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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와 만나다 -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한 운명의 책 비아 만나다 시리즈
마크 래리모어 지음, 강성윤 옮김 / 비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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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전문가), 비전문가(3)


주님에 다가선지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초심자 수준인 나의 신앙심을 제고하기 위해

본 작품을 선정해 읽게 되었다.

성서 욥기는 대체적으로 위로를 주는 책, 자기 수양을 돕는 책, 혼란을 대변하는 책이라는

세인들의 평가를 가슴에 담고 또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욥에 대한, 욥기가 품고 있는

종교적 의미를 알아보자는 아주 단순 무식한 수준에서 작품에 도전했는데 결론적으로 아주

혼쭐이 난 작품이었다.

종교학 및 종교철학 공부를 3년 이상(?) 하였거나 현직에서 목회활동을 하시는 분 아니면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이 누구보다 높지 않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나와 같은 무지몽매인 종교적 문외한은 가급적 도전하지 않기를 권유합니다.

 

생뚱맞게 욥기는 누가 지었는가, 욥기는 여러 작품이 짜깁기 된 것이다. 욥은 유대인인가?

등등 성경을 단편적으로 접한 나에게 작품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런 질문은 작품을 읽는

내내 나를 시련의 연속으로 몰고가는 질문이었다.

따라서 나와 같은 종교적 깊이가 낮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작품이 던지는 심오한 질문이나

주장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해당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신 저명하신 분들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여러 사항을 단문 위주로 정리하는 수준에서 해당 작품을 정리해 보았다.

그 내용도 맞는지 틀리는지에 대한 것은 확신이 서지를 않지만 .......

 

참고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욥의 유언 필사본은 10세기 사본이며 오늘날까지도 욥의 전설에 

대한 가장 풍부한 설명이 담긴 문헌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종교적 깊이가 낮은 분들은 가급적 본 작품을 외면하시기 바랍니다.

궁금하더라도 말입니다.

 

[서 론]

- ‘욥기는 분명 성서에 속한 어떤 책보다도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데 악의 문제에 관한

  성서의 답변으로 이해되곤 한다.

-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에서 무고한 이들은 언제나 고통 받는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의인을

  시험하시지만 동시에 언제나 그들은 도울 방편을 마련해 두신다고 말한다.(P 9)

- 그리스도교 장례 의식을 치를 때 성직자들은 의 연설을 인용하곤 했다

  이 인내의 한계를 규정해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P 21)

- 손쉬운 이해를 거부하는 욥기의 면모는 그 자체로 욥기를 둘러싼 신비의 일부가

  되었다.(P 24)

- ‘욥기가 제기하는 물음들, 섭리와 악, 무고한 이들이 겪는 고통의 의미, 하느님의 본성,

   피조물 가운데 인간의 지위 등은 모두 손쉽게 종결될 수 없는, 종결되기를 거부하는

  물음들이다.(P 24)

- ‘욥기의 중심 대목은 널리 통용되는 지혜를 늘어놓는 의 친구들(엘리바즈, 빌닷소바르)을 

  하느님이 질책하는 부분이다.(P 25)

- ‘욥기의 전기는 수 세기 동안 등장한 욥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즉 자신이 이라는 사람이 겪는 고통을, 그와 관련된 이야기의 의미를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한 독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P 32)



[고대 해석자들이 바라본 욥기]

- ‘욥기에 대한 그리스도교 전통의 해석인 인내하는 욥이다.(P 36)

- 그리스도교들은 을 그리스도의 예형(type)으로 보았다. 히에로니무스는 욥기주석에서

  욥이라는 이름은 슬픔과 고통을 뜻한다고 주장. 그는 그리스도의 원형이었다’(P 39)

- 번영은 재앙을 수반한다. 절망이 희망을 수반하듯(P 48)

- ‘의 유언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에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P 50)

-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네 우리가 주님에게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쁜 것도 견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보여 주실 때까지 인내합시다.

- ‘제임스 쿠걸이라는 유대인 성서학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서는 고대 해석자들의 작품

  이라고 주장하면서 바빌론 유수 이후 지신들의 경전에 새로운 해석 방법을 적용하기 시작

   1) 성서는 근본적으로 수수께끼 같은 문헌이다. , 성서에 A라고 적혀 있을 때 흔히 실제 

     의미는 B.

   2) 성서는 당대 독자를 위한 교훈을 담고 있다. 성서는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역사책이 아니다. 성서는 유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이다.

   3) 성서는 모순이 없으며 실수도 없다.

   4) 성서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이 주셨으며 하느님은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혹은 예언자들을 

     거쳐 간접적으로 말씀하신다. (P 60)

- 절망에 사로잡힌 채 울부짖는 의 말, 그의 분노 어린 말들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성서 

  전체의 것,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의 것이다.(P 62)

- 그리스도교 해석자들에게 구약 성서를 해석하는 열쇠는 신약 성서였다.(P 75)

- 모세의 율법을 읽는 유대인들의 마음에는 너울이 덮여 있으며 이 너울은,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주님(예수)께로 돌아갈 때에 비로소 벗겨진다.(P 75)

- 중세 그리스도교의 토대가 된 기에 관한 저작은 하나다. 바로 기원후 578년에서 595

  사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저술한 욥기의 교훈들이다.(P 77)

- ‘은 경건한 인물이지만 더 많은 의미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P 78)

- 자신이 덕이 있다고 여기는 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영혼을 해지는 것은 없다.

- 삶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평온함이다.(P 82)

- '고통'은 죄라는 ''을 퇴치할 때 필요한 '화학요법'이다. 문제는 하느님이 사악한 

  이들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선한 사람들을 치료

  하지 않는 것이다.(P 83)

- 어떤 행동이 그 당시에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가치 있는 예언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종종 있듯 

  어떤 상황이 역사적 차원에서는 미덕이지만 그 의미와 중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악인 경우가 

  자주 있다.(P 85)


 

[논쟁 속 욥기]

- 에피크로스는 물었다.

  “신은 악을 없애고자 하나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무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사악하다. 신은 악을 없앨 수 있으며

  악을 없애려 하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악이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P 92)

- ‘욥기는 하느님의 존재 여부를 묻기보다는 하느님의 본성을 묻는 책이다.(P 93)

- ‘욥기는 신성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서곡,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섭리에 관해 

  무엇을 얼마나 알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문헌이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의 

  가능성과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욥기는 섭리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참여하는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방법을 보여 주는 책이다.(P 95)

- ‘욥기는 인간이 가장 어려운 문제와 맞닥뜨렸을 때 철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P 96)

- ‘과 친구들의 발언은 그것이 긍정하는 내용보다는 부정하는 내용 때문에 살펴볼 가치가

  있다.(P105)

- 악은 엄밀한 의미의 실체가 아니며 본질상 선한 모든 피조물에게 기생충처럼 붙은 결핍

  혹은 왜곡이다.(P110)

- 중요한 것은 섭리(우리는 이를 알 수 없다)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섭리를 신뢰하는 것이다(P115)

- 종교개혁가 장 칼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칼뱅에게 욥기가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이 피조물보다 너무나 높이 있기에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올바름의 규범조차 궁극적이지 않음을 욥기가 보여 주기 때문이다“ 

  “컬뱅이 보기에 욥기를 읽는 실마리, ‘욥기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모든 논쟁에서 은 

  선한 편을 고수하는 반면, 그의 적대자들은 악한 편을 고수한다는 점이다”(P121)

  "‘과 친구들이 재기하는 물음은 동일하다. 즉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

  하는가? 그에 따르면 은 우리가 고통을 겪게 될 때 처럼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의 친구들은 다른 누군가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의 친구들처럼 응답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P122)

- 참된 신앙인은 자신이 고통을 받을 때는 겸손과 침묵을 지키며 다른 이가 고통 받을 

  때는 그를 배려하고 위로한다.(P125)

- 섭리문제를 정직하게 마주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자리, (하느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기는 하지만)하느님에게서는 멀고 인간 동료들에게는 가까운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P130)

 


[공연되는 욥기]

- 수 세기에 걸쳐 성인은 나병 환자, 음악가, 공처가, 심지어 매독 환자의 수호성인이 

  되었다.(P135)

- 그리스도교인들은 을 통해 죽음과 상실을 대면하는 법을 배웠다.(P139)

- ‘이야기는 참되고 확실한 깨달음에 도달하는 이야기인 것 못지않게 거짓 위안과

  감언이설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P150)

- 구원에 대한 믿음은 섭리에 대한 확신과 인내만큼이나 성취하기 어렵고 유지하기 힘들다.

- 하느님이 주시는 시험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인내를 통해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P160)

- 짧은 생에서 고통을 겪는다고 계속 애통해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현명한 이들은 이 세계라는 깊은 구렁텅이를 순례하는 동안 인내심을 기른다.(P163) 

- 철학자들은 이성 너머 저편에서 오는 도움이나 통찰을 받아들이기 위해 혹은 적어도 고결한 

  습관을 갖기 위해 하느님에 대한 의심을 다른 의심으로 대치하곤 했다.(P168)

 


[신정론과 욥기]

* 신정론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하나님의 의해서 다스려지는 세상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는가를

  학문적으로 모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는데, 왜 세상에 악이 존재 하는가? 이 세상에 모순이

  이렇게도 많은가? 악인이 의인을 압제하는 것을 볼 때, 혹시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은

  아니신가? 하는 회의(懷疑)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이 신정론이다.

   그리스어로 을 뜻하는 테오스(theos)'와 올바름을 뜻하는 디케(dike)'를 합쳐

  신정론(theodicy)'라는 말이 나왔다.(p186)

 

- 근대 이전의 사상가들은 하느님이 세계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근대 사상가들은 신이 세계에서 진정으로 활동하는지

  설령 활동한다 해도 신이 정녕 예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물었다.(P182)

- 하느님은 왜 악을 용납하는가? 사람들이 악을 당연하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여기지 않게되자 

  악은 독특한 철학적 문제가 되었다.(P185)

- 칸트는 욥기를 성서, 교회 전통에 의해 규정되지 않은 채 도덕적 자율성을 지니고 신과 

  대면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보았다.(P192)

- 자신의 동기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자기 이해의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인간은 

  자기기만에 빠진다.(P197)

- 참으로 고귀한 일은 고통과 마주했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일이다.(P197)

- 종교는 도덕 법칙을 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이는 것(칸트),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연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코헨) (P198)

- 고통은 인간이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처벌이다.

-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방법은 성서에 나오는 주장이나 성서가 그리는 사건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너머 핵심에 있는 시적 진리를 꿰뚫어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욥기는 그 중심이 

  되었다.(P202)

- ‘욥기에 담긴 신의 선물은 욥기가 표현하고 또 빚어내는 인간의 감정이다.(P205)

- 자신의 경건함으로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하면서도, 경건함 때문에 하느님과 

  자기 사이의 거리를 인정했다. 바로 그 사이에서 사탄이 나왔다.(P222)

- 모든 고통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과 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여정의

  결과다.(P223)

 

 

[추방당한 욥기]

- 하느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을 경이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욥기 28:28)

  이 구절을 욥기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P234)

- 역사 비평은 근대성이 우리에게 준 가장 좋은 도구를 활용해 성서를 이해하려는 선의를 담은 

  노력이라 할 수 있다.(P237)

- ‘이 보여 주는 인내는 그의 비판과 저항을 포함할 때 더욱 심오해진다.(P250) 

-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는 침묵만이 궁극적으로 기억과 희망이라는 역설적 임무에 온전히

  부합하는 실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침묵이 전도서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보여 주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P259)

- 신앙은 답이 아니라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의 이름 (EL)'은 물음을 뜻하는 말인 셰엘라(she'elah)'안에 머물고 있다.

  ‘은 자신이 차갑고 냉소적인 세계(참된 친구가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배웠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하느님은 외로운 인간과 자신을 연결하고자 한다.(P260)

- 하느님과 투쟁을 할 때조차 은 하느님이 있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하느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달라고 계속 요구할 뿐이다.(P265)

-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이가 궁극적으로 하느님임을 알았다. 동시에 그분이 자신들을 

  박해함을 받아들일 때만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P266)

- ‘은 커다란 상실 가운데 길을 찾아 헤매는 모든 현대인의 인도자다.

   기도서 이후로 은 개인이 절망에 빠졌을 때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보여 

  주었다.(P273)

- ‘욥기는 신이 부재한 것처럼 보일 때, 세계가 윤리적으로 불합리해 보일 때, 특히 정의가 

  실추되고 의미가 부정되어 상실과 고통을 겪을 때 오히려 신의 존재를 가장 예리하게 감지

  할 수 있다는 기이하고 고통스러운 깨달음을 기록한 책이다.(P273)

- ‘욥기는 예언적 행동과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관상의 조화를 이루는 신앙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는 책이기도 하다.(P281)

- ‘욥기는 삶의 한가운데서 상실을 겪은 이들, 고통 받는 이들, 천민들, 희생양들, 사대의 

  이단자들이 계속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준다.(P283)

 

 

주워들은 이야기

 

- ‘성서를 뜻하는 영어 단어 바이블(Bible)'책들을 뜻하는 그리스 단어 비블리아에서

  나왔다.

- ‘미드라시란 히브리 용어로 성경 주석의 설교 방식을 뜻한다

- 성무도일 : 매일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성직자, 수동자들이 드리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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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영성이다 - 영성 형성에 미치는 습관의 힘
제임스 K. A. 스미스 지음, 박세혁 옮김 / 비아토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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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5


어디든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스스럼 없이 나는 개신교도라고 하면서 나름 자부하며 

살아온 지가 거의 반세기 가까이 되고 있지만 하나님은, 성령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뜻은 이것이다라는 답변을 나만의 종교 철학적 관점에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항시 그런 질문을 받게 되면 누군가 알려주고 과거에 교육받은 대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나만의 색깔 - 종교 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정신적 기준점 -을 입혀 답변을 

쉽게 내놓지 못하고 항상 주눅이 들어 살고 있는 가난한 영혼의 소유자다.

이를 보완하고자 때때로 종교 서적도 읽고, 간증집도 접하면서 나름 진실하게 기도를 하고는 있으나 그리 쉽게 내가 원하는 답을 얻지를 못하고 있어 항상 괴롭다.

참고로 십일조에 대한 나만의 방식으로의 답변을 얻기는 하였으나 나머지 분야는 아직 이렇다 할 답변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무튼 작품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런 답변을 얻기 전에 우선 진노는 더 적게, 행복은 더 많이, 심판은 더 적게, 격려는 더 많이, 죄의 고백은 더 적게, 용서는 더 많이라는 

결론을 얻기 위해 오늘도 나는 노력과 함께 진실된 성도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솔직히 작품을 2회에 걸쳐 정독하고 정독해 보았으나 - 살면서 여러 상황을 경험하지만 그리 좋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2주간 입원을 틈타 해당 작품을 숙독할 수 있었다 - 작품이 제시하고 있는 여러 내용과 의미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대가리가 잘 안 돌아가서 정말로 짜증난 시간이었다.

 

여기에 작품이 던지는 여러 문구를 정리해 보았다.

 

1장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당신이다.

- 예배하는 인간 -

-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시는 랍비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사랑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

- 우리가 누구인기 규정하는 것은 바로 우리 생각이다. 따라서 우리는 습관의 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 인격체의 무게 중심은 지성이 아니라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 ? 마음은 우리 사랑의

  실존적 공간이며 우리로 하여금 어떤 궁극적 목적이나 텔로스를 지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넘치도록 부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구속

  된 욕망바르게 질서 잡힌 욕망이다. 당신이 욕망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

- 제자도의 핵심은 예배이다.

-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말이다. 산다는 것은 꿈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일종의 무의식 여행을 떠난다는 말이다.

- 우리를 매혹하여 그쪽으로 우리를 잡아끌고 우리로 하여금 그 목적을 향해 노력하며

  살게 만드는 힘을 지닌 것은 번영처럼 보이는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광경이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도달하는 방법처럼 보이는 삶의 방식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그런 텔로스는 지성을 설득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매혹함으로써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 당신이 원하는 바를 향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

-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이며 궁극적인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 덕이란 좋은 습관이다. 도덕적 습관을 습득하면 제2의 천성이 된다.

  제2의 천성이 되는 덕을 습득했을 때, 이는 당신이 선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 그리스도인의 형성과 제자도와 관련한 핵심적 통찰은 실천을 통한 습득은 우리의 

  마음이 바르게 재조정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랑과 갈망이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잘못 조정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 당신의 사랑을 형성하는 문제는 당신의 종교적, 영적 정체성이 걸린 문제다. 무엇을 

  하는가, 어떤 실천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통해 드러난다.

  즉,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라는 말은 곧 당신이 예배하는 바가 당신이

  다라는 뜻이다.

- 우리는 무언가를 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에 예배할 수밖에 없다.

- 예배는 오실 왕국을 위한 실천이며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길러낸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면 실천이 필요하다.

 

2장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세속예전을 읽는 법 -

- 당신이 얻는 것은 당신이 바란다고 생각하는 바가 아니라 당신이 마음속 깊이 바라는

  바다.

- 당신이 마음속 가장 깊이 간직한 욕망은 당신의 일상과 습관에서 드러나는 욕망이다.

- 습관이 의식 아래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적인 것처럼 습관화의 과정도 무의식적이며 

  은밀하다.

- 습득된 무의식적 습관을 자동성이라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2천성이라

  했다.

- 우리가 습득한 습관은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는 방식을 규정하며, 이는 다시 우리로 

  하여금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 ‘성품은 운명이다성품은 당신이 습득한 성향(덕과 악덕)의 그물망이며, 이것은 

  자동성으로 작동하여 당신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 어떤 문화적 실천은 당신의 사랑을 효과적으로 훈련시켜, 당신으로 하여금 자동적으

  로 세상에 대한 일정한 지향성을 갖게 만들고 그 지향성이 당신의 무의시적 존재 

  방식 안으로 스며들게 할 것이다.

- 구체적이고 본능적이며 반복적인 실천은 인간 번영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우리는 그 이야기를 무의식적으로 습득한다.

- 가장 강력한 예전은 몸을 지닌 우리의 속성을 겨냥한다. 감각에 호소하고

  감정을 건드린다. 마음에 이르는 길은 몸을 통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 '예전'이라는 용어는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 목적에 관한 궁극적인 이야기로 가득 

  채워진 의례를 가르키는 줄임말이다.

- 죄는 악덕을 반영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식 이상의 것, 곧 습관 

  바꾸기가 필요하다우리의 사랑을 재형성해야 한다.


3장 성령은 당신이 있는 곳에서 당신을 만나 주신다.

- 포스트모던 시대를 위한 역사적 예배 -

- 우리 마음은 실존적 나침반, 혹은 몸과 직결된 자동 유도장치와 같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 마음이 지향하도록 조정된 일종의 자북을 향해 자석처럼 당겨진다.

- 바뀐 습관은 새로운(바르게 질서 잡힌) 굶주림을 만들어 냈다.

-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의 사랑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욕망을 재정향하고 우리의 식욕을 다시 훈련하라고 촉구하시는 공간이다.

- 제자도는 일종의 이민과 같아서 어둠의 왕국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의 

  왕국으로 이주하는 것.

- 하나님이 일상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는데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특별한

  것에서 성령을 찾는다.

   ---> 예수님은 우리에게 단순하고 평범한 식사에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셨다.

- 영적 훈련은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통로다.

-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많은 실천의 실천이다.

- 기독교 예배는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에 참여하라는 초대다.

- 우리는 다른 기대 곧 살아 계시며 일하시는 주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새롭게 만드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예배당으로 들어가야 한다.

-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의 지향을 재조정하시고 우리 욕망을 재형성하시고 우리

  사랑의 습관을 바로 잡으시는 무대다. 예배는 그저 우리가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행하시는 공간이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다시

  훈련시키시는 체육관이기에 제자도의 핵심이다.

- 반복은 하나님이 우리 습관을 바로잡으시는 방식이다. 덕의 형성을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하며, 반복 없는 실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4장 당신은 어떤 이야기 안에 있는가?

- 형식적 기독교 예배의 서사 구조 -

- 예배는 직감을 사로잡고, ‘카르디아를 재조정하고 상상력을 장악할 때에만 제자도의

  핵심이 될 수 있다.

- 성경적 세계관으로 방향이 설정되고 성경적 지혜로 인도 받는 백성이 되려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영적 투자는, 말씀이란 배우기보다는 깨달아 아는 

  것이라는 확신에 뿌리를 내린 역사적 기독교 예배의 풍성한 유산을 발굴해 내는 것.

- 예배는 그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키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사랑

  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이를 위해 우리를 성경 이야기 속으로 초대하고 그 

  이야기를  우리 뼛속에 심어 넣는다.

- 당신께서는 우리를 당신을 향하여 있도록 지으셨기에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 쉴 수 없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 무엇을 덕으로 삼을지는 상정된 목표나 목적, 텔로스와 관계가 있다. 습관이 

  특정한 텔로스를 지향하는 성향, 특정한 방향으로 행동하는 성향이라면, 어떤 

  습관이 덕인지 악덕인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먼저 텔로스를 결정해야 한다.

- 기독교 예배는 반복해서 우리를 그 이야기 안으로 초대하여 우리가 복음의 드라마를

  거듭 재연하는 동안 우리 성품을 형성한다’.

- 교회의 기도든 개인의 기도든 기도는 모든 행동보다 우선한다.

  기도가 심리 에너지의 원천이어서가 아니라 사랑에 걸맞는 예배와 영광 돌림의 행동,

  즉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기심 없이 응답하려고 노력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선포를 이해했음을 보여 주는 행동이라는 뜻에서 그렇다.

- 예배는 소설과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 소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믿어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그것들을 상상해 달라고 요구한다.

- 죄의 고백이라는 실천은 우리의 사랑을 재형성하기 위한 핵심 훈련이다.

- 작금과 같은 세속 시대에 기독교 공동체가 가꿔야 할 자질은 신실한 인내이다.

- 성자의 형상을 닮는다는 것은 복음을 운동 감각으로, 뼛속에 지닌 노하우로 흡수하      여 의식적 사고로는 할 수 없는 바를 느낌으로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5장 마음을 지키라.

- 가정의 예전 -

- 날마다 하는 실천을 매주 드리는 예배의 실천과 결합하여 공동 예배의 형성적 힘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

- ‘세례란 우리가 그렇지 않을 때조차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언약을 지키

  시는 주시라는 표지다. 또한 세례는 아래에서 위로 우리 믿음을 표현하는 행위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약속의 상징이다.

- 오늘날 가정이 쉽게 깨지고 이혼이 마치 결혼에 늘 따르는 그림자처럼 되어 버린 

  것은, 가정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가정을 우상화했기 때문이다.

- 지혜로운 신앙 형성은 교회의 공동 예배 생활이라는 중심에서 시작된다.

- 결혼 성례의 의미는 자연적결혼을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의 큰 신비속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결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준다는 데 있다.

- 인간이 근원적으로 생각하는 사물이라면,

  우리의 방어진지와 교육은 일차적으로 교훈적이며 신학적이어야 한다.

- 우리 가정의 예전은 말씀과 성만찬이라는 형성적 예전에 의해 규정되고 그 예전을 

  강화해야 한다.

- 어린이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실천을 통해 복음을 흡수하는 의례적 동물이다.

- 무지개는 하나님이 그분의 언약을 지키시며 그분의 백성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을 상징한다.

- 우리 집을 더 광범위한 하나님의 집 안에 자리 잡게 하고, 예배의 예전을 확장시켜 

  그것이 우리 가정의 분위기를 형성하게 할 때, 우리가 하는 세속적인 일조차도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 우리는 얄팍한실천이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예전이라는 더 넓은 그물망 안에 

  자리 잡을 때 더 두터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6장 자녀를 잘 가르치라.

- 신앙 교육의 예전 -

- 젊은이들을 공교회적 기독교 유산으로 이끄는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선물이 될 수

  도 있다.

- 메시지를 전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따분하게 들리지 않아야 한다.

- 젊은이들을 즐겁게 하고 감정적으로 흥분시키는 목적은 그들의 지성이라는 그릇에

  ‘메시지를 집어넣을 기회를 얻기 위해서이다.

- 많은 젊은이들은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대단히 의례적 동물들이다.

- 아이들은 자신보다 더 크고 오래된 무언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하는 일종의 

  고대적 안정성과 지속성을 지닌 무언가의 일부가 되기를 원한다.

- 우리는 젊은이들의 신앙 형성을 위해서 표현주의적 경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으며 낯선 - 확실히 그렇다 - 고대의 영적 훈련이라는 유산을 받아

  들여야 한다. 이런 영적 훈련은 낯설기 때문에 습관을 형성하며, 우리의 자기 중심주의

  를 제거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원하는 습득된 욕망에 맞서 저항한다.

- 성화가 그리스도로 옷 입는것이라면 효과적인 청소년 사역에서는 젊은이들이 

  실천을 통해 예수를 입어 보도록도와주어야 한다.

- 섬김은 자의식과 자기애를 조장하는 우리 문화의 실천을 무디게 하고 자기중심주의라

  는 소용돌이에서 우리를 끌어내서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다.

- 기독교 학습 환경은 지성을 채울 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불타오르게 한다.

- 덕은 특정한 이야기가 지배하는 특정한 공동체와 결합한 두터운 실체로 덕은 본보기

  를 통해 흡수된다덕은 일회적 성취가 아니다. 유지 보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이시며 기독교 고등교육이 지혜의 추구라면, 어떻게 우리가

  가르침과 배움을 기도 훈련에 복종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7장 당신은 원하는 바를 만든다.

- 소명의 예전 -

- 성경의 창조 교리는 우리의 근원에 관한 교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 상황에 관한

  교리이기도 하다.

-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세계로 이해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부르심임

  을 깨닫는 것.

- 우리는 세상에서 신실하게 존재하도록부르심을 받았다. 신실하게 존재하는 것이 

  우리가 창조세계를 차지하는 법이다.

- 기독교 예배라는 실천은 우리의 상상력에 그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려줌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세계로 인식하게 하고, 따라서 그 안에 울려 퍼지는 

  그분의 부르심을 듣게 한다.

- 우리가 하는 창조적인일이란, 좋은 삶의 전망에 대한 매혹이 우리 안으로부터 

  끄집어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으로부터 부풀어 

  오른 것이며, 우리의 상상력을 불타 오르게 하는 것은 번영이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다.

- 당신이 사랑하는 바가 바로 당신이며 당신이 원하는 바를 만든다면, 신실한 창조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원하는 바가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무의식, 즉 지배하는 이야기들의 저장소를 잘 돌보아야 한다. 당신이 예배하는

  것을 조심하라.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 바를 결정하고따라서 당신이 만드는 바와 

  당신이 일하는 방식을 결정할 것이다.

- 기독교적 상상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발명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억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교회를 재발명하고 있다면 우리는 세상을 재창조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 성령이 어떻게 우리의 습관을 형성하시고 상상력을 재형성하시고 마음을 변화

  시키시냐의 문제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용한 제약과 그것을 혁신을 위한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상력일지도 모른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덕이란 실천이 필요한 습관이라 강조한다.

  습관이란 우리 성품의 일부가 된 습득된 성향이다. 그리고 우리는 실천과 반복을 

  통해서 말하자면 의례를 통해서 그런 습관을 습득한다.

- 사랑이 궁극적인 덕이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사랑으로 옷 입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사랑은 실천과 반복을 통해 자라는 사랑이며

  우리가 소명을 통해 하나님을 추구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성품에 스며    들게 하고 그 사랑을 우리의 사고방식뿐 아니라 우리 본성의 일부로 만드는 의례와 

  리듬과 실천에 몰입해야 한다.

 

축 복 기 도

-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가 그분을 위해 우리 이웃을 바르게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 

  사랑의 질서를 바로잡아 주시고 우리의 가장 깊은 욕망을 다시 그분께 향하게 하신다.

- ‘아멘은 우리도 성부를 향해 올라가신 그리스도를 따라 올라갈 것이며, 이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겠다는 교회의 동의를 표현해 주는 말이다. 이 응답은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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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그 한 사람 - 사무엘상 1 김양재의 큐티 노트
김양재 지음 / 두란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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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7


나는 오늘 내 종교적 수준에서 판단해 보았을 때 작품을 통해 나름 느낌이 있게 다가온

음을 혼자 알고 있기가 너무 안타까워 오늘도 주 야훼를 모르고 살아가려는 비기독인들

에게 전해주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고 싶고 주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먼저 이 글을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God chaser)에 머물지 말고, 하나님을 붙드는(God catcher)

 사람으로 살자

라는 나의 뜻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여기에 정리한 내용은 단순히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옮겨 놓은 수준에 불과한 요약집

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신자일 경우는 해당 성경을 읽고, 목사님의 말씀을 

찬찬히 음미해 읽어보면 왜 이 구절을 여기에 옮겨 적었는지를, 비신자라면 무조건 

읽고 느끼기를 그게 싫다면 그냥 읽기라도 해 볼 것을 강하게 권유하기 위해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해 주면 좋을 듯하다 그리하면 성경 말씀에 대한 깊은 인사이트가느껴질 것이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내가 작품을 통해 크게 느낀 문구 몇 개를 앞에 기술해 보면,

- 오늘 이 시간, 이 장소에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일이 있어서 하나님이 여기에 보내신

  것이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의 모습과 각자의 개성으로 택하신 존재이다. 그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선택에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사명이 주어진다. 지금 힘든 자리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깨달았다면 이 자리가 하나님이 선택하신 곳이고 사명의 자리이다.

- 무조건 복 받는다, 잘된다, 평강하다고 외치는 것은 백성을 유혹하는 거짓 선지자의 

  이야기다.

-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 아래 있다

 

사무엘은 히브리어로 쉐무엘인데 쉐무들으셨다는 뜻이고, ‘여호와를 

뜻하는 의미로 , 사무엘이란 하나님이 들으셨다라는 뜻으로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아들을 주셨다는 뜻이다.

 

참고로 나는 십 수 년 전만 해도 강력한 무신론자였으며 나의 와이프를 비롯한 기독교인들을 아주아주 적대시하던 인물이었는데, 그런 내가 왜 이리 변했을까? 변한 나조차

도 놀라울 지경이다그런 원인을 찾아보고자 오늘도 나는 말씀을 읽고, 강해집을 

읽는다.

 

아직 주님을 모르십니까?

당신이 주님을 가까운 시일 내에 꼭 만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사람이 제사장이자, 마지막 사사이고 이스라엘의 첫 

  ‘선지자인 사무엘이다그는 왕정 체제의 기틀을 세운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다.

   --->선지자는 백성에 대한 죄를 선포하는 사람이고, 제사장은 교회를 섬기는 사람

         사사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 ‘구속사란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이야기로 구속사의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는 구원의 역사를 알고 구원을 이루어 가는 기도다.

   --->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신앙의 꽃이며, 적용은 구속사의 꽃이다.

- 우리는 한 가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 성경에서 같은 말씀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는 뜻이다.

-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 최고의 시험이다.

-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께 가져가는 기도로

  첫째, 통곡의 기도

  둘째, 서원 기도 : 하나님은 나의 기도가 영적인 서원으로 바뀌기까지 환난으로 연단

         하신다.

  셋째, 침묵 기도

  넷째. 통하는 기도 : 오해와 판단을 받아도 하나님과 통하고 있으면 무서울 것이 없다.

  다섯, 응답받는 기도

- 나실인은 오로지 하나님을 위하여 바쳐진 사람으로 자녀가 없어 고통 받던 한나

  진정한 기도를 하며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 예배가 목적이 되면 육적인 것이 회복됩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예배가 삶의 방식이고, 여전한 방식으로 생활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여호와께 드리는

  사람의 자격.

- 모든 일에는 항상 때가 있다. 내 생각에 급한 일이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어야

  성취되는 것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보내는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기도하고 기다리는 그 시간들이 모두 하나님의 창조하심의 시간이다.

- 교회에 가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까지 고통당하는 

  구체적인 삶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서원이고 나실인 같은 삶이자 구별되게 사는 

  삶이다.

- 우리가 섬길 수 있는 것이 감사해서 예물을 드리는 것이 진짜 예배로 값없이 주셨기에

  값없이 드린다는 생각이 구원받는 자의 태도이다.

- 응답해 주시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막상 응답을 받고 나면 감사는커녕 하나님을

  잊는다.

- 나의 낮음과 비천함을 자각하는 것이 찬양의 근거이고 만세에 복이 있는 인생이다.

- 주님을 만난 그 자체가 기뻐서 병이 낫든 안 낫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영원하시고 기쁨의 근원이자 즐거움의 근원입니다.

- 나를 비방하고 대적하는 것이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누군가 나를

  대적할 때 그것을 주님께 넘기면 된다.

- 내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 하나님을 찬양하고 나아갈 때 사건을 해석하고 세상을 분별하는 통찰력을 

         주신다.

- 자녀들에게 있어 여호와를 섬기게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다.

   ---> 어려서부터 교회 오고 예배드리는 것을 습관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

   ---> 자녀들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일상생활에서 보여 주는

         가치관이 중요.

   ---> 내가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내 자녀를 책임지시고

          내 자녀가 여호와를 섬기는 것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물려주는 부모가 최고의 부모이다.

-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다는 것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의 구원을 받으면 오순절 성령 충만으로 이어지고, 성령 

  충만을 받으면 이 땅의 삶을 초막으로 여기고 천국을 소망하는 종말론적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

   ---> 3대 절기가 갖는 의미

- 내가 하나님만 나라보고 순종하고 갈 때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가족을 돌보시고 

  여호와 앞에서 자라게 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 자녀가 많고 잘되는 것보다 내 자녀가 여호와를 섬기며 여호와 앞에서 자라는 것이 

  가장 큰 복.

- 통계에 의하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연령의 85%18세 이전이라 함.

- 모든 죄의 마지막에는 언제나 자식 우상이 있다.

- 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독자인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까?

   ---> 하나님 사랑을 알아야 자식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가정의 지도자인 부모가 하나님을 멸시하면 내 자녀, 후손들까지 하나님께 경멸을 

  받게 된다.

- 진정한 리더십은 질서에 대한 순종에서 시작된다.

-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은 말씀을 듣지 못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실천이 없다는 것이다.

- 어떤 경우도 하나님과 말씀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쓰임 받는다.

- 하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시는 방법은 기적, 환상이 아닌 말씀이다.

- 기도 응답은 내가 아무리 기도해도 내 뜻대로는 안 된다는 걸 아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기도했더니 내 뜻대로 안 되는 것, 그것이 응답이다.

- 성전이든 언약궤든 부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기 욕심과 자기 뜻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믿기만 하면 무조건 사랑해 주시는 분이 아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참지 않으신다.

   --->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오직 믿음이라는 명분만 내세운다면 계속해서 질 수

         밖에 없다.

   ---> 성경을 부적처럼 여기고, 하나님을 미신처럼 믿는 종교적 습관과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이루고 싶어 치성 드리듯 기도하고, 안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악함과 어리석음을 버리라.

   ---> 때가 이르기 전에 요행을 바라지 마라.

-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며 혈연, 지연, 학연을 동원해 문제를 풀어보려는 것이 요행을 

  바라는 모습이다.

- 최고의 리더십은 자신의 영적 무지를 보는 것이다. 자신의 영적 무지를 본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본다는 뜻과 같다.

- 최고의 우상은 궁극적으로 바로 자기 자신이다.

- 복음에는 자기부인이 따라야 한다. 복음의 길은 나를 부인하고나의 본성을 거스르는

  길이다나의 정욕과 탐심으로 자녀를 끌어안고 사는 것은 우상일 뿐이다.

- 좌우로 치우치는 사람은 목표 설정이 뚜렷하지 않고, 성경적인 가치관이 없고, 올바른

  구원관, 역사관사명감이 없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감정에 따라 요란하게 흔들린다.

-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하나님의 인도로 살아가는, 하나님께 드려진

  인생이다.

- 용서보다 회개가 먼저이고 나의 죄와 무능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이다

  구원의 조건이 회개이고, 회개의 결과가 구원이다.

  --->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회개이다

- 어떤 사건도 내 죄와 교만으로 인한 것임을 알고 죄인의 입장에서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 참된 회개는 통곡과 눈물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죄를 깨달아서 통곡하고 눈물을 

  흘렸다면 구체적으로 죄를 끊고 돌이키는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사족아닌 사족을 달면 김양재 목사님의 작품 어떤 것을 접해도 말씀을 정확히 전달

하기 위해 여러 사건 사고 즉, 신도들의 상담 내용을 기반으로 한 여러 사례를 많이 

인용하고 계시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 내용의 대부분이 부정에서 출발하여 긍정으로 갈 수밖에 없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런 예도 있겠지만 긍정에서 시작해 더욱 긍정으로 가는 예도 있을 터인데 그런 

예를 접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듯하다.

설교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대개가 부정적 문제의 극치인

'돈'과 '남녀간의 불륜' 문제 특히 대다수의 남성을 거의 동물적, 비윤리적 모델의 전형으로 삼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는데 - 특히 김 목사님이 시무하고 계시는 동네 사람들 

대개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 세상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이상한 행동만 하는 사람들로만 느끼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 금번 

작품에서도 과거에 그렇게 가졌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의 이런 이야기가 목사님에게 전달되는지 안 될지는 몰라도 말씀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설교 중에 예로서 드는 사례 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쁜 방법을 모르던 사람들도 목사님의 사례를 통해 배울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런점이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라 생각한다.


왜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 탓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 독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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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발돋움 두란노 시그니처 리커버 시리즈 4
헨리 나우웬 지음, 이상미 옮김 / 두란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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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영적인 삶이란 우리의 가장 깊숙한 자아로’ ‘다른 사람에게로그리고 

하나님께로향하는 발돋움

 

작품의 내용과 연관이 되는지 잘 모르겠으나 마음에 와서 닿는 구절을 해당 작품을 읽는 과정에

우연히 마주해 여기에 옮겨 봅니다.

 

늘 부족하고 갈급한 존재로서 항상 무엇인가로 채워보려 합니다. 돈으로, 쾌락으로, 권력으로 채워보지만 절대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존재합니다.

프랑스 신학자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이 말 한대로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야 하는 공간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에 하나님과 멀어진 후 영적 갈망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인간의 근원적 갈망을 만족시킬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에게 더는 해결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해결의 길,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바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근원적 갈망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주님을 영접함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박흥범 서울은천교회 목사)


나는 오늘도 영적 발돋움을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주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한다는 의미는 비전이라는 미명 아래에 거짓 확신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하지만 

하나님의 영원성에 자신의 전 존재를 의탁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영적 깊이와 무게감도 없는 내가 타이틀과 같은 내용에 대해 느낌이나 소회를 적기에는 나의 일천한 신앙심에 반하는 행동이라 여겨 여기에 작품의 주요 문구를 정리해 보았다.

 

 

PART 1. 자아를 향한 발돋움


<01. 가슴을 후비는 외로움>

- 외로움으로부터 도망가고 그것을 잊거나 부인하려고 하는 대신 그 외로움을 지켜서

  생산성 있는 고독으로 바꾸어라

- 외로움은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반드시 겪게 되는 경험(P21)으로 오늘날 인간 고통의 가장 

  보편적인 원인 중 하나이다.(P23)

- 번잡한 모임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서글픔의 원인은 아마도 내면 깊숙이 뿌리박혀 가끔씩 

  자신도 모르게 느끼는 경쟁심 탓에 서로를 드러내지 않아서 일 것이다.(P24)

- 외로움은 조건 없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사랑을 베풀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이용당할 염려 없이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의심을 먹고 자란다.(P25)

- 하나님이 채워 주실 수 있는 기대들을 다른 이들에게 짐 지우기 때문에 값없이 주는 우정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느낀다. 서로에게 지나치게 매달리면 

  우정과 사랑은 발전할 수 없다. 사랑과 우정에는, 서로를 향해 다가서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 할 수 있는 다정하고 편안한 공간이 필요하다.(P31)

- 서로에 대해 진정으로 자신을 열어 놓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을 닫아 놓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왜냐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자신의 것을 드러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P32)

- 서로 간에 아무런 경계선을 두지 않음으로써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가깝기는

  하지만 무미건조한 관계가 되어 버릴 것이다. 내면의 성소를 위험스레 내비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자세이다그것은 우리가 보호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교제를

  갖기 원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이기도 하다.(P33)

- 영적인 삶을 살려면, 먼저 외로움의 광야로 들어가서 조용하고 끈기 있는 노력을 통해 그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강한 믿음도 있어야 한다.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가는 움직임은 모든 영적인 삶의 시작이다.(P37)

- 진정한 영적 안내자는 무엇을 하고 누구를 찾아갈지를 말해 주는 대신, 홀로 있으면서 자신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권하는 사람이다.(P39)

- 우리의 불안한 마음에 신중하게 귀를 기울인다면 슬픔 가운데 기쁨이 있으며, 두려움

  가운데 평안이 있고, 탐욕 가운데 긍휼한 마음이 있으며 또한 참으로 진저리나는 

  외로움 가운데서 고요한 고독의 시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P40)

 

<02. 열려 있는 고독>

- 외로움은 고독을 향해 성숙할 수 있습니다. 이 고독을 맛보게 되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과 또 서로를 향해 묶일 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P41)

- 정말로 중요한 고독은 마음의 고독이다.(p42)

- 마음의 고독을 가지고 살 때 다른 사람들과의 세계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일 수 있지만,

  외로움에 쫓겨 살 때는 자신의 갈급한 필요에 즉각적으로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말이나 사건만을 고르려한다.(P43)

- 내면의 민감성을 계발하는 것이 영적인 삶의 시작이다.(P44)

- 고독은 우리가 동료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과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해 준다.(P48)

- 내가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 주는 온유함을 발견하게 하는 것은 바로 

  깊은 고독 가운데서이다.(P49)

- 마음의 고독이 없으면 우정과 결혼과 공동체 생활의 친밀감은 창조될 수 없다.(P51)

- 많은 경우 외로움이라는 체험이 고독의 체험보다 더 강하다는 것과 고독에 대한 말은 외로움의

  고통스러운 침묵에서 나온다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P53)

 

<03. 창조적인 반응>

- 외로움에서 고독으로의 움직임이 진전되면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고 대응하던 것들은 서서히 

  사랑에서 우러난 반응으로 바뀌어 갈 수 있다.(P60)

- 진실한 반응은 고독에서 나온다.(P72)

- 머리와 손만 가지고 일할 때 우리는 행동의 결과에 쉽사리 의존하게 되며 그 결과가 구체적으로

  눈 앞에 드러나지 않을 때 포기하기 쉬워진다. 마음의 고독 속에서만 이 세상의 고통에 진실로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왜냐하면 고독 속에서는 그 고통이 생소하고 낯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고통임을 직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P74)

- 자기 의를 버리고 동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내면의 연대감이다.(P75)

- 고통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긍휼한 마음(copmpassion)으로 그 고통을 만지는 사람은

  치유와 새로운 힘을 얻는다.(P78)

 

PART 2. 타인을 향한 발돋움


<04. 적대감에서 환대로 바뀌는 삶>

- 성경의 신약과 구약의 여러 이야기들은 낯선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의무라 말한다.(P85)

   --->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들을 우리의 삶 속으로 맞아들이는 것은 기독교 영성의 

        핵심(P86)

- 우리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적대감과 두려움을 보고 인정할 때 반대편 내면으로부터 

  치유의 능력을 보게 된다.(P91)

- '환대란 무엇보다 낯선 사람이 들어와서 적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하나님과 우리의 길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그들의 하나님과 그들의 방법을 찾도록 기회를 열어 주는 것(P92)

- 구원과 구속과 치유와 새로운 삶을 기대한다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열려 있는 

  수용의 자리이다. 즉 우리에게 무언가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자리이다.(P98)

- 적대감을 환대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애가 넘치는 빈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P99)


<05. 환대의 다양한 모습>

- 우리는 모두 자녀이면서 부모이고, 학생이면서 선생이고, 치유자이면서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이다자녀는 우리가 알아가야 하는 낯선 사람이다.(P103)

   ---> 자녀들은 나름대로의 행로가 있는 손님에 불과하며 우리가 그들의 행로를 알 수도

       없고 지시할 수도 없다는 점을 계속 되새기면 평안한 마음과 축복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보내기가 쉬원진다.

- '유아 세례는 부모가 아이를 교회에 데리고 올 때 그 부모는 아이가 자기들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혈연의 가정보다 훨씬 큰 공동체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하는 

  절차.(P106)

- 가르침에는 무엇보다도 학생과 교사가 서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으며, 그들 각자의 

  인생 체험이 성장과 성숙에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고 가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P110)

- 좋은 주인이란 손님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숨겨진 재능이 있음을 보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그 재능을 계발하고 향상하도록 도와주어서 새로운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이다.(P113)

- 교회는 우리의 주림과 목마름을 채워 주기 위해 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부르는 사람들의 

  공동체다(P114)

- '치료'를 하는 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올바른 진단을 하는 일로서, 진단이란 현재 그들의 삶을

  모양짓고 형성하며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이끌었던 그들의 즐거움과 아픔, 기쁨과 슬픔, 성공과

  좌절을 알려는 노력이다.(P123)

- 치유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낯선 이가 자기만의 독특한 이야기에 민감해지고 거기에 순종할 수

  있게끔 배려하는 데 있다.(P125)

- ‘수용대립은 그리스도인의 전도에서 뗄 수 없는 두 가지 요소로 이 둘은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한다대립이 없는 수용은 어느 누구도 섬기지 못하는 상냥한 중립성이 되고, ‘수용이 없는 

  대립은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무서운 공격성이 된다.(P130)

 

<06. 따뜻한 환대와 주인>

- 따뜻한 환대에는 생각과 마음의 가난이 있어야 한다. 섬김을 위한 훈련은 부유해지려는 것이 

  아니라 자원해서 가난해지려는 것이며, 자신을 비우려는 어렵고도 고통스런 과정이 따라야 

  한다.(P132)

- 진정한 주인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자리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인간이

  되는 자기 나음의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자리를 주는 사람이다.(P134)

- 사상과 개념과 견해와 신념으로 가득 찬 사람은 좋은 주인이 될 수 없다.(P136)

- 교육을 잘 받은 성직자란 자신이 분명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P138)

- 하나님을 어떤 특정한 사상이나 개념, 견해, 신념 속에 두거나그 속에 담을 수없듯이     

  하나님을 어떤 특정한 느낌이나 감정으로 한정할 수도 없다.(P141)

- 상대방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잊어야 한다. 그의 독특한 개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어야 한다.(P142)

- 섬김을 위한 훈련은 부유해지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자원해서 가난해지려는 훈련으로 자신을

  비우려는 훈련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에 자신을 맡기는 훈련이다.(P143)

 

PART 3. 하나님을 향한 발돋움


<07. 기도와 인간의 유한성>

- 기도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호흡하시는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내적인

  생명으로 친교를 나누게 된다. 또 이를 통해 우리는 거듭 날 수 있다.(P148)

- 환상에서 기도로 향하는 움직임은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향하는 움직임과 또 적대감에서 따뜻한

  환대로 향하는 움직임을 뒷받침하고 그 움직임을 가능하게 하며 또 우리를 영적인 삶의 

  핵심으로 인도한다.(P150)

- 우리 삶이 기도의 심오한 영역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내면 깊이 스며

  있는 영원성에 대한 환상이다.(P153)

- 친밀성이 영원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의기소침과 절망이 될 수 있고, 영원성에 대한 

  숨겨진 환상이 친밀한 관계를 지배하게 되면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욕정에 찬 폭력으로 

  바뀌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P157)

- 기도가 없는 영적인 삶은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과 같다.(P163)

- 기도란 오로지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는 법은 익혀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역설적인 면이다.(P163)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가장 본질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들어오셨고 이로써 

  우리는 성령을 통해 그분의 생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 그 분의 은밀한 생명 가운데 동참한다는 의미이다.(P166)

- 기대하는 마음으로 끈기 있게 기다리는 것이 영적인 삶의 기초이다. 무엇보다도 영적인 삶은 

  끈기 있게 기다리는 삶이다.(P171)

 

<08. 마음의 기도감에서 환대로 바뀌는 삶>

- 내 마음의 기도의 3원칙(P180~185)

 1)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읽는 것 --> 어떤 말씀이 직접 나에게 하시는 것이고 자신의 삶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지 생각하라

    -->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조용한 시간을 가져라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침묵으로 이끌고 침묵은 하나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게 합니다.

 2) 하나님의 음성을 조용히 듣는 것

 3) 신뢰하는 마음으로 영적인 인도자에게 순종하는 것

- 성경과 침묵과 영적인 인도자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가장 개인적인 길을 찾는 데 

  중요한 세 가지 길잡이이다.(P185)

- 생각과 마음이 하나가 된 채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서 있는 것, 그것은 마음의 기도의 가장

  본질적인 면이다.(P196)

- 심오한 의미의 마음의 기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친밀함 속에서 지성과 가슴을 하나로

  묶어 준다.(P197)


<09. 공동체와 기도>

-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팔을 뻗을 수 있다면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하나님께 발돋움하면 아픔과 고생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다른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P204)

- 기도란 결코 달콤하거나 쉬운 것이 아니다. 기도는 우리의 가장 큰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우리에게서 고통을 없애주지 않고 오히려 기도는 더 고난을 준다.

  우리의 기도가 얼마만큼이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되느냐에 따라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고난을 받고 더 많은 빛과 더 많은 어둠을 볼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은혜와 더 많은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됩니다.

  마음속 깊이 하나님을 향해 발돋움할 수 있도록 고독은 고독을 향해 말할 수 있고 깊음은 

  깊음을 향해마음은 마음을 향해 말할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사랑과 고통을 함께 발견할 수 

  있다.(P204)

- 기도가 개인적이며 우리 삶의 중심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P206)

- 기도는 언제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삶에 뿌리를 박고 있어야 한다.(P207)

- 신앙 공동체는 우리에게 어떤 범위 내에서 자신의 깊은 갈망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보호영역을

  제공한다. 우리의 귀 기울임은 병적인 자기 성찰에 빠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갈망들이 향하는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P207)

-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는 에클레시아(ekklesia)(헬라어 칼레오 [kaleo, 부름]와 

  에크[ek, 밖으로]에서 래된 단어), 즉 옛 세상에서 새 세상으로 부름받은 공동체이다(P210)

-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하나님이 만유 안의 만유가 되실 때를 기대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P213)

- 공동체의 기도는 공동체가 아직 온전함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의 표현이며 하나님의 집에 

  이르고자 하는 바람의 표현이기도 하다.(P215)



작품의 에필로그를 읽다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에게 다양한 성질과 서로 다른 힘을 주신 우리 조물주께서는 우리가 모두 

 행복하도록 우리를 만드셨으며, 각자 다른 수단으로 행복을 얻도록 의도하셨다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봅시다.

 

* 작품으로부터 얻은 잡지식

- 고독(solitude)이라는 말과 은둔자(solitary)라는 말은 혼자 있다라는 라틴어 솔루스(solus)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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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 하나님 자리를 훔치다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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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권유도 8


삶의 무엇이든 우상 노릇을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대용품, 가짜 신'

(counterfeit god)이 될 수 있다. ,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상숭배는 단지 많은 죄 중의 하나가 아닌 인간 심령의 근본 문제로 우리가 저지르는

모든 잘못의 원인은 언제나 우상숭배. 우상숭배란 단지 예배 의식의 한 형태가 

아니라 유한한 가치에 기초한 정서와 생활 방식 전체이며, 피조물을 신처럼 절대화하는

일이다. 또한 우상숭배란 단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만이 아니라 온 마음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데 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395,110페이지!

지금 독후감을 작성하고 있는 작품은 내가 꼭 1천권 째 작품을 읽고 난 뒤 쓰는 것으로

이를 페이지로 환산해 보니 395110페이지에 해당되는 분량이다.

나는 내가 읽은 작품을 내가 만든 신이 안 되게 하기 위해 나만의 노력을 기우리고 

있는데알량한 자부심으로 인해 그런지 모르겠으나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어찌되었던 여기의 축약내용은 단순한 문구의 정리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의 행간에 숨겨진 의미나 성스런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자기 맘에 드는 라헬만을 찾는 오늘날의 모든 이에게

평범한 레아를 통해 무엇을 느낄 것인가를 알려주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작품이 던져주는 짤막한 문구 몇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 슬픔은 위로받을 수 있는 고통이고, 절망은 위로받을 길이 없다.

- 문화마다 그 문화를 지배하는 우상이 있다.

- ‘우상은 끔찍한 악을 낳는 영적 중독으로 무엇이든 당신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크게 당신 마음과 생각을 차지한다. 지적 우상을 

   ‘이데올로기라 한다.

   ---> 우상이란 없앨 수 없고 단지 대체될 수 있을 뿐이다.

-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 있어질 거야.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내가 중요

   해지고 안정감이 들 거야이런 관계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지만 가장 적합한 

   말은 숭배(worship)'일 것이다.


[1장 평생소원 : 오래 간절히 바랄수록 우상이 되기 쉽다]

- 마음의 가장 깊은 소원을 이루는 것이 곧 자신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일일 수도

  있다.

- 사람은 명성을 얻는 순간 괴물로 변한다.(신시아 하이멜)

- 가장 절실한 꿈을 이루도록 허용하는 게 최고의 형벌이다.

  그 이유는 우리 마음이 그 갈망을 우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 하나님이 광야로 나가라고 하는 이유는 인간의 마음이 갈망하는 거의 모든 것과 

  현세적 희망을 하나님을 위해 버리라는 것이다.

*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보여준 애정은 숭배로 변했다. 그전까지는 삶의 의미가 

  하나님 말씀에 달려 있었지만 이제 이삭을 사랑하고 이삭을 잘되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삶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아들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게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가짜 

  신으로 둔갑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 삶이 가장 고통스러울 때눈 자신의 위상이 위협받거나 제거될 때다.

 

[2장 사랑 : 사랑에 속고 속다 환멸에 찬 노예가 되었다]

- 우상을 숭배하면 노예가 된다.

- 우리는 천생연분을 만나기만 하면 내 모든 문제가 치유될 것이라는 환상을 품는다.

  ‘사랑하는 상대가 곧 하나님이 된다하지만 그 역할을 담당하거나 부응할 수 있는 

  인간은 없기에 그래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쓰라린 환멸을 경험한다.

   ---> 우리 희망을 어디에 걸든지 아침에 보면 라헬이 아니라 늘 레아였다.

- 성경은 인류가 어떻게 현 상태에 이르렀고 하나님이 이를 바로잡으시고자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셨고 또 오실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일한 이야기다.

 

[3장 돈 : 풍족한 소유와 소비로도 영혼의 헐벗음은 면치 못한다]

- 서양 철학자 니체는 서구 문화에 하나님의 부재가 확산되면서 돈이 하나님을 대체

  하리라 봤다.

- ‘탐심이란 돈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아니라 돈에 대한 과도한 염려이기도 하다.

- 돈은 가장 보편적인 가짜 신이다. 돈에 마음을 빼앗기면 눈이 멀어 눈앞에 벌어지는

  일도 보이지 않는다.

- 하나님의 구원은 변화된 삶의 변화로 오는 게 아니다.

  변화된 삶이 구원의 결과이며,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 하나님의 은혜는 재물에 대한 삭개오의 태도를 변화시킨 것이다.

- 어떤 경우든 돈을 우상으로 숭배하면 삶이 예속되고 뒤틀어진다.

- 우리가 복음을 깨닫는 정도만큼 돈은 우리에 대한 지배력을 잃는다.

- 그리스도를 본받으려는 노력을 배가하는 것만으로는 돈의 지배력을 끊을 수 없다.

  그보다 그리스도의 구원 곧 그분 안에서 내게 주어진 것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이해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변화를 삶으로 옮겨야 한다. 마음은 당신 사고와 의지와

  정서가 머무는 자리다.

  복음을 믿으면 우리 동기와 자아상과 정체성과 세계관이 개혁된다. 마음의 철저한 

  변화 없이 행동으로만 규율에 따르는 것은 잠시 동안의 피상적 변화일 뿐이다.

 

[4장 성취 : 그 어떤 성공신화도 인간의 한계를 넘을 수 없다]

- 성공을 우상으로 삼았다는 한 가지 징후는 성공이 가져다주는 거짓된 안전감이다.

   ---> 거짓된 안전감은 자기 성취를 신격화해 그것이 삶의 역경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켜 주기를 바라는 데서 비롯된다.

   ---> 그러나 우리를 그렇게 지켜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 성취를 우상으로 삼는 사람의 특징은 자신을 왜곡해서 본다.

- 성공을 우상으로 떠받드는 사람의 주된 징후는 자기 분야에서 정상을 지키지 못하면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는다는 것이다.

- 성공은 우리가 바라는 만족을 가져다줄 수 없고 성취와 돈과 권력은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없다

-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는 받는 쪽에는 거저지만 주는 쪽에서는 늘 희생이 따른다.

- 하나님은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미련하고 멸시

  받는 것들을 택하여 지혜 있는 자들은 부끄럽게 하시며, 없는 것들을 택하여 있는 

  것들을 폐하신다.

   --->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다.

 

[5장 권력 : 권력의지는 두려움의 또 다른 얼굴이다]

- 평등을 사랑하는 마음이 최고의 자리를 점하면 특권적 삶을 영위해 온 이들을 향한 

  무차별적 증오와 폭력을 낳을 수 있다. 인간 사회는 좋은 정치적 대의를 가짜 신으로

  둔갑시키는 고질적 성향이 있다.

   --->우리의 정치판이 꼭 그렇다.

- 뭔가를 우상화하면 그 징후로 두려움이 삶의 주된 특성이 된다.

  삶의 중심을 우상에 두는 사람은 거기에 의존하게 된다. 자신이 만든 가짜 신이 

  어떤 식으로든 위협받으면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지며 유감이다, 어렵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끝장났다, 희망이 없다라고 소리친다.

-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를 통해서만 주실 수 있는 희망을 정치지도자와 정책에 걸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 지도자가 권력에서 밀려나면 죽을 맛이 된다.

   ---> 정치를 우상화하여 행동으로 연계시키는 우리의 개딸들과 이를 방관하는 

         주인공, 그들이 문제다.

- 삶의 근본 문제는 죄이며 유일한 해답은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이다.

- 인간이 정치적 대의와 사상을 신이나 악마로 둔갑시키는 이유는 우리가 정치의 

  우상화를 통해 권력을 신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 자기 민족에 대한 자긍심은 좋은 것이지만 나라의 권력과 번영을 무조건 절대화해서

  다른 모든 관심사를 거부한다면 폭력과 불의가 당연하게 자행될 수 있다.

- 인간의 사고는 늘 뭔가 유한한 가치나 대상을 궁극의 정답으로 끌어올린다.

- 권력욕이 강한 사람은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 인간에게는 무력함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있고 이 두려움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데서 비롯된 것이다.

- 우리가 권력과 통제에 중독됨은 다분히 하나님관이 잘못된 탓이다.

- 하나님이 느부갓네살의 심중에 주신 교훈은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신다는 사실이다.

    ---> 누구든지 성공한 사람은 하나님의 과분한 은총을 받은 수혜자라는 뜻

    즉, 우리에게 있는 것은 다 은혜의 산물이지 우리 행위나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6장 문화와 종교 : 은혜 없는 복음은 가짜 하나님을 만든다]

- 모든 문화의 기저에는 주된 희망이 있다.

  곧 문화가 구성원에게 말해 주는 삶의 관건이 있다. 이제 삶의 관건은 공동체의 

  제약을 벗어나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함으로써 자아를 창출하는 데 있다.

- 문화를 지배하는 희망이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면 그런 희망은 다 가짜 신이다.

- ‘우상이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얻고자 우리가 의지하는 대상이다.

- ‘헤세드란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 구속하시는 무조건적 은혜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 인종적 우월감과 문화적 편협성은 은혜의 복음과 공존할 수 없다.

  인종적 편견은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원리 자체를 부정한다.

- 우상이 우리 마음을 장악하면 결국은 성공과 실패와 행복과 슬픔의 정의가 몽땅 

  변질된다.

- 성공이나 부모의 안정을 신으로 삼았다가 실패하면 그 우상이 평생 마음 속에서 

  우리를 저주한다.


[7장 제자리를 찾아서 : 전인격이 예수 복음을 통과해야 한다]

-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보다 자기 지혜를,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갈망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평판을 더 중시한다.

   --->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대량생산하는 공장이다.

- 우리 삶에 있어서의 주님은 우리 계획을 이루는 데 소용될 보충 자원이 아닌, 그분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계획이시다.

- 야곱이 하나님을 그렇게 가까이 대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예수님이 

  연약한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의 형벌을 치르셨기 때문.

- 야곱이 받은 그 복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것이 되었다.

 

[ 에 필 로 그 ]

가짜 신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우상을 뿌리 뽑고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지 않으면 그 우상 즉, ‘가짜 신은 다시 자란다

, 참 하나님으로 대체하지 않으면 계속 대상만 바뀔 뿐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기쁨회개가 함께 있어야 한다.

기쁨 없는 회개는 절망에 이르고, 회개 없는 기쁨은 얄팍해서 잠깐의 감동 외에 깊은 

변화를 주지 못한다. ‘두려움에 기초한 회개는 우리 자신을 미워하게 만들지만 기쁨

기초한 회개는 죄를 미워하게 한다.

 

* 내가 만든 신 식별하기

  첫째, 생각의 내용을 점검하라

   - 습관적으로 생각하면서 혼자서 속으로 기쁨과 안락을 얻는 대상은 무엇인가?

  둘째, 돈을 주로 어디다 사용하는지를 점검하라

  셋째,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희망이 꺽일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라

  넷째, 나는 이것이 있어야 만족과 의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점검하라

 

                                                                      - 이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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