹국

  누미디아가 일으킨 유구르타 전쟁등을 거치며 시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집정관에 당선

  되는데, 이때 마리우스는 군제개혁을 도입 징집제도를 개혁하지만 추후 징병제도의 

  개혁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개혁이 되는데, 전장에서 승승장구하며 평민파의 지도자로

  성장할 때 부관이 바로 술라였다.

- 50대의 마리우스와 30대의 술라....술라가 마리우스의 종려 집정관의 부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둘 사이는 분열하게 된다. 법무관에 오른 술라는 동맹국 전쟁으로 입지가 부각

  이때 흑해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무리들과의 전쟁인 미트리다테스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 전쟁에서 총사령관을 누가 할 것인가를 놓고 평민파의 대표자 마리우스와 귀족파의

  술라가 갈등하게 되는데 귀족파의 지지를 받은 술라가 총사령관이 된다

   ---> 로마 역사상 최초의 내전발발(마리우스파와 술라파)

- 마리우스는 술라에 의해 아프리카로 도망갔다.

  ‘킨나의 도움으로 국내로 복귀한 그는 자신의 반대파에 대한 피의 숙청을 감행하지만 

  이내 술라의 복귀로 다시 정권을 빼앗긴다.

  이 과정에서 술라가 저지른 적폐 청산은 마리우스파의 절멸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이후 밀어붙인 개혁은 반동적 성격이 강해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힘으로 상대를 억누르면 당장의 효과는 있어서 내 뜻을 실현하고 사회 안정을 이룰 

  것처럼 보이지만, 그 힘 자체가 영원할 수 없다. 내가 힘을 잃는 순간 상대가 발톱을

  드러낼 것이고, 평화는 깨진다. 그런즉 복수의 연쇄를 끊는 지도자, 자신을 핍박한

  상대를 용서하는 지도자는 위대하다.

* ‘술라의 정권 등극 후 보인 행태와 이전 정부 시절 보인 행태가 거의 유사하다.

술라가 유사시 원로원이 특정인에게 비상 대권을 주는 패착으로 인해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듯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어느 단체장의 어설픈 시민단체에게 각종 이권을 줘서

그럴듯한 통치 모습을 보였지만 종국에는 그들로 인해 스스로 먹칠한 행동가가 되었듯

술라의 묘비명은

친구에게 선행을 베푸는 데 그를 따를 친구가 없었고, 적에게 악행을 저지르는 데 그를

따를 적이 없었노라는 문구는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인민을 위한다는 명분, 또는 핑계]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 카이사르는 고모부인 평민파의 수장 마리우스가 죽자 그의 오른팔 킨나와 협의, 그를

  유피테르 신전의 제관으로 임명하고 킨나의 딸과 혼인하지만 술라가 카이사르에게 

  사면을 제시하며 자신의 사촌과의 결혼을 요구하며 회유

- 카이사르는 우여곡절 끝에 속주의 참모로 공적을 세우며 은신하고 있던 중 절대 권력자

  술라가 죽자 집정관귀족파간의 주도권 다툼이 일어나는데 또 다른 집정관이자

  실력자인 레피두스가 카이사르와 함께 할 것을 제의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제안을 거절하고 법정의 변호인 혹은 고소인으로 활동하는 요즘말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입지를 다진다.

-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당시 귀족파의 실력자 돌라벨라히브리다를 고소하면서 그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 졌으며 동시에 수사학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키케로가 글과 말로써 국가에 봉사했다면 카이사르는 정치와 군대로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와중에 15명으로 구성된 신관단의 한 명인 코타가 죽가 카이사르가

  신관으로 선임되는데 이는 정무관으로서 첫 번째 경력이 된다.

- 카이사르가 살았던 공화정 시대의 로마는 어떤 관직이라도 민회에서 투표로 선출한

  사람에게 맡겼기 때문에 인민의 지지 없이는 합법적인 지도자가 될 수 없었는데 지도자

  는 인민의 지지 위에서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 카이사르는 여러 속주의 참모(재무관 등)로 일하면서 역량과 능력을 인정받게 되는데

  술라의 손녀(폼페이아)와 재혼하면서 또 평민파의 대부인 마리우스의 정신을 계승하면

  서 정체성이 분명해졌기 때문에 평민들의 지지를 쉽게 얻는다.

- 카이사르는 평민을 위한 혁신적인 조치들을 단행함과 동시에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정권을 공동관리하나 크라수스의 패전으로 정권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자 세력이 더

  강했던 카이사르를 견제하기 위해 원로원이 폼페이우스를 단독 집정관에 선임하면서

  내부 암투가 시작된다

- 카이사르는 평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여러 개혁조치를 취하면서 폼페이우스와 파르살루

   스 평원에서 대접전을 벌여 승리를 쟁취하는데 아프리카로 도망간 폼페이우스는 당시

   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3세 측근들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삼두정치를 종식된다

- 카이사르가 험한 시기를 보낸 이후 보여준 것은 복수가 아닌 관용이었다.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에게 대항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였지만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적극 대항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같은 편으로 간주하였으며 

  전투에 참여한 병사들에게는 누구든 한 사람은 살려주어도 된다고 했다. 심지어 정적들

  이 관직에 나가는 것조차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 지도자는 국가 운영의 중심, 즉 법과 제도가 인민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해야

  한다. 카이사르는 사리사욕과 기득권 유지에 집착한 원로원을 개혁하고자 노력했다.

- 그는 많은 정치적 개혁과 민생 복지를 위한 노력을 많이 했으나 갈리아전쟁에서 승리

  하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끈테 권력의 최고 자리를 탐한 결과 왕을  두지 않는다는 

  공화정 초기 정신이 크게 훼손되면서 원로원의 미움을 사 죽게 된다.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세울 때 로마에는 왕을 두지 않는다는 선언에 따라 누구든지

  왕이 되고자하면 아무리 많은 업적을 쌓더라도 죽어야 했다.

- 지도자는 시대를 정확히 읽고, 인민의 지지를 얻으며, 문제를 해결할 능력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카이사르는 그 모든 것을 겸비한 인물이었지만 정적인 공화파의 반격의

  빌미를 준 권력욕, 명예욕 그들을 과소평가한 안이함이 그의 치명적 실수였다.

-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늘 경계해야 한다. 인권변호사 카이사르와 

  종신 독재관 카이사르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므로.

 

[처음에 이기고 마지막에 패배하는 지도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 카이사르 사후 타협 및 고도의 정치 행위로 로마의 위기를 극복한 지도자, 또는 외세와

  손잡고 로마를 배신한 매국노, 안토니우스를 향한 극단적 평가가 있다.

  특히 부정적 인상을 각인시키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키케로로 그는 카이사르

  암살 당시 안토니우스를 함께 죽이지 못한 것을 최대의 실수라 했다.

  키케로는 추후 안토니우스의 계부가 카탈리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처벌되자 이에

  대한 적대감을 갖고 있다 키케로에게 복수하며 둘 간의 악연은 막을 내린다.

- 옥타비아누스와의 내전을 비롯한 클레오파트라와의 관계, 악티움 해전 및 알레산드리아

  전투에서 연이어 패한 전력과 각종 영웅전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등으로 역사적으로

  안토니우스에 대한 부정적인 경향이 높은 게 사실이다.

- 안토니우스의 조상은 보수적인 성향의 귀족파였지만 할아버지가 술라파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마리우스에게 처형당한다. 모계의 집안도 카이사르의 친척이었으나 마리우스와

  킨나의 반대편에 섰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전력이 있는 집안이었다.

- 안토니우스의 친구 클로디우스를 카탈리나의 모반연루자로 키케로가 지목, 둘 사이는

  급속히 악화되는 데 평민파 운동에 가담하면서 클라디우스가 키케로를 추방하는 데

  성공하지만 훗날 이 일로 귀족파에게 살해 당한다.

  불안한 정세 속에서 안토니우스는 그리스로 넘어가 수사학을 배워 카이사르파의 일원이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 안토니우스는 수많은 전쟁에서 많은 공적을 세우는 등 군대에서 역량을 뽐내기 시작.

  특히 이집트 내전에 관여한 것을 기회로 클레오파트라와 관계를 맺게 된다.

  당시 로마는 키케로와 폼페이우스를 주축으로 하는 귀족파, 카이사르를 주축으로 하는

  평민파와 갈라져 있었는데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지목된 옥타비아누스는 초기 안토니우스와 반목하는 듯하다

  레피두스와 안토니우스의 동생들을 권력의 주변에 배치하며 권력을 확장해 나간다.

  특히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 암살자들을 관대히 처리한 결과 카이사르

  의 병사들에게 반감을 샀음을 잘 알고 카이사르의 후계자로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만들기 시작

- 공화정의 재건을 꿈꾸던 키케로는 옥타비아누스를 제거하려 했지만 카이사르의 후광과

  병사들의 지지에 힘입어 공화정의 원로들을 제거하고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와 함께

  카이사르파의 재건을 도모한다

- 카이사르 제거에 앞장섰던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필리피 전투에서 옥타니아누스와

  안토니우스를 제거한 후, 카이사르 암살자들을 돕고 공화파를 지원했는지를 묻기 위해

  클레오파트라를 소환한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로마의 지원이 필요했고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의 경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이집트의 지원이 절실했다.

- 옥타비아누스와 클레오파트라-안토니우스 연합군과의 악티움 해전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패한 안토니우스는 급박한 상황이 닥치면 자기를 죽여달라고 하인(에로스      에게 지시하지만 막상 그 순간에 하인이 이를 결행치 못하고 스스로 자결하다 미수에 

  그친 상태에서 자신을 찾으러 온 클레오파트라의 하인 디오메데스에 의해 발견되어

  클레오파트라에게 인도되어 그녀의 품안에서 죽는다.

- 안토니우슨은 전시의 군사적 재능은 출중했지만 평시의 통치 능력은 부족했던 것이

  카이사르가 그를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그의 최대 실책은 정치권력의 근거지를 로마가 아닌 이집트로 잡았다는 것이다

- 지도자로서 안토니우스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 분열을 극복한다는 대의가 아니었다.

  카이르 암살 뒤 혼란을 수습할 때나 삼두정치를 구성하고 유자할 때나 모두 자신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부터 고민했다. 그래서 그의 대통합은 힘이 없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 야합이었다. 이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모든 것이 자기 계산대로

  되고 있다는 안일함 속에서 안토니우스는 자멸하고 말았다.

 

[굴욕을 대하는 태도]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

- 졸지에 로마의 일인자가 되어 버린 옥타비아누스는 최고의 자리에서 모든 권력을 내려

  놓고 즉, 대권을 원로원과 인민에게 반납하고 공화정의 회복을 선언한 그는 인간 이상의

  ‘존엄한 자라는 뜻인 아우구스투스로 불렸다. 

   --->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기틀 마련

- 옥타비아누스(이우스투스)에 대한 평가

  1) 권력욕에 취해 적과 손잡고 친구도 배신하는 불신의 아이콘

  2) 남의 아내를 빼앗은 부정한 자

  3) 권력 세습을 위해 외동딸을 세 번이나 정략결혼의 희생물로 삼은 잔인한 아버지

  4) 어떠한 굴욕에도 포기하지 않은 야심가

  5) 국가를 혼란과 무질서에서 구한 구구의 영웅

- 옥타비아누스의 집안은 재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덕분에 아버지가 카이사르의

  둘째 누나(율리아)의 딸인 아티아와 결혼하는데 그가 태어날 즈음 카이사르는 평민파의

  우두머리로 서서히 떠오르는 별이었다.

- 카이사르의 죽음을 알게 된 옥타비아누스는 친구와 동행하여 로마로 들어간다.

  이때 하층민 출신이자 친구이자 충성스런 이인자인 이그리파가 있었다.

  로마에 입성한 옥타비우스, 안토니우스는 둘 다 카이사르파였지만 안토니우스 온갖

  방해와 비협조로 유언장에 언급된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안토니우스의 세력 확장에 우려하던 공화파가 옥타비우스에게 손을 내민다.

- 원로원의 배신으로 옥타비우스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간 안토니우스의

  방해로 미뤄오던 양자 입양 절차를 마무리하고 옥타비아누스라는 새 이음을 얻고 명실

  상부한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우뚝 선다.

- 내분을 극복한 카이사르는 본격적으로 공화파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당한 이는 안토니우스를 가장 비판하고 옥타비아누스를 배신한 키케로였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권력 집권에 도움을 준 삼두정치의 동료(섹스투스, 레피두스)를 

  하나씩 제거하는데 33세에 로마의 일인자가 된 옥타비아누스 그가 내전의 최후 승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아그리파라는 친구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 후계를 이으려던 아우구스투스의 계획은 그의 절친이자 사위인 아그리파의 죽음으로

  권력 세습의 불안을 느끼자 구원투수로 의붓아들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스우스 네로

  였다.

- 아우구스투스는 권려과 권위를 자신에게 집중하고 세습할 수 있었다.

  이로써 지중해 세계 전체에 로마의 평화를 확장해 이후 서구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반대급부로 공화정이 보장하고 원로원을 중심으로 행사된 로마 인민의 자유는 유보될

  수밖에 없었다.

- 야심을 품지 않는 지도자는 없다. 그들은 세상을 바꿀 힘을 갈망한다. 꿈이 큰 만큼은

  고된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포기할 상황에서도 지도자는 가능성을

  찾는다. 그리고 집요하게, 성실하게, 정확하게 목표를 좇는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지도자의 그릇을 판가름 할 기준이다.

 

[완벽한 통치의 비밀] 트라야누스

- 국가의 정의로운 시스템 덕에 황제에 오른 속주 출신의 인물이 황제 트라야누스로 그는

  제12대 황제 네르바의 양자로 지명된 끝에 다음 황제로 즉위했고, 제국의 최전성기인

  ‘오현제 시기를 대표하는 황제가 되었다.

- 황제 네르바 시절에 각종 복지 정책을 도입했는데 이전까지 로마의 복지는 지배층이

  마련한 기금이나 황제의 사재로 이루어졌는데 처음으로 국가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추진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정이 긴축되면서 근위대가 들고일어나는데 이를 완벽하게 방어한 인물이

  트라야누스 즉, ‘게르마니쿠스였던 것이다.

- 로마 전통의 상징인 원로원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기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사소한 절차와 의례도 성실히 따랐지만 원로원에 끌려다니지 않았고 황제로서

  권위를 포기하지 않았고 평소 긍정적인 이미지와 합쳐져 경건하고 엄격한 분위기를 자아

  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뛰어난 자들을 대거 선발해 원로원 의원으로 삼았다.

- 황제 네르바가 도입한 각종 복지 정책을 알리멘티라 불렀는데, 가난한 이들이 늘어나고

  인구 감소로 이어지자 로마군은 제국을 방어할 뿐 아니라 속주들을 로마화해 제국의

  통일성을 선도하는 주요 자원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알리멘트라는 복지정책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었다.

- 트라야누스는 공공 건축에서도 로마의 위상을 높인 위대한 건설자였는데 복잡하고 

  얽히고 설킨 복지 문제, 인구 문제, 경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한 지도자로 그가 눈앞의

  인기를 얻는 것보다 국가의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임을 잘 이해한

  지도자였다.

- 3세기 중반 이후 신임 황제가 즉위하면 원로원은 아우구스투스보다 더 행복하고

  트라야누스보다 더 훌륭한 황제가 되시라라는 말로 축하를 전하는 게 전통이었는데

  이런 기대에 부응한 황제는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 지도자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그래서 어떤 시스템으로 구체화하는지다. 트라야누스가 위대한 황제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 개인이 정의로워서이기도 하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정의로운 사회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뚝심과 아집의 차이] --- 하드리아누스

- 하드리아누스는 트라야누스의 양자로 로마의 제14대 황제로 그는 21의 재위 기간 중

  13년을 순행하는 데 받친 발로 뛰는 황제였던 반면, 그리스 문화를 좋아했던 그를

  트라야누스는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순행 중에 만난 안티노우스라는 청년과

  동성애에 빠지기도 한다.

- 파르티아 원정을 나갔던 황제 트라야누스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후계자 문제가 불거지나

  친위대장인 아티아누스와 황후인 플로티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황제로 등극.

- 전임 황제 트라야누스의 공격적인 영토 확장에 따른 속주들의 반발에 따른 뒷수습은

  후임 황제인 하드리아누스 몫이었다.

- 지도자는 다양한 이유에서 정치적 결절을 내린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수도 있고,

  자신의 당파를 위해서일수도 있다. 다만, 그 결정의 궁극적인 평가 기준은 공공의

  이익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다.

- 순행 중 속주의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 자기 뜻을 관철하는 치명적 실수를 범한다.

  즉, 유대인의 성지 예루살렘 근방에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라는 자신의 씨족명을 붙인

  식민시를 건설하고자 하는데 로마 - 유대전쟁이 한창이던 70년에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

  터에 유피테르 신전을 세우는 실수를 범한다.

  이에 반발한 유대인들이 봉기를 일으켜 유대인 50만 명 이상이 죽었다.

  반란이 진압된 후 남은 유대인들은 강제로 이주를 당했고, 정해진 날만 예루살렘 출입이

  허용되었다. 유대 지방은 시리아 팔레스티나 속주로 편입되어 철저히 관리되었다.

  유대인들은 제국 곳곳으로 흩어졌도 다시 나라를 세우기까지 1800여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유대인들의 비극,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 하드리아누스는 속주민으로 구성된 보조 군단도 손 보았는데 이들의 임무는 변경 요새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 밖의 상황에 대비한 새로운 보조 군단인 누메리도 창설하였다.

  또한 팔랑크스라는 새로운 전술도 개발하였다.

- 하드리아누스는 로마 법제사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특히 법률가들이 합의해 제출한

  보고서에 법적 권위를 부여해, 판사들이 유사한 사건을 심의할 때 참고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추후 로마대법전의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여러 차원에서 진행된 하드리아누스의 사법 개혁은 로마의 법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 하드리아누스의 여러 업적 중 다른 황제들을 압도할 만큼 탁월한 것은 제국 전역에서

  추진된 공공 건축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로마시의 판테온이며 아직 남아 있는

  또 다른 건축물로 하드리아누스 대능원이 있다

-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즉위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을 뿐더러 로마 황제 중 그만큼 그리스

  문화에 빠진 사람은 없었고 그리스 문학과 철학에 조예가 깊었던 것은 물론이고 그리스

  문화의 상징인 수염을 기른 최초의 황제이다. 이런 모든 과오에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오현제에 드는 것은 순행으로 보여 준 지도력 덕분이다.

 

[함께 통치하는 지혜] --- 디오클레티아누스

- 235년부터 284년까지 무려 20여명의 황제가 등극하나 평균 3년도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살해당하거나 쫓겨난다. 3새기의 로마는 안과 밖이 모두 위태로운 상태였는데

  제43대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개천출신으로 광대한 

  제국을 혼자 통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권력 투쟁만 불러일으킨다고 

  진단하며 권력을 나누기로 생각한다.

- 42대 황제 카루스의 근위기병대장이었던 디오클레스는 황제가 갑자기 죽으면서 그를

  추종하던 추종세력에 의해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다른 황제들에게

  없던 정치 감각이 있었고 원로원의 지지을 얻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로마시를 방문한다.

- 북방(게르만)과 동방(페르시아)의 끊임없는 외침에 고민하던 황제는 잉를 막아내기 위해

  서방을 맡아 다스릴 부황제(막시미아누스)를 임명하게 되는데 이 전략이 크게

  성공한다.

-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는 둘 다 아우구스투스로 불리웠고, 각각 동방과 

  서방을 맡았으며 각자의 황국와 군대와 행정기관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제국이 둘로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두 명의 황제로는 부족함을 느끼고 8년만인

  292년 두 황제가 각각 부황제를 두어 총 네 명이 통치하는 ‘4제 통치를 도입한다.

- 공동체가 위기를 겪고 있을 때 지도자는 놀라운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권력을 나눠 다른 훌륭한 이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공동체가 겪는 문제는 대부분 너무나 복잡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면 결국 식물 지도자되기에 십상이다. 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

  지도자에게 함께하는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 민생을 위협하는 인플레이션이 심했고, 이를 잡기 위해 조세개혁을 추진하였으며

  그리스도교를 극심하게 탄압한 시대였다.

- 그는 생전 스스로 제위에서 물러난 로마사 유일의 황제였는데 집권 과정에서 경쟁 

  상대를 폭력적으로 제거하고 제위를 차지했다. 그는 발칸반도를 근거지로 한 군인

  황제들의 뒤를 이어 로마의 일인자가 되었다. 군사적 재능으로 황제가 되었지만 앞선 

  군인 황제들과는 다른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정치 감각과 능력을 발휘해 끝이 보이지 

  않던 혼란과 무질서를 끝냈다.

  그의 최대 공적은 50여 년간 계속된 군인 황제 시대를 마감하고 제국을 위기에서

  건져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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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학 -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 Wisdom Classic 3
신동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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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작금은 선거철이다.

국가와 민족을 잘 이끌어 보겠다고 나선 후보라는 사람들의 면후(面厚)와 심흑(心黑)' 수준이 

어떠한가를 점검해 보려 했는데 내가 범인(凡人)이다 보니 그들에 대해 알고 있고, 지득한

정보가 일천해 후보들의 그런 면면을 평가하기가 아주 난해했지만 후보들은 끝까지 점잔을

빼야 하기 때문에 그 후보들을 대신해 그들의 뛰어난 점을 외치는 주변인들을 통해 후보들의

면후(面厚)와 심흑(心黑)' 살펴보았는데,

어느 후보는 과거 그 후보가 소속된 집단의 특혜를 받았던 인물들 대다수가 나 몰라라하고

상대 진영으로 떠나는 것에 대해 변절자라 외치는 것을 보고 또 어느 후보는 자신은 절대

아니라고 자신의 부인도 아니라며 제기되는 의혹마다 부정하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 대다수는

진짜 그럴까?’하고 바라보며 오늘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후보들도 어느 정도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갖고 있겠구나 하는 의구심이 크게 들었던

것은 사실인데,

지하철 노선도 외우며 난리치다 환승을 잘못 한 아픈 추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맛탐구 선구자

역할을 하시다 치킨 크기에 반기를 든 맛초보자들 때문에 삐지셨는지는 몰라도, 아직 자신이 

사회 여론을 주도하고 주류인지 아시는 어느 몰락한 폴리페서와 한 때는 모든 청소년 재소자들의 자애스런 어머니 역할을 하셨던 어느 모친의 외침을 들으며, 근자감 속에 봐주기 힘든 얼굴의 

소유자이며 투기 부인이신 어느 말라깽이 여인이 다른 이의 얼평하는 것을 들으며아들이 

윤창호법에 걸리던 말던 큰 틀에서 놀겠다고 덤벼드는 인물과 위조면 위조지 전체와 부분을 

나누어 누가 들어도 구차한 변명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이야기로 점철하는 후보를 보면서 

그래도 요번에 뽑는 후보는 누가 되었던지간에 면후(面厚)와 심흑(心黑)' 이 크게 발동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크게 들고 있다.

 

그런 대권에 도전하는 후보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 최근 내가 즐겨 읽는 중국 역사서의

한 페이지를 들추다 마주한 문장이 있어 여기에 옮겨 보면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임금이 법도를 실천하면 육친이 굳게 결속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령 즉 예의, 정의,

깨끗함, 부끄러움이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는 망한다(관중)“

 

가득 찬 것을 유지하려면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하고, 기우는 것을 안정시키려면 사람의

도리를 따라야 하며 일을 통제하려면 땅의 이치를 따라야 합니다.(구천에게 범려가 한 말)“

 

이 문구가 나의 눈을 사로잡은 이유는 뭘까?

뭘하시든 대권 후보들의 중심에는 국민이 있어야 하고, 민생의 안정과 복지 그리고 통일을

기획하는 마음 자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작품의 소회로 들어가서,

지난 2000년 중반 해당 작품을 읽고 2019년 작품의 간단한 소회를 작성한 적이 있는데,

해당 작품을 접하고 독후감을 작성하던 당시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해당 작품이 나에게 미친영향내지는 소회를 짧은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쓰려고 하니 상당히 난해하다.

이유는 우리가 삼국지라는 역사서를 통해 종전에 알고 있던 저명한 인물들 조조, ’유비‘,손권‘,

항우‘, ’유방및 중국 근대사 속 장개석모택동에 관한 평가를 기존에 알고 있던 상식에 반해 해당 작품에서는 완전히 색다른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작품에 대한 소회를 정리해 보니 누군가 이야기했듯이

 

등산할 때 산 위를 오르며 못 보았던 꽃들을 하산하면서 마주한 느낌

 

이랄까 그런 느낌이 확연히 들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나의 연륜을 밑바탕에 깔고 다른 각도로 해당 작품 속에 언급된 인물들을 대하니 

그런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음을 밝혀 둔다.

 

이번 시간을 통해 역사와 관련된 작품은 한 번 접하고 책장에 묵혀서 먼지로 뒤집어 씌울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정기적으로 혹은 어떤 역사적 변곡점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마다 

역사 관련 서적을 뒤져서 새로운 영감을 느낄 때 진정한 가치가 발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시간이었다.

작품이 던져준 결론은 작품 마지막에 정리하고 있는 이런 내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 ‘상사로 사는 처세의 기본

1. 부하에게 의중을 보이지 마라

2. 부하의 재능을 적극 활용하라

3 부하를 널리 포용하라

부하로 사는 처세의 기본은 

1) 상사의 의중을 헤아려라

2) 상사에게 공을 돌려라,

3) 끝까지 충성하라

가 아니었던가 생각하는 바이다.

 

'후흑학'이란 두꺼운 얼굴을 뜻하는 '면후(面厚)'와 시커먼 속 마음을 뜻하는 '심흑(心黑)'을 줄인 

말로 우리말의 '뻔뻔함''음흉함'에 해당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작품은 후흑학의 여러 대표적인 사례를 언급하고 있는데,

나의 관점으로 이들 사례의 면면을 분석해 보았을 때, 해당 역사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 혹은

기본적인 지식이 없이 사례를 접한다는 것은 사례가 단순한 옛날 이야기거리로 밖에는 독자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중국 역사 내지는 해당 사례에 등장하는 인물과 역사적 환경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시간 낭비요 단순한 이야기 거리로 밖에는 평가 받을 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각각의 사례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독자들이 한 번 찾아 직접 읽어

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작품은 후흑술을 통한 승자가 되기 위한 여러 전략을 이야기하고 있다.

 

1) () : 위기에 빠져 나갈 퇴로를 만들어라(P171)

- 진실만큼 사람을 설득하는 데 좋은 방법은 없다.

- 초지를 관철하기 위한 견인불발(좌절하지 않고 반복해서 접근하는 태도)의 자세와 함께 

  상황의 변화를 좇는 환면술(안면 바꾸기)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자만이 결국 승리한다.

 

2) () ; 반룡부봉(攀龍附鳳)하되 역린을 조심하라(P196)

- ‘반룡부봉이란 용의 비늘을 휘어잡고 봉황의 날개에 붙었다는 뜻으로 훌륭한 사람에 붙어 

  출세하는 것을 의미.

3) () : 호언 장담으로 기선을 제압하라(P211)

- '()'자는 보통 허풍 떤다는 의미의 취우(吹牛)를 뜻하는 데 이는 입김을 불어 소를 날려 

  보낸다는 뜻이다.

 

4) () : 박수갈채로 자부심을 만족시켜라(P222)

- '()'은 무대의 배우에게 갈채를 보낸다는 뜻의 '봉장(棒場)'의 봉이다.

- 매사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해 칭찬을 적극 사용하라.

- 환관이 황제와 태후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결정적인 수단은 바로 '칭송'이었다.

 

5) () : 솜에 바늘을 숨기고 때를 노려라(P233)

- 협박과 아첨을 병행할 줄 알아야 한다

 

6) () : 비자금을 활동 자금으로 활용하라(P243)

- '()'자는 한마디로 뇌물을 주는 것이므로 뇌물을 받는 자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자신에 대한 임면권을 쥐고 있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임면권을 쥐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다.

- 뇌물을 '회뢰(賄賂)'라고 한다1970년대 당시에는 베트남어로 '짜웅'이 와이로 대신 널리 

  쓰이기도 했다

- 장개석의 '와이로'(뇌물) 정치는 북벌에 성공한 이후에도 지속됐다.

 

7) () : 사람을 가려 때에 맞게 칭찬하라(P256)

- '()'자는 마치 관절이 없는 인간인 양 비굴할 정도로 아첨하고 상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헤헤거리는 것을 말한다.

- 좋은 새는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틀듯, 현명한 신하는 군주를 가려서 섬긴다.

 

- 명군과 암군의 분기점은 곁에 아첨을 일삼는 유신을 두는가 아니면 역린을 무릅쓰고 직언을 

  행하는 간관을 두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

 

8) () : 큰 인물로 포장해 신뢰케 만들라(P269)

- '뻣뻣하게 군다'는 뜻으로 아래 사람과 백성들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 외관상 위엄과 어투를 통해 큰 뜻을 지닌 위대한 인물로 여기도록 만듬

- 공자의 모든 사상은 지인(知人, 사람을 이해함)에서 시작해 애인(愛人)에서 끝난다.

 

9) () : 귀머거리로 흉내로 속셈을 감추라(P280)

- ()자는 귀머거리와 벙어리처럼 처신하라는 뜻이다.

 

 

작품에 나오는 좋은 문구들

* 군데군데 오늘을 사는 정치인은 물론이고 대권 주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문구가 한 둘이 아니다

 

- 군주는 반드시 공평무사해야 천하의 인심을 얻을 수 있다. 관리는 고하를 막론하고 유능한

  인재를 등용해야지 친분 관계나 자격 요건으로 관직의 고하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P 44)

- 21세기 현재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최상의 후흑은 소위 난득호도로 표현되는데

  이는 총명해지는 것도 어렵지만 어리석은 체하는 건 더 어렵다는 뜻이다.(P 55)

- 유방과 항우가 다투던 시절, 뻔뻔하기는 했으나 음흉하지 못해 결국 실패한 인물이 바로

  한신이다.(P 88)

- 남의 도움으로 옷을 입은 자는 그 사람의 어려움을 걱정해야 하고, 남의 도움으로 먹고사는

  자는 그 사람의 일을 위해 죽어야 한다.

- 권도(權道, 임기웅변의 방도)는 미리 확정할 수 없고, 국변(局變, 국면의 변화)은 미리 예측 할 수

  없다. 시기에 따라 옮기고 사물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책략의 관건.(P 95)

- 조조가 구사한 용인의 요체는 인재의 적재적소 배치와 엄격한 신상필벌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털끝만 한 사심도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P108)

- ‘사마의가 구사한 군략의 요체는 상대방을 기만하는 궤사(詭詐, 간사스런 거짓으로 남을속임)

  에 있다. 궤사의 핵심은 허허실실이다. 허허실실의 무예 이론으로 정립해 놓은 것이 일본의 

  검도다. 허허실실은 임기웅변을 기본 조건으로 삼고 있다.(P146)

- 장개석은 '주역'을 좋아해 이에 대한 주석서를 펴낸 것은 물론 그는 죽을 때까지 손에서 주역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본명이 '중정(中正)'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며 그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개석(介石)'은 그의 호로 모두 '주역'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후흑학'의 대가인 모택동은 '자치통감'17번이나 통달했다(P156)

- [동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하게 할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득실을 분명히 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치통감의 '통감(通鑑)'이란 말은 역대 왕조사를 두루 꿰는 

  '역사의 거울' 아니겠는가. 장개석은 '주역'을 가지고 미래 운명을 점치고 앉아 있을 때

  모택동은 '자치통감'을 통해 '후흑학'을 단련해 대륙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P162)

- 난세에는 임기웅변이 필수다.(P166)

-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공을 세우지 못하고 공을 이룬 자는 추락하며, 명성을 이룬 자는

  이지러진다.(P190)

- 중국인인 매우 이중적이다. 강직한 듯 원만하고 솔직한 듯 속물스러운 데가 있으며 의심이 

  많은면서도 쉽게 믿기도 하고, 고지식하면서도 융통성이 있으며 실리를 추구하면서도 정의감

  에 불타기도 하고, 예의를 따지면서도 공중도덕은 소홀이하며,

- 근검절약을 강조하면서 겉치레를 좋아하고, 그럭저럭 만족하면서도 일확천금을 꿈꾸며남의 

  흠을 들추기를 좋아하면서도, 원만하게 수습을 잘한다는 것이다. 매사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를 좋아하는 서양과 정반대이다.(P220, 이중텐, 중국인을 말하다)

- 백성들은 상대방의 재산이 자기보다 10배 많으면 몸을 낮추고, 100배 많으면 두려워하며

  1천배 많으면 그의 일을 하고, 1만 배 많으면 그의 하인이 된다 (사마천,P279)

- 조조의 관용 행보는 원소의 부대를 점령했을 때 가장 먼저 기밀 서류를 소각했는데 당시 

  원소가 가지고 있던 기밀 서류엔느 엄청난 정보가 담겨져 있었는데 이를 부하들이 모인 

  공개 장소에서 불태워 없앴다.(분소밀신 사건. P326)

- 난세의 시기에는 유세의 기술이 필요하다. 유세의 요체는 상대가 자랑으로 여기는 것을

  은근히 칭찬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것을 은근히 덮어주는 데 있다.(P330)

- 난세의 군주는 자신의 속마음을 내보여서는 안되고, 반대로 난세의 신하는 군주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군주의 속마음을 정확히 헤아려야 한다. 또한 난세의 군주는 자신의 지혜와 

  힘을 써서는 안 되고, 반대로 난세의 신하는 자신의 지혜와 힘을 함부로 들어내서는 

  안 된다.(P332)

- 당나라를 패망의 위기에서 구해낸 후 끝까지 충성을 다해 후대의 귀감이 된 인물은 곽자의

  (郭子儀)로 당대를 함께한 문인 이백은 동시대의 위인들을 다루면서 작품 속에서 존경심을

  표한 장군은 곽자의가 유일하다.(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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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되옵니다 - 5천년 한중 역사 기록이 증언하는 올바른 권력
이동식 지음 / 해피스토리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7


해당 작품이 이명박 대통령 재임기간인 지난 2012년에 발간된 것으로 보았을 때 작품 준비

기간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차기 대통령인 18대 박 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아마도

새로운 대통령께서는 국정을 이렇게 운영해 주십쇼

하는 의미로 작품이 만들어졌을 것인데 작품에 나와 있는 한 페이지만이라도 읽고 조심스레

적용하는 실행을 감행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그런 독서의 시간이었다.

 

작품 제목이 던져주는 아니되옵니다는 상,하간에 의사를 교환하거나 혹은 토론하다 상사의

어떤 문제적 언행에 대해 아랫사람들이 제동을 걸려고 할 때 던지는 말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이렇게 읽고 저렇게 읽어 보아도 내가 받은 느낌은 본 작품은 위정자들에게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저자의 집필 의도는 작품 초반(P 29)에 여실히 들어나고 있는데 선거 정국인 작금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선 후보들은 한번쯤 해당 작품을 읽고 느꼈으면 한다.

 

조선왕조가 근간으로 삼은 유학에서는 정치의 본질을 의()와 이(), 두 글자로 푼다.

이 두 글자로 해서 잘못(, 간사할 사)과 올바름()이 나누어지고 국가 정치의 성패가

결정난다. 국민들의 기본적인 마음, 곧 민심은 이()를 추구하는 마음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나라가 유지되고 튼튼해지려면 의()가 살아야 한다. 그것은 또 천하가 올바로 가는

()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고르게 균형을 유지한다면 정치는 성공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정치를 실패한다.“

 

이 문구는 예나 지금이나 만고의 진리처럼 살아 숨 쉬는 문구라 여겨지는데 이렇게 시대적

상황에 맞는 좋은 작품이 제대로 빛도 못 보고 품절이라고 하여 서점가에서 쉽게 구하지

못하니 못내 아쉽고 답답한 마음뿐이다.

나는 해당 작품을 시내의 어느 중고서점에서 구입했음을 밝혀둔다.

 

- 작은 사건에 매몰되지 말고 한 시대, 나라 전체를 관통하는 역사를 파악하라. 사건의 성패로 

  시비를 판단치 말고 시대의 실상을 이치와 도리로 판단해야 한다.(P 32)

 

- 목종승종(木從繩正) 이란 '나무는 승()에 따라가면 바르게 된다'는 의미이며 이는 '굽은 나무라

  할지라도 먹줄을 친 대로 켜면 곧바른 재목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국민의 목소리가 먹줄이다.

 

- 정치지도자의 힘은 능력 있는 사람을 선발해서 임용하고 훌륭한 말을 가려서 듣는 데서

  나온다(P 77)

 

- 정치는 경영과는 다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존중하지 않으면 정치는 독선이 된다.(P 97)

 

- 임금은 천하 만민의 눈으로 보고 만민의 귀로 듣고 만민의 지혜로 생각하고 만민의 힘으로 

  쟁취를 해 나가는 것이다그렇게 해야 호령은 저 아래까지 능히 도달하고 신하들의 정이 

  임금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고 백관이 서로 통하고 군신들은 활발히 움직인다.

                                                                                          (회남자, 주술훈 P 82)

   * '소통'문제를 근본적으로 지적한 중국 한()나라 초기에 만들어진 '회남자(淮南子)'이다

 

- 난세에 소인을 알아보는 것보다 치세에 간신을 알아보기 더 어렵다.(P108)

 

- 군주가 되면 자신이 좋아하는 인재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렵고 그러다 보면 군주의 한계를

  알아차린 총신들은 자신의 세력을 심느라 주위의 원성을 사고, 그것이 국사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고 갔다.(P121)

 

- 중원을 평정한 조조가 신뢰하는 다섯 부하(장료, 악진, 우금, 장함, 서황) 중에서 조조가 직접 

  발굴한 장수 '악진'을 제외한 네 사람은 적군 출신이었다.(P128) 

  또한 진시황을 도아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이사 역사 '초나라' 출신이었다

  프랑스 축구의 기대주 '음바페' 역시 난민 출신이다.

 

- 선대 왕의 묘호는 후계 왕과 신료들에 의해 부여되는 데 선대 왕의 살아생전 공()과 ()을 

  기준으로 평가하는데,

  ''은 무질서와 혼돈을 바로잡는 대업을 이룬 경우, ''은 선대 왕들의 훌륭한 정치 이념을 

  계승하여 태평성대를 계속 이어간 경우로 왕의 공을 표시하는 글자는 ''이고왕의 덕을 

  표시하는 글자는 ''이다.(P190)

 

- 세종은 억불숭유정책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왕실의 전통, 조상을 모시는 관습에

  따라 불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을 비판하는 언론을 인정하였는데,

  이는 한 시대가 너무 개혁을 내세워 자기 주장만 내세워도 안 되고 전통이나 현실을 어느정도 

  감안해야 한다는 바탕 아래, 정부 고관에 대한 바른 소리는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언론 보호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P262)

 

- 정치는 풀을 베는 칼이 아니라 풀을 눕히는 바람이다.(공자)

  올바름이란 올바르지 않은 자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올바름을 솔선수범함으로써만

  올바르지 않은 자를 스스로 변하게 하는 것이며, 이것으로 정치가 안정되는 것이다.(P265)

 

- 풀을 뿌리째 뽑아가면서 정치의 목적을 달성하려 해서는 안 된다. 갑자기 뿌리째 뽑아 버리려 

  하면 뿌리 밑에 붙은 흙먼지가 날아올라서 온통 세상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혼란해지는 

  것이다.(P268)

 

- 고려말 주자학의 비조인 우탁(역동선생)'역경'을 고려에 수용해 후진에게 가르쳤는데

  정몽주는 동방사림의 조종이라 불렀고, 조선조에는 그의 학문과 덕행을 흠모해 역동서원을

  세웠다.(P296)

 

- 원나라 정복기 고려 처녀의 징발을 중지시킨 공로는 목은 이색의 부친인 '이곡'선생이다

 

- 후세에 본받지 말아야 할 인물로 '세조 실록''성종 실록'구종직이란 인물을 들면서

  그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P338)

 

-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P157)

  1)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

  2) 친분 때문에 관리로 등용하지 말 것

  3)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 아랫사람과 윗사람 사이에 소톻이 잘 안된느 9가지 병폐(P 91)

  1) 남에게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          2) 잘못을 가르쳐 줌에 듣기를 부끄러워하는 것

  3) 변설에 능한 것                            4) 총명을 자랑하는 것

  5) 위엄을 돋우는 것                          6) 고집을 부르는 것

  7) 아첨하는 것                                 8) 눈치 보는 것

  9) 두려워 하는 것

 

[작품에서 체득한 지식들]

 

- 십점불극종소(十漸不克終疎)(P 77)

  당 태종 이세민이 초기의 관대하고 순박한 정치가 유정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후기로 가면서 

  사치와 방종에 빠지자 위징이 이를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충언으로 당 태종도 그 소본으로 

  병풍을 만들어 좌우에 두고 몸가짐을 바로 했음.

  조선에서도 3대 태종 이방원에게 경기관찰사 윤사수가 올린 병풍과 9대 성종에게 경상도

  관찰사 김흔이 올린 족자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첫째 좋은 말을 구하고 보배를 사려 하니,

         이것은 청정과 과욕한 마음을 점점 끝까지 갖지 못하게 된 것.

  둘째 백성의 재물과 노동력을 가벼이 쓰니,

         이것은 절약해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점점 끝까지 갖지 못하게 된 것.

  셋째 방종한 생활에 간언을 물리치니,

         이것은 자신을 덜어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을 점점 끝까지 갖지 못하게 된 것.

  넷째 군자를 멀리하고 소인을 가까이하니,

         이것은 습관을 신중히하고 선량한 이와 함께하려는 마음을 끝까지 갖지 못하게 된 것.

  다섯째 사치스러운 것을 즐기니,

         이것은 순박한 마음을 점점 끝까지 갖지 못하게 된 것.

  여섯째 비평과 칭찬이 신중치 못하여,

         어진 이를 임용하려는 마음을 끝까지 갖지 못하게 된 것.

  일곱째 이리 저리 말을 달리며 사냥하는 것을 너무 즐겨, 유희를 경계하는 마음을 점점 끝까지 

            갖지 못하게 된 것.

  여덟째 상하의 단결을 도모하는 마음을 점점 끝까지 갖지 못하게 된 것.

  아홉째 즐거움에 겨워 자만하므로 삼가고 겸허한 마음을 점점 끝까지 갖지 못하게 된 것.

  열째 민생에 재앙이 만연하니,

         이것은 재앙을 막기 위해 부지런히 다스리는 마음을 점점 끝까지 갖지 못하게 된 것.

 

  - 동양 역사에서 최초의 반정(反正) , 쿠테타의 원인이 나라 사람들의 입을 막은 데서 비롯된 

    주나라에서 일어난 '국인폭동(國人暴動)이다.

  - 왕의 업적을 기준으로 후계 왕과 신료들에 의해 붙여지는 묘호는 왕의 평가 항목인 ()과 

   덕() 두가지로 평가하는데

   ''은 이 땅의 무질서와 혼돈을 바로잡은 대업을 이룬 경우이고

   ''은 선대의 왕들이 확립한 훌륭한 정치 이념을 계승하여 태평성대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왕의 공을 표시하는 글자는 ''이고, 덕을 표시하는 글자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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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경(智經)
풍몽룡 지음, 홍성민 옮김 / 청림출판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추천권유도 3


작품은 중국역사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사건을 통해 오늘을 사는 후세인들에게 전할만한

귀감이 될만한 사례를 집약한 작품으로 작품은 우리가 학창시절 학습과 독서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진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교훈까지 포함한 교훈적 사례를 담고 있는데 

아무래도 사례의 대다수가 전쟁기반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많아 전쟁과 전투와 

연관된 사례가 많았음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할 것이다.

내가 최근 중국의 역사와 관련된 작품 십 수권을 집중적으로 접하는 이유는 이전부터 독서를 

하며 궁금하게 여겼던 부분이면서 작금의 우리의 대선 정국과 맞물려 올바른 후보를 선택하기

위해 또 이전같이 잘못된 리더를 선택하지 않기 위해 진정한 리더의 자세간신 구별법에 

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발굴, 소개해 우매한 지도자를 다시는 뽑지 말자는 나만의

의도에서 이런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름 감동하였고, 해당 작품집에는 없으나 한번쯤 알아두면 좋은 사례가 있다고 판단한 일간

신문에서 발췌한 자료를 여기에 옮기면서 읽는 분들에게 나만의 느낌을 던져본다.

 

사례 1. 조나라 장수 조괄


조괄은 조나라의 장수로 이름을 날리던 조사(趙奢)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병법을 배웠는데,

군대의 일을 논함에 있어서는 천하에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일찍이 아버지인 조사와 더불어 

군대의 일을 논하였는데, 그의 아버지 조차도 그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조사는 자식이 잘한다고 칭찬해주지 않았다. 조괄의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묻자 

"전쟁이란 사람이 죽는 곳이오. 그러나 괄은 이를 너무 쉽게 말하고 있소. 조나라가 괄을 장수로 삼지 않으면 그만이겠으나, 만약 기어이 그를 장수로 삼는다면 조나라의 군대를 무너지게 할 

것이오."

라고 하였다.

 

진과의 전쟁으로 조나라가 어려움에 빠지자 염파라는 장수가 장평(長平)에 파견되어 전쟁을

수행하게 되는데, 염파는 수비에만 치중하고 함부로 나서서 싸우는 것을 피하면서 방어를 강화

하는 등의 장기전으로 대응하였다. 그러자 진나라 측에서는 

"진나라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조사의 아들인 조괄이 장수가 되는 것이다."

라는 헛소문을 퍼뜨리게 된다. 조나라 효성왕은 헛소문에 현혹되어 염파를 파면하고 조사의

아들인 조괄을 대신 장수로 파견하였다.

그러자 재상 인상여(藺相如)조괄은 그저 그 부친이 전한 책만 읽었을 뿐 합변(임기응변)을 

모릅니다."라 말하며 반대하였고, 조괄의 어머니 또한 조괄의 장수 기용을 적귿 반대하지만 효성왕은 이를 모두 무시하였다. 그러자 조괄의 어머니는 조괄이 잘못되더라도 자신을 이 일에 연루시키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여 효성왕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낸다.

염파를 대신하여 조괄이 장수가 되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진나라가 맹공을 퍼부어 조괄의

군대를 격파하는데, 조괄의 군대는 수 십 만이 진나라에 항복했고, 진나라는 그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이때 죽은 조나라 군사는 45만 명에 달하였다.

이 싸움을 장평대전이라 한다.

 

 

사례 2. 위나라 장수 악양

 

위나라 장군 악양은 중산국을 공격하였다. 당시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 있었는데,

중산국의 왕이 위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악양의 아들을 죽이고는 시신을 삶아서 국을

만들어 악양에게 보냈다. 그러나 악양은 그 국물을 모두 마셔버림으로써 자신의 굳은 결의를

드러냈다.

마침내 악양은 3년에 걸친 전쟁 끝에 중산국을 정복하였다. 악양이 위나라로 돌아와 공을

논하였는데, 위 문후가 그에게 그동안 악양을 비방하던 상소문이 한 상자나 쌓여 있던 것을

보여주었다. 이에 악양은 수차례 절을 올리며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기를,

"이는 신()의 공이 아니라 주군(主君)의 힘 덕분이옵니다."

라 하였다. 한편 처음에 악양이 아들을 삶은 국물을 마셔버렸다는 소식을 들은 위 문후는

그의 충정에 감탄하며 악양에게 상을 내리면서도 내심 그를 의심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후 악양의 행적은 기록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사례 3. 명나라 환관 위충현(魏忠賢)

(* 본 내용은 작품에는 없고 모 일간지의 기사를 축약한 것임)

 

명과 조선의 연합군을 물리친 누르하치가 요동을 장악하고 북경의 관문인 산해관(山海關)까지

노리지만 환관 위충현(魏忠賢)이 이끄는 엄당(奄黨·환관당)으로 인해 무위로 된다.

누르하치는 성을 지키던 원숭환에 항복할 것을 권유하나 위충현군에 당한다.

누르하치를 물리친 천계제(天啓帝)가 죽고 숭정제(崇禎帝)가 즉위하자 원숭환은 숭정제에게

5년 안에 요동을 수복하겠다고 다짐한다.

숭정제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게 된 원숭환은 조선에 나가있던 모문룡(毛文龍)을 소환해 싸울

생각은 전혀 없고 밀수 등으로 사복만 챙겼던 그를 요동 수복의 걸림돌로 여겨 처형한다.

누르하치가 죽고 홍타이지가 칸이 되는데 그는 원숭환을 피해 산해관 방향으로의 공격을 중단하는 대신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데 힘쓰는 한편, 1627년 조선을 침략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묘호란이다.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했던 홍타이지는 산해관을 우회하여 만리장성 외곽을 통해 북경으로

침입해 원숭환의 허를 찌르는 황성(皇城)을 노린 기습작전을 감행한다.

황성 포위 소식에 원숭환은 북경으로 달려와 후금군을 격퇴하지만 잠시나마 황성이 위기에

처하자 숭정제는 격노한다. 원숭환에게 반감을 품었던 반대파들은 황제에게 이간질을 한다.

모문룡과 동향(同鄕)으로 그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챙겼던 대학사 온체인(溫體仁)

원숭환이 홍타이지와 내통하여 후금군을 끌어들였다

며 목을 치라고 촉구해 모문룡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호주머니를 허전하게 만든 원숭환에 대한 

원한이 엄청난 무고(誣告)로 표출됐던 것이다.

 

평소 의심이 많았던 숭정제는 결국 홍타이지가 꾸민 반간계(反間計)에 넘어가는데 홍타이지는

황성에서 물러나면서 환관 두 명을 포로로 잡아 원숭환이 북경을 탈취하기로 후금과 밀약

했다는 이야기를 흘린 뒤 이들을 풀어준다. 부리나케 달려온 환관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숭정제는 원숭환 제거를 결심하며 그를 처형해 홍타이지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적국의 최고 명장을 제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원숭환이 억울하게 죽은 뒤 명은 급속히 멸망의 길로 치닫는다.

의심만 많을 뿐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던 숭정제의 묵인 속에 엄당이 조정의 주도권을 되찾

으면서 안팎의 위기는 고조됐다. 후금은 힘이 더욱 커져 청()으로 변신했고 명을 자유자재로

공략했다.

전비(戰費)를 마련하기 위해 증세(增稅)를 거듭하면서 농민들은 아우성을 쳤고 민심은 돌아섰다. 곳곳에서 반란이 속출했다명은 결국 이자성(李自成)이 이끄는 농민 반란군에게 함락됐다. 다급해진 숭정제는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신료들을 소집했다. 하지만 신료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그저 통곡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북경성이 무너지고, 내성(內城)마저 위태롭다는 급보가 들어온다. 넋이 나간 숭정제는 수성

책임자인 이국정(李國楨)을 애타게 찾았지만 그와 군사들은 이미 도망친 뒤였다.

숭정제는 환관 왕승은(王承恩)과 단둘이 자금성을 빠져나가 경산(景山)으로 향한다. 그는 피난 도중 황극전(皇極殿) 앞에 매달린 커다란 종을 직접 쳐서 울렸다. 혹시라도 종소리를 듣고 신료들이 달려올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윽고 경산의 꼭대기 수황정(壽皇亭)에 도착한 숭정제는 왕승은을 시켜 유조(遺詔)를 남겼다. 죽어서 열성(列聖)들을 뵈올 면목이 없으니 내 시신의 얼굴을 가려다오.”

숭정제는 이어 수황정 아래 나무에 목을 매 자결한다.

 

 

위의 3가지 사례는 아무 생각없이 접하면 그저 그런 내용으로 폄하될수 있을지는 몰라도 내가

판단하는 범위에서는 사례의 이면에 숨겨진 교훈은 그 어느 이야기보다 중요한 의미를 함축한

사례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제 여, 야의 대선 주자들 선출이 끝나 대선의 시기가 막을 올렸다.

야당 대표가 대선 주자에게 파리떼와 하이에나떼를 조심하라고 했다고 한다. 누가 파리

누가 하이에나인지는 시간이 흐르면 알 수 있을 것이지만 그런 그들의 민 낮은 어느날 갑자기 

국민들 앞에 쇠고랑 찬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또 전임 통수권자와도 같은 전철을 밟은 

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들의 민 낮을 우리가 그런 이상한 현장에서 마주하기 전에 파리와 하이에나에게 우리의

안녕과 안전을 맡기지 말고 대선 주자 옆에서 오래된 변기에 찌들어 붙은 암모니아같은 모습의 

그들이 애초부터 자리잡지 못하도록 경계하자는 취지에서 나의 짧은 식견으로 이런 글을 정리한

 것이다.

조괄 사건의 위나라 효성왕과 측근의 감언이설에 넘어간 숭정제와 같은 삶을 사는 국민들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주군으로서 관점과 자세를 철저히 지켰던 위 나라 문후 시대의 국민으로

살 것이냐 하는 갈림길에 선 우리들에게 좋은 사례를 보여준 내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가의 흥망은 제대로 된 지도자의 선출과 지도자의 헌신 여부에 달려 있다.

나라 안팎에서 격동의 파고가 더욱 높아질 향후 5년을 이끌 대통령에 대한 선택을 앞둔 오늘,

국민 모두가 사람을 보는 안목을 가다듬는 것이 참으로 절실한 시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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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통제의 승부사 사마의 - 자신을 이기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삼국지 리더십 4
자오위핑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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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권유도 : 5


중국 역사서 - 특히 삼국지 후반부- 에 자주 언급되는 사마의라는 이름에는 익숙하지만,

막상 사마의라고 하면 대체적인 후손들의 평가가 제갈량의 호적수로 살아왔고 인내심이

강했던 인물이라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작품은 사마의에 관한 여러 우호적이고도 괄목할만한 이야기와 치적이 언급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사마의에 대한 평가를 쉽게 내릴 수 없음에 내심 고민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조조의 권유에도 권부에 쉽게 나서지 않으려 했던 행위, 한없이 자신을 낮추려는 자세적군의 

수장 제갈량과의 수 싸움에서의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상대를 능멸했던 판단력을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배우고 본 받아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찾으려 노력해 보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통해 사마의의 자세와 그릐 판단력과 대응력에 대해 나름 정리를 해 보려 하지만

나 혼자 고민하여 정리하는 것보다는 출판사가 제시하고 여러 강조점이 이를 잘 말하고 있어

나는 그 문구를 수용하기로 생각하였고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에 근접한 문구들만을 선별하여

정리하면서 작품에 대한 소회를 대신하고자 한다.

1) 최고보다는 만족을 택한다

2) 좋은 선택은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3) 상대가 준비한 선택지로는 절대로 택하지 않는다

4) 오래 관찰하고 일관되게 비판하라

5) 권위에 맞는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다

6) 일관된 선택으로 권위를 유지한다

7) 긍정적인 암시로 부하의 사기를 돋운다

8) 감정을 다스려 합리적으로 해석한다

9) 큰 소리로 일을 하고 작은 소리로 관계를 맺는다

10) 보스의 성향을 파악해 스타일을 맞추라

11) 유형에 맞춰 설득하고 행동에 앞서 동의를 얻는다

* 사마의의 행위에 대한 여러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나는 위 문구만을 선정했다.

 

위의 문구만을 놓고 작품의 세세한 내용을 유추해 이해하기가 상당히 버거울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을 선택해 접해 보는 것도 사마의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작품을 읽으며 내가 느낀 사마의라는 인물과 그의 업적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의 한 단면을

이야기해 본다면 그리도 제갈량의 전략과 전술을 잘 맞추고 대응했다면 후세에 길이 이름이

남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중국 역사 속 인물들보다 널리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역사를 기록하는 후손들에 의해 사마의가 너무도 미화되어 기술되고 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사마의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작품에서 얻는 이야기들

 

- 능력이 없음을 걱정하지 않고, 기회 없음을 걱정한다

- 말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한다

- 사람을 볼 때는 일관성을 가지고 봐야 한다.

- 비정상적인 행위의 배후에는 반드시 예상치 못한 비밀이 있다.

- 최고를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최고의 적이다

- 후회는 선택의 그림자이고, 유감은 인생의 반려이다

- 중대한 의사 결정을 할 때에는 단지 경험, 감정, 분노에 기대어서는 안 되고 이성에 근거해야 

  한다.

-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총명한 사람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이고,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 자신을 이해하면 분별력이 있는 자이고, 자신을 받아들이면 정신이 맑은 자이고, 자신을

  인정하면 용기 있는 자이다.

- 전쟁을 시작하는 것은 용기이고, 철수하는 것은 지혜이다.

- 사람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에게 약점을 잡히기 쉽다.

- 칼에서 가장 쉽게 금이 생기는 곳이 칼날이고, 창에서 가장 쉽게 마모되는 곳이 창끝이다

  능력이 뛰어난 핵심 인력일수록 조직에서 가장 쉽게 상처받을 수 있다.

- 보스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의 3대 금기 사항

   1) 비밀을 누설하지 마라

   2) 버릇없이 굴지마라

   3) 속이지 말라

- 타인과 영합하더라도 처신의 기본 원칙을 버려서는 안 된다

- 소통의 전제는 기교도 아니고 말도 아닌, 진실한 감정, 진정성 있는 태도이다.

- 보스에게 의견을 낼 때 보스의 단점을 너무 까발리지 마라

- 뛰어난 사람은 가치관으로 관리하고, 보통 사람은 제도로 관리하고, 소인배는 사람을 시켜 

  지켜보게 한다.

- 역풍이 불고 운이 나쁠 때, 평소의 마음을 유지하며 정확한 출로를 찾는 것이 리더의 능력이다.

- 성공은 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감의 문제다. 자원이 있어도 자신감이 없으면 실패한다.

- 실패와 좌절의 극복 방법(P 135)

  1) 개선    2) 대체    3) 합리화    4) 승화

- 성공한 사람은 좌절과 실패를 전진의 동력, 인생의 영양소로 전환할 줄 아는 사람이다

- '비교하다'라는 뜻의 '()'자는 두 개의 '비수()'로 이루어져 있다.

  두 개의 비수가 맞대고 있으니 타인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해치기도 한다

- 권세가 높은 상급자와의 대면시 주의점(P 171)

   1) 대국을 중시하라

   2) 위치를 넘어서지 말고 공을 다투지 마라

   3) 사실만을 이야기하라

   4) 넓은 도량을 갖고 동기부여를 하라

   5) 계획을 잘 세워 국면을 통제하라

-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위신을 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엉덩이를 드러내는 것은 쉽다.

  그러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 보스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의 자세

  1) 자원을 확정하라

  2) 목표로 하는 결과를 사전에 보고하라

  3) 중간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요 결정 사항은 보스에게 명확하게 보고하라

- 자비로는 부하를 부리지 못하고 의리로는 재물을 모으지 못한다

- 누군가의 도움도 받지 않고 성공하려 해서는 성공할 수 없고, 성공하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 사업을 할 때는 위험을 두려워하지말고 준비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 권력이 재능보다 높으면 반드시 욕됨이 있게 되고 위엄이 덕성보다 높으면 반드시 화근이 

  뒤따른다.

- 인생의 법칙에는 견뎌낼 수 없는 가난함은 없지만 감당할 수 없는 부귀는 있다.

- 인생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 운전하는 사람이 엑셀을 이해하는 것이 역량이고,

  브레이크를 아는 것이 지혜이다

- 온실에서 키운 묘목은 키워봐야 심약한 풀이 되지만들판에서 비와 바람을 견디며 자란 

  묘목은 커다란 재목으로 크는 법이다.

- 교육이란 가르쳐 이끄는 것이지 질책하는 것이 아니고 모범을 보이는 것이지 입으로 알려 

  주는 것이 아니다.

- 천하의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하고

  천하의 대사도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 꽃을 기르는 데 차가운 물을 주어야지 뜨거운 물을 주면 안 된다

- 조직을 묶어낼 정체성이 없다면 이익이 많을수록 고급 인재는 쉽게 등을 돌린다

  일을 해서 실질적인 혜택이 있으면 보통 사람이 당신을 따르고 일을 하는 데 비전이 있으면

  뛰어난 사람들이 당신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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