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두 가지의 영화가 존재한다. 첫째는 보고싶은 영화. 그리고 둘째는 봐야만 하는 영화. 마이클 무어의 신작 화씨 911은 후자. 즉 꼭 봐야만 하는 영화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영화가 봐야하는 동시에 보고싶기도 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110분 내내 마이클 무어 감독은 나를 비롯한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었다. 다만 옆관에 개봉한 '그놈은 멋있었다' 와 '늑대의 유혹' 같은 위대한 인터넷 소설가이신 귀여니님의 원작영화에는 사람이 미어 터졌으나 나와 내 친구가 앉아있는 화씨 911 상영관은 객석이 50%도 차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영화의 주연이 묻는다면 조지 W 부시. 미합중국 대통령이 나온다고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영화내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그러나 퍽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 뭐 스쳐지나가긴 하지만 로버트 드니로와 벤 애플렉, 스티비 원더,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기라성같은 스타들은 부시 대통령에 비하면 조무래기 조연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뭐니뭐니 해도 부시의 영화이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가자면 바로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파워를 가진 미국이 현재 어떤 사람을 대통령 자리에 앉혀놓았는지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2000년 대선에서 부시가 어떤 부적절한 방법으로 대통령이 되었는지 부터 출발한다. 그 이후 재벌가의 아들네미이나 회사를 말아먹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어 보이던 부시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를 거슬러 올라간다. 또 영화에는 부시를 비롯한 부시 일가족이 빈 라덴 일가를 비롯한 중동지방의 재벌이나 왕가와 얼마나 절친하고도 돈독한 사업 파트너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911테러. 911테러직후 모든 비행기가 이륙이 금지된 상황에서 단 한대의 비행기가 뜬다. (공항에 발이 묶인 라틴팝 스타 리키마틴의 잘생긴 모습도 보인다.) 이 비행기에 부시나 혹은 부시의 아버지이자 전직 대통령이 타고 있었냐고? 아니다. 이 비행기에는 공부를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아무튼 여타 이유로 미국에 남아있던 빈 라덴 일가가 타고 있었다. 그들은 FBI의 조사를 받지도 않았으며 FBI의 최고 실력자 조차 도대체 누가 그 이륙을 허락했으며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 이후 영화는 부시의 전쟁놀이에 촛점을 맞춘다. 이라크 전쟁에서 가난한 계층의 병사들이 죽어간다. 그들은 가족에게서 보낸 편지에 '이 전쟁을 왜 하는지 모르겠으며 미친짓'이라고 한다. 부시는 그들을 독려하는 척 하면서 그들에게 지급될 월급과 예산을 삭감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마치 미국국민들에게 테러로 부터 절대로 안전하지 못하고 여러분은 지금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심어주면서도 미국경 해변에는 예산 삭감으로 인해 단 한명의 보초만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가난한 동네에서 군인들을 모집하고 이라크로 보내서 죽음을 당하게 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이다. 석유 즉 돈 때문이다. 기업가도 아닌 한 나라의 대통령이 과연 돈때문에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게 가능하냐고 묻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학교 다닐때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민주적인 국가이며 가장 힘이 쌘 나라로 배웠던 미국에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얼마전 칸 영화제에서 올드보이가 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마치 칸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을 받을만한 작품이 올드보이인 것 처럼 들뜬 취재를 했으나 칸에서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칸에서의 분위기는 오히려 황금종려상을 받은 다큐멘타리 영화 화씨 911에 집중이 되어 있었었다. 비록 우리나라 중에서도 내가 살고있는 이 도시에는 멀티플렉스에서 다른 영화들이 개봉관 3개씩 잡을때 단 한개를 잡고도 관객 점유율이 50%를 채 넘지 못하지만 말이다.

물론 이 영화의 단점도 존재한다. 마이클 무어는 교차편집을 이용해서 부시를 비열한 바보로 만들었다. 부시가 한 짓이 비열하고 바보스럽기는 하지만 이 교차편집 덕분에 부시는 때론 멍충이로 때론 비열한으로 보였다. (이 교차편집을 보고 있노라니 얼마전 비슷한 교차편집을 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생각이 났다.) 조금만 더 중심을 잡고 서서 평가는 관객들에게 내리게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마이클 무어는 부시에 대해 너무 열이 받은 나머지 영화를 본 단 한명의 관객도 부시편에 서는 것을 볼 수가 없었나보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마이클 무어식의 유머와 비꼬기는 재밌기는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좀 유치하다는 것을 숨기기가 힘들다. 그러나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문맹률과 교육수준이 낮아 국가가 마음대로 부리기 딱 좋을 만큼 심하게 어리석은 미국 국민들에게 부시에 대해 제대로 그리고 빨리 알리려면 저 방법밖에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부시에 대해 뭔가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 보다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는 여건 자체가 놀라웠었다. 세상에서 가장 파워있는 나라의 대통령. 그 대통령을 한마디로 씹을 수 있는 영화. 우리 나라에서도 가능할까? 대통령이나 정치인들. 그리고 막강한 부를 가지고 있는 자들의 실체를 보고 또 그걸 씹어댈 수 있을까? 아마 모르긴 해도 그런짓을 하다가는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갈지도 모르겠다.

다큐멘타리 영화이긴 하지만 화씨 911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어떤 배우와 헐리우드 특수 효과가 등장하는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다만 다른점이 있다면 헐리우드 대작들은 가상으로 만들어낸 것이고 화씨 911은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일인데 왜 우리가 알아야 하느냐고? 우리도 이라크에 파병을 했다. 왜냐고? 미국이 원하니까. 미국은 우리와 전혀 무관한 나라가 아니다. 가장 손쉽게 생각하면 3.8선을 그어준 나라가 미국이다. 어쩌면 미국 국민들 다음으로 이 영화에 주목을 해야 할 국민들은 바로 대한민국 국민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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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卵 2004-08-0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보려고 했는데 이미 내려서 못 본 영화... 아니, 목요일에 올라오곤 벌써 내려? 하고 황당해 했었죠. 저는 보는 사람들이 넘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가보군요. 다운이라도 받아서 봐야겠습니다.

클리오 2004-08-0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씨 9/11. 넘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꼭 영화관에서 볼랬는데, 제일 시설이 낙후한 곳에서 하더군요. 어쩌나 고민입니다. 그리고 막내리기도 직전이구요. 흑. 비디오가 나오길 기다려야 하나.

플라시보 2004-08-0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님. 벌써 막을 내렸나요? 아쉽네요. 할 수 없죠 뭐 비디오라도 꼭 보세요. 안그래도 보고싶어 하셨다니... 아마 실망스럽지는 않을겁니다.

clio님. 그러게요. 전미 흥행 1위 영화 중 아마 가장 적은 개봉관수와 열악한 시설에서 (특히 지방의 경우) 개봉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네요. 다행스럽게도 저는 막을 내리기 전에 봤습니다만. 참 여러군데에서 막을 빨리 내려버렸군요. 님도 비디오로라도 꼭 보시길..

마냐 2004-08-03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렇게 훌륭한, 게다가 무진장 재밋는 영화를 벌써 막을 내린 동네가 있답니까? 투덜투덜...아참, 리뷰는 투덜 아니구...히죽히죽..좋슴다~ ^^

플라시보 2004-08-0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는 거의 다 막을 내린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nijeda 2004-08-0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마이클무어가 이번 미국대선에서 부시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자신이 직접 말했죠... 교차편집이고 뭐고 마이클무어 눈에 뵈는게 없죠...
부쉬가 이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요? 라는 질문에 "영어잖아요? 쉬워요"
라고 말하는 무어의 재치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