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쓰리 몬스터는 촬영한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부터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책을 읽어도 장편보다는 단편을 좋아하고. 드라마 보다는 베스트 극장 같은 류의 단막극을 좋아하는 나 이기에 영화에 있어서도 이렇게 여러가지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섯개의 시선'이랄지 혹은 '기묘한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총 3개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박찬욱 감독의 '컷'. 두 번째는 일본 미이케 다카시의 '박스'. 세 번째는 홍콩의 프루트 챈 감독의 '만두' 이다. 아시아 3국의 감독들이 모여서 만든 쓰리 몬스터는 각각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악마성을 드러낸다. 인스턴트 커피 광고처럼 '내안에 악마가 들어있다.' 인 것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자면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 일 것이다.
쓰리 몬스터의 첫 번째 이야기는 올드보이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의 컷이다. 이병헌, 강혜정, 임원희가 주인공이다. 이병헌은 감독이며 강혜정은 그의 아내. 그리고 임원희는 이 두 사람을 위협하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겉으로 드러나 있는 악마이다.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감독. 그의 집은 마치 궁궐같다. 그런데 갑자기 정전이 되고 눈을 떠 보니 자기가 찍는 영화 셋트장에 와 있다. 이 셋트장은 자신의 집과 똑같이 지어놓은 곳인데 거기서 찍는 영화는 벰파이어 영화이다. 아무튼 눈을 떠 보니 아내 강혜정이 피아노줄에 꽁꽁 묶여있고 임원희는 감독에게 어떤 요구를 하며. 그 요구가 들어지지 않을 때 마다 피아니스트가 직업인 아내의 손가락을 잘라버린다고 말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이병헌이라는 배우가 연기를 참 잘 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해서인지 (영화 세 개를 짧은 러닝타임에 다 담으려다 보니) 그가 좀 더 연기를 잘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이 영화를 보통의 러닝타임으로 갔더라면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우리에게 충분히 여러가지 모습을. 감독이 의도한대로 다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아쉬운 캐릭터는 임원희. 나는 사실 연극을 오래 한 배우들이 영화에 진출하는 것을 그리 달갑지 않아하는 편인데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송강호나 최민식 모두 연극을 먼저 했던 배우들이다.) 임원희의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그의 연극톤 대사는 시종일관 이 영화를 마치 셋트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설정도 감독의 집과 똑같이 만들어진 셋트장이긴 하다.) 영화처럼 보이게 한다. 즉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로 나온다. 거기에다 이제는 아주 제대로 하는게 정석이 되어버린 사투리를 (아마 영화 친구가 효시가 아니었나 싶다.) 임원희는 옛날 얼치기 식으로 표준어 억양 그대로 둔 채 했시유우~ 그랬구먼유우~ 만 반복한다. 충분히 잘 만들수 있는 영화였는데 어쩌면 여기서 임원희는 미스 케스팅이 아니었나 싶다. 뭐 감독이 어차피 그 모든 상황을 연기처럼 보이기로 작정을 했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처음 영화가 시작할때 염정아가 잠깐 등장하는데. 감독의 집과 똑같은 셋트장에서 드라큐라 영화를 찍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녀. 연기를 너무 잘한다. 느끼하고 끈적한데 어딘가 모르게 코믹한 분위기를 낸다. 같이 본 친구와 그런 얘기를 했었다. 염정아는 몸이 참 기괴하다고. 말라도 그냥 마른게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자양분같은걸 다 빨리고. 그러고 나서도 악으로 깡으로 살아있는 육신 같다고. 어쩌면 그녀의 살집하나 없고 약간 섬찟한 얼굴도 이 이미지에는 한몫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녀의 기괴한 육신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역활이었다. 그녀보다 더 흐느적거리며 걸을 수 있는 여배우는 없으리라..
다음은 일본 감독 미이케 다카시의 박스. 3가지 영화 중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약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드는 영화인데 너무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뻔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영화의 첫 장면을 보는 순간 마지막 장면까지도 다 추측이 가능한 영화로 끝부분에 반전을 주려고 했지만 그 반전은 관객들에게 '오오..' 하는 반응을 일으켰다기 보다 '장난치냐?'라는 반응을 불러 일으킬 뿐이었다. 물론 반전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세밀하지 못한 장치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서커스 공연을 하는 두 자매가 있다. 의붓 아버지와 공연을 하는 이 자매는 (의붓 아버지라는 것은 영화를 소개한 글을 보고 알았지 극중에서는 어디에도 의붓 아버지라는 설명은 없다.) 똑같이 생긴 일란성 쌍둥이다. 하지만 의붓 아버지는 언제나 첫째. 즉 주인공의 입장에서 볼때 언니만 이뻐한다. 질투를 느긴 주인공은 어느날 언니를 상자에 가두어 버리고 실수로 의붓 아버지와 언니를 모두 죽게 한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영화가 재미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위에서 말한것 처럼 너무 진부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설정 자체도 일관성이 없고 어떤 해설도 없다. 한마디로 상당히 불친절한 영화이다. 관객이 볼때는 이러하다고 느꼈는데 극중 배우들은 '실은 이러이러했던 것이야' 하며 딴소리를 해댄다. 대체 어떤게 실제고 어떤게 환상인지도 모호하다. 이미 빅피쉬에 나왔던 쌍둥이 자매들을 보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어설픈 쌍둥이들은 실소만 자아낼 뿐이었다.
쓰리 몬스터의 마지막 영화는 프루트 챈 감독의 '만두' 개인적으로 이 에피소드가 가장 재밌었고 또 끔찍했다. 친구와 나는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스탭들의 이름을 보면서 계속 '오오' 했었는데 촬영은 왕가위감독과 짝을이뤄 동사서독, 타락천사, 중경삼림등을 찍었던 크리스토퍼 도일이며 배우 양가휘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제작인가 누군가의 이름도 엄청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기억이 안난다.) 아무튼 세 편의 영화 중에서 내용면이나 영상미 그리고 효과 및 장치가 가장 좋았던 영화였다. 다만 좀 많이 끔찍했다.
젊은시절에는 배우였던 주인공. 그러나 늙은 요즘은 젊은 여자들과 놀아나는 남편 (양조위)이 위로 차원에서 끊어주는 수표나 받아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 메릴 스트립이 그러했듯. 그녀도 젊음의 묘약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만두를 만나게 된다. 그 만두를 먹으면 젊어진다는 얘기에 그녀는 만두를 먹는다. 만두의 재료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끔찍한 생각에 도망을 가지만 그녀는 다시 만두를 먹게 된다. 어떤 공포나 끔찍함도 그녀의 젊음을 향한 욕망보다는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도일이 촬영했으니 영상이야 더 말할것도 없다. 끔찍하고 잔인한 영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듯. 그러나 결코 우중충하지 않은 색감으로 잡아낸다. (화려한 색감인데 어딘가 모르게 우울한것. 한없이 우울하고 쳐져있지만 색깔만큼은 눈이 부시도록 밝은것. 그게 바로 크리스토퍼 도일이 가진 마술같은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슬펐던건 한때 내가 좋아했던 배우 양가휘가 너무나 늙어버렸다는 것이다. 머리도 하얗고 (물론 염색이겠지만) 배도 살짝 나와주시고 (옷을 좀 나이들어 보이게 입긴 했다.) 아무튼 내가 알던. 동사서독에서의 멋진 그는 아니었다. 거기다 얼굴은 또 왜 그렇게 시커멓게 나오는지. 베드신 마저도 나이가 드니 추하기 그지 없었다. (연인에서의 그는 절대 추하지 않았다.) 내 친구와 나는 늙어버린 양가휘를 보며 저절로 한숨을 쉬게 되었고 영화가 끝난 다음. 한참 그에게 열광하던 우리 역시 20대가 아닌 30대에 더 가가워졌음을 거울을 보며 실감했다.
누군가. 이 영화를 봐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번쯤 보길 권하고 싶다. 단 영화가 꽤나 길다. 6시 50분 영화를 봤는데 다 보고 나니 거의 9시가 다 된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넉넉하게 무언가를 먹고 들어가서 보길 바란다. 영화관에서 뭘 먹거나 끝나고 난 다음에 먹겠다고? 글쎄다. 비위가 좋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시도하지 않길 권한다. 특히 제일 마지막 편 '만두' 를 보고 나면 냉동실에서 만두국이나 군만두가 되기 위해 한가득 쌓여있는 그것들을 어떻게 처치하지 하는 걱정마저 된다. 만두 파동에 이은 제 2의 만두 수난시대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