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 식민지 조선을 파고든 근대적 감정의 탄생
소래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명랑’의 사전적 뜻은 ‘1.흐린 데 없이 밝고 환하다. 2. 유쾌하고 활발하다.’이다. 한데 날씨가 명랑하다, 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 걸로 보아 요즘에는 2번 뜻인 유쾌하고 활발하다, 의 의미로 정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명랑이란 말을 좋아한다. 안부 문자를 보낼 때 습관적으로 ‘명랑, 상큼, 발랄’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도 한다. 이때의 명랑도 당연히 유쾌하고 활발하다, 의 의미인 것은 자명하다.

 

 

 한데 책 한 권 덕에 이 말에 대한 색다른 의미를 새길 기회가 생겼다. 작가 소래섭 강연을 들은 후였다. 어떻게 하면 시를 노래처럼, 노래를 시처럼 가까이 대할 수 있을까에 대해 청소년들을 상대로 연 인문학 강좌였다. 학생들 못지않게 일반인들에게도 유익한 강연이었다.

 

 

  일제강점기 때의 문학 전반이나 사회상에 관심이 많은 학자로 보이는 그의 몇몇 저서 중 단연 관심 가는 것은 것은『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이다. 당장 빌렸다. 한마디로 ‘명랑’에 관한 의미를 다시 짚어보게 하는 책이다. 작가에 의하면 적어도 일제강점기 때의 ‘명랑’이라는 낱말은 지금의 ‘유쾌하고 활발하다’라는 의미와는 좀 더 다른 의미로 쓰였다. 아마 오늘날의 ‘건전’, ‘모범’ 등의 단어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그 숨은 뜻은 ‘체제에 길들임’, ‘불온함을 용납 못함’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통치 권력 입맛에 맞게 문화 시민으로 길들여지는 상태를 ‘명랑’이란 캐치프레이즈로 삼았던 것이다.

 

  보건, 위생, 치안 등 당시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선총독부는 ‘도시 명랑화’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사람의 교양에서부터 도시 문화 전반에 이르기까지 관에서 통제하겠다는 의도였다. 기준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들을 퇴치하는 것이 경성 명랑화의 주된 모토였다. 따라서 명랑의 반대말은 ‘음탕, 불결, 범죄’ 등이 될 수 있었다. 명랑한 것이 아니면 모두 없애야 할 것들이었다. 거리 방역사업에 몰두하고, 분뇨 정비 사업을 벌였으며, 이만 명이 넘는 걸인 퇴치에 사활을 걸었다. 사회 운동으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체제 순응적 모범 인간 만들기 프로젝트로 나아갈 수 있었다. 체제 순응적 학생을 만들고, 대중매체를 통제했으며, 불온한 행위는 퇴출시켰다. 불온한(?) 경성 전체가 명랑화 사업에 동원된 것이다.

 

 

  강요된 건전과 부자연스런 절제가 ‘명랑’이란 말로 포장되었던 당시 사회 의식이 오늘날에도 완전히 고리를 끊었다고는 할 수 없다. 경성의 불온함을 명랑하게 만들고자 했던 것처럼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개별자의 건전한 불온조차 허락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 구조이다. 프랑스와즈 사강이 말했던가. 사회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통제를 위한 명랑이 아니라 개방을 위한 명랑일 때 ‘명랑’이란 말의 가장 밀도 높은 진정성이 담보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명랑이란 말이 그다지 명랑하게 쓰이지 않는다는 이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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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제시대엔 '명랑'이 그런 의미였군요! 조선 시대 한글수필의 '명랑'이랑은 또 다르니, 아마 20세기 일제가 창조한 또 하나의 의미였겠지요. 오늘날은 '명랑'으로 불온을 실천하는 의미의 역전이 또 일어난 듯 하고요. (주로 우석훈씨가 '명랑'을 주장했던가요?) 여튼 잘 배우고 갑니다..^^
(늘 읽기만 하고, 댓글은 첨 단 거 같기도 하고, 전에 한 번 표 내고 간 거 같기도 하고..?!)

다크아이즈 2012-11-28 01:51   좋아요 0 | URL
섬님 브라보! 저야말로 명랑으로 불온을 실천하고픈 일인입니다. ^^*
우석훈의 주장, 제겐 굉장히 유의미하게 다가오네요. 땡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