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포스터 부터가 상당히 자극적이다. 약간 느끼한 웃음을 띄고 단추를 심하게 풀어헤친 이병헌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는 고양이 같은 눈빛의 추상미가 오른쪽에는 좀처럼 도발적인 매력을 보여주지 않았던 최지우가 이병헌의 가슴에 손을 넣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그 앞에는 등에서 엉덩이까지 완만한 S형 곡선의 몸과 긴 목선을 자랑하는 김효진이 있다. 이 포스터 속의 한 남자와 세 여자는 무슨 관계일까? 서로 사랑하는 사이? 삼각관계? 맞다. 얼추. 그러나 이들 넷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세 여자가 서로 자매지간이라는 것. 그녀들은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고 (첫째로 나오는 추상미는 극중 유부녀이긴 하지만) 피를 나눈 형제인 것이다.
카페에서 재즈싱어로 일하는 미영(김효진)은 어느날 멋진 남자 수현(이병헌)을 만나게 된다. 나름대로 연예도사인 미영은 점점 수현을 사랑하게 되고 급기야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그런데 수현은 둘째인 선영(최지우)과 첫째인 진영(추상미) 와도 짜릿한 연예를 즐긴다. 진영과 선영. 미영은 서로 서로 모르고 있기는 하지만 한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용만 봤을때는 완전 콩가루 집안이다. 미영을 제외한 나머지 두 자매는 수현이 동생의 애인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의 매력에 주저없이 달려든다. 특히 눈치가 빠른 진영은 수현이 선영과도 심상치 않은 관계임을 알면서도 그를 거부하지 못한다. 대체 얼마나 매력이 철철 넘치길래 동생의 애인과 혹은 동생들을 사랑하는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불가능한 미션을 가능하게 하는것은 여자에 따라 공략법을 달리하는 잘난 남자 수현이 있기에 가능하다. 도발적인 미영에게는 섹스어필함과 기죽지 않는 당당함으로(여태 그녀 주변의 남자들은 다 질질 매달리고 미영의 말이라면 뭐든 다 잘 들었었다.), 오직 공부만 들고 파서 아는거라고는 책에서 읽은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순진한 선영에게는 지적인 분위기와 로멘틱함으로, 마지막으로 이미 남편과의 결혼에서 점점 무료해지고 있는 진영에게는 짜릿한 일탈을 꿈꾸게 한다. 현실적으로 저런 바람둥이가 있을까 싶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쉬운 일이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정신 못차리지만 않는다면 그렇다면 당신도 나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어떤 타입의 사람인가를 알아서 적절하게 공략하는것. 여기에 어느정도 매력적인 외모만 같추어져 있다면 일은 더욱 손쉽다.
사랑은 당기면 밀려나고 밀면 당겨온다. 이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진리이다. 그런데 왜 못하는가! 알다시피 사랑을 하게 되면 이성이고 지성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다. 오죽하면 눈에 콩깍지나 부침개가 씌인다고 표현을 하겠는가. 평상시에는 뻔히 보는 사실마저 보지 못하고 다 아는것 마저 모르게 되는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수현이 저 세 자매를 녹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동시에 모두 다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사랑이란 눈멀고 귀멀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게 아니라 어떻게건 나에게 넘어오게 해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아무도 플레이보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뻔히 바람둥이인줄 알면서 왜 넘어가고 싶겠는가. 하지만 이게 또 바람둥이들의 매력이다. 알면서도 거부하지 못하게 하는것. 그건 바로 사랑에 눈이 멀지 않았기에 밀고 당기는 기술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입으로는 '바람둥이가 제일 싫어' 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바람둥이가 작업 들어오면 마치 뭐라도 씌인것 처럼 넘어가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면서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걱정이 되었다. 감독이 너무 일을 많이 벌려놓는거 아닌가 싶었다. 셋째 미영은 수현을 사랑한 나머지 결혼을 하려고 들고 선영은 펑펑 울 정도로 그 남자를 좋아하며 진영은 그에게 따지러 갔다가 그만 그를 덮치게 된다. 이걸 어떻게 다 수습할 것인가 하고 보는 내가 다 걱정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 감독. 꽤나 멋지구리하고 유쾌하게 결말을 잘 맺는다. 물론 약간의 불만은 있지만 어차피 이 영화가 가벼운 코메디를 지향하고 있는 바. 사랑에 관한 진지한 고찰과 심각한 결론을 제공 해 줄것이라 믿지 않는 한 비교적 만족스러운 결과이다. 모두가 즐겁고 가벼워 지는 것. 그게 바로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고 세 남자를 만난 후 변한 자매들을 보여주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을수가 없다. 솔직하게 말 해보자. 지금 당신이 당신의 연인에게 하는 행동중에 전에 연인에게서 배웠거나 혹은 전에 애인과 함께했던 행동이 없는가? 나는 아주아주 많다. 세상에는 오직 '그' 하고만 해야 좋은 무언가 따위는 없지 않을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건 아니건 간에 다 좋은거다. 물론 아니라고 굳게 믿고 싶겠지만 말이다.
영화를 보는데 내내 앞줄에 앉은 수녀님 3분이 무지하게 걸렸다. 친구와 나의 대화이다.
친구 : 야. 신부수업 봐야 하는데 잘못 들어온거 아닐까?
나 : 아. 수녀님들 오늘 상당히 하드한 초이스를 하셨구나. 많이 야하지 말아야 할텐데...
종교인들을 우롱할 생각은 절대 아니었으나 왠지 엄숙하고 정숙한 수녀님들에게 세 자매가 한남자와 모두 사랑을 하는 (더 적날하게는 잠자리를 하는) 영화가 좀 거시기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뭐 매체에서 떠는것 만큼 야하지는 않았다. 베드씬들이 모두 적당히 코믹한지라 숨막히는 에로티시즘 같은건 전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최지우의 베드씬이 제일 웃겼다. 역시 책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아주 유쾌하게 풀어내는 동시에 현시대의 포르노그라피가 얼마나 남성 판타지 중심으로만 이뤄졌는지를 살짝 비꼬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