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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ㅣ 꿈결 클래식 6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흑미 그림, 백정국 옮김 / 꿈결 / 2016년 9월
평점 :
아득히 오래 전 이 책을 접했던 때에는 망망대해 속의 홀로 고군분투를 하고 돌아온 처량한 노인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손에 남은 것은 거대한 청새치가 곁에 있었던 것을 증빙해주는 뼈 조각뿐이니, 구태여 이 지리멸렬한 시간을 보냈어야만 했던 것인가, 라며 그의 빈손을 보며 허망하게만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물컵 속 반이 남아있는 물잔을 보며 어떤 이들은 반이나 남았네,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어떤 이는 반 밖에 남지 않았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물 잔 속 물의 양은 동일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 그 물은 희망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또 다른 이에게는 아쉬움과 절망, 때론 비극이 될 수도 있는 혜안을 나타내는 말이 아닐까 싶다. 물론 반 밖에 안 남은 이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취할 수도 있기도 하겠지만, 어찌되었건 이 소설이 이전의 나에게는 안타까운 시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지금 다시 만난 <노인과 바다>는 동일하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고 그 시간이 절대 헛된 것이 아닌 이 시간이 있기 전과 후의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현대의 우리네 모습과 비유하여 고군분투 속 결국엔 낙방한 수험생이였다손 치더라도 나는 그가 준비해온 시간들을 쉬이 아무것도 아닌, 시간만 낭비한 것들이라 말할 수 없으며 그는 실패라는 낙인을 받겠지만 분명 이전보다는 더 성장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부라고 하기엔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남루하여 초라해 보이는 것은 물론 80여일 동안에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채 매일 바다로 나가는 노인을 보며 씁쓸함이 감돌았다. 대체 왜 나의 낚시대에만 고기가 낚이지 않는 것인지, 타인의 만선을 보며 시샘하기도 하고 현재의 자신의 상황에 푸념을 늘어놓을 만도 하지만 그의 두 눈 만큼은, 그 안에 담긴 신념만큼은 늘 생기가 돌며 내일은 또 다를 것이라며 희망을 품고서 매일 바다로 나가고 있다. 누군가가 그의 모습을 보았더라면 한심하다며 혀를 찰지도 모를 일이지만, 노인 그 자신은,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바닥으로 끌어내어 바라보는 것이 아닌 다시 출발점에 서서 나아가게 하며 늘 푸르름 속에서 사는 소나무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미풍은 산산했고 항해는 순탄했다. 노인은 물고기의 허리 윗 부분만 바라보았다. 그러고 있으니 희망이 조금 되살아났다.
희망을 품지 않는 건 바보짓이야. 노인은 생각했다. 더군다나 그건 죄악임에 틀림없어. –본문
바다 위에 서 있는 푸른 소나무. 내가 다시 마주한 그의 모습은 그러했다. 홀로 서 있는 망망대해의 2박 3일이란 시간 속에 청새치와 씨름하는 동안에 그는 제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늙어버린 몸, 그 중에서도 왼손을 다그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때론 먹을 것마저 제대로 없어 간도 되지 않은 날 생선을 먹으면서도, 낚시줄이라는 선 하나에 연결되어 있는 물고기와 그와의 사투 속에서 그는 지칠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때론 그는 물고기를 죽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자신에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물 속에 드러나지 않는 청새치를 보면서 그의 죽음을 바라면서도 가냘프다 못해 곧 독수리의 먹이가 될 것만 같은 바다 새에게는 삶과 죽음의 사투 속에서 자신의 품 안에서만큼은 쉬어가기를 바라며 공상에 빠져보기도 하지만 어찌되었건 그는 다시 남루한 배 위에 낚시대에만 집중하고 있다.
왼손은 당기는 힘을 전부 받느라 낚시줄 뭉치들을 돌아보았다. 줄이 술술 풀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물고기가 어마어마한 파열음을 내며 바다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육중한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물고기는 잇따라 계속 뛰어올랐다. 줄이 쉴 새 없이 풀려나가는데도 배는 빠르게 전진했다. 노인은 끊어지기 직전까지 줄을 팽팽하게 당겼고, 줄이 헐거워질라치면 그때마다 반복하여 줄의 긴장 상태를 최고조로 유지했다. –본문
그 오랜 사투 끝에 결국 노인은 청새치를 자신의 전유물로 만들게 되지만 그 오롯한 시간은 바다 위에서 쉬이 지켜지지 않는다. 바다라는 철저한 자연의 힘 안에서 배에 묶어 둔 청새치라는 인간의 표식으로 그저 혼자만의 위안이 될 뿐, 그 전유물에 수 없이 달려드는 상어떼의 표적이 되게 되는데, 홀로 바다에 나가 결국에는 승승장구하며 성공의 팡파레를 울리며 돌아서기를 바랐던 우리네 마음과는 달리 그는 돌아가는 길 조차도 험난한 시간을 지나야만 했다.
노인은 고물로 돌아갔다. 부러진 키 손잡이의 삐죽삐죽한 끝이 그런대로 키 홈에 끼워져 방향을 잡는데 문제가 없었다. 노인은 포대를 어깨에 두르고 배를 가던 길로 되돌렸다. 이제 배는 가볍게 움직였다. 노인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이제 연연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떠나온 포구로 아무 탈 없이 돌아가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수완을 동원해 배를 몰 뿐이었다. –본문
혹여 그 모든 시간은 허투루 지나버렸어, 라며 체념할 수도 있겠지만 바다 위에서 매 순간 그가 했던 시간을 되돌아보노라면,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이 있던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을 되새겨 보는 동안 이 이야기 속 그의 모습을 보며 그저 시간을 부질없이 흘러 보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것이었어야 했던 청새치를 만났을 때에도, 그 청새치와 줄다리기를 하는 순간에도, 성공의 기쁨도 잠시 상어들에게 그 모든 것들을 빼앗겨야 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늘 최선을 다해 그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허망하게만 보이던 그의 빈손이 이제서야 그토록 묵직하니 위대해 보일 수가 없다. 그저 포기하고 돌아올 수도 있었던 2박 3일을 시간을, 상어떼를 만나 청새치를 잃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삶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계속 나아가려 하는 그의 모습은 다시 내게 바다 속에 피어있는 소나무로 인식되어 남아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