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 평전
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 변광배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업무 차 타지에서 온 친구를 만났다. 오랜만에 본 그녀는 무척 야위었다. 통통하게 볼 살이 올랐을 때만을 기억한 내겐 그 모습이 충격이었다. 다이어트나 운동을 해서 뺀 살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극심한 스트레스가 주범이라고 실토했다.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데 관계에서 오는 갈등으로 마음고생이 심하단다. 지옥이 따로 없다고 했다.

 

타인은 지옥 맞다. 희곡「출구 없는 방」에서 사르트르가 확인시켜 준 말이기도 하다.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있다. 그 셋이 한 호텔 같은 방에 배정을 받는다. 그것만으로도 이상한데 출구마저 없다. 한 방에서 꼼짝없이 세 명이 살아야 한다. 방안의 전등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 이 호텔은 다름 아닌 죽은 자들의 감옥인 지옥이다.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불바다는커녕 고문조차 없다. 하지만 곧 그들은 깨닫는다. 그들 서로가 불바다요, 고문자라는 것을. 타인보다 더한 지옥은 없다는 것을. 끓는 납에 넣는 것보다 부젓가락으로 쑤시는 것보다 더한 지옥이 타인이었던 것.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어릴 때부터 숱하게 배워왔다. 싫든 좋든 타인과의 관계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타인이 필요악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사르트르 같은 철학자가 나타나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해주니 얼마나 위안이 될 것인가. 비록 ‘닫힌 공간’이라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어느 누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모순에 대해 이처럼 통렬한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구나 현실은 힘겹고, 관계는 피로하다. 그렇다고 타인 없는 천국이 가당키나 한가. ‘타인이 곧 지옥’이라는 사르트르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타인 없는 천국’도 삼일천하를 누리기 힘들다. 사르트르를 비틀어 만약 ‘혼자만의 방’이란 희곡을 쓴다면 그것이야말로 더한 지옥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타인은 지옥이자 곧 천국이 되는 것이다. 그것도 실은 지옥이 아닌 천국일 때의 타인이 더 많다. 그 힘으로 우리는 일상을 버텨내는 게 아닐까.

 

지옥이자 천국인 타인. 살이 빠질 만큼 상처 입으면서도 우리가 그 딜레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운명적으로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상처와 치유가 함께 하는 즉, 지옥과 천국의 다른 이름인 그대 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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