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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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국 - 간단 줄거리

 

헨리 키터리지는 마을 약사. 일을 도와주던 그레인지 부인이 자다가 급사하자 새 여직원 데니즈를 고용한다. 그녀 남편 이름도 공교롭게도 헨리다. 젊은 부인 데니즈를 위해 남편 헨리는 약국까지 태워준다. 약사 헨리 키터리지는 그들과도 사이가 좋고 맘 속 깊이 데니즈를 챙기고 연민한다. 부인 올리브 키터리지는 30여 년 이상 수학 선생을 하고 있다. 냉담하고 부정적이며 데면데면한 성격이다. 그들 사이엔 크리스란 아들이 있다.

 

의약품 배달을 하는 소년 제리 매카시는 데니즈의 충고를 받아들여 방송대학 공부를 성실히 한다. 헨리 키터리지는 한결 같다. 데니즈에 대한 환한 시선을 버리지 않는다. 데니즈 남편의 불알친구 토니 쿠지오가 데니즈의 남편 헨리 시보도를 사슴으로 오인해서 사냥총으로 죽이고 만다. 젊은 과부가 된 데니즈를 헨리는 여전히 연민하고 사랑한다. 부인 올리브 키터리지는 성격대로 ‘과부 위로꾼’이라며 헨리를 향해 비아냥댄다.

 

제리 매카시의 청혼을 받아들여 데니즈는 약국을 떠난다. 세월이 흘러 약국 자리엔 대형 마트가 생긴다. 헨리는 옛날을 추억한다. 가끔씩 데니즈에게서 엽서가 오는데 처음엔 아무 수식어 없이 데니즈, 란 사인만 들어 있다가, 오랜 만에 온 데니즈로부터 온 카드엔 ‘사랑을 담아’라는 말이 적혀 있다. 아프리카꽃 옆에 놓인 그 카드를 올리브는 턱선으로 남편 헨리에게 가리킨다.

 

 

늙은 올리브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교회 앞마당에서 만나는 데이지는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헨리에게 자랑한다. 헨리는 문득 생각한다. 오래토록 데니즈를 생각하는 동안 올리브도 동료 선생이었던 짐을 사랑하지 않았을까,하는.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이해하게 된 헨리는 올리브에 대한 죄책감으로 말을 건네본다. 당신 날 떠나지 않을 거지? 올리브다운 답이 돌아온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사람 참 지겹게 만드는 재주 있다는 핀잔만 돌아온다. 헨리는 남친이 생긴 데이지를 초대해야겠다는 말을 남긴다.

 

 

 

 

 

  아프리카제비꽃 

 

 

  식탁 위엔 아프리카제비꽃이 놓여 있겠지. 그 옆의 카드 한 장, 아내 올리브가 턱짓으로 가리키네. 남편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펜으로 봉투를 뜯네. 돋보기가 필요한 건 당연하겠지. 남편이 운영하던 약국에서 일을 돕던 데니즈에게서 온 엽서야. 약국을 떠난 지 이십 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애는 생일마다 남편에게 안부 엽서를 보내곤 하지. 남편을 그 정도로 예우할 만큼의 교양과 사랑스러움은 지닌 여자지. 하지만 아내 올리브에겐 패션 감각조차 없는 맹추로 기억되는 여자지.

 

 

  그애가 남편을 남자로 깊이 사랑한 건 아냐. 아, 사실이 아니구나. 그애도 남편을 사랑했어. 다만 섣불리 그 감정을 드러낼 애가 아니었지. 그애는 누구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감내할 만큼 강심장을 가진 애는 아냐. 남편은 그애를 몹시 사랑했지. 사랑이 뭐 별거겠어? 쉬는 시간에 약품 매뉴얼을 무릎에 놓고 들여다보는 그애의 안경 낀 모습이 귀엽게 보이고, 붉은 벙어리장갑을 떨어뜨린 그애를 위해 허리 숙여 장갑을 줍고, 입구를 벌려 그애 작은 손이 쏙 들어가는 걸 지켜보는 것. 뭐 그런 게 사랑인 게지.

 

 

  그애는 불의의 총기 사고로 너무 빨리 남편을 잃어버렸어. 그 애가 몹시 아파 간호를 해주고 돌아오던 날, 차창을 짓누르는 어둠 속에서 남편은 생각하지. 먼 북쪽으로 가 작은 집에서 그애와 살고 싶다고. 약사이니 일자리는 구할 수 있을 터이고, 그애와 예쁜 딸을 낳고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 약품 배달원이던 남자와 결혼을 한 뒤 그애는 약국을 떠나지. 남편 생일 때마다 의례적인 카드가 날아들지. 단 한 번도 편지 끝에 ‘사랑을 담아’라고 쓰지 않지. 하지만 마지막 안부가 될지도 모를 아프리카제비꽃 옆 장면에서는 이렇게 카드의 끝을 맺지. ‘사랑을 담아 데니즈’. 몹시 애잔하지. 사랑을 담아, 라고 말할 때 우리는 데니즈의 사랑이 정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 누구나 사랑에 빠졌을 땐 섣불리 사랑이라 말하지 못하지. 사랑을 놓아주고서야 우리는 쉽게 사랑이라 쓸 수 있지.

 

 

  목도리를 짜는 상태의 마음과 다른 목도리를 짜기 위해 그 짰던 목도리를 풀 때의 감정은 다르지. 두레박 물을 기다릴 때의 심정이랑, 갈증을 해소하고 난 뒤의 물맛은 다르지. 사랑의 본질은 같더라도 그 감응은 다를 수 있는 거야. 절절하고, 터질 것 같고, 아프고, 벼랑 끝일 때 우리는 사랑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하지. 하지만 담담하고, 터진 뒤이고, 덜 아프고, 다만 담벼락 정도일 뿐일 때 우리는 사랑이라고 쓸 수 있지. 그러니 어떻게 올리브의 남편과 데니즈가 이루어질 수 있겠어?

 

 

  이런 얘기가 다는 아냐. 아내 올리브가 있잖아. 올리브를 주목해야 돼. 매사에 빈정대고, 퉁명스런 그녀는 다정다감하고 우유부단한 남편더러 이렇게 말하겠지. 과부 위로꾼아,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딨어? 아,『올리브 키터리지』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야. 시작인「약국」편에서 주변인물로 나오는 올리브는 전형적인 주부상은 아냐. 독선과 상처의 심연 끝에 어떤 꽃이 피어날지 벌써 가슴이 따끔거려. 식탁 위 아프리카제비꽃, 그 청보라 꽃잎이 아직은 위태로워 보여. 자의식 강한 한 여자의 맵찬 삶이 저렇게 꽃잎 속에서 떨고 있어.

 

 

  님은 어쩌자고 이런 좋은 책을 선물로 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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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2-12-02 0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편 연작 단편 중 겨우 한 편을 읽었을 뿐인데 넘 먹먹해서 진도가 안 나가요. 진작에 우리는 왜 올리브 같은 엄마나 아내에 관한 얘기를 쓸 생각을(읽을 생각을) 못하는 걸까요? 너무 미국적 상황이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돼서 그런 걸까요? 엄마를 부탁해, 같은 여성상이 전부는 아닐 터인데... 그래도 이토록 많은 독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보입니다. 도무지 잠 못 이루는 밤입니다. 이 한 권의 책...

라로 2012-12-0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여러번 읽었어요!!
님의 글은 나중에 밤에 잠자기 저에 읽을래요.
잘난척이 아니라 영어로도 여러번 읽었는데 정말 매번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팜님의 리뷰를 읽게 된다는 것도 설레네요.

다크아이즈 2012-12-02 19:37   좋아요 0 | URL
나비님 역시 그렇군요. 이 좋은 책을 저는 왜 이제 알았을까요? 확실히 남성보다는 여성이 공감하기 쉬운 책입니다. 저도 힘겹겠지만 원서 꼭 사서 곁들여서 읽어볼게요. 나비님 덕에 장바구니 담습니다.

낮에 남푠이 운전하는 옆에서 <밀물>부분 읽었는데 너무 많이 울어서 점심도 못 먹고 들어와서 라면 끓여먹었네요. 적어도 올리브 정도는 돼야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제 겨우 두번 째 파튼데 나머지 열한 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실은 프레님이 이 책 선물로 주신 건데 너무 원망스러워요. 어쩌자고 이런 책을 주셔서 저는 연말을 어찌 보낼까요? 슬픔, 따끔거림, 분노, 위안, 조울... 모든 감정이 교차하는 12월을 이 책과 함께 해야한다니 나비님 저는 어쩌면 좋아요. 다 읽고 나면 저 넉다운되는 거 아닐까요? 간만에 책다운 책 읽는 기분. 저 기진맥진해도 좋아요.

blanca 2012-12-0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이지...다 읽고 나면 그냥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제 시작하셔서 그 감동을 맛보실 팜므느와르님이 부럽습니다. 이 작가의 책은 왜 더 이상 번역이 안 되는 걸까요? 아프리카제비꽃은 어떤 꽃일까요? 올리브 키터리지를 이제 시작하신 팜므느와르님에게 감동과 재미의 앞길이 펼쳐지기를....

다크아이즈 2012-12-03 22:31   좋아요 0 | URL
앗, 블랑카님 출현하셨다. 벌렁벌렁~~(저 감동 모드입니다 ㅋ)
진짜 더 이상 번역한 거 안 나오나요?
전 착하게 쓰는 작가보다 이렇게 통찰 깊은 작가를 좋아해요.
살다 보니 취향이 같은 여러 알라디너들을 공감할 수 있는 날도 오네요.
천천히 음미하고, 느끼면서 읽을 게요.

참고로 리뷰 쓰기 전에 아프리카제비꽃 이미지 찾아봤는데 청색도 아닌 것이 보랏빛도 아닌 것이 소박하고 아담하더군요. 편편마다 꽃이 등장해주니 그거 눈여겨 보는 것도 재밌네요.
블랑카님 새 글 빨리 올려주세요. 글 잘 쓰는 우리 블랑카님...

프레이야 2012-12-0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ᆢ 제가 더 행복해지는 이 충만감은 뭐죠. 팜님 글 참말로 좋아요. 격하게 울고 웃으며 읽으실 거에요, 나머지도. 이 글 찜해두고 수시로 읽겠어요. 전 그 책 읽고 아직도 글로 풀어내질 못하고 있거든요. 뭐부터 어떻게 말해야 될지 격하게 막막해서요. 넘 좋으면 말이 잘 안나온다지만ㅎㅎ 영어문장은 더 멋질거에요.

다크아이즈 2012-12-03 22:38   좋아요 0 | URL
프레님도 벌써 영문 접수하셨군요. 도대체 프레님을 비롯 이곳 사람들은 몸이 몇 개 일까요? 저마다 할 일 잘하고, 책도 다양하게 읽고, 리뷰나 페이퍼도 멋드러지게 갈무리하고... 군계일학인 프레님... 따라 갈 수도 없지만 그렇게 하다간 제 바짓가랑이 찢어질 걸요. 좋은 책 천천히 느끼면서 읽고 있어요.
제 독서대가 요즘 호사합니다.^^* 웬만한 책은 그냥 펴서 읽는데 이 책은 독서대에 모셔놓고 읽는 중 (좀 두껍기도 하고, 섬세하고 편안하게 보고 싶어서요.)

다락방 2012-12-0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저도 이 책 정말 좋아해요, 팜므느와르님. 엄청 좋아해요. 이 책 가지고 페이퍼도 아주 여러번 썼어요. 저도 이 책 정말 좋아서 읽지도 못하면서 원서를 사두었지 뭡니까!
아직 진도 많이 못나갔다 하셨는데, 마지막 편인가, 일흔 된 올리브가 데이트하는 이야기는 아, 정말 두고두고 생각나는 엄청난 이야기에요. 휴..

다크아이즈 2012-12-03 22:4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런이런... 스포일러마저 저를 흥분하게 만드네요.
이제 겨우 밀물, 피아노 연주자까지 읽었는데 다 좋네요. 편편마다 등장하는 인물에 다 몰입하게 되어요, 갸들이 내가 되어 스며드는 이 느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같이만 쓸 수 있다면, 하는 격한 느꺼움이 마구마구 펌프질하옵니다.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 식민지 조선을 파고든 근대적 감정의 탄생
소래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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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랑’의 사전적 뜻은 ‘1.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하다. 2. 유쾌하고 활발하다.’이다. 한데 날씨가 명랑하다, 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 걸로 보아 요즘에는 2번 뜻인 유쾌하고 활발하다, 의 의미로 정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명랑이란 말을 좋아한다. 안부 문자를 보낼 때 습관적으로 ‘명랑, 상큼, 발랄’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도 한다. 이때의 명랑도 당연히 유쾌하고 활발하다, 의 의미인 것은 자명하다.

 

 

 한데 책 한 권 덕에 이 말에 대한 색다른 의미를 새길 기회가 생겼다. 작가 소래섭 강연을 들은 후였다. 어떻게 하면 시를 노래처럼, 노래를 시처럼 가까이 대할 수 있을까에 대해 청소년들을 상대로 연 인문학 강좌였다. 학생들 못지않게 일반인들에게도 유익한 강연이었다.

 

 

  일제강점기 때의 문학 전반이나 사회상에 관심이 많은 학자로 보이는 그의 몇몇 저서 중 단연 관심 가는 것은 것은『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이다. 당장 빌렸다. 한마디로 ‘명랑’에 관한 의미를 다시 짚어보게 하는 책이다. 작가에 의하면 적어도 일제강점기 때의 ‘명랑’이라는 낱말은 지금의 ‘유쾌하고 활발하다’라는 의미와는 좀 더 다른 의미로 쓰였다. 아마 오늘날의 ‘건전’, ‘모범’ 등의 단어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그 숨은 뜻은 ‘체제에 길들임’, ‘불온함을 용납 못함’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통치 권력 입맛에 맞게 문화 시민으로 길들여지는 상태를 ‘명랑’이란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던 것이다.

 

  보건, 위생, 치안 등 당시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는 ‘도시 명랑화’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사람의 교양에서부터 도시 문화 전반에 이르기까지 관에서 통제하겠다는 의도였다. 기준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들을 퇴치하는 것이 경성 명랑화의 주된 모토였다. 따라서 명랑의 반대말은 ‘음탕, 불결, 범죄’ 등이 될 수 있었다. 명랑한 것이 아니면 모두 없애야 할 것들이었다. 거리 방역사업에 몰두하고, 분뇨 정비 사업을 벌였으며, 이만 명이 넘는 걸인 퇴치에 사활을 걸었다. 사회 운동으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체제 순응적 모범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체제 순응적 학생을 만들고, 대중매체를 통제했으며, 불온한 행위는 퇴출시켰다. 불온한(?) 경성 전체가 명랑화 사업에 동원된 것이다.

 

 

  강요된 건전과 부자연스런 절제가 ‘명랑’이란 말로 포장되었던 당시 사회 의식이 오늘날에도 완전히 고리를 끊었다고는 할 수 없다. 경성의 불온함을 명랑하게 만들고자 했던 것처럼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개별자의 건전한 불온조차 허락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 구조이다. 프랑스와즈 사강이 말했던가. 사회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통제를 위한 명랑이 아니라 개방을 위한 명랑일 때 ‘명랑’이란 말의 가장 밀도 높은 진정성이 담보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명랑이란 말이 그다지 명랑하게 쓰이지 않는다는 이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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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제시대엔 '명랑'이 그런 의미였군요! 조선 시대 한글수필의 '명랑'이랑은 또 다르니, 아마 20세기 일제가 창조한 또 하나의 의미였겠지요. 오늘날은 '명랑'으로 불온을 실천하는 의미의 역전이 또 일어난 듯 하고요. (주로 우석훈씨가 '명랑'을 주장했던가요?) 여튼 잘 배우고 갑니다..^^
(늘 읽기만 하고, 댓글은 첨 단 거 같기도 하고, 전에 한 번 표 내고 간 거 같기도 하고..?!)

다크아이즈 2012-11-28 01:51   좋아요 0 | URL
섬님 브라보! 저야말로 명랑으로 불온을 실천하고픈 일인입니다. ^^*
우석훈의 주장, 제겐 굉장히 유의미하게 다가오네요. 땡깁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 스완네집 쪽으로 - 콩브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정재곤 옮김 / 열화당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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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스무 살 시절 나는 제법 학교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도서기록카드로 대출인을 관리하던, 그야말로 아날로그 방식을 활용하던 때였다. 책 뒷면, 붙여진 봉투 안에 기록지가 있었다. 그 종이에는 책을 빌린 이의 이름과 빌린 날짜, 돌려주는 날 등이 적혀 있었다. 누가 어떤 책을 읽는 지 목록을 보면 훤히 꿰찰 수 있었다. 어느 날 공대생 친구 녀석이 말했다. 

  "도서 기록 카드에 니 이름 와 그리 많이 등장하노?" 

   독서 취향이 비슷했는지 아는 이름이 눈에 자주 뜨이니 그 친구는 반가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반색하는 녀석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녀석의 심정과 무관하게 도둑이 제 발 저렸던 것이다. 빌린 책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사진을 훔친 때문이었다. (고백하자면 카프카의 사진도 훔쳤다!)  혹시라도 도서대여 담당자가 추적 끝에 잘려나간 작가 사진들을 돌려달라고 할까봐 두려웠다. 또한 작가 사진을 오려 가진 이가 나라는 것을 친구 녀석도 알게 될까 찔렸던 것이다.

 

  ((이건 여담인데 오늘 우연히 한겨레 신문을 보다가 김두식의 <고백>코너에서 고종석의 적나라한 고백을 들었다. 나보다 더한 놈(!)께서 출현했다. 고종석 광빠 정도는 아니더라도 엄청 존경하는 글쟁이 중 한 분인데 살짝 실망했다. 그 왈 헌책방 가서 많은 책을 훔쳤단다. 겨울 외투 사이에 갖고 싶은 책을 찔러 넣고 왔다는데 한 두 군데가 아니고 세 군데 정도의 헌책방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보았다. 솔직히 나는 놀라 기절할 뻔했다.당시엔 죄책감도 없었다니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싶다. 인터뷰 뉘앙스를 보니 고종석은 헌책방 주인을 계급의식 관점으로 바라본 듯하다. 헐케 손에 넣어 비싼 값으로 되파는 주인이니 자신이 좀 장기 대여(평생 대여)(?)한들 어쩌리, 하는 맘이 있었던 것 같다. ))

 

  다시 내 얘기로 돌아오자.  책 안에 깃든 주요 정보를 개인이 독점하는  행위는 부도덕하다 못해 파렴치하다. 하지만 그 치기 역시 책에서 배웠으므로 내 죄는 반감되어야 마땅하다! 그 시절, 내 설 익은 감성을 쥐락펴락했던 전혜린이란 에세이스트가 있었다. 너무 오래 돼 지금은 잊었지만 그미가 독일 유학시절 필요한 자료(아마는 어떤 작가의 사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를 도서관에서 슬쩍해왔다는 고백을 읽으면서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도 꼭 한 번 따라해보고 싶었다. 그 때 따라쟁이한 도둑질한 사진이 프루스트와 카프카였다. 내 기억에 의하면 프루스트는 오래 간직하지 못했고, 카프카는 내 좁은 방 미니액자에 담겨 오랫동안 내 우수어린 친구가 돼줬다.  

  그 때 빌린 책이 아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변신'쯤이 되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내게 결국 제목만 원어로 외운 책이 돼버렸다.  '아 라 흐세흐쉐 뒤 땅 뻭뒤(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 A 철자 위에, 악상 그라브 넣는 법은 몰라요. 우쒸~). 어려운 건 용서할 수 있겠는데, 한 마디로 지겨웠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만큼이나 초반부터 질리게하는 마력(?)이 있는 책이었다. 나중에 그 원인을 알아냈다. 젤 큰 원인은 프루스트의 만연체 문체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어려운 불어인데, 헤밍웨이처럼 짧고 간략하게 써주면 누가 뭐라나? 끝날 줄 모르는 접속사로 이루어진 복문에 지쳐 버렸다. 독자를 배려해 깔끔하게 잘라서 번역해주면 좋으련만 그도 아니니 인내심 폭발하게 하는 책인 게 분명했다. 해서 누군가 잃어버린 시간~을 완독했다면 마구 안아주고 싶다. 다행인지 주변에는 아직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전문 연구자들조차 다 이해 못한다니 이 책을 못다 읽었다 해서 부끄러워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만화로 된 잃어버린 시간이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4권까지 나온 걸 알고 주문했는데, 오늘 보니 5권도 출간되었단다. 배달된 만화책을 펼쳤다. 가장 궁금했던 것이 그 유명하다는 마들렌느 과자 부분이었다. 마들렌느 과자 모양이 너무 궁금했었다. 내 상상 속의 마들렌느 과자는 민무늬 타원형 모양이었다. 하지만 만화책 15쪽, 허겁지겁 찾은 마들렌느는 예상밖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작은 조개 모양이었다.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많이 나는 꼬막 조개처럼 생겼는데 좀 더 커 보였다. 국내 제과점에서도 그 비스킷을 파는지는 모르겠는데, 프랑스에서라면 우리의 국화빵처럼 흔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개인적으로, 만화로 된 이 책의 매력은  마들렌느 과자를 그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감미로운 행복감이 나를 엄습해와, 어찌 된 영문이지 나를 고립시켜 버렸다. 지금 내 안에는 과자 때문에 되살아난 이미지, 시각적 기억이, 이 맛의 뒤를 따라 내 자아에까지 이르고 있음이 틀림없다. 도대체 이 극도의 희열감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나는 이 희열감이 홍차와 과자 때문에 생겨나긴 했지만, 단순한 감각의 차원을 뛰어넘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달하려는 본질은 과자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었다. 홍차에 적신 과자가 뭔가를 일깨운 것이다. 그 후 연거푸 열 번은 더 마셔봐야 했는데... 머나먼 과거의 기억이 과연 내 의식의 표면에까지 이를 수 있을지...> (만화판 1권 콩브레 편 15쪽)

   

  만화 장면을 지상 중계해본다. 마르셀이 홍차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식탁 곁에 다가온다. 마들렌느 과자 하나가 담긴 접시 가까이 마르셀의 손이 다가간다. 스푼에 뜬 홍차에 마들렌느 과자 조각을 담근다. 왼쪽 손에 스푼을 든 마르셀은 콧수염 가까이 스푼을 들이대고 그 향을 음미한다. 다시 한 조각을 떼어 스푼 홍차에 찍는다.  

  내 설명으로도 감이 잡히지 않는, 마들렌느 과자 모양이 궁금한 프루스트 독자는 만화로 된 이 책을 사도 좋겠다. 아직 5권까지 밖에 안 나왔다는 게 아쉽다. 나도 나머지 한 권을 장바구니에 담을 생각이다. 원본이나 원본 번역서를 지겨워할 독자라면 이 책만으로라도 제 허영심을 충족시키기엔 충분하다.  

 

 

** 일 년 넘은 리뷰인데, 오늘 한겨레에서 김두식의 <고백> 코너에서

    고종석 인터뷰 한 것 보고 필이 꽂혀 재구성했다.  그나저나 고종석 작가 넘 강도 높은 

    고백이란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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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19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에게 이런 기억이ㅎㅎㅎ 공소시효도 다 지난 일이죠.ㅋㅋ
저도 책을 훔친 기억이 있네요. 대학 도서관 앞 중고도서 가판대 비슷한 곳이었는데
두 권이요. 그냥 가져가도 될 정도로 싼 가격으로 내놓여 있었던 기억인데..암튼요.ㅎㅎ
카프카의 사진은 참 멋지지요. 훔치고 싶을 정도로..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얼마전 사놓고 아직이에요.
불어 읽다가 저 지금 너무 웃겨서 막 야단났어요. ㅋㅎㅋㅎㅋㅎ
악상 그라브ㅋ 고등학교 때 불어 배운 게 다인데 참 좋아했더랬는데...
근데 고종석은 절필을 왜 했을까요.

다크아이즈 2012-11-20 02:45   좋아요 0 | URL
팜님...그 시절 누구나 한두 번 겪음직한 일일 것 같아요.
고종석 작가 언젠가는 돌아오겠지요.
진심이 통하지 않는 시간들에 대한 거부일 수도,
귀차니즘을 강조하는 작가답게 그냥 좀 쉬고 싶을 수도...
왠지 둘 다인 것 같아요..
 
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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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오늘은 어제의 집합체이다. 내일 없는 오늘은 있어도 어제 없는 오늘은 신생을 제외하곤 없다. 오늘 내가 하는 모든 몸짓과 생각은 좋든 싫든 어제의 결과물이다. 앙다문 입술, 조심성 없는 매무새, 무심한 위로의 말, 주춤거리며 멀어지는 발길, 재바른 손놀림, 자주 흘리는 눈물, 위선에 찬 악수, 쏘다녀 비릿해진 머릿결, 전의를 상실한 눈빛……. 이 모든 것들은 축적된 어제가 내보낸 오늘 삶의 무늬들이다. 오늘을 이루는 이 무늬결이 단단하거나 부서지는 건 어제 역시 단단하거나 부서지기 쉬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늘을 산다고 믿지만 실은 어제에 갇혀 산다. 오늘을 버리고 싶다는 것은 어제를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고, 오늘을 부여잡는 건 어제로 돌아가고 싶다는 완곡한 바람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였으므로.

 

삶이란 이처럼 어제와 오늘이 얽힌 유기적 총체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소설『어제』에서 과거와 현재가 맞물리는 지난한 삶을 무심한 듯 냉정한 필치로 그린다. 장식 없고 건조한 그녀의 문체는 화려하고 다사로운 문체보다 훨씬 더한 감동을 준다. 창녀의 딸이라는 과거도, 노동자라는 현재도 연인에게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주인공의 막막함. 거기다가 연인과 같은 아버지를 뒀다는 혼자만의 비밀까지 감당해야 하는 주인공은 스스로를 제외하곤 어디서도 제 운명을 이해받지 못한다. 끝내 고통스런 어제인 연인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

 

독자로서 가슴이 아픈 건 운명의 가혹함이라는 신파가 아니라 산다는 것의 비루함에 이야기의 초점이 가 있기 때문이다. 결코 과거를 파먹으며 자학하지 않는다. 사랑을 포기한 그 자리엔 현실이란 오늘이 배치되어 있다. 말하자면 죽도록 사랑했던 연인이 떠나도, 더 이상 꿈꿀 이유가 없어도 인간은 어떻게든 현실과 타협해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다만, 어제에 발목 잡힌 오늘이 그 어제를 영원히 밀어내지는 못한다.

 

  어제에 저당 잡히는 걸 견딜 수 있는 건 그것이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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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1-08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렇게 멋진 리뷰를 보게 되다니... 대박 대박!!!!!!!
제가 이런 글을 보게 된 것이 대박이란 뜻이어요. 키득~~~

'나도 요런 글을 써 봐야징.'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입니다.

다크아이즈 2012-11-09 09:16   좋아요 0 | URL
간결함 속에 담긴 서늘하고, 섬찟하고, 초연하고, 냉랭하고 그리고 그리고
담대하게 담담한 그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해내고, 저는 바라보고, 페크님은 과한 유머로 화답하시고... 이래저래 이 가을, 또 절망입니다. 휴~
 
사르트르 평전
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 변광배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업무 차 타지에서 온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본 그녀는 무척 야위었다. 통통하게 볼 살이 올랐을 때만을 기억한 내겐 그 모습이 충격이었다. 다이어트나 운동을 해서 뺀 살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극심한 스트레스가 주범이라고 실토했다.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데 관계에서 오는 갈등으로 마음고생이 심하단다. 지옥이 따로 없다고 했다.

 

타인은 지옥 맞다. 희곡「출구 없는 방」에서 사르트르가 확인시켜 준 말이기도 하다.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있다. 그 셋이 한 호텔 같은 방에 배정을 받는다. 그것만으로도 이상한데 출구마저 없다. 한 방에서 꼼짝없이 세 명이 살아야 한다. 방안의 전등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 이 호텔은 다름 아닌 죽은 자들의 감옥인 지옥이다.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불바다는커녕 고문조차 없다. 하지만 곧 그들은 깨닫는다. 그들 서로가 불바다요, 고문자라는 것을. 타인보다 더한 지옥은 없다는 것을. 끓는 납에 넣는 것보다 부젓가락으로 쑤시는 것보다 더한 지옥이 타인이었던 것.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어릴 때부터 숱하게 배워왔다. 싫든 좋든 타인과의 관계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타인이 필요악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가 나타나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해주니 얼마나 위안이 될 것인가. 비록 ‘닫힌 공간’이라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어느 누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모순에 대해 이처럼 통렬한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구나 현실은 힘겹고, 관계는 피로하다. 그렇다고 타인 없는 천국이 가당키나 한가. ‘타인이 곧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타인 없는 천국’도 삼일천하를 누리기 힘들다. 사르트르를 비틀어 만약 ‘혼자만의 방’이란 희곡을 쓴다면 그것이야말로 더한 지옥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타인은 지옥이자 곧 천국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실은 지옥이 아닌 천국일 때의 타인이 더 많다. 그 힘으로 우리는 일상을 버텨내는 게 아닐까.

 

지옥이자 천국인 타인. 살이 빠질 만큼 상처 입으면서도 우리가 그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운명적으로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상처와 치유가 함께 하는 즉, 지옥과 천국의 다른 이름인 그대 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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