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서 1931년 조선과 시베리아를 경유하는 파리여행을 감행했다는 게 우선 놀랍다. '파리 도착 이후 파리와 런던에 체류하며 글을 써 일본 잡지사에 보내 송금받아 생활'했다는 것도 놀랍다. 물론 일본이라는 식민종주국 백성이었으니까 가능했었을 것이다. 1930년에 태어난 우리 어머니같은 조선백성에게는 아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무산자의 모습이란 아무리 인종이 다르다고 해도 보통 단벌 신사로 조선에서 파리까지 다들 같은 풍채입니다.

 

글 곳곳에서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동지의식을 엿볼 수 있는데 그녀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출신이다.

 

언제나 진실한 것은 파묻혀 지나가고 다소 연극적인 것이, 으스대는 것이, 상스럽게 비하하는 자들이 어이없게도 어느 나라든 특권을 갖는구나.

 

흠, 예나 지금이나....

 

지도를 보고 있으면 유쾌합니다. 인간이 커지는 느낌이랍니다.

 

내가 감탄한 부분이다. 나 역시 지도를 보고 있으면 생각이 콩나물 자라듯 자라나는 느낌인데...

 

런던 박물관은 멋집니다. 큰 목소리로 말할 수 없지만 잘도 세계 각국에서 큰 도둑질을 했구나 싶습니다.

 

이 부분에서 큭큭대다가 기어이 침이 입밖으로 튀어나왔다는...대영박물관에서 내가 받은 첫인상도 이랬었는데, 순 도둑놈들 같으니라구....

 

 

요즘 넘쳐나는 책이 여행기라지만 예전 사람들의 여행기를 읽는 맛은 각별하다. 예전에도 가능했는데 지금이라고 못할 게 뭐 있나, 하는 생각도 들게 하고.

 

이 양반은 어쩜 내 생각과 비슷한지 끝까지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물질적으로 사치스러운 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여행 경험만은 제법 풍부해 그 추억은 내 생애에 걸쳐 가장 부귀한 것입니다. 일간 기회가 생기면 외국항로의 짐배라도 올라타 세계의 작은 항구나 거리를 돌아보고 싶다고, 줄곧 공상하며 고대합니다. 나는 사람에게 지치고 세정에 질리면 여행을 떠올립니다.(중략) 나에게는 여행을 가서 객지의 허망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찾아내는 즐거움이야말로 그리운 천국이기에 여행벽은 점점 심해집니다. 내 영혼은 애수의 소용돌이 안에서만 생기가 넘치는 모양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도 이젠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여행만이 내 영혼의 휴식처가 되어 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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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의 밥으로 허기를 달래듯 좋은 글 한 두 문장이 하루를 배부르게 할 수도 있다. 더 이상 책을 읽지 않아도,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하루를 꽉 차게 하는 글이 있다.

 

화살에 맞으면 아픔을 느끼되 그 아픔을 과장하지 말라고 붓다는 충고했다. 병이 난 제자를 찾아가서도 아파하되 그 아픔에 깨어 있으라고 가르쳤다. 상처에 너무 상처 받지 말 것, 실망에 너무 실망하지 말 것, 아픔에 너무 아파하지 말 것-이것이 두 번째 화살을 피하는 방법이다. 잠시 아플 뿐이고, 잠시 화가 날 뿐이고, 잠시 슬플 뿐이면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맑고 투명해진다.     -137쪽

* 첫 번째 화살을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고, 두 번째 화살은 그 사건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다.(134~135쪽)

 

그대가 무엇을 행하든 사랑의 마음으로 하라. 미움의 마음으로 하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다 해도 부정적인 결과만 얻을 뿐이다.  - 188쪽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204쪽

 

 

다음 글. <장소는 쉽게 속살을 보여 주지 않는다>(104쪽~) 류시화가 왜 류시화인가, 를 알게 해주는 글, 내게는 그랬다.

 

월든 호수에 처음 갔을 때 그곳의 평범함과 일상성에 실망했다.(중략) 무엇보다 내 기대를 무너뜨린 곳은 인도였다. (중략) 초기의 나의 여행은 이런 실망감의 연속이었다. 현실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중략)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장소는 자신의 속살을 쉽게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것을. (중략) 우리가 장소에 대해 실망하는 것은 아직 그 장소가 가진 혼에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슴을 그곳에 갖다 대지 않은 것이다. (중략)

 

그 후 나는 월든 호수를 열 번 가까이 갔다. (중략)

라다크는 여섯 번을 갔다. (중략)

갠지스 강이 흐르는 바라나시는 25년째 해마다 가고 있다. 내 눈이 깊지 않아선지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장소들과 그곳에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에 가려진 웃음과 슬픔의 물감 축제들이. 이제는 바라나시만을 무대로 여행기 한 권을 쓸 수도 있게 되었다.(중략)

 

세상에는 시간을 쏟아 사랑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가고, 또 가고, 또다시 가라. 그러면 장소가 비로소 속살을 보여 줄 것이다. 짐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정은 계획한 것보다 더 오래 잡으라.(중략) 사랑하면 비로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쉽게 읽히는 글일수록 쉽게 쓰여진 것은 아닐 것이다. 류시화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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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6-1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시화 저도 가볍게 안본답니다 ^^
고3때 학력고사 점수 발표하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있을때 선물받은 책 한권이 류시화의 책이었고 다른 책은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였어요. 6권이었는지 더 됐는지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데, 류시화의 책은 몇번을 반복해서 읽었는데 삼국지는 끝내 다 못읽었어요 ㅠㅠ

nama 2017-06-11 17:50   좋아요 0 | URL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그런 시절이 있지요, 누구나.
바라나시를 해마다 가는 분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존경 그 자체! 그러면서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니...겸손이 대단한 분이지요.
 

 

 

 

 

 

 

 

 

 

 

 

 

 

 

그간 수많은 여행기를 읽어봤지만 이런 생고생담은 흔하지 않다. 고행 중의 고행이다. 벼르고 벼른 여행이어선지 준비 과정도 만만치 않았음을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에 관한 책, 영화 등 아이슬란드에 대한 열망을 오랫동안 품어왔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런 간절함으로 떠난 아이슬란드 여행은 저자의 인생이 오롯이 담긴 눈물겨운 여행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구구절절,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팔랑팔랑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한 글자도 설렁설렁 읽지 않고 꼼꼼하게 읽다보니 읽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쉽게, 가볍게 읽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경외감을 갖고 읽었다고나 할까. 부디 다음 여행기도 읽을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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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6-07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분 팟캐스트를 가끔 들어요.
지리산 이분 사시는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곤 하지요.


nama 2017-06-07 08:01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책 내용으로봐서는 이쁜 꽃밭을 가꾸며 소박하게 사시는 듯해요. 궁금하지요?
 
여행자의 미술관 - 길 위에서 만난 여행 같은 그림들
박준 지음 / 어바웃어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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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미치지 않고서는, 그림에 미치지 않고서는 이런 책을 쓸 수 없다. 이 책은 단 며칠 동안 어떤 곳을 다녀와서 쓴 여행기와도 다르고, 그림만을 위해서 쓴 어떤 미술에세이와도 다른다. 다르게 보면 이 책은 여행기도 아니고 미술에세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내게는 여행기면서 미술에세이로 읽힌다. 여행과 미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다니...감탄하며 읽어나갔다.

 

 

... 4월의 이른 아침, 따사한 아침 햇살이 가로수의 그림자를 어설프고 흉한 그라피티에 드리우자 그조차 예뻐 보인다. 베를린이 다 감싸 안기에 예뻐 보인다. 자유의 공기, 날 것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자유, 그게 그라피티다.                  -295쪽

 

그라피티에서 자유의 냄새를 맡는다? 4월을 일터가 아닌 여행지에서 보낼 수 있는, 웬만큼 자유로움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누릴 수 없는 냄새이다. 어쩌다 떠난 여행으로는 건질 수 없는 자유의 공기이다. 여행자가 아닌 여행가의 내공 같은 게 묻어나는 이런 글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인간은 시간을 만진다. 여행의 기억도 그렇다. 나는 적극적으로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거짓 추억이 아니다. 어느 장소를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해선 때로 무척 애를 써야 한다.

 

여행이 끝나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면 행복할까?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알게 되었지만 그래서 행복해졌을까? 여행지의 행복을 연장한 게 추억이라면 그 추억을 위해선 '무척 애를 써야 한다'는 말로 읽힌다. 늘 여행을 떠나도 늘 여행을 그리워하는 여행자의 슬픔 같은 게 묻어 있다. 물론 내 생각이다.

 

화가들의 흥미로운 사생활도 재미있다. 오토 딕스라는 화가는 뒤셀도르프를 여행하다 한스 코흐 부부를 만나 한스 코흐의 아내 마르타의 초상화를 그린다.

 

딕스가 이 그림을 그린 건 1921년이다. 딕스와 한스 코흐 부부, 세 사람의 인연은 기묘한 운명처럼 흘러갔다. 1922년 딕스는 서른 살에 결혼하는데 신부는 다름 아닌 마르타였다. 한스 코흐와의 사이에 이미 두 아이를 가진 마르타는 그해 딕스의 딸을 낳았다.

  "딕스를 처음 만났을 때 한눈에 반했어요."

마르타는 이렇게 말했다. 아내의 선택만큼이나 마르타와 이혼한 한스 코흐의 선택도 파격적이다. 그 역시 곧 재혼했는데 상대는 바로 마르타의 친동생이다. 파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스 코흐는 이혼 후에도 마르타와 우정을 유지했으며, 아내를 빼앗아간 남자, 딕스를 변함없이 후원했다. 마르타는 그 후 딕스가 세상을 떠날 때가지 곁을 지켰다. 딕스를 먼저 보내고 마르타는 22년을 혼자 살았다.    

 

낯선 화가를 알게 된 기쁨도 있다.

 

<세 소녀>를 그린 암리따 쉐르길(Amrita Sher-Gil)은 20세기 인도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이자 그림값이 가장 비싼 화가다. 그녀는 인도의 '프리다 칼로'라고도 불린다. 부유한 귀족 출신의 아버지와 헝가리 출신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2억 인구를 가진 인도에서 예술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지만, 인생은 오묘하다. 1913년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그녀는 1935년에 <세 소녀>를 그리고, 1941년 스물여덟 나이에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하루 앞두고 갑자기 쓰러져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한 권의 책으로 여행을 떠난 기분도 느끼고, 더불어 그림 감상까지 하게 되니 책값이 전혀 아깝지 않을 터. 내 비록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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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자들은 우리가 느끼는 행복 중 약 70%가 질적인 면에서나 양적인 면에서나 친구, 가족, 직장 동료,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추정한다. 살다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는, 주위 사람들의 정이 고통을 덜어준다. 그리고 좋은 시절에서 주위 사람들 덕분에 행복이 한층 더 커진다.

따라서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은 타인이다. 그럼 돈의 역할은 뭐지? 돈은 우리를 타인에게서 고립시킨다. 돈 때문에 우리는 주위에 실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벽을 쌓아 올린다. 우리는 학생들이 들끊는 대학 기숙사에서 아파트로, 다시 단독주택으로 차츰 옮겨 간다. 아주 돈이 많다면, 아예 넓은 땅을 사서 저택을 짓기도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신분이 상승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벽을 쌓아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 169쪽

 

 

타인은 행복의 가장 큰 원천이자 지옥의 가장 큰 원천이기도 하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될 수도....

 

우리의 행복은 전적으로, 철저히 다른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다. 가족, 친구, 이웃, 게다가 우리가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무실 청소부까지도 모두. 행복은 명사도, 동사도 아니다. 접속사다. 연결 조직.      -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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