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대해 글을 쓰게 될 줄이야.

 

작년 오키나와에서는 닷새 동안 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다. 기억에 남는 거라곤, 모노레일역에서 2분 거리였다는 것, 4층인가 5층인가여서 피곤한 하루를 더욱 피곤하게 했다는 것, 과묵함이 지나친 숙소 여직원의 무심함이 인상적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때까지 여행중 제일 오래 묵은 숙소였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선 일단 우붓에서 무조건 8일을 묵기로 했다. 왜 8일간인지는...나도 모른다. 그냥 8일로 잡았을 뿐이다. 또 하나는 무조건 한 숙소에서 8일을 보내보자는 거였다. 이 역시 이유는 없다. 한번도 그래본 적이 없으니까, 한번 그래보고 싶었다. 하루짜리 호텔숙박은 짐 싸기도 번거롭고 기억에 남는 것도 없이 소멸되는데 그 허망함을 벗어나보고 싶었다. 평소 동경하는 여행생활자의 흉내를 내보고도 싶었다.

 

호텔예약사이트인 아고다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숙소가 Bumi Muwa였다. 돌아와서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이미 이곳을 다녀온 분들이 사진과 글을 올리기도 했으나, 나는 미리 정보를 구하고 싶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 여행은 '아는 만큼 감흥이 떨어진다'. 예전에는 여행안내서를 영문으로 된 론리플래닛까지 구비했지만 이번엔 딱 하나만 준비했다. 그것도 별 고민없이 무작위로 골랐다. 될 수 있는 한 세밀한 정보가 담겨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고다에서 숙소를 예약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지역을 검색하면 숙소가 요금별로 쫙 나온다. 사진으로도 소개해놓았지만 사실 사진발은 별로 믿을 게 못된다. 다만 베이스캠프로 삼으려면 위치는 고려해야 한다. 돌아다니기 편한 여행자거리에 있으면서, 아침밥 주고, 에어컨에 화장실 달려있으면 된다. 그렇게 대충 고른 곳이 Bumi Muwa였다. 그래도 별 세 개가 반짝이는 곳이건만...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꺼내는 나는 아무래도 부정적인 성향이 강한 것 같다. 하여튼 단점은, 손님을 배려하는 섬세함 따위는 없다는 점이다. 마실 물이라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는 한모금짜리 생수 한 병이 전부다. 보통은 날마다 500ml정도의 생수를 제공하거나 정수기를 사용하게 하는데 이 호텔은 물 한 모금 공짜가 없다. 샴푸와 바디워시라는 게 있긴하나 분명 물로 희석시켜놓은 것이어서 아무리 열심히 짜내어도 거품이 일지 않는다. 일회용 칫솔은 있으나 딱 일회용으로 만든 것이어서 도저히 손이 가지 않고, 세수비누는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수건은 그나마 매일 새로 빨은 것을 주지만 새하얀색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밤마다 모기에 시달려서 겨우 액체전자모기향을 얻긴했으나 스프레이로 된 모기약은 알아서 따로 구입해야 한다. 화장실은 넓기는한데 왜 그렇게 바닥이 미끄러운지, 혹여 넘어져서 뇌진탕이라도 될까봐 늘 노심초사해야한다. 처음에는 당황해하다가 나중에는 화장실 바닥의 물기를 스스로 닦아내는 착한 숙박객으로 변한다. 진화하는 숙박객, 알아서 처리하는 숙박객이 되어간다. 손님이 왕이 아님을 착실히 가르쳐주는 곳, 이곳이 Bumi Muwa Accommodation 이다. accommodation. 그냥 숙박시설이라는 뜻의 단어를 상호로 사용하는 곳이다.

 

공항 도착시 픽업을 부탁했기에망정이지 어두운 밤에 홀로 도착했더라면 이곳을 찾느라고 발리 전체를 두고 험한 말이 오갔을 게다.

 

왼쪽으로 보이는 인도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빠듯한 길이지만, 오늘도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 길을 걷고 있을 터이다. 일방통행인 차도는 오늘도 수많은 호객꾼들이 자가용승용차로 택시영업을 하고 있을 터이다.

 

침대에서 찍은 호텔 정원 모습.

호텔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서로 눈에 들어오는 곳.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방.

방 홋수는 05호.

출입문이 창문처럼 되어있어 약간 난감하고, 문을 잠그려면 열쇠를 오른쪽으로 세 번, 열려면 왼쪽으로 세 번 돌려야 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함.

제주도의 여미지식물원을 연상시키는 싱그러운 열대 식물들.

 

정원에 핀 꽃.

 

 

 

손바닥만한 꽃.

 

 

문 앞에 있는 꽃.

 

 

 

숙소 내부. 비누도 없고 마실 물도 없지만 날마다 백조가 날아들었다.

 

 

 

옆방과 수영장 가는 길. 작은 열대식물원을 방불케한다. 매일 한가한 오후 3~4시가 되면 젊은 스태프들이 정원에 나와 마른 잎을 따내거나, 작은 묘목을 심거나, 빼곡히 자란 바나나나무 따위를 솎아낸다.

 

 

작은 규모의 소박한 수영장. 수영장이 있는 숙소에 처음 묵어보는 사람에게는 이 작은 수영장도 감동이었다.

 

 

 

수영장 데크에 누워 바라본 하늘. 

 

 

매일 아침에 먹은 맛있는 과일모음(바나나, 파인애플,파파야,멜론)과 볶음밥 혹은 야채오믈렛, 그리고 맛없는 커피. 상냥한 젊은 직원들. 다부지고 야망있는 24살의 운전기사 Madi. 원숭이숲에서 탈출한 원숭이들의 심심찮은 방문. 원숭이를 쫓는 직원들의 긴 장대. 장기투숙중인 동양인아저씨.

 

체크아웃을 하고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나오는데,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이 그런다.

 

"See you later."

 

그래요,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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