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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이화열 지음, 폴 뮤즈 사진 / 현대문학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모처럼 도서관에 갔다가 집어든 책. 이 책 읽느라 집에서 들고간 두 권의 책은 끝내 거들떠보지도 못했다.
에필로그에 쓴 지은이의 말을 먼저 옮기면,
'삶에 대해서든, 디자인이나 글쓰기에서든 군더더기를 붙이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여러번 떠올리곤 했다.' (268족)
지은이의 말 그대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잘 쓴 글에 오전 시간을 모두 바치고 돌아왔다. 다만 누군가의 지적처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써내려간 게 좀 멋적긴하다. 프랑스에서 과연 출판할 수 있겠냐는 지적은 예리하면서도 적절한 지적이다. 그러나 글에서 느껴지는 세련됨과 품격은 부럽기까지 하다. 적재적소에 들어간 인용문은 때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 중 몇 문장을 베껴왔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한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 중 가장 예상치 못햇던 일이다.'- 트로츠키
(갑자기 손가락이 아파지면서 생수병뚜껑을 따는 일조차 버거워질 무렵 절절하게 이 말의 뜻을 깨닫게 된다.)
*'20년의 결혼생활이란 여자를 공공건물로 보이게 만든다.'
'어떤 사람이 철저하게 어리석은 짓을 할 때는 언제나, 그것은 가장 고귀한 동기에서 나오는 법이다.' - 오스카 와일드
(경험에서 우러나왔음에 틀림없는 말을 내뱉는 오스카 와일드, 이 양반의 글을 살펴봐야겠다.)
눈으로만 한번 스치고 지나가기에는 아까운 문장들을 눈에 힘을 주고 두세 번 읽고 또 읽었지만 이 또한 지나가고 사라져갈 말들일 뿐. 책을 덮으며 아쉬운 마음도 덮는다.
눈물이 핑 돌았던 부분을 베껴둔다.
p.195 "어쩌면 말이지 죽음은 삶에 부분적으로 이미 입력되어 있는 지도 몰라. 녀석(아들)이 죽은 1년 뒤, 내 동생이 자살했고, 아들의 죽음을 견디지 못한 아버지는 서류를 차곡차곡 정리해 놓고 물속에서 인생을 마감했어. 그에게는 남아 있는 자식이나 손자에 대한 배려보다 그의 고통이 더 컸던 거지. 그 이후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 내 인생은 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몫도 있다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몫을 빼앗아갈 자격이 없다고."
갈피 갈피 사진 밑에 적혀 있는 문장에도 눈이 멎는다.
Miss the boat, get off the train, and change your life.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린다. 그리하여 인생을 바꾼다.(인생에 그렇게 가능성이 많던가?)
There is a problem for every solution.
각각의 해답에는 문제가 존재한다.(보통은 문제 속에 해답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내가 말하지
만약 뉴욕이 현명한 남자,
파리가 아양 떠는 여자,
베를린이 나쁜 삼촌이라면,
런던은 혼자 웅얼거리는 늙은 여인이야.
약간 귀머거리여서 자신의 멍청함에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는...
-Adrian Anthony Gill
파리지엥이 된 지은이의 파리생활기를 나는 여행기로 읽는다,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