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었으면 바로바로 정리해야지 나중에 하게되면 눅눅해진 김처럼 생기를 잃고만다. 

 

이 책을 읽고났을 땐 마치 내가 막 여행에서 돌아온 기분이 들었었다. 뭔가 할 말도 많았고 마음도 설레었는데...며칠 지난 지금, 오래된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낡은 기분이 들지만, 어쨌건 여행 기분보다는 밥벌이가 먼저니까.

 

인상적인 부분을 옮겨놓는다.

 

...시크교는 남자는 싱Singh, 여자는 카우어Kaur, 성은 두 가지뿐이다. 성으로 들통 나는 신분의 높낮이가 없다. 남녀차별도 철저히 없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조치였다. 아무리 높은 지위의 사람도 무릎 꿇고 바닥에서 함께 식사한다. 배고픈 이, 가난한 자는 시크교에서 가장 마음 쓰는 대상이다. 그래서 황금사원뿐만 아니라 모든 시크교사원에는 무료 급식소가 있다. 언제든지 와서 배를 채울 수 있다. 종교는 상관없다. 배고픈 자는 환영이다. 타 종교를 존중하며, 귀를 기울이고, 장점을 찾는다. 궁극의 신은 하나라고 믿는다. 자신들이 옳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옳은 것이다.

 22년 전 처음 인도에 갔을 때, 시크사원에서 얻어먹은 한끼 식사를 잊을 수가 없다. 여행자들을 한 줄로 앉혀놓고 식판을 하나씩 돌리더니 그 위에 짜파티와 달을 나눠주었다. 물컵도 하나씩 돌렸지만 아무도 물을 마시지 않았다. 나눠준 짜파티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고마워하는 마음도 없었다. 약간 잘사는 나라에서 온 배부른 여행자들은 부끄러움도 몰랐다.

 

 

여행자가 즐거운 건 얄팍해서다. 속속들이 안다면, 해맑을 수 없다. 인사동에서 흥분한 여행자들이, PC방의 실직한 50대 사연을 알 필요가 없다. 1백 장의 이력서를 돌리고도, 2백 장, 3백 장 이력서를 더 써야 하는 젊은이들을 딱해할 필요도 없다. 여행자는 씨앗 호떡과 계란빵을 먹으며, 셀카를 찍으면 된다. 다만 며칠을 머물고, 그곳을 '안다'고 착각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여행자는 철저히 겉만 핥는 존재이며, 겉을 핥고, 돈을 쓰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밥벌이에 큰 기여를 하는 존재고, 없었던 활력과 새로움을 보충해주는 존재다.

'관광'과 '여행'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늘 '여행'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관광'이나 '여행'이나 그게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관광객이건 여행자건 '겉만 핥는 존재이며, 돈을 쓰는 사람이다'. 여행이 깊어야 얼마나 깊으랴. 관광이라고해서 느낌이 없고 생각이 없는 게 아니다. 거기서 거기다. 얄퍅해야 여행이 된다.

 

 

세계 3대 장수마을 중 하나인 훈자는 이제 일흔이 넘으면 죽는다. 설탕과 튀김에 맛들린 훈자 사람은 병을 끼고 산다. 예전에 없었던 비만과 충치로 고생한다. 빌린 돈으로 호텔을 짓고, 식당을 열지만, 여행자들은 훈자에 오지 않는다. 호텔 주인과 식당 주인은 차례로 문을 닫고, 대도시로 떠난다. 훈자는 그렇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들 때문에 세상의 좋은 곳들이 하나둘씩 망가져간다. 나도 일조하고 있는거구나.

 

 

 

이 책이 중고매장에 널리 깔리지 않기를. 읽고 싶은 사람은 새 책을 구입해서 읽기를. 가난한 여행자가 혼신의 노력으로 써내려간 여행기가 널리 가볍게 의미있게 소비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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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6-09-12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고 정리할 책이 산더미인데,
게다가 엉.뚱.하여 여행이라면 질색인데 꾸역꾸역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 싶게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__)

nama 2016-09-12 20:26   좋아요 0 | URL
제 책은 아니지만, 고맙습니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책임질 수 없지만요.
 

 

 

여행 후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멍하게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불쑥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찰나의 무심함이다. 화려한 볼거리나 멋진 경치보다 오히려 아무런 의미도 없어보이는, 이를테면 생선바구니 앞에 앉아있는 고양이의 하품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한다. 일상에서는 눈도 돌리지 않는 아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장면에 나뭇잎 떨어지듯 툭하고 마음이 가라앉기도 한다.

 

 

 

발리 우붓에 있는 유일한 운동장(또 있나?)에서 동네 청년들이 축구하는 장면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여행자들.

 

 

 

여행지에서는 마음껏 텅 빈 채로 지낼 수 있다. 그게 여행이지 싶다. 

 

 

 

그렇게 텅 빈 나날들이었지만 밤마다 꿈에 시달렸다. 여행 초반에는 이틀에 한번꼴이다가 후반에는 매일 밤마다 꿈에 시달렸다. 꿈의 내용은 한결같았다. '학교'였다. 수 년 전에 담임을 맡았던 꾸러기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는데 내가 담임을 다시 맡게 되었다는, 생각하기조차 두렵고 겁나는 일도 일어났다. 꿈 속에서도 '설마 이게 현실이 아니겠지.' 하면서 내내 안절부절하다가 불쑥 잠이 깨어서 안도의 숨을 내쉬곤했다. 그런 연속된 악몽으로 새벽을 맞는 날들이었다. 그러다가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더 이상 꿈 속에 '학교'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이번에는 현실 속의 '학교'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왔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아직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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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대해 글을 쓰게 될 줄이야.

 

작년 오키나와에서는 닷새 동안 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다. 기억에 남는 거라곤, 모노레일역에서 2분 거리였다는 것, 4층인가 5층인가여서 피곤한 하루를 더욱 피곤하게 했다는 것, 과묵함이 지나친 숙소 여직원의 무심함이 인상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때까지 여행중 제일 오래 묵은 숙소였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선 일단 우붓에서 무조건 8일을 묵기로 했다. 왜 8일간인지는...나도 모른다. 그냥 8일로 잡았을 뿐이다. 또 하나는 무조건 한 숙소에서 8일을 보내보자는 거였다. 이 역시 이유는 없다. 한번도 그래본 적이 없으니까, 한번 그래보고 싶었다. 하루짜리 호텔숙박은 짐 싸기도 번거롭고 기억에 남는 것도 없이 소멸되는데 그 허망함을 벗어나보고 싶었다. 평소 동경하는 여행생활자의 흉내를 내보고도 싶었다.

 

호텔예약사이트인 아고다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숙소가 Bumi Muwa였다. 돌아와서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이미 이곳을 다녀온 분들이 사진과 글을 올리기도 했으나, 나는 미리 정보를 구하고 싶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 여행은 '아는 만큼 감흥이 떨어진다'. 예전에는 여행안내서를 영문으로 된 론리플래닛까지 구비했지만 이번엔 딱 하나만 준비했다. 그것도 별 고민없이 무작위로 골랐다. 될 수 있는 한 세밀한 정보가 담겨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고다에서 숙소를 예약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역을 검색하면 숙소가 요금별로 쫙 나온다. 사진으로도 소개해놓았지만 사실 사진발은 별로 믿을 게 못된다. 다만 베이스캠프로 삼으려면 위치는 고려해야 한다. 돌아다니기 편한 여행자거리에 있으면서, 아침밥 주고, 에어컨에 화장실 달려있으면 된다. 그렇게 대충 고른 곳이 Bumi Muwa였다. 그래도 별 세 개가 반짝이는 곳이건만...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꺼내는 나는 아무래도 부정적인 성향이 강한 것 같다. 하여튼 단점은, 손님을 배려하는 섬세함 따위는 없다는 점이다. 마실 물이라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는 한모금짜리 생수 한 병이 전부다. 보통은 날마다 500ml정도의 생수를 제공하거나 정수기를 사용하게 하는데 이 호텔은 물 한 모금 공짜가 없다. 샴푸와 바디워시라는 게 있긴하나 분명 물로 희석시켜놓은 것이어서 아무리 열심히 짜내어도 거품이 일지 않는다. 일회용 칫솔은 있으나 딱 일회용으로 만든 것이어서 도저히 손이 가지 않고, 세수비누는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수건은 그나마 매일 새로 빨은 것을 주지만 새하얀색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밤마다 모기에 시달려서 겨우 액체전자모기향을 얻긴했으나 스프레이로 된 모기약은 알아서 따로 구입해야 한다. 화장실은 넓기는한데 왜 그렇게 바닥이 미끄러운지, 혹여 넘어져서 뇌진탕이라도 될까봐 늘 노심초사해야한다. 처음에는 당황해하다가 나중에는 화장실 바닥의 물기를 스스로 닦아내는 착한 숙박객으로 변한다. 진화하는 숙박객, 알아서 처리하는 숙박객이 되어간다. 손님이 왕이 아님을 착실히 가르쳐주는 곳, 이곳이 Bumi Muwa Accommodation 이다. accommodation. 그냥 숙박시설이라는 뜻의 단어를 상호로 사용하는 곳이다.

 

공항 도착시 픽업을 부탁했기에망정이지 어두운 밤에 홀로 도착했더라면 이곳을 찾느라고 발리 전체를 두고 험한 말이 오갔을 게다.

 

왼쪽으로 보이는 인도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빠듯한 길이지만, 오늘도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 길을 걷고 있을 터이다. 일방통행인 차도는 오늘도 수많은 호객꾼들이 자가용승용차로 택시영업을 하고 있을 터이다.

 

침대에서 찍은 호텔 정원 모습.

호텔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서로 눈에 들어오는 곳.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방.

방 홋수는 05호.

출입문이 창문처럼 되어있어 약간 난감하고, 문을 잠그려면 열쇠를 오른쪽으로 세 번, 열려면 왼쪽으로 세 번 돌려야 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함.

제주도의 여미지식물원을 연상시키는 싱그러운 열대 식물들.

 

정원에 핀 꽃.

 

 

 

손바닥만한 꽃.

 

 

문 앞에 있는 꽃.

 

 

 

숙소 내부. 비누도 없고 마실 물도 없지만 날마다 백조가 날아들었다.

 

 

 

옆방과 수영장 가는 길. 작은 열대식물원을 방불케한다. 매일 한가한 오후 3~4시가 되면 젊은 스태프들이 정원에 나와 마른 잎을 따내거나, 작은 묘목을 심거나, 빼곡히 자란 바나나나무 따위를 솎아낸다.

 

 

작은 규모의 소박한 수영장. 수영장이 있는 숙소에 처음 묵어보는 사람에게는 이 작은 수영장도 감동이었다.

 

 

 

수영장 데크에 누워 바라본 하늘. 

 

 

매일 아침에 먹은 맛있는 과일모음(바나나, 파인애플,파파야,멜론)과 볶음밥 혹은 야채오믈렛, 그리고 맛없는 커피. 상냥한 젊은 직원들. 다부지고 야망있는 24살의 운전기사 Madi. 원숭이숲에서 탈출한 원숭이들의 심심찮은 방문. 원숭이를 쫓는 직원들의 긴 장대. 장기투숙중인 동양인아저씨.

 

체크아웃을 하고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나오는데,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이 그런다.

 

"See you later."

 

그래요,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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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에서 여덟 밤을 보내며 하루 평균 10km를 걸었다. 날마다 미술관 관람에, 전통춤공연과 라이브뮤직 카페공연 구경에 나섰으니 발인들 온전하랴. 네번 째 발가락 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는 조짐이 보여 할 수 없이 샌달에 양말을 신어야 했다. 미술관은 탐방이라기보다는 순례에 가까웠다. 마음까지 경건해졌으니.(미술관 설명 생략함.)

 

1. 뿌리 루끼산 미술관

 

전시관과 전시관 사이에 있는 정원. 시원하게 비가 내렸다. 비 구경에 넋이 나갔다.

 

 

 

 

 

 

2. 아궁라이 미술관

 

 

 

 

 

 

미술관 입장권을 구입하면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쿠폰을 준다. 미술관내 카페 앞에 있는 논, 풍경 또한 한 폭의 그림이다.

 

 

 

 

3. 네까 미술관

 

 

 

 

 

 

제목: Mutual Attraction(압둘 아지즈 그림)

눈에 띄어 사진을 찍었는데 이 그림이 이 미술관의 대표작품이라고 한다. 

 

 

 

 

 

 

 

4. 블랑코 미술관

 

 

 

 

 

 

 

 

 

 

입장권을 구입하면 이런 차를 마실 수 있는 쿠폰을 함께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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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에 중국 동관에 갔다가 짝퉁 키플링 가방을 사온 적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이던 딸아이에게 주었더니 "2학년에 올라가면 사용할게." 하면서 일단 받아들었으나 한번도 어깨에 매지 않았다. 당시 나는 딸의 자존심에 무심했다. 어쨌건 썩힐 수 없어 남편이 사용했으나 얼마 못가서 여기저기 튿어져 결국은 버리고 말았는데...

 

재수를 시작하는 딸아이에게 이번에는 격려 차원에서 진짜 키플링 가방을 사주었다. 진짜 키플링 덕분이었는지 무사히 대학에 들어갔고, 이젠 다시 남편 차례가 되어서 이번 여행에 함께 했다.

 

인도네시아>발리>우붓>몽키 포레스트.

 

몽키 포레스트는 실제로 원숭이가 살고 있는 원숭이 공원이다. 원숭이 한 녀석이 키플링가방의 상징물인 고릴라를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오른손을 먹어치웠다. 공원에는 먹지 않은 고구마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관광객이 재미로 주는 바나나가 흔해 배고프지는 않을 텐데...호기심이 발전하면 문명을 이룰까. 머지않아 원숭이 세계에도 문명이 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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